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쭝마이(Hàn Trung Mai)
【정견망】
이 작품에서 제갈량은 수련자가 법에서 수련해 낸 정념(正念)을 상징한다. 반면 노숙(魯肅)은 수련자의 사람 마음[人心]을 대표하는데, 제갈량과 동행한 벗이다. 두 사람이 함께 탄 배는 단지 수련자의 ‘인피(人皮)’일 뿐이다. 수련자가 고험에 직면했을 때 “정념(正念)과 사람 마음”의 대결을 이 두 인물을 통해 아주 생생하게 드러냈다.
제갈량은 삼국시대의 뛰어난 인물로, 위로는 천문 아래로는 지리에 통달했을 뿐만 아니라, 남의 뜻을 잘 헤아렸다. 그가 3일 안에 10만 개의 화살을 만들라는 임무를 수락할 때, 군령장(軍令狀) 앞에서 만약 임무를 달성하지 못하면 죽어도 좋다고 했다. 군령(軍令 군대에서 상관의 명령)이란 산과 같다. 그가 초선(草船)으로 화살을 빌려 조조의 80만 대군에 대항한 것은 사실 자신을 “죽음의 문”에 놓은 것이었지만, 결국 그는 불가능해 보이던 임무를 완성했다. 그는 자신을 생사의 기로에 놓았지만 결국 위험에서 벗어났다.
제갈량이 과감하게 이런 계책을 사용한 것은 단지 그가 용기가 있었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가 하늘의 뜻을 철저히 이해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천상(天象) 변화에 따라 행동할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수련자는 “금강석처럼 굳건한 정념(正念)”을 지녀야만 비로소 자신이 증오(證悟)한 그 한 층 법의 위력을 펼쳐낼 수 있고, 그 층차의 법을 깨닫고 실증할 수 있다. 법은 원용한 것으로 오직 법에 동화해서 법에 따를 수만 있다면 누락이 없으며, 모든 것이 그 층 법의 제약에 순응할 것이다.
제갈량이 이 계책을 실시했을 때, 절대 노숙(사람 마음으로 사고하고 조조군이 어떻게 할 거라는 등 각종 교란을 상상하는 것을 비유)의 그런 결과가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성공과 실패는 조조의 군대가 아니라 하늘의 뜻에 달려 있으며, 모든 것은 신(神)이 주관함을 알았기 때문이다.
십만 개의 화살은 수행자가 원만으로 향하는 길에서 마주칠 수 있는 모든 마난(魔難)과 외부의 공격을 상징한다.
허수아비는 단지 흔들리지 않는 마음[不動心]일 뿐이며, 또한 자신의 모든 마음을 쓰레기로 여기고 점차 버리는 것을 가리킨다. “정념(正念)”이 있어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경지에 도달하면 화살도 문제가 안 되고 공격은 말할 나위도 없다. 반대로 또 수확이 있을 것이다.
수련자가 모순에 직면했을 때 만약 이렇게 부동심(不動心)할 수 있다면, 층차를 제고하는데 수확이 있을 것이다.
수련 중에서 개인적인 깨달음은 우리는 감성적인 인식을 이성으로 승화시켜야 하며, 법을 실증하면서 점차 법에 대한 바른 믿음을 얻어야 한다. 이렇게 해야만 진정으로 법에 동화할 수 있다.
만약 제갈량과 노숙이 수련자의 “정념과 사람 마음”과 같다면, 우리가 일을 하는 주원신은 제갈량과 노숙 중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하는가?
션윈 작품들은 내함이 아주 심오하다. 나는 또 이 속에서 대법과 구우주(舊宇宙) 법(法) 사이의 대결을 보았는데 이 작품은 정법 수련의 내함을 드러냈다.
개인 인식에 한계가 있으니 부당한 곳이 있다면 자비로 시정해 주기 바란다. 허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81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