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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법시기 대법제자》를 읽은 소감

—내가 본 현재의 오해들

맹성(猛醒)

【정견망】

《정법시기 대법제자》를 반복해서 통독하면서 나는 깊은 부끄러움과 함께 경각심을 느꼈다.

사존(師尊)께서 거의 모든 것을 감당하셨고 또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셨지만, 많은 때, 오히려 가장 관건적일 때, 우리는 사람 마음에 갇혀 장기간 한 층차에서 걸어 나오지 못했다. 자신이 안으로 찾은 것과 현재 내가 본 상황을 결합해 보니 다음과 같은 오해가 있었다.

오해 1: 대법 수련을 과거의 그런 수련으로 간주하고, 자신만 잘 수련하면 된다고 여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대법제자가 대법(大法)을 수호하는 작용을 하지 못하면 원만할 수 없다. 왜냐하면 당신들은 과거와 장래의 수련과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대법제자의 위대함이 바로 여기에 있다.”(《정법시기 대법제자》)

내가 깨달은 것은 만약 우리가 세간(世間)에 온 것이 단지 수련을 위해서라고 생각한다면 이는 너무나도 차이가 난다. 만약 우리 매 사람의 사명을 집 짓기에 비유한다면, 우리의 개인 수련은 단지 집을 짓는 기초에 불과할 뿐이다. 하지만 우리가 진정으로 지어야 할 것은 집이다. 튼튼한 기초는 물론 중요하지만, 우리가 지어야 하는 것은 집이다. 이 집의 규모와 방의 갯수는 당신이 진상을 알리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중생을 남겼는가에 달렸다. 우리가 만약 단순히 개인 수련만 고려한다면, 이는 당신이 아예 집을 짓지 않은 것과 같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거대한 마천루를 지었지만 당신이 책임진 영역은 텅 비어 있고 아무것도 없다면 이는 마치 내려오지 않은 것과 같다. 하지만 당신은 대법제자의 이름을 낭비했고 조물주(造物主)와 중생의 기대를 저버렸다.

내가 이해하기에 과거 역사상의 수련 이야기들은 엄격히 말해 진정한 수련이라 할 수 없다. 단지 수련 문화와 그 표면적인 의미를 위한 기초를 마련했을 뿐이다. 오늘날 우리의 수련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수련이며, 개인 수련의 내함(內涵)이 있긴 하지만 개인 수련 자체를 훨씬 뛰어넘는다. 인류에게는 이런 단어가 없으니, 그냥 수련(修煉)이라고 하자. 하지만 과거의 그런 수련으로 대법 수련을 이해한다면 그건 너무나도 천박한 것이다. 우리의 수련은 훨씬 엄숙하고 훨씬 위대한 것이다. 왜냐하면 과거의 수련은 단지 부원신(副元神) 수련일 뿐이며 일생에 수련 성취하지 못하면 다시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 수련은 다시 할 기회를 제공하지 않는다. 우주가 교체되는 만고(萬古)의 기연이 모여서 오늘날 대법 수련을 만들었고, 아울러 대법을 실증하는 것에 더욱 위대한 내함을 지니게 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조사정법’이란 한 마디 호언장담이거나, 거짓되고 과장되며 헛된 말이 아니다. 사실 나는 단지 몇 가지 문제만 말했을 뿐이며, 법을 믿지 않는 일은 아직 많이 있다. 한 대법제자로서 천만 년의 기다림은……, 한 수련생으로서 당신이 세상에 온 유일하고도 진정한 소원은……, 사부로서 정법 중에서 당신과 중생을 구도할 수 있는지 없는지, 성패(成敗)는 모두 이 한 겁(劫)에 달렸다.”(《무엇이 조사정법인가》)

오해 2: 사명감이 부족해서 그럭저럭 최후까지 가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 이는 주로 숨겨진 두려운 마음의 장애 때문이다. 겉으로 표현되는 것은 날마다 돈을 벌고, 사업을 하고, 가정을 꾸리는 것과 같은 속인의 일을 가장 중시하고 수련은 단지 임무를 완수하는 것처럼 여긴다. 이 부류는 첫 번째만도 못하다. 만약 첫 번째 오해가 단지 정법(正法)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면, 이 부류는 순수한 사심(私心)이며, 오직 대법에서 좋은 것만 얻고 개인의 해탈만을 추구할 뿐 자신의 사명이나 중생의 기대 따위는 아예 고려하지 않는다! 이들은 날마다 책을 읽고 법 공부를 하지만, 정법 수련에 몰입해 사악을 타파하고 진상을 알리며 중생을 구도하는 큰 흐름 속으로 들어가진 않는다. 법(法)을 공부하긴 하지만 오히려 법을 얻지 못하는데 어떻게 ‘정법시기 대법제자’의 자격이 있겠는가?

