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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전법륜》의 연분

——《전법륜》 30주년을 기념하며

중국 대법제자 혜소(慧笑)

【정견망】

나는 젊은 대법제자다. 나는 내가 험악한 홍진(紅塵)에서 반본귀진(反本歸真)하는 대법을 찾을 수 있고, 보서(寶書) 《전법륜》을 발견하게 된 것을 큰 행운이라 여긴다. 올해는 파룬따파(法輪大法)가 전해진 지 33주년이 되는 해이자, 《전법륜》 출간 30주년이 되는 해다. 온 우주가 경축하는 이 위대한 순간에, 나는 자신의 성장 과정 및 《전법륜》의 인연을 기록해 여러분과 공유하고 이를 통해 파룬따파의 아름다움을 실증하고자 한다. 문장에 타당하지 않은 곳이 있다면 시정을 바란다.

1부: 시련을 뚫고 보서(寶書) 《전법륜》을 기쁘게 얻다

흐릿한 기억 속에서 “충꽌(冲贯)”과 “쑤이지샤저우(隨機下走)”라는 단어가 어렴풋이 떠오른다. 이는 2005년 기쁘게 법을 얻고 5장 공법을 배우고 난 후 기억한 어린 시절의 일이다. 당시 나는 네 살이었다. 내 기억에 내가 유치원에 다닐 때 나는 조부모님과 함께 살았다. 할머니는 녹음기를 가지고 계셨고, 늘 연공 음악을 틀곤 하셨다. 나는 또 할머니가 “쑤이지샤저우(隨機下走)”하면서 제4장 공법을 연마하시던 모습도 어렴풋이 기억난다. 내가 법을 얻은 후에야, 할머니도 그때 파룬궁을 배우신다는 것을 알았다. 이것이 내가 파룬궁에 대해 처음 갖게 된 생각이다.

중공의 파룬궁에 대한 사악한 박해는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간 후 시작되었다. 당시 나는 파룬궁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할머니는 연공을 중단하셨지만 (나중에 다시 수련하셨는데, 이는 후일담이다), 내게 파룬궁이라는 명사조차 알려주지 않으셨다. 나는 학교의 “도덕” 교재를 통해 파룬궁에 대한 중공의 날조된 선전만 알게 되었다. 하지만 집안에서 큰어머니가 파룬궁 수련생으로 줄곧 수련을 견지했고, 확고한 신념 때문에 여러 차례 사악의 괴롭힘과 박해를 받은 것을 알고 있었다. 당시 우리 지역은 파룬궁 박해가 매우 심각했기 때문에 큰어머머니는 대법 서적과 자료가 담긴 큰 자루를 우리 집에 보관해 두셨다.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그 책들을 넘겨보곤 했다.

우리 집 근처에 명대(明代)에 지어진 사찰이 있었다. 나는 종종 그 사찰에 가서 불상에 향을 올렸다. 어렸을 때부터 별이 빛나는 밤하늘을 바라보며 사람이 성불(成佛)하거나 천상의 고급 생명이 되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궁금해했다. 나는 사람이 원숭이가 아니라는 것을 깊이 알고 있었다. 사람은 신(神)이 만든 것으로 천상에는 반드시 신, 부처가 계시고 더 고급 생명이 존재한다.

2005년 5월, 나는 친척 동수 집에 놀러 갔다. 그녀는 내게 삼퇴(三退)와 파룬궁 박해 진상을 엄숙하게 말씀해 주셨다. 그 말씀을 듣고 나는 가입했던 소선대에서 탈퇴했다.

나는 계속해서 큰어머님께 물었다.

“파룬궁이 사람을 불사(不死)하게 할 수 있나요?”

큰어머니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파룬궁은 사람을 생사윤회에서 벗어나도록 도울 뿐만 아니라, 반본귀진(反本歸真)해서 부처의 층차로 수련하도록 도울 수 있단다.”

나는 부처 수련을 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이렇게 말했다.

“저도 배우고 싶어요. 이것이 바로 제가 찾던 겁니다.”

이렇게 나는 친척 동수의 도움으로 법을 얻었다. 그해 나는 열한 살이었다.

