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대법제자 순량(純良)
【정견망】
먼저, 사존의 자비로운 구도에 감사드립니다!
27년 수련의 길에서 사존께서는 늘 가지(加持)하고 보호해 주셨다. 온몸에 업력이 가득했던 나를 지옥에서 건져내어 씻어주셨고, 넘어진 나를 부축해 일으켜 바로잡아 주셨으며 명확한 항로를 보여주셨다. 동시에 나는 또 내가 가난과 무기력에서 벗어나 정법 수련의 길을 굳건히 걸어갈 수 있도록 도와준 우리 지역 동수들의 사심 없는 도움과 감당에 감사드린다. 대법은 나를 개변(改變)시켰고 나는 이를 통해 베풀기 좋아하고 묵묵히 공헌하며, 보답을 바라지 않고 구함이 없고, 빈부나 귀천(貴賤)을 가리지 않고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대하며, 정(正)의 에너지를 전할 수 있게 되었다.
1. 가정의 변화
수련하기 전, 아내와 나는 둘 다 회사원이었고 아들이 하나 있었다. 방 두 개에 거실 하나짜리 아파트에 냉장고, 컬러 TV, 오토바이가 있었다. 1990년대, 우리는 작은 마을에서 상대적으로 가장 훌륭한 편이었다. 1997년 내가 대법을 배운 후 싸움, 도박, 흡연, 음주 등 나쁜 습관을 완전히 끊자 나의 극적인 변화를 본 아내도 내가 파룬궁을 수련하는 것에 찬성했다. 아들은 가끔 나와 함께 가부좌를 하는데 화기애애했다.
하지만 좋은 시절은 오래가지 못했다. 장쩌민 유맹(流氓) 집단이 파룬궁을 미친 듯이 탄압하며 시비를 뒤집어 전국민이 중공의 거짓말에 속아 독해(毒害)당했다. 파룬궁의 오명을 벗기 위해 나는 여러 차례 북경에 가서 법을 수호했고, 체포되어 벌금을 물고 세뇌 시설에 갇히고 강제 노동수용소에 보내졌다. 2000년, 나는 직장에서 해고당해 직장을 잃었다. 그로 인해 우리 가족은 큰 상처와 재정적 압박을 받았다. 아내는 이런 참담한 변화를 견딜 수 없었다. 그녀는 태도가 돌변해 내가 법 공부와 연공하는 것을 막으려 했다. 나를 때리고 꾸짖으며 자살하겠다고 협박하고 이혼하겠다고 위협했다.
아내가 무슨 짓을 하든 나는 굳건한 뿌리를 지닌 나무처럼 흔들리지 않았다. 아내도 비록 겉으로는 반대했지만, 마음속으로 파룬따파(法輪大法)가 좋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내가 체포되어 경찰이 집을 수색할 때마다 아내는 재빨리 사부님 법상(法像)과 대법 서적을 숨겨 온전하게 보관하곤 했다. 아내가 이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은 대법에 대한 깊은 존경심을 보여준다.
2. 심한 압력에도 굳건히 버티자 고생 끝에 낙이 오다
2004년, 아들이 우리 성(省)에서 가장 좋은 명문 대학에 합격해 축하연을 했는데 이틀 전, 내가 경찰에 체포되었다. 하지만 축하연 당일, 많은 동수들이 연루될 위험을 무릅쓰고 기꺼이 찾아와 돈을 보탰다. 가족들은 많은 연공인들이 참석한 것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다. 하지만 가족을 버텨주던 기둥이 사라지자 하늘이 무너진 것 같았다. 수입원이 사라진 아내는 아들의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집을 팔았다. 그 후 다른 성으로 직장을 옮겼는데, 아마도 나를 원망했거나 아들 학비를 감당하기 어려운 탓인지 노동수용소에 있는 동안 내게 돈을 보내지 않았다.
2007년, 강제 노동수용소에서 거의 3년간의 박해를 받은 후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내가 살던 집은 팔려 갈 곳이 없었다. 아내는 멀리 외지에서 일하며 돌아오길 거부했고, 아들도 학교에 다니느라 돌아오기를 거부했다. 나는 집도 땅도 없었고, 이외에 만 위안(한화 약 200만원)의 빚만 남았다. 정말 심경(心境)이 복잡했다. 어쩔 수 없이 연로하신 부모님과 함께 잠시 살아야 했다. 마침 설날이 다가오고 있었고, 다른 가족들이 행복하게 새해를 맞이하는 동안 나는 여전히 헌 옷을 입고 있었다. 부모님께 드릴 용돈도 없었고, 아내와 아들과 함께 지낼 수도 없었다. 무력감과 슬픔, 그리고 비통함이 밀려왔다.
