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법제자 데이비드
【정견망】
명혜망 문장 《정치에 관여하지 않고 편향되지 않아야》는 최근 매체에서 일어난 일에 대한 일이 사람 이 한 층에 원인이 있다고 해석했다. 사부님께서 신경문을 발표하신 후, 우리는 이 역시 ‘법난(法難)’의 일부임을 알게 되었다.
만약 우리가 왜 오늘 이 지경까지 발전했는지 진정으로 똑똑히 알고 우리 자신을 바로잡는다면 앞으로 같은 잘못을 저지르는 것을 피할 수 있다. 해외 수련생들은 모두 경험이 있으니 여기서는 간단히 한번 과거를 돌아보며 이번 일의 맥락을 알아보자.
5년 전부터(필자는 2019년 해외로 피난 왔기에 그 전의 일은 알기 어렵다) 일부 해외 수련생들이 진상을 알리면서 속인 사회의 단점을 폭로하고 질이 낮은 음모론 선전으로 진상을 알리는 것으로 여겼고, 박해에 직접 가담하지 않은 일부 중공 지도자를 모욕하고 공격했다. 나중에 중공 바이러스가 발생했을 때는 또 도처에서 백신이 어떻게 좋지 않다고 선전했고, 대선 기간에는 또 민주당을 공격하며 공화당을 지지했다.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분쟁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한쪽 편을 들었다.
구체적으로 이런 일을 하지 않는 일부 수련생들도 그들의 관점과 같은 입장이었다. 수련이란 초상(超常)적인 것이라 당신이 인정했다면 당신은 이미 참여한 것이다. 이 일에는 많은 수련생들(대륙 수련생들 포함)이 연루되었고 수많은 생명을 반대 방향으로 몰아넣는 심각한 재앙이 되었다.
이는 최대한으로 중생을 구도함을 위배하고, 직접 대법을 박해하지 않는 사람은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는 원칙을 위배한 것이다. 이는 진상을 알리는 것이 아니라 정치와 사회에 대한 불만을 표현한 것에 가깝다. 나는 접촉하는 수련생이 적기 때문에, 이 일에 참여하거나 인정한 수련생들의 비율이 얼마나 되는지 분명히 말할 수는 없지만, 여러분들이 자신과 주변 수련생들을 살펴보면 이런 일이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방법에 반대하는 일부 제자들이 늘 있었지만 극히 소수에 불과했다.
이 일이 일어나기 전에 사부님께서는 설법에서 여러 차례 마땅히 어떻게 진상을 알려야 하고 이지적으로 청성하게 우리가 처한 사회 환경을 대해야 하는지 말씀해 주셨다.
내가 기억하는 가장 엄중한 말씀은 《2019년 뉴욕법회설법》이다.
“역사상에서 정법(正法)을 전했던 아주 많은 사람이 모두 박해당해 죽었다. 사람의 관념을 건드리고 사람의 이익을 건드렸는데, 사람들은 모두 사람마음으로 대할 것이다.”
“왜냐하면 사회가 이런 일보에 이르렀고, 역사적 교훈도 아주 많기 때문이다. 어찌 되었든, 대법제자 우리는 방법을 생각하여 사람을 구하고 있는바, 바로 그러한 일이다.”
“지금 대법제자에 대해 갈수록 흥미를 느끼는 건 중공사당뿐만이 아니다. 내가 당신들에게 알려주는데, 많은 국가가 모두 당신들을 도청하고 있다.”
그러나 모두 몇년에 걸친 이 큰 고험 속에서 깨닫지 못했다.
나는 줄곧 이 방면에서 수련생들의 집착을 강화하는 동시에 다른 목소리를 억제하고, 이 단체를 위험한 길로 이끄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있음을 느꼈다. 《법난》 경문을 읽은 후에야 나는 비로소 원래 ‘법난’임을 깨달았다. 이는 “아직 다 없애지 못한 15%의 업력”이다. 하지만 ‘법난’이 어느 정도까지 도달할 수 있는지는 우리 제자들의 수련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사부님께서는 《정진요지 2》〈원만을 향해 나아가자〉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현재 이 하나의 큰 검증은 바로 사부가 있지 않을 때 대법(大法)이 어떠한가, 수련생이 어떠한가의 큰 심사인데 사부가 어찌 말할 수 있겠는가? 어찌 당신들에게 어떻게 하라고 더 알려줄 수 있겠는가? 또한, 그것들이 사악한 사람을 통제하여 사람의 일체 마음, 일체 집착에 대하여, 전면적이고도 빠짐없이 와해(瓦解) 식으로 대법(大法)과 제자를 검증하고 있다. 만약 당신들이 진정하게 수련 중에서 사람의 그러한 근본 집착을 제거해 버릴 수 있다면 최후의 이 한 차례 마난(魔難)은 이렇듯 사악하지 않을 것이다.”
