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항(歸航)
【정견망】
얼마 전 《정견주간》에서 〈참음에 대한 작은 깨달음〉이란 교류 문장을 읽고 큰 감동을 받았다. 동수는 다양한 각도 다양한 층면(層面)에서 참음에 대한 자신의 깨달음을 이야기했다. 아래에서 나는 다른 층면에서 참음에 대한 나의 깨달음을 교류하고자 한다. 법에 없는 부분이 있다면 바로잡아 주기 바란다.
우리는 ‘진선인(真善忍)’이 우주 특성이자 만물(萬物) 중생을 만든 근본이 있는 곳이자 천지 개벽의 근본이 의지하는 것임을 안다. 예부터 지금까지 도가(道家)에서는 ‘진(真)’을 닦았고, 불가에서는 ‘선(善)’을 닦았지만 전문적으로 ‘인(忍)’을 닦는 곳은 없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대법(大法)은 원용(圓容)한 것으로, 真(쩐)ㆍ善(싼)ㆍ忍(런) 세 글자를 갈라놓아도 마찬가지로 真(쩐)ㆍ善(싼)ㆍ忍(런)의 특성을 완벽히 구비하고 있다. 왜냐하면, 물질은 미시적인 물질로 구성되었으며 미시적 물질은 또 더욱 미시적인 물질로 구성되어 줄곧 끝이 없기 때문이다. 그럼 진(真) 역시 真(쩐)ㆍ善(싼)ㆍ忍(런)으로 구성되었고, 선(善) 역시 真(쩐)ㆍ善(싼)ㆍ忍(런)으로 구성되었으며, 인(忍)도 마찬가지로 真(쩐)ㆍ善(싼)ㆍ忍(런)으로 구성된 것이다. 도가에서 진(真)을 수련함이 어찌 真(쩐)ㆍ善(싼)ㆍ忍(런)을 수련함이 아니겠는가. 불가에서 선(善)을 수련함이 또 어찌 真(쩐)ㆍ善(싼)ㆍ忍(런)을 수련함이 아니겠는가. 사실 표면형식만 다를 뿐이다.”(《정진요지》〈선을 알기 쉽게 해설〉)
내가 깨달은 것은 대법제자는 ‘진선인’을 동시에 닦아야 한다. 우리는 ‘대법’ 제자이자 우주 특성 진선인이 육성한 법입자(法粒子)니 이것이 바로 우리의 ‘진아(真我)’다. 따라서 우리는 일상 수련 중에서 반드시 진아가 주인이 되어야 하며 주원신(主元神)이 우리의 일사일념(一思一念) 일언일행(一言一行)을 주재하게 해서 부동한 층차에서 법의 표준에 바로잡혀야 한다. 그중 ‘인(忍)’의 승화(昇華) 정도는 가장 강한 것이자 또한 가장 해내기 어려운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心性(씬씽)이란 무엇인가? 心性(씬씽)은 德(더)[德(더)는 일종 물질이다]를 포괄하고, 참음(忍)을 포괄하며, 깨달음(悟)을 포괄하고, 버림(捨)을 포괄하는데, 속인 중의 각종 욕망과 각종 집착심을 버리는 것이며, 또한 고생을 겪을 수 있어야 하는 등등 여러 방면의 것을 포괄한다.”(《전법륜》)
여기서 보다시피 생생세세(生生世世) 쌓은 덕 외에도 참음이야말로 심성을 제고하는 관건 중의 관건임을 알 수 있다. 두 번째 나열되어 있다. 한 대법 수련자로서 반드시 참음의 수련을 강화해야 함을 알 수 있다.
“모순과 마주쳤을 때, 사람과 사람 사이의 心性(씬씽) 연마(魔煉) 중에 표현될 것이며, 당신이 참아낼 수 있으면 당신의 업력도 제거되고 당신의 心性(씬씽)도 제고되어 올라오며, 당신의 공 역시 자라서 그것들은 한데로 용합(熔合)된다.”(《전법륜》)
“어떤 사람은 말한다. “이 참음은 해내기가 너무나도 어렵고, 나는 성격이 좋지 않다.” 성격이 좋지 않으면 고쳐야 하지 않는가. 연공인은 반드시 참아야 한다.”(《전법륜》)
“당신이 참아낼 수 있지만 마음속으로 내려놓지 못한다면 이 역시 안 된다.”(《전법륜》)
‘참음’의 중요성 및 소홀히 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참을 수 있는가?
