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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 속에 태어나 하루아침에 법을 얻어 신기한 일을 겪고 정진하여 멈추지 않다

우명

【정견망】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동수님들 안녕하십니까!

나는 올해 66세로, 99년 박해 이전에 법을 얻어 수련하는 오랜 제자이다. 다음은 나의 수련 전후의 경험들이다. 본인의 구술은 동수의 도움을 받아 정리하였다.

1. 사당이 운동을 하여 유년기에 간신히 살아남다

사당의 초기 다양한 운동으로 인해 어린 시절 우리 가족은 고난을 겪었고, 어쩔 수 없이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했다.

나는 1959년에 태어났는데, 그때는 마침 사당의 무슨 대약진 운동 시기였다. 많은 노동력이 산에 들어가 광산을 찾아 ‘고철’을 정련하고, 성숙한 농작물은 제때 수확하지 못해 밭에 버려졌다. 게다가 곡물의 1무당 수확량에 신기록을 세웠다고 선전하고(放衛星), 상급에서는 부풀려진 생산량에 따라 공공 곡물을 수확하여 농민들이 손에 쥔 배급량, 가축 곡물 및 씨앗을 거의 전부 공공 곡물에 바치도록 하여 아사자가 들판에 넘쳐나게 했다. 사당이 집권 오류를 감추기 위해 ‘3년 자연재해’라고 이름 붙인 것은 사실 철저한 인재이지, 자연재해는 아니다.

​생활이 극도로 어려운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아버지는 누나를 이끌고 피난을 떠나 고향에서 산시로 달려갔다. 그는 수많은 고난을 겪으며 남의 일을 하여 밥을 얻었고, 마침내 우리 가족이 잠시 머물 수 있는 방앗간 마당을 얻었다. 자리를 잡은 후, 아버지는 곧장 고향으로 가서 우리를 데리러 오셨다.

​그때 나는 아직 어머니의 뱃속에 있었고, 아버지는 짐을 메고 있었다. 앞에는 네 살짜리 둘째 누나가 앉아 있었고, 다른 쪽에는 짐을 메고 있었다. 여덟 살짜리 형과 어머니는 피난처를 따라 목적지로 달려갔다.

가는 길에 피난민이 너무 많아 어디를 가도 마을에 들어오지 못하게 했고, 낮에는 밭에서 음식을 주워 먹고 밤에는 잘 곳이 없었다. 날마다 힘겹게 걸으며 걷다 보니, 얼마 지나지 않아 마침내 낡았지만 비바람을 막을 수 있는 그 작은 집에 도착했다. 한 집안이 드디어 발 디딜 틈이 생겼다.

​어느 무더운 여름에 나는 태어났다. 환경이 열악하여 배불리 먹고 모유도 먹을 수 없었다. 돈이 있어도 아기가 먹을 것을 살 수 없었다. 나에게 반죽을 좀 만들어 주어도 마시지 않았다. 나중에 먼 친척이 수박 두 개를 가져다 주었고, 어머니는 수박즙을 면반죽에 넣어 주셨다. 이렇게 해서 나를 먹여서 나는 굶어 죽지 않았다. 어머니가 말씀하시길 두 달이 되었는데 영양실조 때문에 내 머리는 마치 땡땡이처럼 되어 있어서, 어느 한쪽이 낮으면 머리가 그 쪽으로 기울어져 목이 곧게 펴지지 않았다. 2개월 때는 큰 쥐만 했다.

계속 이렇게 가다가는 사람이 될 수 없어서 나를 거리의 다른 집으로 보냈다. 그집에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계시고, 젊은 부부에게 자녀가 없었다. 이것이 바로 나의 새 집이었다. 할머니와 양어머니의 정성 어린 보살핌 덕분에 나는 정식으로 성장했고, 이것은 이미 꽤 괜찮은 일이었다. 나중에 양부모가 이혼하고 모두 차례로 이 집을 떠났다. 이렇게 해서 나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따라 6살까지 살았고, 학교에 가야 해서 다시 친부모의 집으로 돌아갔다.

2. 자라기가 쉽지 않아, 고질병에 시달리다

선천적인 영양 부족으로 인해 학교 다닐 때도 몸이 계속 좋지 않았고, 심장에 빈혈이 있는 것 같았다. 때로는 격렬한 운동 후에 거의 쓰러질 뻔했다. 알고 보니 선천성 심장병이었다.

문화대혁명을 맞아 학교에서 가르치지도 않고 하루 종일 운동만 하다 보니 실질적인 문화지식을 배우지 못했다.

