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제자
【정견망】
수련인(修煉人)은 모두 안으로 찾음을 알지만 한번 깊이 생각해 보고 자신이 안으로 찾는 점수를 매겨본다면 아마 그 점수가 높지 않거나, 심지어 불합격일 것이다.
안으로 찾는 것을 잘하지 못해 일부 동수들에게 많은 문제가 나타났다. 어떤 이는 가정 모순이 잇따라 나타났고, 어떤 이는 병업에 시달리다 세상을 떠났으며, 어떤 이는 체포되어 고문을 당했다. 따라서 안으로 찾음은 수련에서 가장 우선적이고 또한 수련의 궁극이니 반드시 착실하고 착실하게 해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면 후과(後果)는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
나는 여기서 3가지 방면에서 안으로 찾은 작은 깨달음을 공유해 다른 이들의 좋은 의견을 유도하는 동시에 공동으로 정진하고자 한다.
1. 완벽한 사람은 없으니 잘못을 알고 인정해야
한 동수에게 “암” 증상이 나타났다. 그녀를 방문한 동수가 말했다.
“당신은 안으로 잘 찾아봐야 합니다.“
그녀가 말했다.
“어떻게 찾아요? 나는 어떻게 찾는지 모르겠으니 당신이 어떻게 찾는지 말해봐요? 나는 잘못이 없는걸요!”
동수가 말했다.
“지난번에 당신이 아이에게 욕을 했고 어제는 또 물건을 집어 던졌고, 최근 며칠은 법 공부도 하지 않았잖아요?”
하지만 그녀는 당당하게 말했다.
“아이한테 심한 말을 한 것은 겨우 몇 마디인데, 그게 욕을 한 건가요? 물건을 던진 것은 손이 떨려서 떨어뜨린 것이고, 최근 며칠간 책을 읽지 않은 것은 이렇게 괴로워도 연공을 했고 사부님도 보셨을 거예요.”
동수는 할 말을 잃었다. 이렇게 명백한 문제조차 인정하기를 거부하니, 아무도 그녀를 도울 수 없었다. 늘 자신이 옳고 남이 건드릴 수 없다면 이는 수련에서 큰 금기다.
어떤 동수들은 바로 여기에 문제가 있다.
“내가 진리인데, 어떻게 틀릴 수 있는가?”
하지만 수련이란 잘못을 알고 고치는 것으로 잘못이 없는 사람은 수련할 필요가 없다. 모두 옳다면 곧 신불(神佛)이다. 수련의 문을 두드리지도 않았으니 어떻게 문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겠는가? 이렇게 잘못을 모르는 동수들은 사실 여전히 수련의 문밖에 있는 것으로, 입문하지 못한 것이다. 몇십 년, 몇백 년을 수련했다 해도 모두 입문하지 못한 것으로 안타깝고 가련한 일이 아닌가?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사람으로서 어찌 잘못이 없겠는가? 수련하는 이는 사람인데 어찌 잘못이 없겠는가? 그러나 오히려 당신이 착오를 승인한 것을 본 적이 없다. (뭇사람 웃음) 당신 이것은 누락이 아닌가? 당신은 수련 중에 누락이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앞으로 누가 착오를 승인할 수 있는지 보겠다. (뭇사람 웃음, 박수) 누가 착오를 범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착오가 다 무엇인가? 우리가 잘하면 그만인데, 그렇지 않은가? 그러나 관건은 바로 당신의 그 마음이다. 사람 마음을 닦아 없애는 것이 아닌가? 당신이 늘 숨고 늘 가로막고 늘 제거하려 하지 않으려는 것이야말로 큰 문제이다.”(《로스앤젤레스 시 법회 설법》)
이런 부류의 동수들이 매일 이 단락 법을 많이 외우고, 잘못을 알고 인정하는 것은 수치스런 일이 아니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큰 문제임을 깨닫기 바란다.
2. 법을 스승으로 삼고, 자신이 스승이 되지 말아야
한 동수는 문제에 부딪혔을 때 법(法)에서 답을 찾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이 진리를 장악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어디를 가든 손에 휴대폰을 들고 다니며 정념(正念)만 있으면 모든 것을 압도할 수 있다고 말한다. 나중에 그는 박해를 받았다.
한 여자 동수는 반복적으로 박해를 받았고 그때마다 단식으로 탈출했다. 그녀는 기차를 탈 때 다른 사람의 신분증으로 얼굴을 스캔했는데, 동수가 이렇게 해선 안 된다고 알려주었다. 하지만 그녀는 혼자 고집을 부리다 결국 체포되어 감옥에서 사망했다.
