요연(了緣)
【정견망】
우리는 모두 그 돌원숭이가 화과산(花果山)에서 나왔고 영석(靈石 신령한 돌) 안에서 잉태되어 천지에 의해 양육되었으며 해와 달의 정화(精華)를 이어 인간 세상의 불꽃에 오염되지 않아 본성이 순수하고 선량하며 먼지가 묻지 않았음을 안다. 생명의 특성이 우주 특성 진선인(真善忍)에 가까울수록 층차의 내원이 더욱 높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화과산이 인체(人體)와 대응하는 위치는 마땅히 백회혈(百會穴)이니 문자 그대로 백 맥이 모이는 곳이다. 즉 사람의 육신과 보다 높은 차원의 우주가 연결된는 곳이다. 또 천정(天頂)이라고도 하는데, 정수리는 하늘을 향하며 하늘과 서로 연결되는 위치다. 사람의 모든 사유와 염두, 각종 복잡한 사람 마음은, 육신의 욕망과 탐념(貪念)을 포함해, 모두 대응하는 생명이 있는데, 선념(善念)이든 악념(惡念)이든, 배후에 아무리 복잡한 요소가 통제하더라도 출입구는 모두 백회다.
생각은 마음에서 생겨나는데[念由心生] 심념(心念)이 하늘에 도달할 수 있으면 하늘을 관통하는 강대한 기세를 이룰 수 있어 다른 공간에서 보면 엄청난 장관이다. 그러므로 백회는 마치 사유(思惟)의 큰 무대와 같아서 정수리를 하늘로 향하고 마음을 일으켜 염두를 움직이면, 자신은 모를지라도 온 하늘의 뭇신들은 이미 모든 것을 볼 수 있다. 당신이 말해 보라! 사람의 고만한 작은 총명으로 무엇을 감출 수 있겠는가!
말하자면 우스운데 세인들은 늘 사상이란 자신의 것이라 자신이 무엇을 생각하면 오직 자기만 안다고 생각하며 행동한다. 특히 나쁜 짓을 할 때는 자신이 말하지 않으면 오직 하늘과 땅만 안다고 생각한다. 믿으면 존재하지만 믿지 않으면 없는 게 아닌가! 나쁜 생각을 움직여도 누가 보는가? 설사 봤다 해도 증거가 없다. 사실 정말로 숨기기란 불가능하다.
소위 믿으면 존재하고 믿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단지 자기를 속이고 남을 속이면서 자신을 마비시키는 거짓말일 뿐이다. 많은 경우 자신도 속이지 못하는데 악행을 저지를 때 마음이 공허해서 두려워진다. 이것은 사람이 그래도 구도 받을 수 있으며 양지(良知)가 작동하고 있음을 설명한다. 선악(善惡)은 일념의 차이로 하늘과 사람이 싸우는데 악념(惡念)이 우세하면 아주 쉽사리 일념의 차이로 큰 잘못을 일으킬 수 있다. 이것는 정념(正念)이 부족한 상황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그러나 수련인에 대해 말하자면 이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수련인과 속인의 차이는 무엇인가? 수련 초기에 나의 인식은 좋은 사람이 되어 악한 일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박해를 겪은 후 나는 견정한 대법제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왜냐하면 좋은 사람이 되려면 진실을 말해야 하는데 강권(强權)과 폭정 앞에서 진실을 말한 결과는 바로 탄압과 박해를 받는 것이다. 그러므로 반석처럼 견정해야만 지나갈 수 있다.
경계가 조금 제고된 후에는 자신을 보호할 뿐만 아니라 또 사부님을 도와 법을 바로잡고 중생을 구도하는 사명도 감당할 수 있다. 그렇다면 보다 높은 인식은 바로 사유에 대한 통제인데 대법제자의 정념정행(正念正行)이야말로 사유에 대한 가장 좋은 통제다. 사유가 법에 녹아 들어가면, 법의 힘을 빌려 자신을 새로 용련(熔煉)할 수 있다. 법에서 바르게 깨달은 것을 닦아내어 사람의 것을 제거해야만 계기를 돌파해 고차원의 지혜로 신념(神念 신의 생각)을 다시 만들어낼 수 있다. 사상이 순정(純淨)할수록 신(神)과 더 가까워지고, 층차 역시 사유가 제고됨에 따라 끊임없이 높아질 것이다.