나는 그저 더 열심히 일하고 말을 줄이는 수밖에 없었다. 요즘 세상에는 돈이 없으면 좋은 말을 해도 싫어하고 돈이 있으면 누구나 좋아하는 것 같다. 내가 이렇게 풀이 죽어 낙담한 모습을 보자 부모님도 화를 내셨다. 나는 수련인이니 가족에게 폐를 끼칠 수 없었다.
새해가 되자 나는 먼저 집을 빌렸고 돈을 벌러 나갔다. 나는 나를 해고한 직장 상사(610 사무실 주임)를 찾아가 나도 살아야 하니 복직을 시켜달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상사가 말했다.
“자네가 먼저 전향하고 반성문을 쓰면 고려해 보겠네.”
“전향이라면 어떻게 전향하란 말입니까? 좋은 사람이 되지 말고 나쁜 사람이 되라는 겁니까? 나는 법을 배우고 연공하기 전에 늘 사람을 때리고 욕했습니다. 수련한 후 더 좋은 사람이 되었는데 대체 어디로 전향하라는 겁니까?”
상사가 화를 내며 말했다.
“자네가 계속 이런 식이면 나도 상관하지 않겠네.”
부하 직원이 내게 말했다.
“일자리를 얻으려면 고개를 숙이고 잘못을 인정하고 수련을 그만둔다고 해요!”
나는 “경찰이 나를 기절할 때까지 때렸지만, 연공을 그만둔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면 더 윗선을 찾아가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들은 “지금은 복직이 불가능하고 단지 임시직만 가능합니다.”라고 했다.
시급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는 어쩔 수 없이 임시직을 하기로 동의했다. 하지만 인사처에 서류를 올리자 처장이 온갖 트집을 잡으면서 사실상 내게 돈을 요구했다. 나도 사람들이 그가 부패했다고 하는 말을 들었는데 취직을 원하는 사람에게 최소 500위안, 1,000위안 이상을 요구했고, 그렇지 않으면 출근하지 못하게 했다.
나는 그에게 뇌물을 줄 수 없었고, 그렇다고 비굴하게 굴 수도 없었다. 나는 처장에게 말했다.
“내가 파룬궁을 수련하면서 그 어떤 법도 어긴 적이 없는데, 왜 해고당하고 수년간의 강제 노역형을 받았습니까? 우리는 악(惡)으로 보복하지 않았고, 늘 선량을 유지했습니다. 당신이 부디 악인을 돕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도 뭔가 감동을 받았는지 마지못해 동의했다. 그는 한 푼도 받지 못했고, 대법의 위력 덕분에 수련자에게 더 이상 죄를 짓지 않을 수 있었다. 사존의 가지에 감사드린다.
나는 지하에서 일하며 한 달에 620위안을 벌었다. 500위안은 빚을 갚고, 20위안으로 집세를 내고, 100위안으로 생활해야 했다. 일 년에 한 번 피망과 두부 한 조각을 사 왔고, 동수들이 가끔 감자, 양배추, 계란 등을 보내주었다. 동수가 결혼식에 갔다가 남은 음식을 가져다줄 때면 마치 설날 같았다.
나는 산비탈에 10제곱미터도 안 되는 작은 집을 빌렸다. 겨울에는 춥고 여름에는 통풍이 되지 않았으며, 난로에서 나오는 연기 때문에 거의 죽을 뻔했다. 은사님께서 나를 위험에서 구해 주셨다. 나는 망연자실해서 하늘을 향해 묻고 땅을 향해 물어도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하늘은 여전히 푸르고 땅은 여전히 아득히 넓었으며 사람이 아무리 힘들어도 하소연할 곳조차 없었다. 친구와 친척들은 나를 피했고, 오직 동수들만 나를 도와주었다.
어느 날, 한 동수가 석탄을 사서 우리 집에 보내주었다. 석탄을 보자 내 마음이 녹았다.