오해 3: 일만 하면 된다고 여기고, 바쁘게 일하는 것을 정진(精進)이라 여기고, 한 일의 양을 정진하는 여부로 여기고, 안으로 찾아서 사람 마음을 제거하는 수련을 소홀히 한다. 이는 2번째 부류와 정반대다. 두 번째 부류는 오로지 자신의 해탈에만 관심이 있고 중생의 안위조차 돌보지 않는다면 세 번째 부류는 오로지 사람을 구하는 데만 관심이 있고 자신의 착실한 수련은 소홀히 한다. 겉으로 드러나는 표현은 각종 활동에는 적극적으로 참여하지만, 법 공부나 연공은 거의 하지 않는다. 시간이 오래되면 마치 속인이 대법 일을 하는 것과 같아진다. 자신도 모르게 법에서 벗어나도 모르는데, 오직 늘 법 공부를 하는 사람만이 자신이 어디가 부족한지 알아차릴 수 있기 때문이다. 대법은 마치 거울과 같아서 당신이 비추어 보지 않으면 어디가 더러운지 어찌 알 수 있겠는가?

오해 4: 잘하지 못해도 괜찮고 다음에 또 수련할 기회가 있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제자들이 비록 공개적인 장소에서는 정진하고 적극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적인 교류에서는 무의식중에 자신은 대법을 훼손하거나 특별한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으니 설령 사존의 표준에는 도달하지 못할지라도 다음에 또 수련할 기회가 있을 거라 생각한다. 이런 생각을 감추고 있는 이들이 상당한 비례를 차지하는데 소수가 아니다. 나도 이중 하나였다.

사존께서는 명확히 지적하셨다.

“정법제자가 정법시기를 걸어 넘어가지 못한다면 다음 한 차례의 수련기회는 없다. 왜냐하면 역사상 이미 당신들에게 가장 좋은 모든 것을 주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개인수련 중에서 거의 아무런 고생도 겪지 않았고, 당신들이 생생세세에 지은 하늘처럼 큰 죄업(罪業) 또한 당신들 자신이 감당하라고 하지 않았으며, 동시에 가장 빠른 방식으로 당신들의 층차를 제고시켜 주고, 당신들 과거의 일체 좋은 것을 보존하고 있다. 게다가 매 층차 중에서 또 당신들에게 더욱 좋은 것을 보충해 주고 수련 중에서 줄곧 당신들에게 매 경지 중에서 가장 위대한 일체를 줌으로써 원만한 후에 당신들로 하여금 당신들의 최고 경지의 위치로 돌아가도록 하였다. 이것은 당신들에게 알려줄 수 있는 것이며 지금 더욱 많은 것은 당신들이 아직 모르고 있다. 대법제자의 위대함은 당신들이 사부가 정법하는 시기와 함께 있으며 대법(大法)을 수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자신이 한 것이 이미 대법제자로서 자격이 없을 때면 여러분 생각해 보라. 이 천지개벽에도 없었던 慈悲(츠뻬이)와 불은호탕(佛恩浩蕩) 하에서도 잘하지 못한다면 어찌 또 다음 한 차례 기회가 있을 수 있겠는가?”(《정법시기 대법제자》)

사부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사부는 떨어져 내려간 그러한 사람들을 줄곧 아주 가슴 아프게 생각하고 있는데 다수가 이런 마음에 이끌려 망가진 것이다.”(《정법시기 대법제자》)

내가 이해하기에 사부님께서는 이 문장에서 떨어져 내려간 ‘사람’이라고 하셨지 ‘제자’라 부르지 않으셨다. 다시 말해 우리에게 떨어져 내려간 사람은 더는 제자로 불릴 수 없다는 것으로, 정확히 말해 ‘정법시기 대법제자’란 호칭을 잃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는 마땅히 아주 긴박한 일이 아닌가! 마치 함께 쇠줄을 타는 것과 같은데 어떤 동수들은 또 쉬엄쉬엄 틈틈이 틱톡을 보거나 게임을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정말로 생사를 모른다! 나는 수련이란 마치 물살을 거슬러 노를 젓는 것과 같아서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후퇴임을 깨달았다. 속인 사회의 도덕은 급속히 추락하고 있어서 당신이 정진하지 않으면 속인 사회의 거대한 염색 항아리와 거대한 흐름에 휩쓸려 흔적조차 남지 않을 것이다!

