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단(顏丹)
【정견망】
보고(望), 듣고(聞), 묻고(問), 맥을 짚는(切) 치료 방법은 중국 고대에서 몇천 년간 전해져 왔다. 진맥술만 해도 감탄이 절로 나온다. 사진을 찍기 위해 큰 장비를 사용할 필요가 없으며 무슨 기구를 체내에 삽입해 들여다볼 필요도 없다. 손가락 끝을 환자 손목에 걸치기만 하면 의사는 병변을 정확하게 찾아내고 질병의 원인을 이해할 수 있다.
서양의 의료기계는 정밀한 구조를 갖고 있지만, 오히려 인체에 널리 퍼져 있는 맥락의 운행을 볼 수 없다. 한의학에서는 진맥으로 즉시 증상에 따라 약을 처방할 수 있으며 심지어 즉시 효과가 나기도 한다. 이런 신통한 과학은 줄곧 아직 남아 있는 고서의 먼지에 가려져 있는데, 본 편에서는 청대(淸代)의 몇 가지 예만 들어보겠다.
1. 망자의 맥을 짚은 명의 왕정현(汪鼎鉉)
왕정현의 자는 태미(台未)이며 안휘성 무원(婺源)현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려서부터 독서를 좋아하여 자라서 현의 수재(秀才)가 되었다. 그는 글공부 외에 의술에도 정통했다.
장(張) 현령의 어머니가 중병에 걸렸는데 현에 치료할 수 있는 의원이 한 명도 없었다. 왕정현을 초청한 후 그가 처방한 몇 첩의 약을 마시자 곧 나았다. 현령은 그에게 감격하여 손수 ‘명고귤정(名高橘井 역주: 유명한 의사라는 뜻)’이라는 네 글자를 써서 명불허전(名不虛傳)의 양의(良醫)라고 칭송하고 이를 편액으로 만들어 그에게 주었다. 그 후 두 사람은 자주 왕래하며 막역한 사이가 되었다.
왕정현은 의술에 뛰어났고 진맥술도 일품이었다. 어느 날 그는 시내에 볼일을 보러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급히 의원을 찾던 행인을 만나 그 사람 집으로 갔다. 집에 들어서니 그는 집안의 장식품들이 모두 새것이어서 부근의 농가와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그때 한 부인이 안방에서 나오더니 몸이 불편하다며 왕정현이 치료해 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하지만 왕정현이 그녀의 맥을 짚었을 때는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이 부인은 맥이 평안하여 전혀 병에 걸리지 않았다. 왕정현은 맥상으로 볼 때 놀랍게도 그녀는 신선 아니면 요괴였다.
그러나 그 여인은 멀쩡하여 병이 없다는 말을 듣고 안방으로 돌아갔다. 왕정현도 별 생각 없이 자리를 떴다. 길에서, 그는 그 부인이 진료비를 지불할 때 그에게 준 몇 장의 지폐를 꺼내 물건을 좀 사려고 했다. 그런데 그 지폐들이 모두 지전(紙錢 죽은 사람에게 장례에 쓰는 종이 돈)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다시 돌아가 어쩐 일인지 알아보기로 했다. 그런데 그곳에 가보니 집은 이미 없고, 그 자리에 새 무덤만 몇 기 세워져 있었다.
그는 집에 돌아와 길에서의 일을 이웃에게 들려주었다. 어떤 이웃이 말했다.
“선생님은 잘 모르시겠지만, 전에 그 마을에 어떤 부인이 중병에 걸렸는데, 선생님의 존함을 오래 전부터 듣고 가족들에게 모셔 오라고 당부했습니다. 맥을 짚어주셔야만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요. 지금 보니, 그녀는 생전에 당신을 청하지 못했으니, 죽은 후에라도 소원을 이루려 했나 봅니다!”
2. 환자가 죽을 시기를 예언한 명의 축성하
축성하(祝星霞)는 강서성 임천(臨川)현 사람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유학을 배웠지만, 여러 번 시험에 떨어졌다. 많은 책을 읽다 보니 기황(岐黃)의 술(전통 한의학을 말한)에 대한 독특한 깨달음이 생겼다. 다른 사람이 물었다.
“당신은 공부를 잘하는데 왜 벼슬길에 나서지 않습니까?”