내가 처음 법을 얻었을 때만 해도, 《전법륜》이 아주 부족했다. 나는 늘 친척 동수 집에 가서 그녀가 읽는 것을 아주 진지하게 들었다. 사부님께서 《전법륜》에서 말씀하신 ‘진선인(真善忍)’, 마음을 닦고, 선(善)을 향하며, 좋은 사람이 되라는 법리는 나를 매료시켰고 책에서 언급하신 “수련”, “반본귀진(反本歸真)”의 내용은 더욱이 나의 내심 깊은 곳을 건드렸다. 《전법륜》에서 나는 내가 찾던 답안을 찾았다. 나는 이것이 바로 내가 찾던 것임을 굳게 믿었고 나도 사부님 대법의 요구에 따라 반본귀진(反本歸真)해서 고급 생명으로 수련 성취하고 싶었다.

큰어머니는 《전법륜》이 한 권뿐이라, 내가 법을 공부하기가 아주 불편했다. 나중에 그녀는 사부님의 “제남(濟南) 설법” 테이프를 주시면서 설법을 들어도 같은 효과가 있다고 하셨다. 나는 매일 학교가 끝나 숙제를 마치면 녹음기를 틀고 사부님의 설법을 열심히 들었다. 나는 사부님 말씀을 매우 소중히 여겨 단 한 글자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나중에 마을의 한 노년 동수가 내가 진심으로 수련하려는 소원을 보고 자신이 오랫동안 소중히 간직해 왔던 《전법륜》 책 한 권을 내게 주셨다. 나는 매우 기뻐하며 날마다 아주 진지하게 읽었다. 책을 읽기 전에는 항상 손을 씻었고, 책에 적힌 글자는 절대 만지지 않았다. 책장도 조심스럽게 넘겨 종이가 구겨지지 않게 했고 공부를 끝내면 천으로 싸서 보물처럼 간직했다.

아버지는 내가 진심으로 파룬궁을 배우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아시고 나를 가로막기 시작했다. 부모님도 파룬궁이 사람더러 좋은 사람이 되게 한다는 기본적인 진상은 아셨지만, 수련의 내함(內涵)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셨다. 당시 중국 공산당의 파룬궁 박해가 매우 사악했고, 친척 동수가 여러 차례 괴롭힘을 당하고 감금되었기 때문에 아버지를 두렵게 했다.

어느 날 저녁, 내가 방에서 《전법륜》을 읽고 있었다. 아버지가 책을 달라고 했지만 나는 단호하게 거부했다. 아버지는 화가 치솟아 나를 바닥에 눌러놓고 주먹으로 때리며 《전법륜》을 빼앗으려 하셨다. 나는 죽어라 책을 꽉 품에 안고 놓지 않았다. 아버지가 내 목을 세게 눌렀다. 그 순간 나는 기절했고, 아버지가 책을 빼앗아 갔다. 《전법륜》이 내 손에서 떠나는 순간, 나는 깨어나 아버지와 함께 책을 되찾기 위해 싸웠다. 당시 나는 어렸기에 빼앗을 수 없었다. 마침내 아버지는 《전법륜》을 두 동강 내어 아궁이 속에 던져 넣었다.

나는 재빨리 아궁이로 기어가 뜨거운 불은 아랑곳하지 않고 아직 타지 않은 《전법륜》의 앞부분을 꺼냈다. 154페이지 이전까지만 남아 있었고 나머지는 모두 타버렸다. 나는 울면서 《전법륜》의 앞부분을 안고 친척 동수 집으로 달려갔다. 다음 날, 나는 눈을 뜰 수 없었고 목이 빨갛게 부어 있었으며 음식을 삼키기도 힘들었다. 하지만 아무런 통증도 느끼지 않았다. 당시 나는 이 모든 것은 사부님께서 제자를 위해 감당하셨음을 알았다.