그래서 지금 내 인식은 바로 수련인과 속인의 차이는 수련인은 자신의 사유를 통제해 사명을 이행할 수 있고, 자신의 사상을 우주 특성에 점점 더 가까워지게 하는 것이다. 또한 사상이 그 차원에 근접하면 경계 역시 그 층차에 접근한다. 이와 상응해 나온 자비심은 곧 그가 존재하는 차원의 에너지와 소통하고 동원할 수 있어 지혜롭게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할 수 있다. 하는 말도 법(法)의 힘을 지녀 사람이 진상을 듣고 구도 받는 것을 저애하는 일체 사악한 요소를 직접 타파해 정신(正神)의 에너지를 동원할 수 있는데 이는 사악을 제거하는 가장 큰 위덕(威德)이다.
그러므로 주의식이 강한 것이 가장 크게 드러나는 것은 언제 어디서나 정념(正念)을 지키고 자신의 사유를 통제해 외래 관념의 교란을 받아 정신이 산만하지 않게 하고 심지어 주의식이 도리어 정념을 약화 시키지 않게 하는 것이다. 관건적인 때에 사람 마음으로 마난(魔難)을 대하면 오직 뺨을 때리는 역할만 할 뿐이다. 물론 어떤 생각이 진정한 자기이고, 어떤 생각이 법에 부합하지 않아 바로잡을 필요가 있는 목표인지 분명히 알기 위해서는 강력한 식별력이 필요하다. 법은 오직 주원신만을 제도하기 때문에 오직 주의식(주원신)만이 사유를 통제할 수 있다. 사람에서 벗어나 신(神)이 되는 첫걸음은 바로 식별력을 높이는 것으로 이렇게 해야만 진선인(真善忍)의 진(真)을 닦아낼 수 있다.
그러나 속인은 정념이 거의 없고 모든 옳고 그름과 맞고 틀림을 도덕로 판단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이익으로 판단한다. 이익을 추구하고 해로움을 피함은 사람의 천성이고 사람이 자신을 위하지 않으면 천벌을 받는다는 이기적인 노선을 걷게 마련이다. 기점이 옳지 않으니 자연히 틀려도 크게 들리게 된다. 그러나 사람의 진정한 천성(天性)양지(良知)는 오히려 이익을 얻는 데 걸림돌이 되고 모자라거나 부족하다 여기는데, 개인의 절실한 이익을 건드릴 때면 제거되는 것은 늘 양지다. 욕망의 부추김 하에서 사람은 정념(正念)을 똑똑히 구별하지 못하고 자신의 본진(本真 본원의 진)을 찾을 수 없다. 보라! 지금 사회는 물질적 이익의 추동하에 모든 것이 전도되었으니 말법시기는 바로 이렇게 도래한 것이다. 자사(自私)와 무사(無私)의 차이는 정말로 천양지차다.
그렇다면 수련인과 속인의 구별은 현재 역병, 자연재해, 천재인화(天災人禍)의 대도태에서 진실하게 드러난다. 무신론 그 한 세트의 것을 믿는 이들은 믿으면 존재하고, 믿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데 당신 자신의 마음속에 신(神)이 없다고 해서 다른 사람의 마음속에도 없는 것은 아니다. 또 현실에 없다고 해서 우주에도 없는 것은 아니며 눈 가리고 아웅 식의 거짓말을 믿고 지워버리는 것은 오히려 가장 진정한 자신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을 구도할 무수한 기연(機緣)을 없애버리니 이 얼마나 억울한가. 이로써 보건대 소위 믿으면 존재하고 믿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음에 존재하지 않는 것은 신(神)이 아니나 자아이고 존재하는 것은 구원이 아니라 천벌이다.
