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련(大連) 대법제자
【정견망】
사실 나는 글을 몹시 쓰고 싶었지만 자신이 잘하지 못해서 몹시 부끄럽고 마치 아무것도 쓸 게 없는 것 같다. 그래도 투고를 권유하는 문장을 보고 비록 우수하진 않고 천박한 깨달음이지만 글로 써서 교류하고자 한다.
1. 믿음은 천지에서 가장 큰 힘
당신이 진정으로 믿는다면, 당신은 그에 따라서 할 수 있고, 진정으로 순정한 심태로 그 한 층의 표준에 부합할 수 있는데, 이렇게 해야만 당신은 돌파할 수 있고 법(法)의 위력을 체험할 수 있다.
물론 보다 높은 곳에서 내원한 생명은, 설사 괜찮게 했을지라도 그에 대한 요구가 높기 때문에, 그에게 아무것도 드러내지 않을 수 있다. 그것은 보다 높은 표준에서 그에 대한 고험이다. 물론 이런 상사(上士)는 이치로 깨닫기 때문에 그 어떤 좌절과 고난에 직면하더라도, 설사 생사 앞에서도 여전히 법을 견정하게 믿고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생명 깊은 곳에서 이미 금강부동(金剛不動)한 정신(正信)을 다졌기 때문인데, 설사 잠시 깨닫지 못하거나 또는 어떤 관난(關難)을 넘기지 못할지라도, 이 역시 그에게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업력(業力)이 없다면 어떻게 어려움이 있을 수 있겠는가? 모든 고통과 마난은 자신의 업력이 조성한 것으로 이를 똑똑히 안다면 밖으로 찾는 문제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법은 영원히 옳고 불변부동(不變不動)한 것으로 틀린 것은 영원히 늘 자신이다. 그러므로 줄곧 안으로 찾아야 하며 끊임없이 안으로 찾아야 한다. 법의 표준으로 끊임없이 자신을 닦아 바로잡아야 한다. 아마 이 역시 생명의 본질이 결정한 것으로 끊임없이 법으로 자신을 닦아서 바로잡으면 모든 것이 원용불파(圓容不破)할 것이다.
이는 법리(法理)가 결정한 것으로 생명은 모두 만들어진 것이니 그 어떤 생명도 모두 그를 만드신 주(主)의 말씀을 따라야 한다. 이는 절대적으로 이렇게 해야 하는 것으로 그렇게 하지 않으면 반역이고 변이(變異)이자 패괴(敗壞)다.
2. 은혜에 감사함을 알아야
생명은 만들어진 것이고 생존환경도 창조주께서 만드신 것이다.
생존환경은 모두 생명에게 만들어 준 것으로, 무슨 걱정할 필요가 없는데 그 누구도 그런 환경을 만들 수 없다.
예를 들어 사람을 말하면, 이 층면에서 자신의 노동을 대가로 수확할 수 있다고 여기겠지만 만약 햇빛, 공기, 물, 종자 등등 이런 가장 기본적인 것들이 없다면 당신이 아무리 대가를 치르더라도 아무 소용이 없다. 바로 사람에게 이런 환경을 창조해 주었기 때문에 당신이 어떠어떠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생각해 보라. 누가 이러한 것들을 만들 수 있는가?
또한 사람들은 자신이 말을 하고 글자로 표현한다고 여기는데, 이 언어와 문자 역시 신(神)이 사람이 사용하도록 만들어준 것이고 사람의 사유 방식 등 모든 것을 포함한다. 이외에도 사람들이 보지 못하지만 사람이 이곳에서 생존하게 하는 많고 많은 요소들이 있다.
비교해 보면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하나의 바람(소망)에 불과할 뿐이다.
따라서 한 생명이 그 한 층의 표준에 부합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하고 가장 중요한 관건이다.
어떤 생명이 어떤 능력을 지니는가 하는 것 역시 더 높은 생명이 부여한 것으로, 부여받은 것이 중요할 뿐 당신에게 어떤 능력이 있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더 높은 층차의 필요인데 혹자는 우주의 필요라고 말한다. 물론 가장 관건적인 것은 당신이 여전히 그 한 층차의 요구에 부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법은 예외가 없으며 이 모든 것을 절대적으로 통제하고 있다.