나중에 또 다른 동수가 자신이 박해 중에 보호했던 《전법륜》의 뒷부분을 내게 주었다. 나는 바늘과 실로 두 《전법륜》을 꿰맸다. 그녀가 준 후반부 첫 편은 제6강 “무술기공” 페이지였다. 비록 《전법륜》의 내용이 불완전하긴 했지만, 나는 이 책을 아주 소중히 여겼다. 책에서 빠진 1강이 넘는 내용은 손으로 베껴 정리해서 함께 두었다. 나는 매일 방과 후 책을 들고 뒷산에 가서 법을 공부했다. 해가 지고 글자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책을 보다 저녁을 먹으러 집에 갔다. 나는 늘 부모님이 잠드실 때까지 기다렸다가 마당에서 몰래 연공하곤 했다. 당시에는 연공 음악을 틀 환경이 아니었기에, 그저 음악 없이 동작만 할 수밖에 없었다. 포륜(抱輪)할 때는 마음속으로 시간을 헤아렸다. 눈이 오는 날에도 밤늦게 마당에서 연공했다. 얇은 옷을 입었지만, 몸은 항상 따뜻했고 에너지장에 둘러싸여 있었다.

나는 이렇게 반년 넘게 몰래 수련했다. 법 공부가 깊어질수록, 나에 대한 아버지의 마난(魔難)을 법리적으로 똑똑히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구세력과 일체 바르지 못한 사악한 요소들이 가족을 이용해 대법에 죄를 짓게 했음을 알았다. 나는 부모님에 대한 정(情)을 완전히 내려놓고, 진심으로 그들을 대법의 중생으로 간주했다. 내가 내려놓는 그 순간, 나는 다시금 수련의 깊은 함의를 느낄 수 있었다. 사부님께서 내 곁에 계시며 나를 점오(點悟)해 주시면서 내가 법에서 제고하도록 도와주심을 알았다. 인식을 제고한 후, 아버지가 물건을 찾는다는 구실로 내가 숨겨둔 《전법륜》을 찾아냈다.

아버지가 물으셨다.

“이게 뭐냐?”

“《전법륜》입니다. 읽고 싶으면 읽어 보시고 읽지 않으실 거면 제게 주세요. 이 책을 용납하실 수 없다면 저도 용납하지 못하실 테니까.”

당시 나는 정말로 (아버지가 수련을 허락하지 않으시면) 《전법륜》을 들고 나가 행각하려고 결심했다. 설사 음식을 구걸할지라도 나는 이 대법을 배우고자 했다.

아버지는 “나는 읽지 않겠다.”라고 하시더니 그냥 탁자 위에 올려놓으셨다. 나는 마음속으로 내가 이 관(關)을 통과했고, 이제 정정당당하게 수련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집에서도 마땅히 대법을 정확한 위치에 놓아야 한다.

그때부터 나는 매일 아버지가 보는 앞에서 법 공부와 연공을 했다. 나중에 또 동수들의 도움으로 《전법륜》을 청해왔다. 당시 《전법륜》에는 사부님의 소전(小傳 짧은 전기)이 부록으로 실려 있었기에, 나는 법 공부와 수련을 더욱 소중히 여겼다. 아버지가 대법을 더 잘 이해하실 수 있도록, 법 공부를 마친 후 아버지 옆에 《전법륜》을 놓아두어 아버지도 함께 읽도록 했다. 나중에 어머니가 “아버지가 가끔 네 책을 넘겨보신다.”고 말씀하셨는데, 나는 매우 기뻤다. 나중에 아버지는 《9평(九平)》, 《명혜주간》, 《풍우천지행》 등 진상 자료를 보셨다. 또한 천안문 광장 분신 사건의 진상을 친척과 친구들에게 알려주셨다.

(나중에 내가 진상을 말했다는 이유로 사악의 박해를 받아 2년간 불법 구금되었다. 사악한 검은 굴에서 풀려난 후, 부모님과 가족들은 더 이상 내 수련을 반대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감옥에서 나를 데려오시던 날, “앞으로 더 조심하거라.”라고 말씀하셨다. 그들도 마음 속으로 파룬궁이 좋고 대법이 바르다는 것을 진심으로 알고 있었다.)

2007년 초 어느 날, 나는 이웃 마을에 있는 한 동수 집에 가서 중공에서 탈퇴한 사람들의 삼퇴 명단을 전달했다. 노동수가 내게 물었다.

“여기 누군가 법을 새로 얻어서 《전법륜》이 필요한데 혹시 가지고 있니?”

