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연(了緣)
【정견망】
미후왕(美猴王)의 탄생 이야기는 다들 잘 알텐데, 쉽게 말하면 천지의 조화(造化)를 훔쳐 돌을 깨고 세상에 나왔다. 좀 세속적으로 말하자면 돌 틈에서 뛰쳐나왔다.
《서유기》 제1회 개막편의 제목은 이렇다.
“영근을 길러 원류가 나오고 심성을 수련하니 대도가 생기다(靈根孕育源流出,心性修持大道生)”
우선 이 선석(仙石)의 위치가 평범하지 않은데 4대 부주 중 동승신주(東勝身洲)에 위치해 있다. 바로 “백 개의 강이 모이는 곳에 하늘 받친 기둥 있으니 만 겁(劫)에도 끄떡없는 대지의 뿌리로다(正是百川會處擎天柱,萬劫無移大地跟)”
이 구절은 패기가 대단하다. 생각해보라, 백 개의 강이 모이는 곳이라면 인체에서 어느 위치에 해당하겠는가? 그렇다 그곳은 바로 백회혈(百會穴)인데 또 천정(天頂)이라고도 한다.
수련의 각도에서 볼 때 백회는 영교(靈巧 신령한 기교)를 여는 곳이자 백맥(百脈)이 모이는 곳으로 다시 말해 천지인(天地人)과 함께 우주와 소통하고 서로 연결되는 큰 혈(穴)이다. 더 중요한 것은 수련인의 공기둥[功柱]이 바로 백회에서 나와 환우(寰宇)와 직접 통해 우주 만물과 하나로 융합할 수 있는데 에너지가 전화(轉化)되고 모이는 곳이자 공(功)이 연화되고 수련인의 과위(果位 하늘을 받치는 기둥)의 원류는 심(心)에 있다. 심성(心性) 수지(修持 수련을 실천하며 꾸준히 견지하는 것)란 수련인이 바르게 깨달은 대도(大道)임을 볼 수 있는데 대법 사부님께서는 “心性(씬씽)이 얼마만큼 높으면 공도 얼마만큼 높다”(《전법륜》)고 하셨다.
영근(靈根)이란 당연히 원신(元神)의 출처를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오공을 대표로 하면 그가 내원한 곳이 가장 높기 때문에 자연히 가장 좋은 위치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바로 그 산꼭대기에 선석(仙石)이 하나 있다.” 이 선석은 바로 백회를 봉인하는 단단한 돌인데, 주지하다시피 갓 태어난 신생아의 신문[囟門 역주: 우리말로는 천문(泉門)이라고 한다]은 전신(前囟)과 후신(後囟)으로 나뉜다. 즉 백회혈에 하나 있고 후두골에 하나가 있다. 신문은 사람이 태어날 때는 열려 있지만, 생후 6개월 동안 점차 작아지고, 보통 1살에서 1살 반 무렵 닫힌다. 때문에 일반적으로 생후 6개월 정도 된 아기는 병에 걸리는 일이 거의 없고 우주와 서로 연결할 수 있는데, 업력이 아주 큰 사람을 제외하고는 천지(天地) 에너지의 가지(加持)와 신(神)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신문이 닫힌 후에는 점차 천지와 격리되고 선천적인 영성과 본능이 서서히 사라진다. 일반적으로 일곱 살 이전에는 그래도 비교적 영성(靈性)이 있어서 어떤 아이들은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일곱 살 이후에는 후천적인 관념과 사상이 있어 점차 미혹의 눈이 형성되어 진상(真相)을 보지 못하고 속인이 된다. 결국 오곡을 많이 먹을수록 인간 세상의 분위기에 더 오염되고, 그럴수록 더 평범해지고 이 속세의 제약을 받게 되어 이 세간의 이치에 부합해 존재하게 된다.
마치 미후왕이 태어나면서 하늘을 받치던 돌이 깨지면서 사방에 절할 때 눈에서 두 줄기 금빛이 발산되어 하늘궁전까지 뚫고 올라간 것과 같다. 심지어 옥황상제마저 깜짝 놀라게 만들어 영소보전(靈霄寶殿) 위로 올라갔다. 불꽃처럼 타는 금빛을 본 상제는 순풍이(順風耳)와 천리안(千里眼)을 시켜 대체 무슨 일인지 급히 살펴보게 했다.