이 동수들은 장기간 자신을 스승으로 삼았기 때문에 더는 올라갈 수 없었는데 이는 또한 그들의 근본적인 문제다. 그들은 속인 중에서 자신을 아주 높이 여기고, 멋대로 행동하며, 남의 스승이 되려 하며, 겸손함이 부족하다. 속인 중에도 빈 잔의 원리가 있는데 잔이 비어야만 물을 담을 수 있다. 수련 중에서는 자아(自我)를 내려놓아야 하며 나는 모든 것을 안다는 생각을 내려놓고 나는 모든 것을 똑똑히 안다는 생각을 내려놓으며 겸허하고 공경하게 법을 배워야만 법을 배울 수 있다.
수련인이 일을 하면서 가늠하는 표준은 오직 하나, 즉 사부님의 법이지, 자신의 이치가 아니다. 자신의 이치에 따라 수련하는 것은 자신의 상상 속 가짜 법 속에서 수련하는 것이지, 사부님의 진법(真法) 속에서 수련하는 것이 아니다. 아직 수련의 문에 들어서지도 못한 것으로 대법의 것을 얻을 수 없다. 수련에서는 절대 감각을 따라가서는 안 되며 쓰라린 피의 교훈이 너무나도 많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왜냐하면 공의 연화(演化)과정은 극히 복잡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감각은 아무것도 아니며, 감각에 의거해 수련해서는 안 된다.”(《전법륜》)
또한 비이성적적이고 이지적이지 못한 이들이 있다. 어떤 사람은 정념의 법리를 배우고는 정념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사부님께서 휴대폰은 도청 장치이니 아무것도 고려하지 않고 멋대로 행동해선 안 된다고 거듭 강조하셨다. 하지만 그들은 사부님의 법에 따라 하지 않고 이편개전(以偏概全)으로 행동한다.
[역주: 이편개전(以偏概全)이란 단편적인 일부만을 가지고 전부라 여기면서 과격하거나 극단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말한다.]
3. 법으로 대조해, 법으로 가늠
호(胡) 동수는 법 공부를 적지 않게 했지만 남편과 크게 다툰 후에는 자주 울고불고하면서 억울해 하고 화를 냈다.
한 동수가 그녀에게 물었다.
“당신은 그때 법으로 대조했습니까?”
“당시에는 법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앞으로 모순에 부딪힐수록 더욱 대조해야 합니다. 이렇게 해야만 착실한 수련입니다.“
또 다른 할머니 동수는 둘째를 출산한 며느리에게 연루될까 두려워 멀리 피했다.
한 동수가 그녀에게 물었다.
“당신은 자기 며느리와 손주마저도 돌보지 않는군요. 사부님께서는 선(善)을 닦으라고 하셨는데, 당신의 선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녀가 대답했다.
“아무도 내게 이 일을 언급하지 않았는데 당신 말이 좀 지나치네요. 나는 받아들일 수 없어요.”
동수는 더는 할 말을 잃었다.
호(胡) 동수는 나중에 법으로 대조하면서 남편과 다투면 헛되이 수련한 것으로 선하지 못하고 참지 못한 것[不善不忍]임을 깨달았다. 그녀는 자신의 분노, 억울, 원망의 근원이 평형을 이루지 못하는데 있음을 깨달았는데 즉 질투였다. 속인의 각도에서 보자면 남편의 무리한 요구는 괜한 트집을 잡는 것처럼 보인다. 사실 모순 중에서 心性(씬씽)을 지킬 수 있다면 일거사득(一擧四得)이다.
만약 할머니 동수가 자신을 찾을 수 있었다면, 많은 心性(씬씽) 문제를 발견했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녀는 찾지 않았다.
법으로 대조하는 것은 마치 법을 거울로 삼아 자신을 비춰보는 것과 같아서, 거울에 비친 자신의 진짜 모습을 보면서, “나는 꽃처럼 아름답다”라는 속인의 사유를 잘라내는 것이다.
법으로 가늠하는 것은 마치 법의 잣대로 자신의 心性(씬씽) 높이를 측정해, “나는 높고 대단하다”고 자만하는 사유를 녹여내는 것이다.
어떤 동수들은 여기에 정체되어 있다. 일단 문제가 생기면 대조하고 가늠하는 것을 망각한다. “일마다 대조하지” 않으면 모순 속에서 제고할 수많은 기회를 놓친다. 어떤 사람들은 나중에 스스로 복기하면서 자신을 찾을 수 있지만, 어떤 사람들은 후회하지도 않고 자신을 찾지도 않는다. 우리가 진정으로 법을 스승으로 삼고 법으로 가늠할 때면, 우리는 깊은 부끄러움을 느끼고 자신의 잘못과 문제가 아주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나는 동수들에게 날마다 스스로 안으로 찾도록 일깨우며 시험 삼아 다음 구절을 여러 번 외워볼 것을 건의한다.