“이것은 석탄이 아니라 금이로구나! 이 얼마나 진실한 마음인가. 게다가 그녀의 집도 부유하지 않다. 연로하신 부모님과 어린 자식이 있다. 남편 월급은 보잘것없는데도 여전히 우리 지역과 다른 지역에서 온 가난한 동수들에게 자선을 베풀다니. 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같은 법(法)을 공부하는 동수이기에 그녀는 사심 없이 자기를 잊고 베풀 수 있었다. 나는 너무 부끄러웠다! 당당한 남자로서 어찌 연약한 여인에게 도움을 받는단 말인가? 나는 얼굴을 가렸다. 나도 수련인인데 수련인의 강인한 의지는 어디로 갔는가? 어찌하여 여전히 득과 실, 고생과 행복의 소용돌이에 갇혀 있는가?
사부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분명히 경고하셨다.
“속인의 고락 생각하지 않음이
수련자요
세상득실 집착하지 않음이
나한이로다”(《홍음》 〈삼계를 벗어나다〉)
개인적으로 이해하기에 대법제자는 더 큰 흉금, 더 넓은 시야를 가져야 하며 더욱이 중생을 구도하는 더 큰 사명을 가져야 한다. 아마 내가 법 공부에 정진하지 않아서 이런 곤경을 조성했을 것이다.
동수들이 우리 집에 와서 교류한 후 나더러 법을 외워 사상(思想)을 전변(轉變)하라고 했다. 이에 나는 법을 많이 공부하고 외우기 시작했다. 《전법륜》을 다 외운 후 《홍음》을 외우자 법리(法理)가 나의 지혜 창고를 열어주었다. 나는 자신이 잘못했고 우주와 틀어졌음을 깨달았다. 그저 상황에 순응했을 뿐이다.
《전법륜》에서, “사람으로서 우주의 真(쩐)ㆍ善(싼)ㆍ忍(런), 이 특성에 순응할 수 있어야만 비로소 좋은 사람”이란 구절을 외우는데 내가 이해하기에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가장 낮은 표준이며, 더 높은 경지의 사람이 되어야 했다.
“수련자로서, 이 특성에 동화하면 당신은 곧 도(道)를 얻은 사람인데, 바로 이렇게 간단한 이치다.”(《전법륜》)라고 하셨다. 대법은 이렇게 간단하고 쉽지만, 내가 수련을 복잡하게 만들었고 그래서 이렇게 많은 관과 난을 겪은 것이다. 하늘을 탓하고 땅을 탓하지 말아야 하며 자신의 수련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안으로 찾음은 법보(法寶)이고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할 수 있다.
관념이 바뀌자 좋은 일들이 나타났다. 내가 진정으로 안으로 찾았을 때 사심(私心), 원한심, 쟁투심 등 많은 마음을 발견했다. 이러한 패물(敗物)들이 내 心性(씬씽)이 승화하는 것을 가로막고 있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어른이 될 때까지 잘못을 저질러도 남에게 고개를 숙인 적이 없다. 나는 자아와 체면심을 내려놓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무엇보다 제가 상처를 준 아내에게 선한 마음으로 사과했다.
나는 아내에게 전화해서 말했다.
“이렇게 오랫동안 당신이 아들 학비 마련하려고 고생했어요. 모두 내 잘하지 못한 것이고 당신에게 미안해요. 앞으로 잘해서 늙을 때까지 당신 곁에 남겠소.“
며칠 후, 아내가 가죽 재킷을 보내주며, 털이 있어서 따뜻하고 오토바이를 탈 때 바람을 막아줄 거라고 했다. 아내는 형님이 낡은 오토바이를 내게 선물로 준 것을 알고 있었다.
아마도 사부님께서 내 心性(씬씽)이 올라와 사람을 구하려는 마음이 있는 것을 보시고, 가족을 배치해 나를 돕고 내가 더 많은 사람을 구하게 하신 것 같다. 나는 이렇게 오토바이를 타고 동수들과 함께 거리와 골목길을 누비며 자료를 나눠주고 현수막을 걸기 시작했다. 겨울 한밤중에는 난방도 하지 않고 그냥 누워 잠이 들었는데, 아침까지 푹 잤다. 마음속에 법이 있으니 잘 먹고 잘 잤다. 낮에는 일을 했고 밤에는 사람을 구하는 두 가지를 병행할 수 있었다.