오해 5: 이번 박해를 사람과 사람 사이의 박해로 여기고, 그것이 우주의 정의(正義)와 사악의 대결이고 이는 우주를 정화하고 다시 만드는 과정임을 모른다. 많은 동수들이 진상을 알리는 과정에 사악한 당의 사악을 말하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증오심이 생겼다. 심지어 발정념을 할 때조차 사당(邪黨) 해체를 주요 목적으로 한다. 실질적으로 이번 박해는 단순히 사당이 발동한 것이라 여기고 만약 사당이 무너지면 우리가 승리한다고 여긴다. 이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단순한 투쟁이 아님을 인식하지 못한 것으로 신(神)의 각도에 서서 그것을 부정하지 못한 것이다. 사당은 단지 표상일 뿐이며 진수제자(真修弟子)를 단련시키기 위한 석탄일 뿐이다. 배후의 구세력 내지 전반 구 우주 중생의 몰이해야말로 근본임을 모른다. 설사 사당이 제거된다 해도, 배후의 구세력은 또한 계속해서 보충할 것이다. 오직 우주 구세력을 완전히 제거하고, 대법제자들이 정체적으로 제고해서 무너뜨릴 수 없는 법망(法網)을 형성해야만 사당이 존재할 이유를 잃고 역사의 무대에서 물러나게 할 수 있다. 사당 해체는 목적이 아니며, 자신을 잘 수련해서 세인을 구하는 것이 근본이다!

영광이 크면 클수록 비참함도 큰 법이다. 내가 깨달은 것은 잘한 그런 대법제자들은 장래에 비할 바 없는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이다. 하지만 잘하지 못한 그런 이들, 가령 대법의 대립면에 서거나, 남녀관계에서 잘못을 저질러 사존과 대법에 먹칠을 하거나, 항목의 자금을 사사로이 횡령하거나, 중공 특무와 뒤섞여 대법의 대오 속에서 교란 작용을 일으킨 등등은 오히려 비할 바 없이 비참하지 않겠는가?

사이트에서 동수가 쓴 윤회 문장을 보았는데 일찍이 부동한 층차의 신(神)들에게 지은 업은 상환할 방법이 없다(마지막에 모두 사존께서 도와서 갚아주신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렇게 지고무상(至高無上)한 만왕의 왕이신 창세주(創世主)께 지은 빚을 또 어찌 갚을 수 있겠는가? 사존의 무량한 자비를 이용하고도 우습게 여기면서 아직도 정신이 흐릿한 그런 사람들은 정말로 잘 생각해 보아야 한다. 최후 결말은 단지 지옥에 떨어져도 갚지 못할까 두려울 뿐이다.

지난 몇 년간 정진했던 동수들도 아마 피로하거나, 지쳐서, 또는 다른 원인으로 최근 몇 년간 느슨해진 이들이 있다. 그러나 이는 극히 위험한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이 한 기간은 길지 않을 것이지만 도리어 부동한 층차의 위대한 각자(覺者), 불(佛)ㆍ도(道)ㆍ신(神)과 부동한 층차의 주(主)의 위덕을 단련해 낼 수 있으며, 따라서 자신을 느슨히 하는 한 수련자로 하여금 이미 굉장히 높은 층차에서 하루아침에 망가지게 할 수 있다.”(《정법시기 대법제자》)

특히 이전에 잘해서 자신이 어느 정도 성취가 있다고 믿는 사람들과 천목이 열려서 일정한 점오(漸悟) 상태에 있는 이들이 자신을 느슨히 하기 쉽다.

사부님께서는 “대법제자가 사악의 박해 중에서 잘하지 못하거나, 자신을 느슨히 한다면 아마 지금까지 이룬 공이 수포로 돌아갈 것이다.”(《정법시기 대법제자》)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이해하기에 비록 당신이 지금까지 잘했다 해도 최후의 순간까지 절대 느슨히 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이전의 모든 공이 수포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사악은 호시탐탐 우리를 노리고 있는데, 우리가 정신을 팔거나 법에 없는 때를 기다려, 수시로 우리를 고험하고 박해할 것이다.

우리는 시시각각 세 가지 일을 잘해야 한다. 이것은 매우 어려운 임무지만, 사부님이 계시고 법(法)이 있으니, 홍대(洪大)한 불은호탕(佛恩浩蕩)의 정법 홍세(洪勢)의 길을 걸어가면서 우리에게 두려울 것이 뭐가 있겠는가? 용감하게 전진하고 두려움 없이 전진하자!

마지막으로, 사부님의 말씀으로 서로 격려하고자 한다.

“제자들이여, 정진하라! 가장 위대하고 가장 아름다운 일체는 모두 당신들이 대법(大法)을 실증하는 과정 중에서 생긴다. 당신들의 서약(誓約)은 당신들 장래의 증거가 될 것이다.”(《정법시기 대법제자》)

이상은 개인의 인식이니 부당한 곳이 있다면, 자비로 지적해 주기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8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