우리는 뭐 대단할 것이 없으며, 창우(蒼宇)에서 모두 미미한 생명일 뿐이다. 지금 중생들의 이목을 끄는 것도 당신이 무슨 대단한 것이 있어서가 아니라 대법이 대단한 것으로 당신은 대법이 육성한 생명이기 때문이다.
설사 아무리 높은 왕이나 주(主)일지라도 그의 권력은 창세주께서 은사(恩賜)하신 것이다.
그 어떤 생명이든, 오직 이 우주 안에 존재하는 생명이라면, 모두 은혜에 감사할 줄 알아야 하는데, 이는 한 생명이 가장 영원히 명심해야 할 것이다.
3. 소중히 여길 줄 알아야
극히 고통스런 상황 하에서 나는 생명이 계속 존재할 수 있을지 생각한 적이 있다. 고통이 너무 심하다고 느꼈기 때문에 더는 살고 싶지 않았다. 좋은 것도 필요 없고 나쁜 것도 필요 없었으며, 아무것도 원하지 않았고 심지어 생각조차도 없었다.
하지만 반복적으로 생각해보고 대법으로 가늠해 보고 나서 나는 그것은 불가능하며 또한 배반이자 변이임을 깨달았다. 창세주께서 당신을 만드셨으니 당신이란 이 생명은 자신에게 속하는 것이 아니라 창세주에 속한 것으로 당신이 어찌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가? 그것은 절대로 안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늘 자신을 소중히 여겨야 하며 자신을 포기하지 말아야 하는데, 그것은 모두 사부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니다. 자기 생명의 가장 미시적인 부분부터 시작해서 모두 법이 만든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장래 어떻게 될지라도 늘 사부님 말씀에 따라야 한다.
사실, 사부님께서는 이미 우리를 위해 무수하고도 무수한 업력을 없애주셨으며, 다만 고만한 것을 남겨 당신의 제고에 이용하고 당신을 원만하게 하신다. 생명으로서 말하자면 오직 몹시 소중히 여겨야 하며 사부님께서 안배하신 길을 걸어야 한다.
사부님께서 결속을 말하지 않으셨으니 모든 생명에 대해 말하자면 모두 기회가 있는 것으로 모두 세 가지 일의 시작과 마무리를 잘해야 한다. 설령 어떤 부분에서 보다 높은 표준과 요구에 도달하지 못했을지라도 가급적 자신의 가장 큰 능력으로 사부님께서 요구하신 것을 잘해야 한다.
기나긴 역사의 장하(長河)에서 나는 일찍이 이미 수없이 많은 업의 빚을 졌지만, 그럼에도 존재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사부님의 은사[恩賜 사실 어찌 개체 생명만 감사드려야 하겠는가? 구우주에서 아직까지 존재하는 생명들은 모두 창세주의 자비에 감사드려야 한다.]에 감사드려야 한다. 또한 자신이 정법 수련 중에서 많은 부분에서 표준에 도달하지 못했고 심지어 큰 잘못을 저질렀을지라도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 기왕에 당신이 고칠 수 있게 해주셨으니 그럼 더 소중히 여겨야 하는데 이는 전례가 없는 거대한 자비로 모든 생명들이 다 소중히 여겨야만 한다.
결론
내 생각에 세상의 모든 생명은 다 자신의 서약을 실현하고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려 하지만 각종 원인 때문에 많은 일들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업력과 법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것이다.
그러나 본래 소망은 반드시 잘하려는 것으로 현실에서 해내지 못했고, 잘하지 못했어도, 선량(善良)을 지켜야 하고, 자신의 원인을 찾아야 하며, 잘할 수 있는 것을 잘하고, 잠시 잘하지 못하는 것도 차이를 알고 앞으로 가급적 잘해야 한다.
나는 자신에게 설사 원만하지 못한 것이 있고, 아직 마땅히 도달해야 할 표준에 도달하지 못한 것이 있을지라도, 나는 대법에 대한 자신의 이해에 근거해 가급적 좀 더 잘해야 한다고 일깨워준다.
설령 자신이 장래 무엇을 얻지 못하거나 심지어 아무것도 얻지 못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대법의 요구에 따라야 한다.
아무런 외부 조건이 없어도 대법으로 자신에게 요구해야 하며, 어떤 일을 만나더라도 늘 선량을 유지하고 정념(正念)으로 마주해야 하는데 왜냐하면 나는 대법이 만든 생명이기 때문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26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