이 말을 듣고 나는 매우 기뻐하며 “제게 한 권 있어요.”라고 말했다. 사실 당시에는 내려놓기가 매우 망설여졌다. 왜냐하면 내게는 사부님의 전기가 실린 《전법륜》 한 권과, 2년 전 하나로 엮어서 보충한 《전법륜》 한 권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법을 얻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리고 새로 법을 얻은 동수가 공부할 대법(大法)이 없는 것을 원치 않았다. 나는 새로 법을 얻은 동수에게 완전한 《전법륜》을 주고 나는 페이지를 보충한 책으로 공부했다. 나는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사부님께서는 반드시 제게 《전법륜》을 다시 주실 겁니다.”라고 말씀드렸다.

한 달 후, 내가 또 삼퇴 명단을 전달하기 위해 동수 집에 갔다. 동수 할머니가 물었다.

“너 《전법륜》 필요하니? 나한테 글자를 고칠 필요가 없는 신판 《전법륜》 한 권이 있는데.”

그때 나는 너무 기뻐서 “필요해요.”라고 말했다. 금박 장식된 대법 책을 받아 든 나는 눈물을 글썽이며 마음속으로 계속 사부님께 감사드렸다. 사부님께서 늘 제자를 지켜보고 계시며, 제자가 법을 배울 수 있게 하신 것임을 알기에 너무나 기뻤다. 마치 보물을 다시 찾은 것 같았다. 나는 날마다 신판 《전법륜》을 두 손에 받쳐 들고 공부하는 것이 너무 행복했다. 그 당시에는 시간이 날 때마다 법을 공부했다.

아침 6시에 학교에 가기 전 발정념을 한 후, MP3로 설법을 들으며 세수했다. 심지어 세수할 때도 MP3를 내려놓고 싶지 않았다. 세수를 마치고 나면 재빨리 동공(動功)을 연마하고 학교에 갔다. 저녁에는 방과 후 숙제를 끝내고 법 공부를 시작했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정공(靜功)을 연마했다. 한 시간 동안 가부좌를 하고 앉아 있어도 다리가 전혀 아프지 않았고 정말 기분이 좋았다.

나는 또한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리기 위해 모든 기회를 놓치지 않았고, 동창들과 선생님들, 그리고 사람들을 설득해 삼퇴하게 했다. 그리고 매일 7~8명에게 진상을 알렸다. 자료만 있으면 즉시 중생들에게 배포했다. 그 당시 나는 법 공부를 많이 했고, 사부님께서 항상 곁에 계심을 느낄 수 있었다. 당시 나는 아직 십대였지만, 늘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나는 자신의 모든 것을 정법 수련에 쏟아부었고, 시간을 허비하지 않았다. 당시에는 밤에 잠자는 것조차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다.

2부: 《전법륜》을 제작해 전달

내가 시내 동수들을 처음 만난 것은 제6회 명혜망 대륙법회에서 원고를 모집하던 때였다. 동수들은 우리 농촌 동수들의 심득 체험 원고 작성을 돕기 위해 《전법륜》 소책자를 가져왔다. 그때 나도 아주 운 좋게 한 권을 청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시내 동수들이 찾아와 내 원고가 발표되었고 “노인과 소년조”에 게재되었다고 알려주었다. 나는 당시 원고를 발표한다는 개념조차 없었다. 당시 나는 명혜망을 접촉하지 못했고, 동수들이 보내준 《명혜주간》만 읽었을 뿐인데, 날짜는 모두 두 달 전쯤 되었다. 시내 동수들의 도움으로 우리 집에 가정 자료점을 만들었다. 나는 명혜망에 접속해 다양한 진상 자료를 제작할 수 있었고 CD 굽는 법도 배웠다. 나중에 나는 또 현성(縣城 현 정부 소재지)에 가서 《전법륜》 등 대법 서적과 진상 서적을 만드는 방법을 배웠다. 나는 배우는 동시에 제작했고, 《전법륜》을 여러 부 청해서 지역 동수들에게 나눠주었다. 매 한 권마다 책 표지를 정성껏 포장한 후 동수들에게 전달했다.