1. 자기 감정 통제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자면 먼저 자신의 신분을 명확히 해야 한다. 즉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야 한다. 나는 정법시기 대법제자이니 그렇다면 정법시기 대법제자의 표준으로, 신우주 생명의 특성인 무사무아(無私無我) 선타후아(先他後我)의 높은 표준으로 자신을 요구해야 한다. 즉 각종 사람 마음 관념 및 욕망이 꿈틀거리는 것을 통제해야 한다. 이를 통해 구우주의 각종 기제의 제약에서 벗어나야 하며 특히 정(情)의 요소의 제약에서 벗어나야 한다. 정에 움직이지 않고 생각을 움직이지 않으면 곧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수 있고 다시 말해 참아낼 수 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기공수련은 정반대로서 사람을 움직이지 않게 한다. 움직인다 해도 느슨하게(緩), 천천히(慢), 둥글게(圓) 하며 심지어 움직이지 않고 멈춰 있다.”(《전법륜》)
내가 이해하기에 어떤 사람이든 일이든, 우선 표면 사람 이쪽을 안정시키고 나서 부동한 층차 법의 표준으로 자신의 언행을 지도하면 곧 원만하게 문제를 처리하는 방식과 방법이 있게 되며 사부님께서 곧 당신에게 좋은 결과를 성취하도록 하실 것이다.
2. ‘물극필반’의 법리를 정확히 운용하자
내가 깨달은 것은 어떤 일을 하든 너무 지나치게 하지 말아야 하며 적절한 곳 적절한 시점에 멈춰야 한다. 이 “멈춤(止), 정지(停)”에 바로 ‘참음’의 한 층 함의가 담겨 있다. 왜냐하면 일단 지나치면 집착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당신의 이런 집착을 제거하기 위해 구세력은 틈만 있으면 파고드는데 당신에게 상응하는 마난(魔難)을 만들어 당신의 집착을 제거하게 하면서, 표면적인 구실은 당신의 수련 제고를 위해서라고 한다. 이때 당신은 이미 집착에 의해 당신의 혜안(慧眼)이 가로막혔고 당신의 영지(靈智 신령한 지혜)가 손상되어, 이미 법(法)의 지도가 없어졌고 또한 정념(正念)으로 두려워 떨게 하지 못하며, 사부님 법신의 가지(加持)와 정신(正神)의 보호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곧 구세력이 마련(魔煉 마난으로 단련)하는 대상이 된다. 때문에 자비하신 사부님께서는 법에서 여러 차례 속인 중의 그 어떤 사람이나 어떤 일이든 절대 집착하지 말아야 하며 반드시 담담히 보고 가볍게 보아야 한다고 강조하신 것이다.
3. 파룬 회전의 깨달음
법 공부를 통해 우리는 파룬의 특징이 바른쪽(시계방향)으로 아홉 번, 반대쪽(반시계방향)으로 아홉 번 회전하며 늘 바른쪽으로만 회전하거나 반대쪽으로만 회전하진 않는다. 이는 우리에게 한 가지 고층의 법리를 펼쳐 보여주는데 즉 어떤 일을 하든 극단으로 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반대로 생각하고 입장을 바꿔 사고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예를 들어, 우리는 속인 환경 속에 있어서 각종 모순과 다툼을 피하기 어려운데 부딪힌 어떤 사람이나 어떤 일이든 모두 부동한 층차의 법으로 자신을 요구해야지, 사람의 사유 속에서 자신이 옳고 자신이 좋다는 것에 빠져 자아를 집착하는 외골수가 되어선 안 된다.
또 제때 자사자리(自私自利 자신만 알고 이익만 아는 것), 자아를 실증하고, 자아를 지키려는 생각을 뒤집어 위타(爲他)의 기점에 서서 생각하고 행동하며 원용(圓容)해야 하며, 청성(淸醒)하고 이지적으로 구체적인 일의 시끄러움에서 물러나 제때 안으로 찾고 밖을 보지 말아야 하며, 자각(自覺)적이고 주동적으로 법의 기제로 돌아와야만 아랫배 부위의 파룬과 함께 운행할 수 있고, 이렇게 해야만 공(功)의 연화(演化) 및 번티(本體)가 신체(神體 신의 몸)로 전화(轉化)하는데 도달할 수 있다.
나는 지금 ‘안으로 찾음’이 아마도 ‘참음’의 한 층 함의를 표현한 것임을 깨달았다. 왜냐하면 일단 안으로 찾기만 하면 곧 구우주의 기제에서 벗어나 신우주의 기제로 전환한 것으로, 구우주의 패괴(敗壞)한 결말을 끝내고 신우주의 밝은 미래를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대법 ‘진선인(真善忍)’의 홍대(洪大)한 법력의 위덕(威德)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267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