그는 “의술로 남을 구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합니다.”라고 했다. 맥의 이치는 심오하여 이해하기 어렵지만, 축성하는 진맥술이 뛰어난 경지에 이르렀다.
이(李)씨 성을 가진 젊은이가 막 열여섯이 넘었는데 이미 오랫동안 병으로 고생하고 있었다. 그의 가족은 많은 의사를 불렀지만 치료할 수 없었다. 축성하는 그의 맥을 짚은 뒤 가족에게 “괜찮습니다. 이틀 후면 괜찮아질 겁니다.” 또 머뭇거리더니 가족에게 “아드님이 혼인을 했습니까?“라고 물었다. 그 가족은 “이미 약혼을 했습니다.” 그 말을 듣자, “그럼 빨리 장가보내세요, 어쩌면 자손을 남길 수 있을지 모릅니다. 내년 겨울이 되면 이 아이의 병이 재발할 것 같은데, 그때는 다시 낫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나중에 과연 그렇게 되었다.
축성하는 사람됨이 정직하고 지조가 있었다. 그는 여러 해 동안이나 명리를 탐한 적이 없어, 마을 사람들이 모두 그를 특히 존경했다. 그가 치료한 환자는 이미 수를 헤아리기 힘들었지만, 그는 항상 사람의 사례나 보수를 거부했다.
3. 병이 생기기 전에 미리 예언한 명의 팽자혜(彭子惠)
팽자혜의 자는 학조(學祖), 강서성 남창부(南昌府) 사람이다. 어려서부터 동생과 함께 의학을 공부했고, 성장한 뒤 집을 나와 산동성 유(濰)현으로 이사했다. 그 후 그는 명성을 얻었고 산둥의 또 다른 명의인 적량[翟良, 자는 옥화(玉華)]과 깊은 우정을 쌓았다. 팽자혜는 명의와 교류하여 의술이 크게 향상되었다.
그는 맥술에 능통하여 맥을 짚은 후 병의 위치를 알 수 있으며 환자가 발병하기 전에 증상에 따라 약을 처방할 수 있었다. 그는 어느 동향인에게 진맥을 하고 건강에 주의하라고 일렀으며, 10년 후에 그가 감병(疳症)에 걸릴 것이라고 예언했다. 처음엔 동향인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10년 후 그는 정말 이 병에 걸렸다.
남의 발병하지 않은 병을 미리 진단할 뿐 아니라 자신의 생사를 정확히 말할 수 있었다. 그는 가족에게 자신이 어느 해 어느 달에 죽는다며 안장할 때 고향으로 돌려보낼 필요 없이 유현에 묻으면 된다고 말했다. 나중에 그가 죽은 날은 과연 그가 말한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몇 년 후 그의 동생도 유현으로 이사하여 그의 의술을 집안에서 계승할 수 있게 하였다.
4. 병의 근원을 정확히 밝혀낸 명의 이영도
이영도(李榮陶)의 자는 풍고(風高)로 강서성 만재(萬載)현에서 태어났다. 그는 젊었을 때 현의 선비였는데 활달하고 제멋대로여서 공명에는 뜻이 없었다. 그는 줄곧 의술에 심혈을 기울였고, 추나술에도 능해 여러 차례 위독한 사람을 살렸다. 학교의 선생과 현령들이 모두 그를 매우 존경했다.
그는 맥술도 비상했다. 한 번 한 친구를 만났는데 안색이 안 좋아 보여서 그의 손을 들고 맥을 짚었다. 그러면서 친구에게 “몸은 별일 없어 보이는데 몸 안의 장기 하나가 안 좋아 목숨이 걱정되니 빨리 치료해야 한다.” 친구가 믿지 못했으나 집에 온 지 며칠 안 되어 죽었다. 진맥을 통해 병의 근원과 질병의 중증도를 알아낼 수 있었으며 거의 틀림이 없었다.
말년에 이영도는 자신의 진맥 심증과 진료 경험을 《의가종지(醫家宗旨)》라는 책을 썼다. 수만 자의 기록을 본 동생은 감탄하며 말했다: “만일 인쇄하여 간행할 수 있으면 더 많은 사람이 혜택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참고 자료:
민국 14년 《무원현지》 권49 《인물·방기》
도광 3년 《임천현지》 권26 《방기》
민국 30년 《유현지고》 권32 《인물·예술》
동치 10년 《만재현지》 권24 《방기》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84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