그러자 화과산 선석에서 돌원숭이가 하나 태어나 막 사방에 절을 하고 있다고 보고한다. 이 사방(四方)이 바로 미후왕이 내원한 곳으로 이해할 수 있다. 사명을 지니고 온 것으로 자신을 완전하게 만들어 준 천지에 감사의 절을 올린 것이다. 그 내력이 얼마나 높은지 가늠하기 힘든데, 타고난 영성(靈性)이 대단히 뛰어나 눈으로 금빛을 움직이고 천지를 뒤흔든 이런 장면이 나타나게 한 것이다. 자연히 그의 운명이 평범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애석하게도 물과 음식을 먹음에 따라 금빛이 점차 줄어들었을 뿐이다.
생명이 내원한 출처와 점차 연계가 끊어지는데 이는 마치 신생아가 세속에 들어오면 신문이 닫히는 것과 같다.
물론 완전히 단절되진 않는데 필경 사람은 만물의 영(靈)이고 사명을 지니고 와서 기운에 의지해 살아간다. 전생의 복보(福報)가 유지되고 생명 본원의 에너지와 관계를 유지하니, 천운(天運)을 받들어 인간 세상에서 어떤 일을 이루거나 이루지 못할 수 있다. 선천의 영성(靈性)을 받들어 하늘을 공경하고 덕을 중시해 인류 신전문화(神傳文化)의 휘황을 창조하고 화하(華夏)의 정신 원류가 유장(流長)하게 했고 인(仁)을 중시하는 문명의 고국(古國)이 되게 했다.
이 역시 하늘이 내려주신 은사(恩賜)이니 비록 이 육신 범태(凡胎)는 있지만 오히려 타고난 본능을 잃었다. 하지만 인도(人道)는 또 천도(天道)의 연속이라 오직 하늘을 공경하고 덕을 중시하며 수심양성(修心養性)하기만 하면 신(神)의 보호를 받을 수 있고, 선(善)을 쌓은 사람은 반드시 복을 받는다. 사람의 사상 의식 속에는 또 신(神)에 대한 신앙이 있고 영성이 한 가닥 남아 있어서 덕(德)으로 마음을 기르고 순정한 마음으로 영지(靈智 신령한 지혜)를 열면 지혜를 운용해 인간 세상에서 입덕(立德), 입공(立功), 입언(立言)할 수 있으니 이것이 바로 군자의 세 가지 불후(不朽)다.
천고에 아름다운 이름을 남기고 인간 세상에 신전문화의 정수(精髓)를 개창해 자기 생명 체계의 지혜와 뛰어난 정화(精華)적인 문화산업을 남겨 정통적인 정신을 계승함은 바로 자신과 후인(後人)이 돌아갈 길을 깔아주고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는 것과 같다.
대도(大道)란 결코 사람에게 멀리 떨어져 있지 않고 사람의 사유 의식 속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사람의 눈을 미혹시킬 수 있는 것은 후천적인 사유 관념이고 사람을 일깨워 수련해서 회귀하게 하는 것은 선천 본성이다. 선천 의식만이 사람의 진짜 본성이며 후천 의식은 세속 관념속에서 형성된 가아(假我)다. 어찌 이 나[此我 가아를 말함]가 저 나[彼我 진아를 말함]가 아님을 모를 수 있는가? 본성이 마음속에 존재하면 영근(靈根)이 생명의 본원과 연계되어 통하니 자연히 큰 조화가 열린다. 만약 본성이 여전히 속세에 미혹되어 온 곳을 모른다면 어찌 돌아갈 곳을 말할 수 있겠는가?
인류 생명의 근원은 모두 전통문화의 내함(內涵) 속에 있으며, 박대정심(博大精深)한 동방(東方) 고대 문명은 영혼에서 비롯된 지혜의 결정이자 각계(各界)의 뭇신(衆神)들이 파견해 삼계(三界)에 전생한 대표들이다. 역사상 이 한 발을 집어넣었으니 어찌 본성으로 회귀하는 마음의 길[心路]을 걸으려 하지 않는가! 몇이나 청성(淸醒)하고 몇이나 미혹되었는가!
[역주: 이 시리즈는 2021년 3월 1-6편까지 연재되었고 2년의 시차를 두고 2023년 6월부터 다시 같은 제목으로 연재 중이다. 한글 번역본에서는 독자들의 편의를 위해 2년의 시차를 무시하고 연결된 작품으로 번역한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6640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