“心性(씬씽)이 얼마나 높은지 가늠하는 데는 또 척도가 있다. 척도와 공기둥은 동일한 공간에 존재하지 않지만, 그것은 도리어 동시에 존재하고 있다. 당신의 心性(씬씽)이 수련되어 올라오면, 예컨대 속인 중에서 다른 사람이 당신에게 욕을 한마디 해도 당신이 아무 소리 하지 않고 당신의 마음이 아주 태연하며, 당신을 주먹으로 한 대 쳐도 역시 당신이 아무 말 하지 않고 한번 웃고 지나간다면, 이 사람의 心性(씬씽)은 이미 아주 높다. 그러면 당신이 연공인(煉功人)으로서, 당신이 마땅히 얻어야 할 것은 무엇인가? 당신은 공을 얻지 않는가? 당신의 心性(씬씽)이 제고되어 올라오면 당신의 공은 곧 자라 올라온다. 心性(씬씽)이 얼마만큼 높으면 공도 얼마만큼 높은데, 이것은 절대적인 진리다. 예전에 어떤 사람은 공원에서 연공(練功)하든 집에서 연공하든 연마(練)에 무척 정성을 들이고 아주 경건하며 연마(練)함도 괜찮았다. 그러나 문만 나서면 그가 아니다. 제멋대로 하며 속인 중에서 명예와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과 다투고 싸우는데, 그의 공이 자랄 수 있겠는가? 전혀 자랄 수 없으며, 그의 병이 나을 수 없는 것도 역시 이 때문이다. 왜 어떤 사람은 장기간 연공(練功)해도 병이 낫지 않는가? 기공은 수련으로서, 초상(超常)적인 것이며 속인 중의 체조가 아니기 때문에 반드시 心性(씬씽)을 중히 여겨야만 병이 낫거나 공이 자랄 수 있다.”(《전법륜》)
“수련하는지 안 하는지, 수련할 수 있는지 없는지,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두 법으로 가늠하는 것이다”(《파룬따파의해》)
“관건문제는 당신이 수련할 수 있는지 없는지, 법으로 가늠할 수 있는지 없는지, 그러한 것을 버릴 수 있는지에 있다.”(《파룬따파의해》)
법을 자주 외우면 다시 문제에 부딪히면 자연스레 법으로 가늠하게 된다.
결론
“안으로 찾아 자신을 닦아라”[向内找,修自己]. 이것은 단지 여섯 글자에 불과하지만, 말하기는 쉬워도 실천은 어렵다. 하지만 아무리 어려워도 스스로 요구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전의 모든 공이 수포로 돌아갈 수 있다. 나는 27년을 수련해 왔다. 올해 “心性(씬씽)이 얼마나 높은지 가늠”하는 이 단락의 법을 외우면서 법으로 자신을 가늠하고 나서야 자신에게 아주 많은 문제가 있는 것을 발견했고, 자신의 수련이 너무 차(差)한 것을 알게 되었다. 동수들이 나를 경계로 삼아, 안으로 더 많이 찾아 빨리 제고하기를 바란다.
한 동수의 아들이 늘 집에만 있자, 남편이 또 트집을 잡았다. 남편이 큰 소리로 소란을 피울 때마다 동수는 담담하게 이렇게 말했다.
“좋은 일이 또 왔구나.“
그리고는 침착하게 자신을 찾고 자신을 닦았다.
이 이야기를 듣고 나는 깜짝 놀랐고 또 부끄러웠다. 이 동수는 소박하고 착실하게 나쁜 일을 좋은 일로 여기고, 진정으로 자신을 닦으며 안으로 찾을 수 있었다. 그래서 늘 싱글벙글했던 것이다. 이것이 그녀의 심성 경지이며, 또한 내가 존경하고 따라 배워야 할 부분이다. 매 사람마다 주변에 좋은 동수들이 있으니 우리 함께 비학비수(比學比修)하고 함께 공동정진합시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만약 당신들이 정확하게 대하지 못하고 자신을 수련인으로 여겨 안으로 찾지 않으면, 정말 수련할 방법이 없다.”(《2014년 샌프란시스코 법회 설법》)
안으로 찾아 자신을 수련함은 단지 자신을 채찍질하는 하나의 구호가 아니라, 정말로 착실하고 착실하게 실천해야 한다. 오직 안으로 찾을 수 있어야만 사람 마음의 족쇄를 돌파해 제고해 올라갈 수 있다.
졸렬한 견해이니 자비로 시정해 주기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81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