나중에 또 우리 지역에서 비교적 많은 양의 《전법륜》이 필요하게 되자, 시내 동수들의 도움을 받아 이웃 마을의 한 동수 집에도 책을 만들 수 있는 자료점을 만들었다. 우리 집은 그의 집에서 10km도 넘게 떨어져 있었기에, 나는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동수를 도왔다. 당시 동수는 아직 인터넷에 접속할 수 없었기 때문에 《전법륜》 원본만 인쇄했다. 《전법륜》 외에도 사부님의 《각지 설법》 1권부터 7권까지 및 《9평 공산당》을 인쇄했는데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어느 날 밤, 내가 동수 집에서 책을 만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전법륜》과 《9평(九平)》 한 상자를 자전거에 싣고 있었다. 그 상자는 라면을 두 줄로 담을 수 있는 종이 상자였다. 나는 얇은 천으로 그 상자를 자전거 뒷좌석에 묶었다. 어느 마을의 교차로를 지날 때 오른쪽에서 오던 오토바이에 치였다. 핸들이 삐뚤어지면서 몇 미터 떨어진 곳에서 떨어졌던 기억이 난다. 오른손 새끼손가락의 살점이 잘려 나갔지만, 피를 닦을 생각도 하지 못했다. 자전거를 들어 올리자 자전거 뒤에 묶여 있던 상자도 동시에 일어났다. 상자는 떨어지지 않았다. 얇은 천 조각으로 묶여 있었음에도 천이 끊어지지 않았고 상자 안의 책이 하나도 떨어지지 않았다. 사부님께서 도와주신 것이 분명했다. 나는 핸들을 바로잡고 집으로 가려 했지만, 오토바이 운전자는 겁에 질려 가족에게 연락해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으라고 고집했다.

나는 그에게 “괜찮으니 걱정하지 말고 가세요.”라고 말했다. 사부님의 법리를 생각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게다가 소조의 노년동수들이 내가 책을 전달해 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또 동수와 약속을 잡고 밤에 9평(九平)을 나눠주었다. 오토바이 운전자에게 작별 인사를 한 후 자전거를 타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도착해서 천을 찾아서 다친 손가락을 감쌌다. 별로 신경 쓰지 않았는데 며칠 만에 나았다.

중학교를 졸업한 후 나는 시내에 있는 학교에 진학했다. 우리 반에는 40명이 넘는 학생들이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하나하나 진상을 말해 주었고 그들은 모두 삼퇴했다. 다른 반의 몇몇 학생들도 진상을 알고 대법을 배우고 싶어 했기에 나는 그들에게 《전법륜》을 가져다주었다. 학교에서 신입생 군사 훈련을 받을 때 교외의 군부대로 갔다. 나는 법 공부 시간을 빼앗길까 우려해 《전법륜》을 가져갔다. 선생님들과 친구들이 잠든 후 법 공부를 시작했다.

어느 날 수업 시간에 숙제를 다 끝내고 나니 선생님이 자유 활동을 하라고 해서 《전법륜》을 꺼내 조용히 읽었다. 수업이 끝나갈 무렵, 선생님이 물어보셨다.

“아무개야, 네가 보는 것이 파룬궁이니?“

“《전법륜》이라고 이 책이 파룬궁의 주요 저작입니다. 사람더러 ‘진선인(真善忍)’에 대조해 마음을 닦고 좋은 사람이 되도록 가르치는 책입니다.”

선생님 “내가 한번 보게 빌려줄 수 있니?”라고 물으셨다.

나는 “됩니다.”라고 대답했다.

선생님은 “3일 동안 읽고 돌려주마.”라고 했다.

나는 “알겠습니다.”라고 답했다.

며칠 후, 선생님이 《전법륜》을 돌려주셨다. 나는 이렇게 시간만 나면, 교실에서 당당하게 법 공부를 계속했고 여러 친구들에게도 보여주었다.