예를 들어, 북경의 과학연구 기관에 근무하는 한 제자가 있었는데, 그의 상사는 그가 많은 압력을 견딜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 이유는 그가 상사와 함께 출장가서 밖에서 식사한 후 영수증을 휴지통에 던졌기 때문이다. 상사가 그에게 이유를 묻자, 그는 이것은 사업상 고객을 대접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상사는 이 일을 통해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들은 직장에서 이익을 얻으려 하지 않음을 보았고 파룬궁 수련생은 좋은 사람임을 실제 사례를 통해 알게 되었다. 때문에 박해가 닥쳐왔을 때에도 줄곧 그를 보호해 주었던 것이다. 이 밖에도 다른 사례들이 많은데 이는 설사 사악의 박해가 있고 상대방이 우리를 박해하도록 배치되었다 할지라도, 우리가 잘하고 좋은 사람으로 표현되면, 사악은 줄어들고 박해하기로 배치된 사람 역시 개변 되어 구도받을 수 있음을 설명한다.
그렇다면 이번에 발생한 일에 대해 우리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다음은 내가 생각한 것이다.
1. 우리가 원하는 것은 상부의 명령을 집행하는 것처럼 그런 행동을 중지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어떤 집착이 있기에 이런 일을 했고 그런 관점과 입장에 동의하게 했는지 찾아보아야 한다. 진정으로 자신의 사상에서부터 그것들을 청리하고 자신을 바로잡아야 하며 이 방면에 대한 대법의 법리에 대해 청성하게 인식하고 이를 통해 사부님께서 《각성하라》에서 말씀하신 요구에 도달해야 한다.
내가 한 구체적인 방법은 이랬다. 나는 비록 속인을 대할 때 최대한 생명을 구도하고 대법을 직접적으로 박해하지 않으면 건드리지 않는다는 원칙을 견지하긴 했지만 내 마음속에는 그래도 입장이 있었다. 즉 미국을 다스리는 데는 공화당이 민주당보다 훨씬 낫다고 여겼고 다양한 집단과 사회 단체에 순위를 매겨 여기는 좀 낫고 저기는 좀 나쁘다고 여겼다. 나는 지금까지 줄곧 이것이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얼마 전 내가 또 느낀 것은 이 단체가 잘못을 바로 잡는 기제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일부 아주 분명한 잘못에 대해서도 장기간 바로잡지 않았고 그저 앉아서 사부님께서 설법으로 바로잡을 때까지 기다리기만 했다. 그러나 동일한 잘못이 다른 한 가지 형식으로 여전히 다시 저질러졌다. 어느 순간 나는 단번에 이 생각을 붙잡았고 문득 알게 되었다. 수련하는 단체이고 대법을 지도로 하는데 우리도 자신을 바로 잡기란 이렇게 어려운 데 나는 또 속인의 무슨 당파(黨派)와 개인이 사회를 바로 잡으리라 여겼단 말인가. 이런 생각은 정말 가소롭지 않은! 당파와 사회단체, 민족을 차별하는 관념이 단번에 소멸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전 대통령(역주: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유죄판결을 받은 일을 보면서 나는 마음속으로 전혀 화가 나지 않았다. 이번 일이 출현한 후 나는 왜 이번 난이 발생했는지 과정을 분석하다, 문득 알게 되었다. 나는 법을 얻은 지 30년 된 노제자임에도 내게도 일부 장기간 넘기지 못한 관(關)이 있고 뻔히 알면서도 해내지 못하는 일이 있다. 그런데 나는 무엇 때문에 동수가 바로 잡는 어려움을 양해하지 못하는가? 이것을 똑똑히 알고 나서 나는 속으로 몹시 불평했던 특정 단체(내가 너무 많은 나쁜 일을 보았고 어떤 것은 사람의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인데 십수 년간 나는 주머니에 한푼이라도 있으면 꺼내서 동수를 돕기 좋아하던 사람에서 동수에게 아주 냉담한 사람으로 변했다.)에 대한 불평이 단번에 사라졌다. 마음속에는 오직 속인에 대해서나 동수에 대해서나 양해와 관용뿐이었다.
나는 여러분들도 지난 5년 과정을 한번 정리해 볼 것을 건의한다. 당신은 무엇을 생각했고 어떻게 했으며, 어느 것은 법에 부합했고 어느 것은 법에 부합하지 않았는지 모두 다 바로잡기 시작한다면 난(難)은 자연히 사라질 것이다.
