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우(緣宇)
【정견망】
말로 논쟁하는 변론술(辯論術)은 고대부터 존재해 왔으며 궤변술(詭辯術)이라고도 한다. 예를 들어 제갈량이 적벽대전을 앞두고 동오(東吳)를 찾아가 그곳의 여러 선비들과 설전한 이야기를 들 수 있다. 하지만 실제 상황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고인은 이런 상황을 명확히 설명하기 위해 전문적으로 한 가지 우화를 만들었다.
고양퇴가 집을 지으려 하자 집짓는 장인이 대답했다.
“아직 안 됩니다. 나무가 아직 생것이라 그 위에 진흙을 바르면 장차 틀림없이 휘어질 겁니다. 생나무로 집을 지으면 지금 당장은 좋더라도 나중에 반드시 무너질 것입니다.”
그러나 고양퇴가 말했다.
“자네 말대로라면 집은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나무는 마르면 마를수록 더 야물어지고 진흙은 마르면 마를수록 더 가벼워질 것이니 갈수록 야물어지는 것으로 갈수록 가벼워지는 것을 맡아 감당하게 하면 분명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장인은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고 어쩔 수 없이 명령에 따라 집을 지었다. 집이 완성되었을 때는 훌륭했지만 나중에 정말 무너져버렸다. 고양퇴는 작은 것은 세밀히 살폈지만 큰 이치에는 통달하지 못했다.
이상은 《여씨춘추 별류(別類)》에 나오는 일화다.
고양퇴의 말은 얼핏 도리가 있고 옳은 것 같지만 실제로는 틀린 것이다. 왜 그럴까? 왜냐하면 우리가 한 가지 일을 볼 때 흔히 자신의 견해가 불완전하거나 심지어 틀린 것임에도 불구하고 자기 의견을 고수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오늘날 무신론자들은 문제를 볼 때 자연스레 무신론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최종 결론은 반드시 틀린 것임에도 그들은 또 그럴듯한 말을 꾸며 자신을 정당화한다. 예를 들어, 얼마 전 역병 문제에서 중공은 많은 곳에서 도시를 봉쇄하는 방식을 채택했지만, 결과적으로 도시 봉쇄는 효과가 없었고 백신도 효과가 없다고 스스로 인정했다. 그럼에도 그들은 신중하게 일을 처리하느라 실수가 불가피했다고 구실을 댄다.
이는 마치 앞에서 예로 든 고양퇴와 비슷하다. 하지만 많은 일은 기회가 단 한 번뿐이다. 예를 들어, 오늘날 정법(正法)에서는 기회와 인연이 오직 단 한 번뿐이다. 일단 기회를 놓치면 만회할 기회는 없다. 집은 무너져도 다시 지을 수 있지만, 정법의 기연을 놓치면 두 번째 기회는 없다.
대법 사부님께서는 《정진요지》〈퇴직하여 다시 연마〉에서 말씀하셨다.
“기회와 인연은 오직 한 번뿐이며, 내려놓지 못하는 몽환(夢幻)이 지나가 버리면 비로소 잃은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될 것이다.”
고양퇴처럼 자기 의견을 고집하지 말고 마음속의 선념(善念)으로 문제를 보아야만 진정으로 자신의 미래를 통제할 수 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54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