얼마 후 수업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교무처 선생님이 나를 불렀다. 내가 수업 시간에 “파룬궁”을 선전했다면서 보안처에서 내 기숙사에 소지품을 검사한다는 명목으로 파룬궁 자료를 수색했다. 기숙사에서 진상을 알고 있던 동창들이 이 소식을 듣고, 내가 매일 법 공부 사용하던 《전법륜》을 재빨리 베개 옆에 숨겼다. 하지만 그녀들은 내 캐비닛 안 책가방에 《전법륜》과 《9평》 등 배포하지 않은 자료들이 있다는 사실은 몰랐다. 책가방 속 《전법륜》은 원래 진상을 알고 파룬궁에 대해 배우고 싶어 하던 선배를 위해 준비한 것이었지만, 전달할 시간이 없었다. 나는 또 등하교 길에 《9평》을 사람들에게 나눠주곤 했는데, 아직 몇 권 남아 있었던 것이다.

보안처에서 책을 발견해 압수당한 후 학교에서 내 수업을 중단시키겠다고 위협했다. 나는 그들과 이치를 따지면서 진상을 알렸다. 이후 학교 측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와 상의해 모든 자료와 책을 돌려주었지만, 대법자료는 학교에 반입할 수 없고, 학교에서는 파룬궁을 선전할 수 없다는 조건을 붙였다. 또한, 나더러 보증서를 작성하라고 요구했다. 나는 학교 측의 부당한 요구에 동의하지 않았다. 나는 신앙의 자유가 있으며, 파룬궁이 사람에게 ‘진선인’을 가르치는 것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나는 계속해서 학교에서 진상을 알리고 교장, 부교장, 당 서기에게 내가 《전법륜》을 배운 후 얻은 이익과 장점들을 담은 진상 편지를 보냈다. 그 후 학교 측은 지역 “610 사무실”과 국가안전부 경찰을 찾아가 나를 감금하고 박해하게 했다. 한 달 후, 나는 수련을 고집했다는 이유로 불법적으로 2년 노동교화형을 받았다.

3부: 환경을 만들어 대법 경서 제작

나는 사악의 검은 소굴에서 나온 후, 수련에 확고부동했다. 내가 박해받을 당시 내 휴대폰에 저장된 번호 때문에 많은 지역 동수들이 사악의 괴롭힘을 당했고, 어떤 수련생들은 강제로 집을 떠나거나 심지어 불법적으로 노동수용소에 수감되었다. 이는 우리 지역에 큰 손실을 초래했다. 그래서 내가 막 검은 소굴에서 나왔을 때, 지역 동수들은 나를 매우 못마땅하게 여기며 특무(特務)라 여기며 멀리했다. 오직 가족 동수와 이웃의 한 노동수만이 나를 믿어주었고 지난 2년간 사부님 설법과 신경문을 전해 주었다. 박해 때문에 나는 학교에 다닐 기회를 잃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지역 전자 공장에 취직했다.

당시 자료점이 파괴되어 동수들이 《명혜주간》을 읽을 기회를 잃었고, 진상 자료는 아예 없거나 극소수에 불과했고 대법 경서는 더욱 부족했다. 현지 동수들이 힘을 합쳤음에도 사부님의 설법을 온전히 한 세트로 만들 수 없었다. 그때 나는 사부님께 모든 동수들이 대법 경서를 배우고, 《명혜주간》을 읽어, 사부님의 정법 노정을 따라갈 수 있도록 가지(加持)해 달라는 소원을 냈다. 나는 동수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에 대해 마음에 두지 않았다. 나는 그 모든 것이 다 가상이며, 모두 구세력이 만들어낸 간격임을 알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은 내가 걸어가고 제고해야 할 난관이다. 나는 반드시 박해를 제거하고 동수들과 나의 간격을 없애는데 가장 큰 역할을 발휘해야 한다.

얼마 후, 나는 일 때문에 다른 성(省)으로 가게 되었다. 사부님의 자비하신 배치로 나는 그 지역 대법제자들과 접촉하게 되었다. 내가 협조인 동수에게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자, 동수가 가장 먼저 한 말은 “네 큰어머니 동수는 아직 잘 계시니? 나는 네 상황을 알고 있었고 우리는 줄곧 네가 박해받은 소식에 관심을 가져왔단다. 네가 불법 감금되었을 때도 우리는 릴레이로 발정념을 했어.”

