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대법제자
【정견망】
중국인들은 모두 아주 근면해서 살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노력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자신의 노력이 남의 이익을 해치지 않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의 노력이 남의 이익을 해치는 것이다. 남을 해치면 목적을 이루지 못할 뿐만 아니라 악연(惡緣)을 맺어 악보(惡報)를 받을 수 있다. 반면 남을 해치지 않기 위해 희생하면 선연(善緣)이 되고 자신의 미래를 위해 기초를 다질 수 있다.
송조(宋朝) 시인 하원정의 시 《절구》가 바로 그 예가 된다.
공동산 도인 찾아 상호(湘湖)까지 이르니
만 권 시서(詩書) 볼수록 더 바보 되네.
쇠 신발 헤질 만큼 아니 간 곳 없었는데
막상 얻고 나니 전혀 힘들일 필요 없더라.
崆峒訪道至湘湖
萬卷詩書看轉愚
踏破鐵鞋無覓處
得來全不費工夫
대체적인 뜻은 시인이 공동산 도사를 찾으러 상호(湘湖 역주: 절강성 항주에 있는 유명한 호수 이름)까지 왔지만 만 권의 시서를 볼수록 더 어리석어지는 것 같다. 쇠 신발이 헤질 만큼 찾아다녔어도 원하는 것을 찾지 못하다가 진정으로 얻고 나니 전혀 힘들일 필요 없었다는 뜻이다.
시인은 도사이자 도(道)를 닦는 고인(高人)으로 전설에 따르면 최후에 도를 성취해 신선이 되었다고 한다. 시인은 도를 찾기 위해 그토록 고생했지만 막상 진정으로 얻었을 때는 바로 그렇게 우연했다. 그래서 “쇠 신발 헤질 만큼 아니 간 곳 없었는데 막상 얻고 나니 전혀 힘들일 필요 없더라.”는 천고의 명구(名句)을 남겼다. 이것은 중국인들이 흔히 말하는 “의도적으로 꽃을 심어도 꽃이 피지 않더니 무심코 심은 버드나무가 우거져 무성한 그늘을 이뤘다”는 말과 매우 유사하다. 즉 성공은 흔히 아주 우연히 이루어진다는 착각을 줄 수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옳지 않다.
겉보기에는 성공이 쉬워 보여도 단지 표면적으로만 쉬울 뿐이다. 많은 대법제자들이 법을 얻기 전에 일찍이 고생스럽게 도를 얻을 법을 찾았지만 진정으로 대법을 만났을 때는 확실히 아주 우연한 상황에서 얻은 것처럼 보인다. 우연히 친구로부터 한마디 말을 들었거나 또는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친구를 우연히 만나 듣는 등이다.
사존께서는 《전법륜》<제2강>에서 우리에게 알려주셨다.
“불가에서는 연분을 말하는데, 여러분은 모두 연분으로 왔기에, 얻었다면 이는 당신이 마땅히 얻어야 할 것을 얻은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은 소중히 여겨야 하며, 어떤 구하려는 마음도 품지 말아야 한다.”
많은 대법제자들이 오늘날 법을 얻기 위해 모두 일찍이 여러 세(世) 동안 고생을 겪고 선(善)을 실천해왔으며 또한 천상에서도 큰 소원을 품고 사존과 서약을 맺고 왔을 것이다. 그러나 진정으로 도를 얻은 그 날은 확실히 매우 우연한 상황에서 얻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대법제자의 연분이다.
왜 힘들게 찾을 때는 얻지 못했는가? 아마 우리에게 그 어떤 것도 집착하지 말라고 알려주려는 뜻일 것이다. 오직 잘 하기만 하면 자신이 마땅히 얻어야 할 것을 얻을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오묘하기 그지없는 연분인데 우연한 얻음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수많은 필연을 거친 것이다.
인간 세상의 일체 역시 연분을 중시한다. 남녀 간의 사랑, 친구 사이의 우정에는 무슨 언급할 만한 이치가 거의 없다. 즉 어떤 사람을 좋아하면 곧 그가 마음에 드는데 단지 이럴 뿐이다. 하지만 무슨 이치를 논할 수는 없다. 이 또한 연분이다. 세간의 이런 연분은 전생의 선연과 악연이 금생에 표현된 것이다.
세인의 연분은 흔히 또 정(情)으로 표현되지만 대법제자의 연분은 오히려 천상(天上)에서 온 것으로, 자신이 사부님과 서약을 맺은 데서 유래하니 더욱 소중하고 더욱 순결한 것이다.
연분이 오묘한 점은 인간 세상의 그 어떤 이치로도 설명할 수 없지만 또한 아주 간단하고 자연스럽고 직접적이다. 왜냐하면 연분은 본래 인간 세간의 모든 이치를 초월한 것으로 신(神)이 통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무신론의 족쇄에서 뛰쳐나와야만 연분의 오묘함을 발견할 수 있다. 당신이 신을 믿지 않기 때문에 노력만 하면 성과가 있을 수 있다고 믿지만 그것은 착오에 이르지 않았던가?
작은 깨달음을 써내어 여러분들과 공동으로 제고하고자 한다.
[역주: 이 시를 지은 하원정(夏元鼎 1181~)은 남송 시기 온주(溫州) 영가(永嘉 지금의 절강성 영가) 사람이다. 어려서부터 많은 책을 널리 읽었지만 오히려 여러 차례 과거에 떨어졌고 겨우 하급 무관직밖에 얻지 못했다. 나중에 꿈에 기인을 만나 속세의 덧없음을 간파하고 관직을 버리고 도(道)를 찾아 나섰다. 수많은 고생 끝에 결국 진정한 스승을 만나 도를 깨닫고 신선이 되었다고 한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016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