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简体 | 正體 | English | Vietnamese

원망과 바람의 기묘한 관계

소설(小薛)

【정견망】

원망(怨)과 바람(願)은 중국어 발음은 같지만 뜻은 전혀 다른 글자다. 원망은 흔히 좋지 않은 것을 가리키는데 수련인이 제거해야 할 것이 바로 원한심(怨恨心)이다. 반면 바람은 아름다운 소망을 가리킨다. 하나는 사람들이 거절하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들 사이의 기묘(奇妙)한 관계를 아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 제4강에서 우리에게 알려주셨다.

“좋고 나쁨은 일념에서 나오는데, 만약 그녀가 거기에 누워서 이렇게 말했다 하자. “아이고, 난 안되겠다. 여기도 다쳤고, 저기도 다쳤다.” 그러면 아마 힘줄이 끊어지고 뼈가 부러져 반신불수가 되었을 것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진화론과 무신론을 믿고 “좋고 나쁨은 일념에서 나온다”는 이치를 믿지 않는다. 유물주의 관점에 따라 결과는 정해진 것이라 보기 때문이다. 때문에 사심(私心)에 이끌려 꾀병을 부리며 남을 원망하고 남에게 책임을 미룬다. 이를 통해 두 몫을 얻으려 한다. 우주의 법리는 공평한 것임을 모르는 것이다. 원망은 또 간접적으로 바람으로 전화(轉化)된다. 당신이 꾀병을 앓으면 아마 진짜 병이 존재할지 모른다. 이 역시 일종의 바람이 아닌가!

많은 대법제자들이 질병이나 마난(魔難) 속에 처해서는 때로 어쩔 줄 모른다.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모른다. 심지어 마난 속에서 대법을 원망하는 생각을 품거나 사부님께서 왜 빨리 결속하지 않으시는가 원망하는데 그렇다면 마난이 없겠는가? 이런 원망 역시 마찬가지로 바람으로 전화될 수 있어서 정말로 줄곧 마난 속에 있을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2010년 뉴욕법회설법》에서 우리에게 알려주셨다.

“사람과 신의 일념(一念)이라. 당신이 정념을 움직였다면, 당신은 이 모든 것이 가상(假相)이고 구세력의 교란이라고 하며, 내가 이처럼 여러 해 수련했는데, 이 정황이 나타날 수 없다고 할 것이다.”

이 단락 법을 줄곧 이해하지 못했다. 모두 가상인데 왜 병업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가? 내가 깨달은 것은 바로 원한심을 제거하는 과정이다. 기왕 가상이라면 곧 그 어떤 사람이나 일에 원한(怨恨)할 필요가 없고 곧 담담할 수 있다. 원한심을 제거하면 많은 문제들 역시 따라서 해결될 것이다.

사실 병업뿐만 아니라 박해라든가 경제 등의 다른 문제도 마찬가지로 모두 다 가상이며 원한심의 존재는 도리어 이 일이 사실이 되도록 촉성한다.

좋고 나쁨은 일념에서 나오고 원한심의 존재는 또 우리가 원하지 않는 일이 발생하도록 촉성할 수 있다. 원한과 바람은 발음은 같지만 뜻이 다른 글자로 기묘한 연분이 있다. 문자는 신전문화(神傳文化)의 일종으로 내함(內涵)이 정말 아주 깊은 것이다.

대법제자로서 말하자면 사실 이미 가장 좋은 것을 얻었는데 또 무슨 원망하고 미워할 것이 있단 말인가? 이 원한 자체가 대법에 대해 견정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

작은 깨달음을 써내어 동수들과 나누고자 한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93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