어느 날, 우리 형제들이 나를 찾아와 부모님이 연세가 많으시니 돌봐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가 가장 적합하다고 했다. 노인을 공경하는 것은 전통의 미덕이자 이치상 당연한 일이니, 하물며 수련인인 내게도 미룰 수 없는 책임이 있다. 그래서 내가 부모님을 돌보기로 했다. 몇 년 후, 두 분이 차례로 돌아가셨고 수만 위안에 달하는 재산을 형제들이 나눴는데 내가 집이 없고 부모님을 모셨다는 이유로 방 3칸에 거실 1칸 아파트를 내게 주었다.
아들은 대학을 졸업한 후, 남방의 어느 대기업에서 일했다. 2년 후, 아들이 여자 친구를 만나 결혼할 준비가 되었다. 당시 나는 아직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었고 저축도 없었기에 어떻게 결혼 비용을 감당할 수 있었겠는가? 그래서 나는 아무 요구도 하지 않았고,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모든 것을 사부님께 맡기고 자연스러움에 따르기로 했다.
여자 쪽 부모님과 상견례를 할 때, 나는 먼저 우리 입장을 설명했다.
“우리 집은 가난해서 집도, 차도, 패물도 살 형편이 못됩니다. 현금 5만 위안밖에 없습니다.”
두 사람은 결혼에 동의했다. 안사돈이 내게 말했다.
“우리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습니다. 돈이야 우리도 어느 정도 있고 그저 아드님만 있으면 됩니다.“
그녀는 아들이 인물이 좋고, 듬직하며 또 정직하다며 아주 만족해했다. 내가 아가씨를 보니 단정하고 온화해서 나도 기뻤다. 대법이 가져다준 복이 없었다면, 오늘날 사회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아가씨와 결혼하려면 수십만 위안에서 수백만 위안에 달하는 집과 차, 그리고 온갖 혼수품이 필요했을 것이다. 우리 집안 형편으로 이런 아가씨와 결혼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다.
게다가 그녀는 경제적인 조건이 우월하다고 해서 우리를 전혀 얕보지 않았다. 만날 때마다 매우 예의 바르게 대했다. 신혼집으로 100제곱미터짜리 아파트를 사주었고, 결혼식을 위해 30만 위안이 넘는 돈을 지출했지만, 우리에게는 단 한 푼도 요구하지 않았다. 결혼은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또 26만 위안짜리 고급 차를 사줬다. 1년 후, 손주도 태어났다.
더 기쁘고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며느리는 북방에 있고 아들은 남부에 살다 보니 생활이 불편했다. 나는 아들에게 말했다.
“우리 성(省) 가까운 곳에 집 가까이 지사를 열 수 있는지 물어보렴?”
아들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건 불가능해요! 설령 우리가 여기에 지사를 차린다 해도 직원 1만 명을 데리고 갈 수는 없어요.”
나는 “가능할 거야.”라고 대답했다.
아들은 “꿈같은 말씀이에요.”라고 했고 나는 “꿈은 이루어진다.”라고 했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각자의 직장으로 돌아갔다.
며칠 후, 아들이 전화를 걸어 “우리 회사에서 드디어 우리 성에 지사를 열게 됐어요.”라고 말했다. 나는 “정말 잘 됐구나!”라고 말했다. 아들이 즉시 지원서를 제출했고 상사가 바로 허락했다. 아들이 고향에 돌아올 수 있게 되어 나도 정말 기뻐했다. 정말 신기하고 불가사의했다. 마치 모든 것이 아들을 위해 배치된 것 같았다. 사실은 신의 배치였고 아들이 대법의 덕을 본 것이다. 나는 아무것도 집착하지 않고 법의 표준에 따라 행동하면 갈수록 길이 더 넓어진다고 이해했다.
지금은 내 음식이며 옷, 생필품을 아내와 아들이 사준다. 내가 늘 속달을 받으러 가면, 동수들이 말한다. “당신 집은 마치 택배 회사 같아요.” 받은 것이 많으면 다른 지역의 동수들과 어려운 동수들에게 나눠주는데 이렇게 보내준 새 신발만 해도 열 켤레가 넘는다. 비록 내가 부유한 것은 아니지만, 동수들의 위타(爲他)한 희생을 보면 늘 감사한 마음뿐이다. 위타한 희생은 높은 경지의 일종이자 이는 일종 수확할 씨앗이다. 진정한 행복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데 있다. 남 돕기를 즐기는 사람은 선량한 빛을 발산한다.