지난 세기 80년대 초, 전국 B형 간염 조사 때, 나의 B형 간염의 항원수치가 정상 수치의 거의 만 배를 넘었고, 간 기능도 정상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우리 가족은 아버지를 제외하고 모두 B형 간염 보유자였다. 그때, 큰누나는 40세도 안 되어 간경변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 후, 어머니, 둘째 누나, 형 모두 암이나 간경변으로 차례로 세상을 떠났다. 나는 매일 조심스럽게 살아가고 있었는데 어느새 나도 그들과 같게 될 것이다.

3. 하루아침에 법을 얻어 고질병이 신기하게 완쾌되다

내 친구 중 한 명이 베이징에서 전화를 걸어 파룬궁을 추천했다. 이렇게 하여 나는 법을 얻었다. 당시에는 녹음만 듣고 책도 제대로 읽지 않았는데 기적이 일어났다.

어느 날 점심시간에 나는 무의식적으로 내 맥박을 짚어보았다. 세어보니 약 60번 정도 있었는데, 잡맥이나 불규칙한 맥박이 모두 정상으로 돌아왔다! 알다시피, 나는 예전에 맥박이 분당 40번밖에 없었고, 실처럼 가늘었다. 게다가 뛰었다가 멈추었다 해서 정말 고통스럽게 살았다!

1년 동안 직장에서 건강 검진을 받았는데, 선천성 심장병, B형 간염 바이러스, 대삼양, 간 기능이 모두 완치되어 여러 해 동안의 정신적, 신체적 부담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고 느겼다! 그 당시 나와 같은 병실에 있던 B형 간염 환자들이 차례로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나는, 건강하게 살아있다!

이것은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기적이 아닌가? ! 내가 대법 수련을 견지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4. 진상을 말하여 다른 사람도 이익을 얻도록 하다

1) 사당의 여러 차례 박해와 불법적 괴롭힘에 가족들도 많은 고통을 겪었다. 게다가 나의 안전이 걱정되어 나를 계속 감시하고 있었다. 가끔은 다른 사람과 몇 마디 더 해도 몹시 긴장했다. 나는 항상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돌파구를 찾아야 했다! 사부님은 내가 그런 소원이 있는 걸 보고 기회를 주셨다.

​어느 친구의 장례식에서 고등학교 이웃 반 동창(부현급)을 만났고, 서로의 근황을 알게 된 후 자연스럽게 나의 믿음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었다. 그는 대법 제자가 진상을 말하는 것에 대해 동의하지 않았고, 의견이 있었다. 나는 여러 각도에서 진상을 말했다: 예를 들어, 천안문 분신의 진상, 전국에서 대부분의 노간부와 국가체육총국의 파룬궁의 건강 기적의 조사 보고서, 공안부가 규정한 14가지 사이비 종교는 파룬궁을 포함시키지 않았고, 국가신문출판총서의 50호령은 대법서적을 출판하지 못하게 한 문서를 폐지했으며, 장자석, 9평, 그리고 이번 대역병과 파룬따파의 병을 제거하는 건강 효과 및 전세계에 대법홍전 등이었다.

말하는 과정에서는 주로 내가 이야기했고, 약간의 상호교류만 있었다. 내가 이야기한 내용이 그의 마음속에 깊은 생각을 불러일으켰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현장에는 수백 명이 돌아다니며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만, 우리를 방해하지 않았다. 단지 내 가족만이 나와 30미터도 채 되지 않는 곳에서 내 쪽을 계속 주시하고 있었다. 그들이 나에게 일이 있다는 명목으로 진상을 중지하고 싶어해도, 나는 진상을 정확히 말할 때까지 가만히 있지 않았다. 동창은 삼퇴를 했고 진상 USB를 받았다. 나는 그에게 가족들에게 진상을 알려 평안을 보위하라고 말했다. 그는 일일이 다 응낙했다. 사부님의 가지에 감사드립니다! 나도 가족이 반대보다 걱정을 더 많이 한다는 것을 깨달았고, 가족에게 감사했다.

2) 동료와 그 남편이 진상을 깨닫고 삼퇴하여 복을 받다

어느 날, 자가용을 타고 허난에서 산시 고향으로 돌아가던 중, 앞차가 갑자기 고장 나서 타이어가 떨어져 자신의 차가 앞차를 들이받았다. 이상하게도 부부 두 사람 모두 큰 문제가 없었지만, 자신의 차는 심각하게 손상되었다. 어쩔 수 없이 트레일러를 불러 자신의 차를 싣고 계속 길을 떠났고, 두 사람은 트레일러에 있던 사고차의 운전석에 다시 앉았다.

