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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밤 울타리에 등불 하나 걸렸겠지

하우(夏雨)

【정견망】

우수수 오동잎 찬 소리 들리니
강위의 가을바람 나그네 정서 움직이네
아이들은 지금 귀뚜라미 싸움 구경가
늦은 밤 울타리엔 등불 하나 걸렸겠지

蕭蕭梧葉送寒聲
江上秋風動客情
知有兒童挑促織
夜深籬落一燈明

이 작품은 송조(宋朝) 시인 섭소옹(葉紹翁)의 《밤에 본 것을 쓰다(夜書所見)》란 시다. 시인은 마치 아이들을 쓴 것처럼 보이는데 구구절절 고향을 그리는 정이 담겨 있다.

바람에 날리는 오동잎이 떨어지는 소리는 마음이 서늘하게 한다. 시인은 가을바람에 온몸을 떨며 강가에 서 있다. 시인은 고향의 따스함을 떠올리며 자신도 모르게 고향을 그리워한다. 먼 곳 울타리에 외로운 등불을 보고 시인은 귀뚜라미를 잡는 아이라고 단정짓는다.

시인은 등불만 보고 왜 귀뚜라미를 잡는 아이라고 즉시 결론을 내릴 수 있었을까? 사실 시인이 그리운 것은 집에 가족들이 있기 때문이다. 시인은 집의 따스함과 아내 및 아이들과 누리는 천륜(天倫)의 기쁨을 떠올리며 마음속에 반짝거린다. 집을 떠나 멀리 떠도는 방랑자는 이럴 때 더 고독을 느낀다.

사람의 생각은 반드시 생각하는 대상이 있다. 시인의 눈에 비친 세상은 사실 마음속에 품은 기대다. 시인은 따뜻한 집으로 돌아가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가족의 행복을 누리기를 소망합니다. ‘등불 하나’는 이때의 고독과 또 한 가닥 희망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시인은 평생 뜻을 이루지 못했고 문학적 재능은 있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중용되지 못했다. 이때 어떤 이유로 집을 떠나 떠도는지는 모른다.

시인이 기억하는 집은 사실 우리의 진정한 집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하나의 중간역에 불과할 뿐이다. 우리의 진정한 집은 천상(天上)에 있고 천상에는 우리의 부모, 형제, 자녀가 있다. 그들은 언제든 우리가 법을 얻어 집으로 돌아오길 고대하고 있다. 다만 시인이 살던 당시에는 정법시기의 문화를 다질 뿐이라 누구도 집으로 돌아갈 능력이 없었을 뿐이다.

지금은 정법시기로 창세주(創世主)께서 직접 인간 세상에 오셨다. 중생을 구도해 위난에 빠진 천우(天宇 천체 우주)를 구도하려 하신다. 세인은 대부분 천상에서 왔으며 법을 얻어 자신의 천우와 중생을 구도하러 왔다. 그러나 일단 홍진(紅塵)에 들어오면 더는 진상을 똑똑히 볼 수 없으며 자신이 올 때의 큰 소원을 모른다. 심지어 많은 사람들이 대법을 모함하거나 대법제자를 박해하는 데 가담했다.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장차 자신의 천체가 해체되고 중생이 훼멸되는 것이다. 사람이 어찌 이렇게 흐리멍덩할 수 있는가?

천상의 중생, 부모와 자녀들은 이미 하늘길이 끊어지길 바라고 있다. 우리는 왜 하루빨리 정진해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올라가지 않는가?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19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