3. 만 리를 달리며 서로 돕다
만 리를 달리며 곳곳에 감로를 뿌린다. 아직 해가 뜨기 전부터 짐을 실은 우리 트럭은 이미 안개 자욱한 길 위에 서 있다. 밤이 되면 우리는 수확물을 가득 실은 채 집으로 돌아간다. 정오가 되어도 일이 끝나지 않으면 식사할 시간도 없다. 배가 고파서 꼬르륵 소리가 나면, 가끔 동수들이 “여러분 식사는 하셨어요?”라고 묻는다. 우리는 동수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그냥 먹은 척한다. 정말로 한 끼는 굶고 다음 끼는 배불리 먹는 식이다.
우리는 오전이면 외딴 시골에 가서 장비와 컴퓨터를 설치하고 오후에는 또 다른 마을에 가서 NTD 위성안테나를 설치한다. 동수의 프린터가 고장 나고, 위성 신호가 잡히지 않거나 어떤 동수들은 심성관을 넘기지 못하고, 병업이 아주 심각하거나, 또 어떤 동수들은 박해를 받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면, 우리는 일일이 찾아가서 교류하고 협조한다. 병업을 조정하러 우리 지역에 온 동수가 있으면 모두 함께 법을 공부하고 발정념을 한다. 여자는 여자 동수 집에 머물고, 남자면 우리 집에 머문다.
두 가지 예를 들겠다. 한 여자 동수는 당뇨병 가상을 앓아 신체가 수척하고 쇠약해졌다. 그녀는 우리 여자 동수 집에서 숙식을 같이 했다. 우리는 함께 법 공부하고 연공을 했는데, 사흘 후 그녀는 안색이 환해져서 집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다른 지역에서 온 남자 동수가 황달성 간염으로 눈은 노랗고 얼굴은 검었으며, 계단을 몇 걸음만 올라도 숨이 가빠 헐떡였다. 나는 그를 우리 집으로 초대해서 함께 식사하며 함께 지내자고 했다.
동수는 “감염되지 않도록 식기를 따로 가져오겠습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냥 같이 식사합시다. 당신 그것은 병이 아니라 가상입니다. 내게는 금강처럼 단단한 몸이 있는데, 바이러스가 어찌 해칠 수 있겠습니까?”라고 말했다. 나는 이렇게 개의치 않고 그의 근심을 덜어주었다. 우리는 집에서 같이 법을 공부하고 연공하며 함께 교류했다. 십여 일이 지나자 그의 눈은 노랗지 않았고, 얼굴은 검지 않았으며, 잘 먹고 잘 잤고 기쁘게 집으로 돌아갔다.
또 박해받은 동수를 말해 보자. 대부분의 가족들은 동수가 박해당하면 이해하지 못하고 원한심(怨恨心)이 아주 무겁다. 일단 체포되면 가족들은 크게 분노한다. 우리 지역에서 거의 100km 떨어진 농촌의 한 동수가 체포되었다. 우리는 서로 알지 못하지만, 수련인이라면 가족과 같으니 당연히 도움을 주어야 한다. 나는 몇몇 동수들과 슈퍼마켓에 가서 고기, 생선, 과일을 사고, 박해받는 가족을 방문했다. 그녀의 어머니는 80세에 두 눈이 멀었는데, 남편은 병들어 힘든 일을 할 수 없었으며, 아들은 외지에서 일하는데 애인과 지내다 막 집에 돌아온 상태였다. 처음에는 가족들이 심하게 불평했다.
우리 동수들이 착한 사람이 되는 것은 잘못이 아니며 법에 어긋나는 것도 아니며, 공산당이 부당하게 행동하는 것이라고 인내심 있게 설명해 주었다. 가족의 재정적 어려움과 돈을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을 본 한 수련생이 변호사 비용을 지불하겠다고 제안하자 그녀의 가족은 깊이 감동했고 그렇게 하기로 동의했다. 변호사를 찾아 수임료를 지불한 후, 의뢰인을 만나기 위해 시 구치소에 연락했다.
