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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은 영이 있다에 대한 약간의 체험

경심

【정견망】

수련자들로 말하면 만물이 영이 있다는 것은 자명하며, 많은 동수들이 쥐나 개미와 대화를 통해 진상을 이야기하여 그들을 이사시킨 일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이러한 문제들을 마주할 때, 나는 항상 정념이 부족하다. 최근에 만난 일들이 나로 하여금 새로운 체험을 하게 하였다.

저는 모종 판에 호박 씨앗을 몇 개 뿌렸는데, 여러 해 동안 문제가 있었다. 즉, 이틀 만에 많은 씨앗이 쥐에 의해 땅에서 한 알씩 뽑혀 먹히게 되어 매우 실망스러웠다. 올해 나는 걱정이 되어 모판 근처에 쥐붙이판, 쥐약을 놓았다. 하지만 다음 날 보니, 망했다. 쥐 한 마리도 잡지 못했고, 씨앗은 엉망진창으로 먹혀버렸다. 나는 기분이 너무 우울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나도 쥐에게 진상을 말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나는 정말 그럴 기분도 아니고, 선심도 없으며, 심지어 쇠귀에 경 읽기라고 생각했다.

법리적으로는 만물에 영이 있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현실에서는 항상 아득하고 막연한 느낌이 든다. 그리고 나는 쥐, 개미, 벌레, 뱀 같은 것들을 정말 싫어한다. 생각만 해도 구역질이 나는데, 어떻게 진상을 말할 수 있을까?

​어쩔 수 없어서 일단 제쳐두고 다른 일이나 하기로 했다. 나는 경운기를 끌어냈는데, 보통 엔진을 한 번 켜면 작동(핸드 작동)했는데, 이번에는 두 번 흔들어 작동했고 몇 초 만에 시동이 꺼졌다. 애를 많이 들여서 다시 작동했고, 몇 초 후에 다시 꺼졌다. 일반적으로 이것은 기름관에서 공기가 들어있고, 기름 공급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공기가 차 있으면 배출하자. 하지만 한참 동안 바쁘게 일했지만 빼내지 못했고, 너무 힘들었을 뿐만 아니라 손도 피부가 벗겨져 마음이 더욱 답답해졌다. 나는 “상유심생相由心生-상은 마음에서 생긴다”이라는 말을 알고 있다. 마음이 화를 버리지 않으면 기름관의 공기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아휴, 하루 종일 하는 일마다 꼬이는 듯했다.

나는 이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수련인으로서 어떠한 우연한 일도 없다,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모든 것을 안으로 찾으라고 가르침을 주셨으니, 나는 정말 안으로 자신을 찾고 수련해야 할 것 같다. 쥐 때문에 생긴 고민이니 법리적으로라도 깨우쳐보자.

나는 왜 쥐를 싫어할까? 그것이 씨앗을 먹고 일을 그르쳤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 도둑놈 때문에 속이 메스껍기도 하다. 미움, 징그러움 이게 무슨 마음인가? 신불에게 이런 마음이 있을까. 이것은 자신의 선천적인 순진한 본성인가? 아, 알고 보니 이것은 모두 후천적으로 형성된 관념, 인심, 마성이다, 그것은 인체의 소우주에서 확실한 생명이다,

우리의 주원신은 마치 조정의 황제 같고 문무백관과 백성들은 충신, 간신, 선악군자, 소인배 등 어떤 사람이든 다 있다, 한 가지 일에 직면하면 시끄럽게 떠드는 모든 소리가 있다. 황제가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선택하고, 어떻게 사리에 밝은지에 달려 있다. 만약 황제가 어리석은 군주라면, 간신과 소인이 득세하여 조정 전체에 사악한 기운이 퍼질 것이다. 반대로 황제가 명군이라면 충신과 훌륭한 장군이 중용되고 나라가 번창할 것이다.

수련자로서 사부님의 법리에 따라 마성을 닦아서 버리고 불성을 충실히 하여 ‘주의식을 강하게 하고, 마음은 반드시 똑발라야 한다'(전법륜)를 해내야 한다. 그럼 밉고 징그러운 게 뭘까? 쥐 자체가 어떻든 대법제자로서 그런 마음을 갖고 내려놓지 않을 수 있는가.