이 말을 듣고 나는 눈물이 나왔다. 우리 대법제자들은 참으로 강력한 정체(整體)였다. 내가 모르는 천 리 밖의 동수들이 사심 없이 나를 도와주고 있었던 것이다. 동수들이 대법에서 닦아낸 무사한 경지에 나는 깊은 감동을 받았다. 나는 이 모든 것이 사부님의 가지임을 알며 사부님께서 내 마음의 소원을 이룰 수 있게 도와주고 계심을 알았다.

그 지역 동수들이 내게 완전한 대법 서적 세트를 구해 주기 위해 앞장서서 도와주었다. 나는 너무 기뻐서 다그쳐 공부했다. 법 공부를 많이 할수록 법리는 더욱 분명해졌다. 당시 내가 《정진요지 3》의 한편 경문을 배웠는데, 나는 매 동수마다 마땅히 한 세트 대법 경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직 진정으로 법을 투철히 배워야만 법에 입각해 법을 더 잘 인식할 수 있다. 나는 즉시 고향으로 돌아가 나를 믿어준 이웃의 노동수 집으로 갔다. 내가 대법 경서를 만들고 싶다는 내 생각을 말씀드렸고 노동수는 나를 아주 지지해 주셨다.

나는 사부님께 가지를 구하고, 외지 동수들이 준 돈과 직장에서 받은 월급을 합쳐 레이저 프린터, 제본기, 커터, 인쇄용지 및 각종 장비와 소모품을 구입했다. 노동수 집에서 며칠 동안 법 공부, 식사, 그리고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모든 기회를 놓치지 않고 열심히 책을 만들었다. 잉크 카트리지 토너가 떨어지자, 나는 급히 100km 떨어진 전자상가로 가서 토너를 보충한 후 다시 돌아와 작업을 이어갔다.

사부님의 가지와 노동수의 도움으로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20권 가량의 대법 경서 세트를 완성했다. 동수들이 각기 한 세트씩 가질 수 있었다. 모두 매우 기뻐하며 한 권 한 권씩 함께 공부했다. 이웃 마을과 진(鎭)에도 가정 자료점이 잇따라 설립되었고 나에 대한 동수들의 원망은 수련과 제고를 통해 완전히 사라졌다.

그중에서도 내게 가장 큰 감동을 준 것은 대법 경서 두 세트를 만들었을 때, 한 노년 동수가 사과를 하나 가져와서는 내게 말했다.

“아! 이 사과가 왜 아직도 남아 있나 몰라? 나도 언제 샀는지 기억나지 않는데 먹을래.”

내가 사과를 받아 그 색깔을 살펴보니 사과가 너무 신선하고 붉어 투명할 정도였다.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나는 이것은 사부님께서 내가 한 것이 옳다고 격려하시는 것임을 알았다. 한입 베어 물자 정말 달콤했다. 이렇게 달콤한 사과는 처음 먹어봤다. 나는 두 손을 허스하고 사부님의 가지에 감사드렸다. 나는 이 모든 것은 다 사부님께서 하신 일임을 알았다.

완전한 한 세트의 대법 서적이 완성된 것은 마지막 날 늦은 시간이었다. 버스는 이미 운행을 멈췄다. 생각해 보니 큰어머니 동수와 다른 마을의 한 노동수만 빠뜨렸다. 나는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고 최대한 빨리 그녀들에게 전달해야 했다. 나는 두 세트의 대법 서적을 들고 10여 리 떨어진 동수 집으로 걸어갔다. 내가 막 노동수의 마을에 도착했을 때, 오토바이 한 대가 갑자기 내 앞에 멈춰 서더니 “아무개야, 타!”고 말했다. 나는 이름이 불리자마자 오토바이에 올라탔다. 그 남자는 헬멧을 쓰고 있어서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고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었다. 다만 남자 목소리라는 것만 알았다.

내가 뭐라고 말을 꺼내기도 전에 그는 나를 마을 교차로까지 데려다 주었다. 바로 내가 가야 할 곳이었다. 오토바이를 세운 후, 그 남자는 “천천히 내려!”하고 말했다. 내가 고맙다고 말하자 그는 액셀러레이터를 밟고 떠났다. 결국 나는 그가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했다.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가 어떻게 알았을까? 나는 마음속으로 사부님께서 나를 돕기 위해 배치하신 것임을 알았고 진심으로 사부님께 감사드렸다.