마침 금요일이라 이미 예약이 꽉 차 있었다. 다음 주 월요일에야 예약을 할 수 있었었다. 동수 아들은 남방에서 일하기 때문에 돌아가야 했는데, 구치소에 있는 어머니의 상황을 듣고 싶어 했다. 변호사는 갑자기 금요일 오후 예약이 취소되었다는 것을 온라인에서 확인했다. 사부님의 가지로 오후 예약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우리는 박해받는 동수의 집을 여러 번 오가며 변호사의 말을 전했다. 가족들은 매우 기뻐했다. 돈과 물자를 받고,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뛰어다니며, 심지어 가족조차 할 수 없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자 수련인에 대한 편견이 변했고 대법에 대한 이해도 깊어졌다.
다른 성 출신으로 오랫동안 우리와 연락을 유지해 온 한 동수는 몇 년 전 납치되었고 남편과 일찍 이혼했다. 그녀의 부모님은 80대였고, 연로하셔서 병환 중이셨고, 갓 대학에 입학한 딸도 병을 앓고 있었다. 우리 네 명의 동수들이 박해당한 동수의 부모님을 만나러 다른 성으로 차를 몰고 갔다. 그녀의 부모님은 외딴 산골짜기에 살면서 양봉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동수가 박해를 받아 집을 떠나 있었기에 아무도 그녀에게 꿀을 사주지 않았다. 생활비와 약값이 큰 부담이 되었고, 부모님은 걱정하셨다. 우리는 쌀, 국수, 기름, 생선, 옷, 그리고 여러 가지 물품을 사서 그녀의 집을 찾아갔다. 우리가 아이에게 몇천 위안을 주자 할머니는 너무 감격해서 눈물을 흘렸다. 우리는 또 할머니의 꿀도 80kg 넘게 사왔다. 할머니는 감사의 표시로 꿀 두 봉지를 건네셨고, 우리는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
할머니는 눈물을 글썽이며 “정말 좋은 분들이시네요!”라고 말했다. 우리는 두 노인에게 “따님이 억울한 일을 당한 것으로 이는 공산당이 좋은 사람을 박해하는 겁니다.”라고 말했다. 그들은 진상을 알고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 2년 동안 중국 대륙 온라인 법회가 열리면서 원고를 모집했다. 나는 다른 세 명의 동수들과 함께 주변 농촌 지역으로 차를 몰고 다니며 교육 수준이 떨어지는 동수들의 글쓰기를 도왔다. 그들은 많은 감동적인 사연이 있었지만, 글을 쓸 수 없었기에 그들의 이야기는 매몰되었다.
몇 가지 간단한 예를 들자면, 한 동수가 자전거를 타고 가다 차에 치여 다리가 부러졌다. 그녀는 병원에 가지도 않았고, 가해자에게 한 푼도 요구하지도 않았으며, 운전기사에게 진상을 밝히고 삼퇴시켰다. 동수는 집에 돌아가 법 공부와 연공을 했고 사부님의 가지로 한 달 만에 회복되어 정상적인 육체노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또 다른 동수는 산에서 일한다. 벌목꾼 몇 명이 트럭에 나무를 싣고 있었다. 그들은 바빠서 진상을 설명할 시간이 없었기에, 그들 중 네 명에게 대법 호신부를 주었고, 그들은 모두 그것을 가져갔다. 트럭이 산을 내려가던 중 갑자기 브레이크가 고장 나면서 트럭은 화살처럼 언덕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트럭에 탄 사람들은 모두 죽었다고 생각하며 공황 상태에 빠졌다.
한 사람이 “대법 사부님, 저를 구해 주세요!”라고 외쳤다. 그러자 트럭이 즉시 멈춰 섰고 모두 무사했다. 호신부가 효과가 있다는 것을 깨달은 일꾼들은 다시 산으로 올라가 동수에게 감사를 표시했다. 호신부가 없었다면 트럭은 분명 추락했고 모두 죽었을 것이다. 동수는 “제게 감사하지 마세요. 대법 사부님께서 여러분을 구해 주셨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때부터 트럭 주인은 인원수에 상관없이 “파룬따파하오!”라고 외치곤 했다. 한번은 결혼식 피로연에서 많은 군중이 보는 앞에서 “파룬따파하오!”라고 외치기도 했다.