다른 각도에서 보면, 이 쥐도 원신이 있지 않는가? 그것의 생명의 내원은 본질적으로 무엇인가? 지금은 정법 시기인데, 삼계 내의 어떤 것도 우연일 수 있을까? 사부님은 <각지설법 11>-대법제자는 반드시 법공부를 해야 한다-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떤 일이든 모두 우연한 것이 아니다. 많은 고층 생명이 내려와 전생해서 대법과 인연을 맺으려 하고, 사람 역시 윤회전생하고 있는데, 사람 숫자와 인피는 한정되어 있고, 더 많아지면 이 지구도 감당하지 못한다. 그래서 고층 생명이 동물, 식물로 전생한 것도 있다.”

이렇게 보면, 쥐의 원신은 매우 높은 차원에서 왔을 가능성이 크다. 단지 우연히 쥐 껍질을 입었을 뿐이다. 세상은 큰 무대이다. 어떤 옷을 입으면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 쥐의 역할은 무엇일까? 도둑놈의 상판,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식견이 좁고, 머리를 감싸고 달아나는 쥐, 여러 사람의 배척을 받는 자-등은 부정적인 역할로, 바로 반작용을 하는 것이며, 각본은 이렇게 짜여진 것이다. 누구도 부정적인 역할을 하고 싶지 않지만, 인과응보이고 하다보니 어쩔 수 없다.

관객으로서 우리가 싫어하는 것은 그 부정적인 언행 사상이다. 이는 우리가 그 전철을 밟지 않도록 경각심을 주는 것이며, 그 배우를 싫어하는 것이 아니다. 마치 역사 속의 무령들처럼, 그들이 세상에 온 것은 왕을 도와 전쟁을 치르고 살육하는 것이다. 업력은 있어도 과실은 없으며, 선악이나 좋고 나쁨으로 평가할 수 없다.

하지만 정벌과 살육 과정에서 자신의 사리사욕이 섞여 있다면, 그것은 자신의 업을 짓는 것이며 과실이 있는 것이다. 쥐도 그렇지 않은가? 만약 그것이 진상을 알고 파괴하지 않고 규칙대로 행동한다면, 당신도 그것을 탓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무슨 화가 나겠는가? 그냥 쥐로 탁생한 것이 너무 불쌍할 따름이지!

나는 채소밭 사무실 소파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한편으로는 이 법리들을 정리하면서, 한편으로는 쥐로 전생한 것은 고생이고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나도 너희들에게 화내고 싶지 않다, 만약 너희들이 정말 영이 있어서 내 속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면, 너희들은 스스로 종자 곡식을 훔쳐 먹지 말고, 너희들이 먹어야 할 것과 살 곳이 있으니, 나의 생산 활동을 방해하지 마라. 만약 너희들이 “파룬따파가 좋다, 진선인이 좋다”고 믿을 수 있다면, 아름다운 미래도 있을 것이다. 만약 굳이 파괴하려 한다면, 그것은 자연히 하늘이 처리할 것이다.

​그때 갑자기 작은 쥐가 한마리 뛰쳐나오길래 내가 말했다.

“만약 네가 내 뜻을 이해했다면, 다른 친구들에게 앞으로 다시는 함부로 하지 말라고 말해라. 이것이 네가 공을 세워 속죄할 기회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것은 도망갔다. 나는 그것이 이해했든 못했든, 그들이 어떻게 되든 간에, 나는 두 가지 준비를 하고 있었다. 첫째, 계속해서 모종 판에 파종하여 모종을 키우고, 만약 여전히 먹힌다면 마지막에는 큰 밭에 직파하려고 생각했다. 어쨌든 나는 화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나는 정념은 법에서 나온다는 것을 깨달았고, 사부님은 <도법> 경문에서 말씀하셨다:

“깨달은 본성은 스스로 어떻게 해야하는지 알 것이다.”

그렇다, 법리가 명확하면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되는 것이지, 억지로 참거나 하는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이 일본의 기무라(자연 농법으로 사과를 키운 알본 농부)를 배우고 싶어하고, 소위 ‘사랑’을 통해 천지를 감동하여 기무라와 같은 사과를 재배하고 싶어한다. 사부님은 《홍음》-《원만공성》에서 말씀하셨다:

“명리정(名利情) 닦아버리고
원만 이루어 창궁에 오르네
慈悲(츠뻬이)로 세계를 보나니
그제야 미혹 속에서 깨어나네”

명예, 이익과 정을 가지고 있으면 진정한 자비심은 없다. 자비심이 없으면 천지를 감동시킬 수 없다. 자비심이 생기면 사물은 좋은 방향으로 가게 된다.

상은 마음에서 생기니(相由心生), 모든 좋지 않은 외부 환경 표현은 자신의 내적 심성을 반영하는 것 같다. 하늘과 땅을 탓하지 말고, 자기를 안으로 찾아서 수련해야 한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64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