그 후, 우리 지역과 인근 현 향진(鄕鎭) 동수들에게 대법 서적과 진상 서적이 필요하게 되었고, 나는 정식으로 대법 경서 제작 항목을 시작했다. 2년 넘게 이 일을 계속했고, 동수들의 대법 경서가 기본적으로 채워진 후에 조금씩 줄였다. 내 기억에 가장 많을 때는 한 번에 대법 서적 20세트와 《전법륜》 50권을 만들었다. 동수들에게 전달할 때, 차량으로 한 대가 꽉 찼다. 이 기간에 총 몇 권이나 만들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돌이켜보면, 이 기간에 나는 대법 경서를 4,000권 이상 제작했을 것이다. 또한 《9평》, 《공산주의의 최종 목적》 등 진상 서적도 천 권 이상 만들었다. 나중에 다른 지역 동수들이 독립적으로 운영하기 시작했고 나는 대량 제작을 중단했다. 지금 나는 우리 지역 동수들이 홍법하는데 필요한 《전법륜》 등 대법 서적과 진상 서적 제작을 책임지고 있다.

지난 몇 년 동안 동수들이 해외에 나가 다양한 판본의 《전법륜》을 가져다 주었다. 나는 동수들이 선물한 일반본, 수진본(포켓본), 그리고 수장본 등을 모두 아주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이것은 바로 사부님께서 다시 한번 나를 격려하시는 것임을 안다.

4부: 결론 《전법륜》은 세인들에게 무한한 아름다움을 가져다 주었다

《전법륜》은 출판된 지 이미 30년이 되었다. 지난 30년 동안 파룬따파의 주요 저작인 《전법륜》은 전 세계 150여 개국과 지역에 전파되었고, 40여 개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에 발행되었다. 이 책은 이미 오래전부터 세계에서 가장 많이 번역되고 인기 있는 중국어 책이 되었으며, 1억 명 이상이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아 왔다.

《전법륜》은 ‘진선인(真善忍)’ 우주 대법의 부동한 층차의 법리를 말해 부동한 경지의 수련자에 대해 승화하고 지도하며, 그리고 사회와 국가 및 부동한 지역과 부동한 민족에 이르기까지 거대한 공헌을 했다. 수련자들은 《전법륜》 학습을 통해 심신이 건강해지고, 도덕이 향상되었으며, 사람 마음이 선(善)을 향하게 했다. 단지 중국만 해도 공산당이 파룬궁을 박해하기 전에는 8천만 명에서 1억 명의 민중들이 수련했다. 26년간 사악의 광적인 박해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중국 대륙에서는 여전히 많은 파룬궁 수련자들이 있다. 중국은 여전히 파룬궁 수련자들의 주체다.

파룬따파가 널리 전해진 지 33년이 되었다. 무려 26년간 사악의 박해 기간에 파룬궁은 중국 공산당에 의해 무너지지 않았고 도리어 전 세계 100여 개 국가와 지역으로 퍼져 1억 명 이상의 사람들에게 심신에 혜택을 주었다. 지난 26년간의 반박해 기간에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진상을 깨달은 후 파룬궁의 ‘진선인’이란 보편적인 가치를 지지하기로 선택했다. 4억 4천만 명이 넘는 용감한 중국인들이 사악한 중국 공산당 관련 조직을 탈퇴해 스스로 밝은 미래를 선택했다.

중국 공산당의 사악한 거짓말이 하나둘씩 폭로되고 있다. 사악한 당의 악정(惡政)은 이미 ‘진선인’의 적이 되기로 선택한 순간부터 급속히 해체되고 있다. 인류의 정기(正氣)가 회복되고 있고 양지(良知)와 선념이 깨어나고 있다. 우리 창세주(創世主)께서 거대한 감당으로 연장해주신 제한된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사람들의 정념을 더욱 일깨워 정의와 광명을 선택하게 합시다. 세상 사람들이여, 우리 마음속 선(善)을 지키고 정법(正法)의 홍대한 은혜에 감사드리며 함께 아름다운 신기원을 맞이합시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77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