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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연심 (8): 돌아갈 곳을 찾으면 바로 왕

요연(了緣)

【정견망】

선후(仙猴 신선 원숭이 즉 손오공)가 세상에 나오자 화과산에 한 가락 신령한 기운이 감쌌고 뭇 원숭이들이 계곡에서 무리 지어 놀던 중 갑자기 신령한 지혜[靈智]가 나와 물의 근원을 찾아보기로 했다. 계곡을 거슬러 올라가 폭포를 찾아내니, 지세가 가파르고 아주 장관이었다. 여러 원숭이들이 누구든 폭포에 들어가 물의 근원을 찾으면 그를 왕으로 모시기로 했다.

그러자 돌 원숭이가 말했다.

“오늘에야 이름을 날리니
큰 운이 통할 때가 왔구나
인연이 있어 이곳에 살다가
하늘의 명에 따라 선궁(仙宮)에 들어간다

今日方名顯,時來大運通
有緣居此地,天譴入仙宮”

이것은 정말 하늘의 뜻이라 그 누구도 가로막을 수 없었다. 이곳은 ‘화과산 복지(福地) 수렴동 동천(洞天)’이었다. 이곳에 존재한 세월이 얼마나 되는지 몰라도 오직 한줄기 폭포 물이 다리를 가로막아 만물(萬物)이 들어가지 못하게 막고 원숭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해 진정한 주인이 올 때를 기다려 온 것이다.

누가 이 속의 참모습(真相)을 생각할 수 있었겠는가? 편안히 살 수 있는 동천복지(洞天福地)는 단지 수렴(水簾 물 주렴 여기서는 폭포를 말함)만으로 중생의 눈을 미혹시켜 다리는 놓여 있어도 문 앞에서 방황만 할 뿐 문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

이는 마치 사악한 당이 태평성세를 가장하며 운운중생(芸芸衆生)의 행복한 삶을 위해서라고 기만하는 것과 같다. 사람들은 밤늦게까지 살기 위해 힘들게 뛰어다니고 물질 이익으로 삶의 가치를 실증하려 하는데 금전과 권력으로 삶의 질을 평가하는 것과 같다. 결과적으로 더 많이 가질수록 더 많은 것을 잃는데 사람의 선량한 본성과 점차 멀어진다. 마지막에 자신의 일생을 돌아볼 때면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면서 자아가 마비되어 살아왔는데, 종래로 거짓말을 꿰뚫고 자신이 살아가는 진실한 세계는 어떠하고 자신이 처한 환경이 대체 왜 이런지 살펴보려 하지 않았다. 그저 눈앞의 현실만 돌아볼 뿐 미래는 관심조차 없다.

설사 대도태가 닥치고 역병과 천재인화(天災人禍)가 빈번하게 발생해도 사악한 당은 사망자 숫자마저 은폐했다. 여러 차례 죽음을 비껴간 중생들은 하늘의 경고임을 깨닫지 못하고 여전히 마비되어 살아가면서 재난 앞에서 불운한 것은 남들이고 자신에게는 행운이 있기만을 바란다. 하늘의 도(道)가 사람에게 준 생존 법칙은 무슨 먹이사슬과 약육강식이 아니고 선(善)을 행하며 살아가고 우주 에너지와 주파수를 맞춰 오직 도덕을 제고해 올라가야만 진선인(真善忍) 천도(天道)와 합일해 재난을 피할 수 있음을 모른다.

사람은 미혹 속에 있는데 무엇에 미혹되었는가? 인생의 의미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고, 마음이 돌아갈 곳이 없으며, 정신을 의지할 곳이 없는 데 물질적 삶이 아무리 풍부할지라도 심령(心靈)의 공허함은 메울 수 없다. 이것이 바로 왜 생사(生死)를 겪어본 사람만이 크게 깨달을 수 있는가 하는 원인이다. 오직 생사를 마주한 순간, 무엇으로도 어쩔 수 없는 절망을 경험한 후에야 비로소 몸 밖의 물건이란 아무짝에도 쓸모없음을 안다. 급히 신이나 부처님을 찾아도 늦는 것으로 관건적인 시각에 단 한 가닥의 희망도 잡을 수 없게 된 후에야 종종 자신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돈으로는 살 수 없는 것임을 똑똑히 알게 된다.

사람이 세상에 살면서 늘 돌아갈 곳이 있어야 하는데 이 돌아갈 곳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지기(知己 자신을 알아주는 진정한 벗)를 만나거나, 가정을 꾸리거나, 자녀를 낳거나, 풍족하게 노년을 보내다 여생을 마치는 그런 것이 아니다. 소위 흙에서 왔다가 흙으로 돌아간다는 이것은 단지 육신(肉身)이 금세(今世)에 돌아갈 곳에 불과할 뿐 영혼이 돌아갈 곳은 아니다.