2. 당쟁과 사회논쟁에 가담함으로써 대량의 생명을 구하지 못하게 했거나 심지어 반면으로 밀어버려 조성된 큰 업력과 부면(負面) 물질 요소는 발정념으로 해소할 수 없다. 제자들이 안으로 찾고 자신을 바로잡는 과정에서 자비로 선해(善解)해야만 한다(이것은 여러 제자들이 공동으로 만든 것이기 때문에 모두 선해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업력과 부면 물질 요소를 이용해 대법을 파괴하고 제자를 박해하며 항목을 박해한 배후의 흑수(黑手)에 대해서는 반드시 발정념으로 전부 제거해야 한다.
3. 매체와 1인 미디어는 속인들에게 진상을 알리는 것으로 거대한 작용을 발휘해 왔고 또한 우리가 목소리를 내는 통로다. 하지만 수련에 참조할 것은 아니고 수련하는 사람은 매체나 1인 미디어가 아니라 반드시 법을 스승으로 삼아야 한다. 하지만 일부 수련생들은 큰 문제에 직면했을 때 법에서 답안을 찾지 않고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으로든 매체와 1인 미디어의 견해에 동조하는 사상적 경향이 있다. 이는 수련에서 거대한 누락이다. 또한 이번에 매체가 박해받도록 선택된 이유의 하나다. 우리가 이 방면에서 자신을 바로잡으면 박해도 줄어들 것이다.
4. 매체가 봉착한 일은 돈과 관련된 문제다. 속인들 중에도 ‘돈세탁’이라는 용어가 있는데 사실 이 용어가 일반인들 사이에 널리 사용되는 것에는 심오한 이유가 이다. 바로 대륙에서 흔히 말하는 것처럼 “우리가 바로 마지막 세대다”와 비슷하다. 그렇다면 만약 그다지 바르지 못한 곳에서 돈이 나왔다면 곧 업력(業力)이나 원망 등 부면(負面)적인 것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바르게 사용하려면 그럼 공(功)으로 돈을 깨끗이 씻어서 배후의 원한을 선해해야 한다.
5. 거대한 난에 처한 수련생에 대해 모두 자비로 대해야 하며 절대 배후에서 무엇을 의논하지 말아야 한다. 그는 왜 어떠어떠한 문제가 생겼고 어디에서 법에 부합하지 않아 빈틈을 탔다는 등의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 수련인은 자비를 중시하며 남을 이롭게 해야 한다. 이런 것들을 논하는 것은 첫째는 사실에 부합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당신이 어떻게 남에게 어떤 부족이 있어 이런 일을 초래했는지 알 수 있는가? 둘째 이런 논의는 다른 사람에 대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으며 또한 난을 없앨 수도 없다.
마지막으로 내가 교류하고 싶은 것은 “법을 스승으로 삼음”은 단지 말만 해서 되는 것이 아니며, “법에서 법을 인식하는 것”(《오스트레일리아 법회 설법》) 역시 말로만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장기적이고 간고한 수련을 통해서야만 비로소 법을 인식하는 상태에 도달할 수 있다. 사부님께서는 이미 우리에게 사전에 모든 관난(關難)을 말씀해 주셨지만 단지 우리가 깨닫지 못해 그것은 속인 사회가 어떠어떠하다고 말씀하신 것이고 이것은 종교가 어떠어떠하다고 말씀하셨다만 여겼을 뿐이다.
사부님께서는 《견실》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수련이란 엄숙한 것이다. 나는 대법(大法)의 일체 법리를 모두 당신들에게 말해 주었다. 이 일체는 모두 당신들이 개인수련 중에서 걸어야 할 길이고, 넘어야 할 고비이기도 하다. 넘지 못함은 당신들 자신이 조성한 것인데, 나는 줄곧 당신들에게 기회를 주어 스스로 깨달아 돌아오도록 하였다. 대법(大法)을 위해 나는 더는 기다릴 수 없기에, 이 글을 쓰는 수밖에 없다. 나는 당신들이 이 글을 보면, 틀림없이 깜짝 놀라 깨어나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당신들이 수련하여 넘어온 것이 아니다. 왜 다른 사람은 교란을 받지 않았는가?”
제자로서 문제에 부딪혔을 때 법에서 답안을 찾아야 하며, 찾을 수 있든 없든 견지하면서 법에서 수련하노라면 어느 날 문득 당신은 아무리 큰일이 닥쳐도 스스로 곧장 옳고 그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또 사부님께서는 《정진요지》〈누구를 위해 수련하는가〉에서 왜 ‘법난’이 왜 나타나는지 명확히 설법하셨으니, 여러분들이 온고지신(溫故知新)하기를 건의한다.
이상은 개인의 작은 인식으로 인식한 것에 한계가 있으니 부당한 곳이 있다면 양해해주기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093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