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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님의 말씀에 따르면 오직 “싱글벙글”

사천 대법제자

【정견망】

내가 보기에, 불쾌, 분노, 고뇌(苦惱) 등 불량(不良)한 감정이 나타나는 이유는 대부분 속인의 명리정(名利情) 등에 대한 집착심을 내려놓지 못해, 흉금이 좁고, 용량이 작으며, 다른 사람의 결점과 실수를 용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수련인으로서 강조해야 할 또 한 가지는, 바로 고층차의 이치로 일어난 일을 가늠하지 않았고, 속인의 관점과 속인의 이치로 옳고 그름을 가늠하고 따져 심리적인 평형을 이루지 못한 것이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침을 맞고도 웃으며 참는다[唾面自乾]’는 속담을 들어봤을 것이다. 이는 당조(唐朝) 재상 누사덕(婁師德)의 흉금이 아주 넓어서 ‘남이 자기 얼굴에 침을 뱉어도 침이 저절로 마를 때까지 웃으며 참는 것’을 뜻한다. 참을 수 없는 것을 참을 수 있고, 포용할 수 없는 것을 포용한 것인데, 오늘날 이런 모욕을 받고도 극도의 인내를 해낼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는가?

[역주: 누사덕(630—699년)은 당 고종 측천무후 시기의 인물로 아주 침착하고 참을성이 많은 인물이었다. 무측천에게 적인걸(狄仁傑)을 중용하도록 천거했다.]

하지만 누사덕은 필경 속인이고 우리는 수련인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의 목표는 원대한 것으로, 위대하신 사부님께서 수시로 방향을 안내해 주시고 또한 어떻게 해야 할지 가르쳐 주신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언짢은 일에 부딪히고, 당신을 화나게 하는 일에 부딪히며, 개인이익과 자아가 자극받았을 때, 당신이 안에서 찾아보고, 자신을 수련하며, 자신의 누락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갈등 속에서 당신이 정말 무고(無辜)하다 해도 “오, 알겠다. 내가 틀림없이 무언가 잘못했구나. 설사 정말로 잘못이 없다 해도, 아마 이전에 빚진 업을 갚는 것일 수도 있는데, 나는 그것을 잘해서 갚아야 할 것을 갚겠다.”고 하면 된다.”(《대법 제자는 반드시 법을 배워야 한다》)

사부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사실 당신들이 속인 중의 명(名)·이(利)·정(情)에 해를 입어 괴로워한다면 아직 속인의 집착심을 내려놓지 못한 것이다. 당신들은 기억해야 한다! 수련 자체가 고생스러운 것이 아니라, 속인의 집착을 내려놓지 못하는 것이 문제다. 당신들이 명(名)·이(利)·정(情)을 내려놓지 않으면 안 될 때, 당신들은 비로소 괴로움을 느끼게 된다.”(《전법륜 권2)》 〈진수〉)

한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만약 기분이 나쁘거나 화가 나거나 괴로운 일이 생겼을 때는 바로 사부님 말씀을 따르지 않았고,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법을 완전히 믿지 않고, 안으로 찾아 자신을 수련하며 자신의 사람 마음의 집착을 찾지 않은 것이다. 동시에 또 고층차의 이치로 자신에게 발생한 일을 가늠하지 않은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다른 사람이 듣기 싫은 말을 하면 당신은 왜 좋아하지 않는가? 그럼 당신이 좋아하지 않을 때, 마음속에서는 바로 수련과 제고의 기회를 배척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오스트레일리아 법회 설법》)

동수가 쓴 문장의 한 구절이 내게 큰 깨달음을 주었다.

“어떤 사람은 ‘나는 수련인이니 남들과 식견이 같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은 겉보기에는 마치 높은 자태를 취하고 심성을 지킨 것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상대방은 틀렸고 자신이 옳다는 기점에서 생각한 것이다. 상대방은 틀렸지만 자신의 흉금이 넓어 관용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자신을 성취하러 온 것으로 그들이 우리가 신(神)으로 성취하도록 돕는 것이다.”

[역주: 위 인용문은 명혜 문장 《‘수련할 줄 안다’와 ‘수련할 줄 모른다’》의 일부이다.]

따라서 고층차의 이치로 가늠하면, 상대방이 틀린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자신을 성취시키러 온 것이다.

마찬가지 이치로 우리가 불쾌하고 화가 나며 고민하게 만드는 일이 나타나, 고통을 참을 때면 반드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법을 기억해야 하며, 절대로 기분이 나쁘다고 해서 수련 제고할 기회를 배척하지 말아야 한다. 아울러 고층차의 이치로 가늠해야 하는데, 이렇게 하면 우리는 상대방이 우리가 제고할 계단과 하늘로 돌아갈 사다리를 다져주는 것임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는 아주 좋은 일이 아닌가! 우리는 마땅히 내심에서 상대방에게 진심으로 고마워해야 옳다! 어찌 기분이 나쁠 수 있는가? 이때 우리는 상대방이 우리에게 준 제고할 기회를 잘 파악해서, 안으로 자신을 찾고 우주 대법에 동화해 자신의 세계를 성취해야 한다.

우리가 수련인의 관점에 서서 문제를 볼 때, 천국의 친인(親人)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모든 중생을 가슴에 품고 자비로 사람을 대할 때, 우리의 관대한 흉금은 이 세상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으며, 이 세상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 있고, 아무것도 마음에 두지 않을 수 있다. 아무리 큰 손해를 봐도 싱글벙글하는데 즉 ‘불쾌함’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사부님 말씀에 따라 자신을 착실히 수련한다면, ‘불쾌함’이란 없고 오직 ‘싱글벙글’만 있을 따름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7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