물론 금세에 덕행(德行)을 닦지 않고 참과 거짓을 구별하지 못하며 선과 악을 구별하지 못하고 진상을 듣지 않아 양지(良知)를 어기고 금전 이익을 위해 온갖 악행을 저질러 십악불사(十惡不赦)한 자들, 온갖 나쁜 짓을 저지르고 특히 대법제자를 박해하고 정법(正法)을 방해한 자들에게 악보(惡報)가 닥칠 때면 순조롭게 영혼을 보내줄 수 없고 또 형신전멸(形神全滅)해야 하는데 그것은 너무나도 비참한 것이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하자면, 좋은 카드를 들고 게임을 망쳐버린 것이다.

[역주: 정법시기 사람 몸을 얻어 중국에 태어난 것은 엄청한 행운임에도 진상을 듣지 않고 정법에 반대해 오히려 자신과 자신에게 희망을 기탁한 자기 천국 세계 중생들을 훼멸시키게 됨을 비유한 말.]

대법(大法)이 널리 전해질 때 태어날 수 있고, 만고(萬古)에도 만나기 힘든 정법시기(正法時期)를 만났다면 부귀와 빈천을 막론하고, 어떤 계층이나 배역을 막론하고, 사람 몸을 얻을 수 있다면 우주에서 가장 큰 승자다. 일단 태어나기만 하면 일생에 무수한 기연(機緣)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설사 대법이 널리 전해질 때 대법을 얻을 기연을 놓치더라도 이후에 또 구원받을 기회는 무수히 많다.

대법제자들의 박해에서 시작해, 모든 매체의 거짓 선전에서, 파룬궁을 무함하고 악독하게 공격하는 말들이 귓가에 울려 퍼지기 때문에 대륙에 사는 사람이 이를 듣지 않고 참여하지 않으려 해도 오히려 불가능하다. 세인(世人)의 귀에 들려오는 매 한 구절이 모두 구도받을 수 있는 기회가 되는데 이는 이지(理智)를 지키고 옳고 그름을 똑똑히 가릴 수 있는 기연이다.

단지 일방적으로 자기주장만 하는 일언당(一言堂 사악한 당)의 말을 믿지 말고 당사자를 찾아 진상을 조금이라도 알아보기만 하면 된다. 이번 박해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눈을 감고 반대하지 않기만 하면 된다. 심지어 적지 않은 사람들은 대체 왜 사당(邪黨)이 국가기구를 총동원하고 모든 재력과 물력, 인력을 동원해 전면적으로 파룬따파(法輪大法)를 박해하는지 호기심이 생겨 대체 파룬궁은 어찌 된 일인지 알아보기 위해 대법 서적을 보고 만고(萬古)의 기연을 얻어 법을 얻고 수련하게 되었다.

경찰의 호각 소리가 울려퍼지며 거리에서 대법제자를 불법으로 체포할 때 이를 본 세인들은 악을 제거하고 선을 드날리며 정의를 도울 기연이 된다. 왜냐하면 대법제자를 접촉해 본 사람들은 누구나 알다시피 그들은 수련해서 좋은 사람이 되려 하는데 좋은 사람이 되는 것도 허락하지 않고 나쁜 사람들이 도리어 좋은 사람에게 총구를 겨누며 흑백을 뒤집으려 하기 때문이다. 이때 만약 누군가 용감히 나서서 공정한 말을 할 수 있다면 그는 구도 받을 기연을 성취한 것으로 자신에게 아름다운 미래를 다져준 것이다.

박해받는 환경에서도 무수한 진수제자(真修弟子)들이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세인에게 진상을 알릴 때 잠깐이라도 듣고 삼퇴하면 바로 평안을 얻을 수 있다. 오늘날의 역병과 천재인화는 20년 전 파룬궁 박해가 막 발생했을 때 대법제자들이 이미 예견했던 것으로 지금 발생한 이 모든 것을 세인들이 생명으로 검증하고 있다. 대법제자들이 말한 진상은 너무나도 진실해서 아직도 모르는 척하고 넘어갈 순 없으며 여전히 깨어나길 거부한다면 신(神)마저도 그냥 보아넘기지 못할 것이다.

사람들은 모두 부처님의 은혜가 대단히 큼을 모두 알지만, 신불(神佛)의 자비 역시 무한정 기다리며 수많은 구도의 효과가 없어도 여전히 같은 장소에서 당신을 기다리는 그런 것이 아니다. 누구도 정법(正法) 노정을 막을 수 없으며, 정법이 어느 단계로 가야 할 시간이 되면, 곧 그 단계의 일이 발생한다. 천재인화, 생명이 도태되는 비율은 모두 세인들에 대한 경고다. 나쁜 것은 곧 제거되고, 좋게 변해야만 남을 수 있는데, 수련이란 언젠가 끝나는 날이 있다.

