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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공부는 반드시 마음에 들어가야 한다

요녕 대법제자

【정견망】

얼마 전 다시 《전법륜》을 한번 공부했다. 기록된 시간을 살펴보니, 이번에 한 번 보는데 장장 2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왜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을까? 이 일은 처음부터 말해야 한다. 나는 1995년 수련을 시작했고, 수련을 시작한 이후 법 공부를 세 가지 방식으로 했다.

첫 번째 방법은 수련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매일 《전법륜》을 읽는 것이다. 나는 날마다 여러 페이지를 공부했는데, 한 강을 공부하는 데 약 1시간 30분에서 2시간이 걸렸다. 나는 법공부 속도로 법공부 질을 판단했다. 당시 어떤 동수들은 날마다 2~3강을 공부하는데, 나는 그들의 부지런함에 탄복했다. 나는 매일 《전법륜》을 공부하는 외에, 시간을 따로 내서 사존의 다른 설법을 공부했다.

1999년 사악한 중국 공산당이 대법을 파괴한 후, 나는 일찍이 납치되어 세뇌반과 노교소에 끌려갔다. 그곳에서 나는 일부 현상을 목격했는데 바로 어떤 사람들은 《전법륜》을 외울 수 있었고, 심지어 거꾸로 외울 수도 있었지만 나중에 사오(邪悟)했고 중공 경찰이 견정한 대법제자들을 전화(轉化 사상전향)시키는 것을 도왔다. 이것은 나를 매우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내가 이해하기에 법 공부를 잘한 그런 사람들은 더욱 견정해야 하는데, 어떻게 그들이 사오할 수 있는가? 나는 온갖 생각을 다 해봤지만 알아낼 수 없었다.

나중에 끊임없이 법을 공부하다 “많은 사람이 고층차로 수련하려 하는, 이런 생각이 있고 이런 소원이 있으나, 수련에서 법을 얻지 못한 결과 매우 큰 곤란이 조성되었으며, 또 많은 문제가 나타났다.”(《전법륜》) “법을 배우고 법을 얻어”(《홍음<착실한 수련>)를 보았다.

나는 법 공부의 목적은 법을 얻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 사람들은 법공부를 하면서 표면 형식만 중시했을 뿐 진정으로 법을 얻지 못했기 때문에 사로(邪路 삐딱한 길)를 걸어간 것이다.

끊임없이 다른 설법을 공부하는 과정에서 나는 사존께서 매 차례 설법마다 늘 우리에게 법 공부를 많이 하고 법 공부를 잘하라고 끊임없이 법 공부의 중요성을 강조하셨음을 발견했다. 그러던 어느 날, 다른 설법 공부를 마친 후 자신의 법 공부 상태를 진지하게 살펴보았다. 나는 자신이 법을 공부하는 과정에서 흔히 사상을 집중하지 못하고 딴생각을 하는 것을 발견했는데 법을 너무 익숙하게 읽다 보니 가끔 법을 읽을 때 순구류(順口溜)처럼 느껴졌다. 이 구절 법을 읽으면 바로 다음 줄이 입에서 미끄러져 나오다보니 법이 아예 마음에 들어가지 않았다. 나는 또 읽는 속도가 너무 빠르기 때문에 성심껏 법을 이해할 시간이 없는 것을 발견했다. 다만 표면적으로만 대략 이해하고 넘어갔는데 아울러 진지하게 이 구절 법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이렇게 해선 안 된다고 생각해 법 공부 방식을 바꾸려 했다. 천천히 읽어야 하며 성심껏 매 한 구절의 법을 이해해야 한다.

그 이후 나는 속도를 낮춰서 법을 천천히 읽기 시작했고, 가급적 매 한 구절 법까지 진지하게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이렇게 하자 한 시간 반 동안 겨우 몇 페이지밖에 읽을 수 없었다. 하지만, 효과는 오히려 아주 좋았다. 점차적으로, 나는 자신의 정념(正念)이 강해지고 좋지 않은 사상이 감소한 것을 발견했는데 딴생각을 하는 상황도 훨씬 줄어들었고 법을 공부하면서 보이는 법의 내함(內涵)이 더 많아졌다. 문제가 생겼을 때 법에서 법을 인식할 수 있게 되었고 여러 방면의 상태가 다 개선되었다. 이런 법 공부 방식을 나는 6~7년 전까지 줄곧 유지해 왔다. 이 법 공부 방식은 비록 효과적이었지만, 여전히 딴생각[溜号 역주: 동북 방언으로 주의력이 부족해서 딴 짓을 하는 것]을 하는 현상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알려주셨다.

“특히 법 공부 중에서, 여러분은 반드시 참답고 참답게 배워야 한다. 여러분 알다시피 법 공부를 함에 많은 지역에서 일부 정황이 나타났다. 어떤 정황인가? 어떤 지역은 형식에 치우친다. 어떤 사람은 『전법륜』을 읽을 때 사상이 전일하지 않고, 다른 것을 생각하며 수련 중에 전념하지 못한다. 이것은 시간을 낭비하는 것과 같으며, 시간을 낭비할 뿐만 아니라, 본래는 제고해야 할 때이건만, 오히려 마음에 생각하지 말아야 하는 문제와 일부 일들을 생각하는데, 제고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아래로 떨어지고 있다. 만약 법을 잘 배우지 못하면, 많은 일을 다 잘하지 못하게 된다.”(《각지 설법 11》 〈대법제자는 반드시 법 공부를 해야 한다〉)

