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생(重生)
【정견망】
잘 알다다시피, ‘물 결정 실험’은 1994년 에모토 마사루(江本胜) 박사가 IHM 연구소에서 시작했다. 그는 영하 25도의 저온에서 물이 얼음과 같은 고체 상태로 결정화되도록 한 다음 고속 카메라를 사용해 물을 200~500배 확대해서 결정화 과정을 촬영했다.
에모토 박사는 먼저 물이 담긴 병에 여러 가지 단어가 적힌 종이를 붙여 물이 그 단어들을 ‘읽게’ 한 다음, 물이 인류가 쓴 문자 정보를 ‘읽은’ 후 결정화되는 모습을 촬영했다. 그런 다음 연구진은 물이 “읽을 수 있도록” 병에 다른 단어나 사진을 붙였는데, 그 결과 “감사합니다” 물 결정은 매우 투명하고 아름다운 육각형 모양을 보였지만, “망할 놈”이란 물 결정은 깨져서 흩어진 것을 볼 수 있었다. 이 연구소에서는 94년부터 현재까지 다년간의 실험을 통해 물이 선(善)과 악(惡)을 ‘느낄 수 있다’는 동일한 결론에 도달했다.
예를 들어 두 개의 쌀 상자를 같은 장소, 같은 조건에 놓아두면 일정 시간이 지난 후 칭찬을 받은 쌀 상자는 여전히 하얀색에 약간의 노란색만 남는 반면, 모욕을 받은 쌀 상자는 일찍부터 검게 변하고 냄새가 난다. 이는 만물(萬物)에는 영(靈)이 있고, 물이 들을 수 있고, 볼 수 있으며, 물은 답을 알 수 있음을 증명한다.
물이 답을 알 수 있다는 이 이론에 근거해 한번 분석해 보자.
만약 우리가 지금의 세상 사람들에게 라벨을 달아 이 사람은 악(惡)하고 저 사람은 선(善)하다고 여긴다면, 우리가 악하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점점 더 악해지지 않겠는가? 반대로 우리가 선하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점점 더 선해지지 않겠는가? 확실히 그렇다.
우리가 만약 경찰을 대하면서 대법제자가 모두 악경(惡警)이라 부른다면 이는 더 많은 경찰관을 반대편으로 밀어내는 것이 아닌가? 그들이 점점 더 악해지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확실히 그렇다.
우리가 만약 정진하지 않은 동수나 병업(病業)이 나타난 동수를 보고, 모두 그들이 집착을 찾고 사람 마음을 찾고 한 무더기 사람마음의 집착을 찾도록 도와주면서 배후에서는 또 반복적으로 이런 사람 마음의 집착을 말한다면, 이것은 집착이 있는 이런 동수들이 사람 마음에 더 집착하게 만들지 않겠는가? 우리 대법제자가 한 말에는 에너지가 있기 때문에 더 큰 효과를 낼 것이다. 우리는 동수를 돕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정반대 방향으로 밀어낸 것이 아닌가? 이는 구세력이 일으키고자 하는 작용을 한 것이 아닌가?
우리가 만약 동수의 집착을 보고 모두 안으로 찾고 자신을 닦아 동수에게 부면(負面)적인 것을 더하지 않고, 모두 공동 제고해서 올라갈 수 있다면, 집착이 있는 동수들도 제고해 올라가지 않겠는가? 대법제자는 하나의 정체(整體)이기 때문에 사부님께서는 반복적으로 우리더러 서로 제고하고 서로 구조하라고 강조하셨고, 우리가 오직 하나의 정체를 형성할 수만 있다면 구세력은 우리의 빈틈을 탈 수 없으며 스스로 자멸할 것이다.
우리 대법제자들은 늘 정념(正念)으로 문제를 바라보고, 정념으로 중생을 대해야 하는데, 중생은 모두 사부님의 사람이고 대다수는 다 사부님의 친인(親人)이다. 특히 우리 대법제자는 모두 사부님의 직계 가족이었으니 동수에 대한 태도가 좋고 나쁨은 바로 사부님 가족에 대한 태도의 좋고 나쁨이다.
사부님께서는 《사부의 가족을 대함에 정확히 하라》에서 말씀하셨다.
“사부의 가족을 좋게 대하든 나쁘게 대하든 모두 그들의 수련에 영향을 줄 것이다. 당신들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특히 부당한 칭찬은 사부의 가족을 해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동수를 칭찬하는 것은 동수를 해치는 것이 아닌가! 지금까지 구세력이 대법제자를 악독하게 박해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 동수들 사이에서 우리에 대한 법의 요구에 부합하지 않는 것이 많기 때문이 아닌가? 구세력이 대륙에서 각지 협조인을 박해한 것은 우리가 협조인을 칭찬한 것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게 아닌가? 우리가 이렇게 하면 사부님의 가족을 해치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법을 잘 배우고, 잘 깨닫고, 잘 해야 한다. 우리는 법에 없는 일을 해선 안 된다. 우리가 알다시피 물질과 정신은 일성(一性)이며, 심령의 개변은 또 물질의 개변을 초래할 수 있다. 사람 마음의 염두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
가령 우리 대법제자가 모두 시시각각 정념을 지킬 수 있고, 중생에게 좋은 라벨을 붙여 중생에게 정념을 발해, 중생이 모두 ‘쩐싼런하오 파룬따파하오’를 기억할 수 있게 한다면, 우리의 정념은 중생을 광명으로 향하게 하고, 중생이 겁난에서 벗어나 신세기(新世紀)로 들어가게 할 수 있다. 우리는 중생에 대해 책임져야 할 뿐만 아니라 동시에 자신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 우리는 또 수시로 자기 신체(身體)에 대해 좋은 말을 하고 감사를 말해야 하는데 왜냐하면 그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비로소 법을 공부하고 연공할 수 있으며, 세 가지 일을 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직 우리가 바르고 하고 선하게 해서 일체를 마주하기만 한다면 우리는 사부님께서 우리더러 하라고 하신 세 가지 일을 반드시 잘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의 작은 깨달음이니, 법에 없는 곳이 있다면 시정해 주기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68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