지구는 정체(整體)적으로 승화해야 하는데, 더 높은 차원의 에너지의 충격이 닥치면 온몸에 업이 가득 찬 사람들은 업력이 사라짐에 따라 허무(虛無)로 변할 것이다. 오직 덕(德)을 닦고 바른 에너지가 충분한 사람만이 더 높은 차원의 에너지와 공명해, 사람 마음을 선(善)으로 향하고 도덕이 되돌아 올라갈 수 있는데 그러면 업력(業力)이 줄어들어 비로소 육신이 신우주(新宇宙)로 무사히 넘어갈 수 있다.

만약 부(負)의 에너지가 너무 많거나 심지어 진아(真我)가 너무 적어지면 육신이란 업력구(業力球)는 공명할 수 없다. 주파수가 높아짐에 따라 강력한 정(正)의 에너지에 의해 청리(淸理)되고 전화(轉化)되어 버린다. 고에너지 장(場)에 들어갈 수 없고, 동화할 수 없다면 단지 청리될 뿐이며 저 에너지가 고 에너지의 것을 오염시킬 수는 없다. 신우주는 구우주의 모든 요소를 완전히 잘라내야 하는데 이렇게 해야만 구우주의 부족을 완전히 바로잡을 수 있다.

그러므로 사람이 진상을 똑똑히 알게 될 때면 양지(良知)가 각성한다. 그럼 선을 향한 마음이 일단 나오게 되면 사유(思惟)가 순간적으로 개변되는 가운에 이미 신우주의 주파수와 연결된다. 당신이 진상을 믿으면 곧 동화(同化)속에 있는 것이다. 오직 신을 믿기만 하면 구도 받을 수 있는데 이 얼마나 간단한 일인가!

그럼에도 세인은 사당의 무신론 사설(邪說)에 장애 받고 봉폐되어 자아를 최면하는데, 이 하나의 변이된 관념이 얼마나 많은 중생을 훼멸시켰는가! 알아야 할 것은 일단 기연(機緣)이 다 사라지고 나면 울어도 너무 늦는다. 필경 십악불사한 사람이라 자신이 도태되길 원하지 않아도 나쁜 짓을 한 목적은 자신이 잘 살려고 하고 자신이 좋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사실 많은 무신론자들이 실제로 신을 믿지 않는 것이 아니라 감히 믿지 못하는 것인데 믿으면 자신을 단속해야 하고 손해를 보아야 좋은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보응이 두려워 사는 것이 불편하다.

정말로 신을 믿지 않는 무리들은 멋대로 할 수 있는데 이런 무리들은 향수 할 수는 있지만 두 눈을 감으면 누구도 관할하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이 언제 자기 뜻대로 된 적이 있는가!

간단히 말해서, 사실 사람의 이 마음은 사유를 통해 주파수를 변조할 수 있는데 나쁜 마음을 움직여 악념을 내보낼 때면 사유가 접촉한 것이 모두 부(負)의 에너지다. 부의 에너지가 많아지면 곧 사람 마음을 변이시킬 수 있고 자아를 똑똑히 가리지 못하며 습관이 되면 악념(惡念)을 자신으로 여기고 악행의 길에서 점차 멀리 간다.

반대로 선심(善心)을 자극할 때면 사유가 우주 중에서 정(正)의 에너지와 연결되어 정의 에너지가 많아지면 선이 습관이 되어 자동적으로 악(惡)이 내보낸 것들을 배척하는데 사람이 이지적이고 지혜롭게 변해 시비를 똑똑히 구별하며 거짓말과 기만에 쉽사리 속아 넘어가지 않는다.

그러므로 양지(良知)는 마음의 원동력이며, 내심의 선량(善良)을 지켜야만 진정으로 사유활동을 통제해 진아(真我)가 나올 수 있고 자신의 진정한 주인이 될 수 있다. 또 육신의 욕망과 외래 정보에서 생긴 난잡한 염두에 통제당해 황당한 일을 하지 않을 수 있는데 이는 잘못이며 자신을 다스릴 수 없음을 똑똑히 안다. 좋은 사람이 되면 남과 다투거나 빼앗지 않는데 그럼 많은 물질적 이익을 잃을 수 있지만 정신적인 제고는 물질적인 이익으로 가늠할 수 없는 것이다.

좀 듣기 싫은 말을 하자면 저 원숭이들도 놀다 지친 나머지 새로운 사물을 보자 뿌리를 거슬러 근원을 추적하려 하고 또 이를 계기로 자신의 왕(王)을 찾아낸다. 만물의 영장인 인류로서 우리가 어찌 영혼이 돌아갈 곳을 모를 수 있단 말인가!

사람이 진정한 주(主)가 되고 싶다면 자신의 말이 통해야 한다. 그러자면 우선 생명의 궁극적인 명제를 간파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생명의 내원을 알고 어디로 돌아가는지 똑똑히 알아야지만 반본귀진(返本歸真)할 수 있고 왕의 광환(光環)을 닦아낼 수 있으며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39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