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과 관계에서 구하고자 하는 마음을 찾다
중국 대법제자
【정견망】
부모님은 줄곧 내가 심성관(心性關)을 넘는 하나의 거울과 같았다. 수련중에 부모님이 내게 준 고통은 정말 뼈를 깎는 것처럼 가슴이 아팠다. 그들은 아주 이기적이고, 거짓되고, 위선적이고, 거짓말을 하며, 다른 사람을 무시했는데, 특히 나를 무시했다. 어느 정도인가? 심지어 내가 직장 생활을 시작한 후에도 아버지는 화가 나면 나를 짐승이라고 욕했다. 세상에 어떤 아버지가 자기 딸을 이렇게 욕하는가? 게다가 부모님은 나에게만 계산적이었고, 돈만 보고 사람은 보지 않았다.(그들이 사회적인 지위와 인맥이 없으니 오직 나만 못살게 굴었다). 이런 것들이 내 눈앞에 생생하게 드러났다.
게다가 나는 줄곧 부모님을 돕기 위해 많은 일을 했다. 부모님이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내가 처리했다. 가령 임플란트 비용, 병원비, 집 수리비, 심지어 은퇴 수속까지, 내가 직접 처리하고 뛰어다녔지만, 나에 대한 여전히 계산적인 태도와 무례는 바뀌지 않았다. 왜 내게 이런 짓을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부모님은 딸이 셋이다. 세 자매 중 나만 1980년대에 전문대학에 입학했고 나중에 정식 직장을 얻었지만, 부모님은 나를 소중히 여기거나 존중하지 않았다. 친정에 갈 때마다 기분 좋게 갔다가 실망한 채 돌아왔다. 부모님과 내가 어떤 연원인지 몰랐지만, 금생에 나를 이렇게 불행하게 했다.
부모님은 농부다. 중국 농부는 가장 고생스러운데, 황토를 향해 뜨거운 태양을 등에 지고 일한다. 사회적 지위도 없고 밭일은 거의 손으로 하는 일이라 매우 힘들다. 아버지는 게으르고 고생을 참지 못해, 조금이라도 일이 있으면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른다. 매년 다른 집만큼 수확이 좋지 않아 일 년 내내 돈을 벌지 못했다. 생활이 매우 빠듯해서 부모님은 돈을 너무 귀하게 여기고, 내게 계산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30년 전, 내가 법을 얻었을 때 나는 부모님께도 대법을 소개했다. 나는 대법이 사람을 변화시키고, 본질에서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 구원에 이르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부모님이 대법을 배우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다행히 부모님은 모두 사부님의 설법을 듣고 비디오도 시청했다. 나는 사부님의 설법을 들었으니 사람으로서의 기본 규범을 알고, 적어도 좋은 사람이 되리라 생각했다. 그렇게 하면 그들이 가난한 운명을 바꿔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내 생각과는 달랐다.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부모님의 행동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부님의 설법을 듣고 보호를 받아 지금은 나이가 들어 연금도 받는다. (우리 지역에서는 농부들이 60세가 되면 돈을 내고 은퇴하면 퇴직한 노동자들과 같은 혜택을 누린다.)
그들은 매달 6,000위안 이상 연금을 받는데, 이는 은퇴 생활에 충분한 금액이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만족하지 못한다. 돈에 대한 욕망이 너무 커서 생활비조차 감당하지 못한다. 그들은 연금은 한 푼도 쓰지 않고 오직 나더러 돈을 달라고만 한다. 지금은 남편과 나도 은퇴해서 연금으로 살아간다. 나는 늘 그들에 대한 불만과 증오에 갇혀 있었다.
나는 자신을 돌아보았다. 나의 이런 심태(心態)는 무엇 때문에 생겼을까? 대체 내가 무엇을 잘못했을까? 어떤 집착이 있었을까? 문득 그들에게 사부님의 설법을 들으라고 했을 때 내 마음이 불순했음을 깨달았다. 나는 그들이 대법의 요구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어 사부님의 가르침을 듣고 이기적이고 변태적인 습관을 바꾸기를 바랐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내 사심(私心)이었다. 마음속으로 내가 생각한 것은, 만약 그들이 정말 착해진다면, 그들의 이기적이고 변태적인 행동 때문에 더 이상 내가 불행하지 않을 것이고, 내 돈을 달라고 할까 걱정할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더 깊이 파고들면, 또한 육친정에 대한 집착도 있었다. 그들이 좋아지면, 지옥에 가지 않을 것이고, 좋은 미래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지금에 와서 보니, 이 얼마나 큰 집착심인가!