나는 어떻게 법을 공부해야 딴생각을 하는 현상을 없앨 수 있을지 생각했다. 한참을 궁리한 후 나는 한 가지 방법을 찾아냈는데 바로 먼저 한 구절이나 몇 구절의 법을 천천히 읽은 후 다시 천천히 한번 외운다. 그리고 또 천천히 한번 써보고 틀린 곳이 있으면 바로잡는다. 법을 읽을 때면 매 글자마다 반드시 진지하게 볼 것을 요구했고, 법을 외우면서는 마치 《전법륜》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사람이 염불할 때 일심불란(一心不亂)으로 염(念)해야 하는데, 마음속으로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대뇌의 기타 부분이 모두 염(念)해 마비됨으로써 아무것도 모르며, 일념(一念)이 만념(萬念)을 대체하여, ‘아미타불’의 매 한 글자가 눈앞에 모두 나타날 수 있”도록 했다. 이에 나는 이렇게 새로운 방식으로 법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한동안 공부하니, 이 방법은 정말로 딴생각을 하는 현상을 없앨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법을 외울 때 정신을 팔면 외울 수 없으니 반드시 정신을 집중해야만 외울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한 가지 문제가 생겼는데 매일 법 공부하는 양이 매우 적었다. 1시간 반 동안 공부할 수 있는 양이 겨우 반 페이지 정도였다. 나는 이렇게 적은 양의 법 공부가 수련에 영향을 미치면 어떻게 할지, 계속 이런 식으로 공부해야 하는지 마음속으로 고민했다. 하지만 또 생각해 보니 일단 이렇게 공부하고 또 날마다 다른 설법을 보고 동수들의 교류문장도 들으니 당연히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고 정말로 영향을 준다면 사부님께서 나를 점화해 주실 것이다. 이렇게 나는 다시 한번 법 공부 방식을 개변했다.

이렇게 법을 공부한 후, 효과가 아주 좋았고, 내 수련 상태 역시 현저히 제고되었다. 법을 공부할 때, 늘 법리(法理)가 나타났고, 일정 기간이 지난 후 자신이 뚜렷하게 제고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법을 읽을 때, 법에 대한 이해 역시 전과는 달라졌고, 늘 새로운 인식이 나타났다. 지난 6~7년을 돌아보면 내가 수련을 시작한 이래 가장 빠르게 제고된 시기였다. 어느 한 기간에 나는 자신이 신속하게 제고되고 있음을 느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나는 법을 공부할 때 반드시 마음에 들어가고 정신을 집중해야 함을 인식했는데 법 공부 속도는 절대 빨리 해선 안된다. 이렇게 해야만 법의 내함(內涵)을 깨달을[領會 핵심을 파악해 깨달음] 충분한 시간이 있다. 이것은 법을 읽거나 베끼거나 암송할 때 모두 마찬가지다. 이렇게 해야만 진정으로 법을 얻을 수 있고, 동시에 또 법을 존중해야만 법리가 당신에게 드러날 수 있다. 지금 내 주변 동수들도 법 공부 속도를 늦추고 있는데, 모두 아주 좋은 효과를 얻었다. 어떤 사람은 수련 상태의 변화가 이전과 비교해 아주 크다.

현재 우리 지역에는 또 오랫동안 여러 가지 마난(魔難)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몇몇 노동수(老同修)들이 있다. 며칠 전 또 한 동수가 병업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들은 모두 1999년 이전에 법을 얻었다. 그들은 매일 법을 공부한 수량이 다 적지 않고, 세 가지 일도 다 하고 있다. 그들 중 한 동수는 법을 아주 잘 외웠는데, 표면적으로 보면 모두 법 공부를 “아주 잘”한 것 같다.

사부님께서는 “법리는 당신의 일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스위스 법회 설법》) “법은 일체 집착을 타파할 수 있고, 법은 일체 사악을 타파할 수 있으며, 법은 일체 거짓말을 타파해 버릴 수 있고, 법은 정념(正念)을 확고히 할 수 있다.”(《정진요지 2》〈교란을 배제하자〉)라고 하셨다.

그렇다면 왜 그들의 문제는 오랫동안 해결되지 않을 수 있는가? 그들과 교류를 통해, 나는 그들이 모두 법 공부가 마음에 들어가지 못하는 문제가 존재해서 법을 얻는 효과가 좋지 않고 대법의 강대한 위력이 그들의 몸에서 나타날 수 없게 했음을 발견했다.

이러한 경험을 써내는 것은 내가 채용한 법 공부 방식이 얼마나 좋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런 방식이 다른 동수들에게 꼭 적합하진 않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동수들에게 법 공부는 반드시 마음에 들어가게[역주: 중국어 입심(入心)은 심입입심(深入人心)의 준말로 사람의 마음속으로 깊이 들어간다는 의미] 해야 한다고 일깨워 주려는 것이다. 이 일은 극히 관건적인데 왜냐하면 이 일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우리 수련의 각 방면에 영향을 끼치고 직접적으로 우리 수련상태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동수들이 모두 이 문제를 중시할 수 있기를 희망하는데 법 공부는 늘 법 속에 녹아들어가야 하며 늘 “법을 배우고 법을 얻어”(《홍음<착실한 수련>)야 한다.

이상은 여러분들의 좋은 의견을 끌어내기 위한 자신의 작은 소견이니 부족한 곳이 있다면 동수들의 자비로운 시정을 바란다. 마지막으로 사부님의 한 단락 법을 여러분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사실 잘한 대법제자, 이번 한차례 박해에서 걸어지나온 대법제자는, 그들이 법을 잘 배우고 착실히 배우고서야 걸어지나올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그런, 수련을 하는 둥 마는 둥 하는 사람들은 이 길을 잘 걷기가 몹시 어렵다.”(《2014년 샌프란시스코 법회 설법》)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57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