그러나 전진하는 도중에 또 한 대의 뒤따라오던 차량이 트레일러에 부딪혔고, 강한 충격력으로 인해 자신의 차가 트레일러에서 떨어져 바닥에 곤두박질쳤지만, 부부는 모두 무사해서 매우 신기했다!

농담을 한다면, 이 길은 마치 빚을 독촉하는 사람이 두 번이나 찾아왔지만 성공하지 못한 것 같다! 나는 이것이 그가 진상을 이해한 후의 복이라는 것을 안다.

3) 나는 몇십 년 동안 나의 양어머니를 만나지 못했는데, 특별히 그녀의 주소를 여기저기 알아보고 선물을 사서 그녀를 보러 갔다. 그녀에게 진상을 이야기해주었고, 이웃들은 나를 칭찬하며 이 양아들이 정말 양심적이라고 말했다! 몇 년 후 양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장례식장에서 양어머니 집안의 후배들과 함께 앉았다. 한 지인이 제내 어린 시절부터 양어머니로부터 6살까지 데리고 있던 양아들이라고 소개했을 때, 그들은 매우 충격적이고 놀라워했다. 나는 그들에게 진상을 말했다. 나는 그녀들이 연공인은 TV에서 악당이 선전하는 것처럼 연공인은 무정하고 냉정하다는 거짓말처럼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5. 사당의 세뇌 통제가 아무리 엄격해도, 민간에는 명백히 아는 사람이 있다

나는 어떻게 공산당의 본질을 인식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고등학교 국어 선생님은 이 마르크스가 신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심지어 신을 능가하며, 세상을 훼멸해야 한다고 했고, 마음속에는 증오로 가득 차 있다고 말씀하셨다. 이 말은 다른 사람들이 기억하지 못했지만, 나는 기억했다.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응응, 정말 신이 있는거구나. 이 공산당이 반드시 선전하는 것 같지는 않아.”

또한, 젊었을 때 공산당은 공자를 타도하는 것을 중시했지만, 내 주변에서는 공자가 평생 학문을 가르치면서 얼마나 많은 제자를 받았는지, 유명한 사람이 73명이며 공자를 찬양했다고 말했다. 나는 속으로 공산당의 말이 모두 맞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당은 대법을 억압하고, 유언비어를 퍼뜨리며 중상모략한다. 나는 한눈에 공산당이 또 거짓을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대법을 고수하면서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

6. 최근 수련 후 심성을 제고시킨 예들

최근 한동안 비교적 정진했으며, 특히 사부님의 경전 《법난》이 발표된 후 발정념도 많아졌다. 내 사상중에 좋지 않은 것이 많이 없어지는 느낌이었다. 어느 날 직장에서, 아주 정상적인 협력 중에 나의 아이보다 어린 나이의 한 동료가 새로 채용된 젊은이들 앞에서 나에게 매우 무례하게 불만을 품은 욕설을 했다. 이때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 쏠렸고, 나는 전혀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 돌이켜보니 마음이 매우 뿌듯했다. 말하기는 쉽지만, 평소 자신이 수련자라는 점을 고려하면, 맞받아치지는 않겠지만 마음속으로는 불쾌할 수도 있는데, 이번에는 이렇게 쉽게 닫을 수 있었다.

​한번은 비몽사몽한 상태에서 악마 한 마리가 내 몸을 짓누르는 것을 보았는데 온몸을 움직이지 못하고 숨도 쉬지 못할 지경이었다.

이때 나는 마음속으로 긴장하지 않고 큰 소리로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라는 9자진언을 읽기 시작했고, 그리고 발정념 구결로 “법정건곤 사악전멸”을 외쳤다. 그리고 후에 다시 생각났다. “안 돼, 나는 사부님의 이름도 외워야 해.” 이렇게 해서 그 상태는 서서히 지나갔고, 회복되었다.

​예전에는 내가 수련에 충분히 착실하지 못해서 꿈속 같은 상황에서는 사부님과 대법을 거의 떠올리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쉽게 정념이 일어나니 정말 기쁘고 위안이 되었으며 난관이 지나갔다. 앞으로 나는 법을 열심히 배우고, 발정념을 잘 하고, 사람을 많이 구하여, 사부님께서 더 많은 위안을 하시게 할 것이다!

이상은 나의 수련 과정 중 몇 가지 경험인데 써내어 사부님께 보고드린다. 부당한 점은 동수들이 바로잡아 주기 바란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사존께 절을 올립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7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