사부님께서 법을 전하신 것은 중생을 구도하고 근본적으로 사람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다. 그런데 나는 어떻게 그렇게 더럽고 구하려는 마음으로 대할 수 있는가? 망령되이 사부님의 법을 이용해 부모님의 불행한 운명을 바꾸고 싶어 했으니 이는 법을 훔치는 행위가 아닌가? 나는 이것을 깨닫고 즉시 자신을 바로잡아 근본에서부터 무언가를 얻으려는 마음을 제거했다. 또한 왜 내가 부모님이 가져다준 고통 속에 있었는지 똑똑히 이해했다. 나의 바르지 못한 사람 마음이 구세력이 틈을 탔고, 이 모든 마난은 구세력이 배치한 것이다.
게다가 부모님의 그런 사람 마음은 내 몸에도 다 나타났다. 부모님은 돈을 중시하는데, 그건 돈에 대한 나의 집착을 반영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줄곧 돈만 따지는 부모님의 행동에 불만이 있었고, 부모님이 내 돈을 달라고 할까 두려웠다. 부모님의 이기심 역시 내게 사심(私心)이 있기 때문에 비로소 나타난 것이다. 나는 또 체면심, 허영심, 쟁투심, 질투심, 고생을 두려워 하는 마음, 남이 나를 말하지 못하게 하는 마음, 안일심, 편안함, 원망심, 복수심 등등 수많은 사람 마음이 있었다. 이렇게 오래 수련했음에도 아직도 이렇게 많은 집착심이 있다. 이렇게 여러 해가 지났음에도 나는 마치 수련하지 않은 것 같다.
이때 사부님께서 《2015년 미국 서부 법회 설법》에서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물론 우리 일부 수련생은 아주 잘했지만, 잘한 수련생을 포함하더라도 원만의 정도에는 이르지 못했다. 과거의 수련인은 집착을 하나씩 하나씩 제거했다. 당신들은, 거의 모든 집착을 다 가지고 있는데, 그것들을 한층 한층 약화시키고, 약화시키고, 약화시키고, 약화시켜, 갈수록 더 약해지게 하고 갈수록 더 적어지게 하는 것이다. 나는 당신들에게 이렇게 해주는데, 대법제자가 원만에 이르기 전에 속인 중에서 정상적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정상적으로 사람 무리 속에서 사람을 구할 수 있도록 했다. 동시에 바로 이런 다 제거하지 못한 사람마음이 있기에 또한 당신으로 하여금 사람마음의 교란 중에서 수련할 수 있게 하고, 시시각각 자신을 각성하고, 자신을 수련하며, 대법제자의 책임을 완성하도록 하는데, 이것이 바로 위덕이고, 이것이 곧 대단한 것이며, 이것이 바로 당신들이 걷는 길이다.”
기왕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수련의 길을 배치해 주셨다면, 나는 사부님의 요구에 따라 잘 해야 한다.
그러므로 수련 중에는 그 어떤 사람 마음의 집착이든 다 제거해야 하며, 그 어떤 구하는 마음을 품고 수련해서는 안 된다. 명리정(名利情)에 대한 집착은 수련 중에서 지나칠 수 없는 간극이니 반드시 명리정에 대한 집착을 끊어버리고, 모든 불순하고 변이된 사상을 제거해야만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정법 수련의 길을 가뿐하게 걸을 수 있다.
사부님의 자비하신 보호와 구도에 감사드리고, 제자가 각종 관난을 지나갈 수 있게 하신 사부님의 거대한 감당에 감사드립니다. 제자는 반드시 더 정진하고, 법 공부를 많이 하며, 세 가지 일을 잘하고, 자신의 서약을 실천해, 사부님을 따라 법을 바로잡고 중생을 구도하는 사전의 홍대한 서원(誓願)을 완수하겠습니다.
현 단계 수련 깨달음이니 시정을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777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