그러므로 백맥이 모이는 이곳은 또한 사유가 왕래하며 모이는 곳으로, 천인합일(天人合一)의 통로로 위치가 대단히 중요하다. 이 육신(肉身)을 얻은 후에는 그것을 닫아야 하는데 장치 사람을 미혹 속에 봉인(封印)해야만 수련해 돌아갈 수 있다. 사람이 태어나 몇 달이 지나면 정수리에 있는 신문(囟門)이 닫히기 시작하고, 6~7세가 되면 단단히 닫힌다. 어린이의 영성(靈性)도 이 나이가 되면 점차 사라진다.
이 역시 사람에 대한 신의 보호인데 영성을 사용하려면 공능을 동반해야 한다. 그런데 수련하지 않는 속인에게 공능 에너지의 소모는 거대한 것으로 지나친 소모는 신체를 허약하게 만들고 심하면 수명에 영향을 끼친다. 자고로 너무 지혜로우면 오래 살지 못한다는 말이 있는데 아주 도리가 있는 말이다.
원숭이를 길러낸 그 선석(仙石) 역시 위로 대응하면 바로 사람 최후의 마지막 남은 영성(靈性)을 봉인하는 신문이 된다. 소위 심원의마(心猿意馬 마음은 원숭이 뜻은 말에 비유한 것)라 사람 마음은 마치 만 마리 말이 일제히 달리는 것처럼 잘 변하고 정해진 규칙이 없다. 일찍 신문을 봉인하지 않으면 하늘과 통할 수 있다. 당신이 성장해서 자신의 사유 관념을 형성한 후 이 마음이 약간 왜곡되면 악념(惡念)이 잇따라 생겨나는데 그 덕(德)의 손실이 커지면 사람이 선천적으로 지닌 고만한 정화지기(精華之氣)도 복보(福報)로 만들어 사람이 일생을 완주하도록 지탱할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빨리 소모하면 안 되는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성장해서 사람이 되는 것조차 어렵다!
하늘은 호생(好生)의 덕을 지녔기에 사람을 미혹 속에 봉인했지만 미혹을 타파해 깨달을 수 있는 계기를 남겨주셨다. 바로 정법(正法)이 널리 전해지는 시기를 만나 법을 얻어 수련하면 하늘로 날아오를 수 있고 층층의 봉인을 열고 정과(正果)를 수련해 신위(神位)로 돌아갈 수 있다.
화과산이란 바로 여기서 유래한 것으로 육신의 영성을 봉인하는 산이자 질곡의 산이다. 속인에 대해 말하자면 그것은 산이고, 뛰어넘을 수 없는 천연의 험함이다. 수련인에 대해 말하자면 그것은 삼라만상을 포함한 우주의 축소판이다. 우주에 얼마나 많은 층의 하늘이 있으면, 사람의 뇌에도 그에 상응하는 층의 대응하는 맥락(脈絡) 기제가 있는데 수련을 통해 무한히 연결할 수 있고 동일한 주파수로 공명해 에너지를 방출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사람 대뇌가 10퍼센트 이하로 발달된 이유인데 모두 개발하면 곧 우주가 되기에 그 에너지는 범인(凡人 평범한 사람)의 몸으로 감당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수련을 통해 점차적으로 육체를 고에너지 물질로 전화(轉化)시켜야 하는데 이렇게 해야만 우주 에너지를 층층마다 연결할 수 있고 신(神)이 될 수 있다.
사람이 신(神)이 될 수 없는 간격은 단지 사람 마음이 형성한 관념일 뿐이므로 관념에서 파생되어 나온 집착을 타파하고 선천의 본성을 석방시켜 점차 신으로 돌아가는 것이 바로 수련의 성과다. 물론 이 과정에는 반드시 수많은 어려움과 위험이 따를 텐데, 그렇지 않으면 어디서 구구 팔십일난(八十一難)이 어디서 왔으며 또 위로 정수리를 봉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389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