70대 한 여성 동수는 생후 9개월에 어머니를 잃었다. 계모는 그녀를 학대했고 병든 남자에게 시집보냈다. 그녀는 극심한 고통을 겪었고, 병마와 끔찍한 고통에 시달렸으며, 치료비도 없었다. 누군가 그녀에게 종교를 권했지만, 그녀는 이해할 수 없었다. 가족 중 한 명이 《전법륜》을 빌려 와서 보여주었다. 그녀가 책을 가져가 펼쳐보니 사부님의 사진이 있었다. 그녀는 놀라서 “이분은 사부님이 아니신가? 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라고 외쳤다. 그녀는 즉시 파룬궁을 배우기로 결심했다. 그녀는 집에 연공장을 마련했고, 많은 사람이 그곳에 모여 수련했다. 1999년 7월 20일, 중국 공산당은 파룬궁 박해를 시작했다. 많은 사람이 점차 수련을 중단했지만, 그녀는 딸과 함께 수련하면서 박해에 반대하고 중생을 구했다.
박해 초기에 사람들은 중국 공산당의 거짓말에 속았다. 걱정이 된 수련생은 가족의 얼마 안 되는 저축을 털어 택시를 타고 다니며 주변 지역에 자료를 배포했다. 그리고 나서 사람들을 돕기 위해 큰 자료 자루 두 개를 들고 산동에 있는 고향으로 돌아갔다.
내가 그녀에게 물었다.
“기차에서 경찰 검문당하는 게 두렵지 않나요?“
그녀는 “사부님께서 보호해 주시니 아무것도 두렵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또 한번은 그녀가 딸과 함께 현수막을 걸기 위해 북경에 갔다가 체포되었다. 경찰이 딸의 옷을 벗기자 열여섯 살 소녀는 그런 굴욕을 겪어본 적이 없어 너무 두려워 울기 시작했다.
이를 본 어머니가 딸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왜 우니? 우리는 법을 실증하러 온 거란다!” 그러면서 큰 소리로 외쳤다.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
그녀의 목소리는 하늘을 뒤흔들었고 신불(神佛)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귀신들이 곧바로 사라졌다.
강인한 어머니이자 위대한 법도(法徒)다! 이런 놀라운 장거(壯擧)는 법의 힘에서 비롯된 것이다. 일자무식인 시골 부녀가 《전법륜》을 능숙하게 외울 수 있는데. 이는 꾸준한 인내심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나는 평범한 얼굴에 체격은 커서 아주 하찮게 보인다. 매년 진상 달력과 자료들을 차에 가득 싣고 거리를 누비며, 도시와 농촌을 뛰어다닌다. 내가 적지 않은 일을 했다고 생각하고 좀 잘했다고 여긴다면 이는 하늘의 공을 탐하는 것이다. 이렇게 다른 동수와 비교하지 않으면 자신을 찾을 수 없다. 이 비교는 내가 동수들과 얼마나 차이가 있는지 보여준다.
결론:
사악한 세력이 해외로 마수를 뻗어 대법 사부님과 여러 항목을 망치려 하고 있다. 우리가 비록 폭력으로 대항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서 지켜볼 수도 없다. 우리는 대법이 우리에게 준 힘을 사용하여 사악의 뿌리를 철저히 제거해서, 그것이 사람을 해치고 중생을 해치는 것을 절대 허락하지 말아야 한다. 다른 곳은 몰라도, 적어도 우리 반경 100km 이내에서 우리가 접촉할 수 있는 모든 동수들이 함께 단체 발정념을 하고 릴레이 발정념을 하자. 사악이 아무리 창궐하더라도 우리의 정념(正念)은 붉은 마귀가 완전히 소멸될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정벌
만리를 질주하며 요괴 진 쳐부수나니
흑수(黑手) 모조리 자르고 악한 신을 제거하노라
자욱한 안개 광풍 일 테면 일어라
한 줄기 산비(山雨)는 원정의 먼지를 씻어내네
(《홍음 2》)
나는 동수들을 태우고 차를 몰며 사람을 구하는 길을 계속 달려갈 것이다!
천신(天神)이 사람이 되어 속세에 들어오니,
속세는 바다와 같아 빠지기 쉽구나.
악당 사교(邪敎) 대법을 모욕하고
선량한 사람을 속이고 독해하네.
붉은 마귀의 발톱 해외로 뻗쳐
정신나간 무리들 정의 인사 무고하네.
법도(法徒)들 정념 사령을 멸하고
사부님 따라 사람 구해 천문(天門)으로 돌아가세
天神當人入凡塵 紅塵似海易沉淪
惡黨邪教辱大法 欺騙毒害善良民
紅魔海外爪延伸 狂徒誣告正義人
法徒正念滅邪靈 隨師救人回天門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795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