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학
【정견망】
과학적 발견은 마치 사람들과 고의로 맞서는 것과 같아서, 사람들이 기존 지식의 상아탑에 안전하게 머무르지 못하게 한다. 40년 동안 사람들은 더 놀라운 발견을 위해 고고학의 시선을 대륙에서 바다로 돌리기 시작했다. 과연 사람들은 쿠바 대륙붕 아래에서 면적 5헥타르, 해저에 가라앉은 지 거의 1만 년이 된 고대 건축군을 발견했다. 내부에는 여러 거리가 있으며, 도로는 모두 석판으로 포장되어 있었다. 돌로 만든 문틀, 돌 조각, 심지어 석판 관까지 있어 마치 돌의 세계와 같았다. 1만여 년 전, 인류는 막 신석기 시대에 접어들었는데 어떻게 이런 건축 기술이 있을 수 있을까? 석상 조각과 석재 굴착이 석기와 뼈로 만든 공구로 이뤄졌단 말인가.
1919년 전후로 캐롤라인 제도의 원주민 전설에 따르면, 난마돌(Nan Madol) 일대에 많은 보물이 숨겨져 있다고 해서 유럽, 일본, 중국의 보물 탐사자들이 잇따라 방문했다. 나중에 일본이 이곳을 접수하고 잠수부를 바다에 파견하여 보물을 찾아보았다.
잠수부들의 보고에 따르면, 물속에 기본적으로 잘 보존된 도시가 있으며, 거리, 돌기둥, 돌집에 산호가 가득했다. 이 성은 약 40만 개의 현무암석으로 지어졌으며, 각 석판의 길이는 3.6-8미터로 대부분 무게가 10톤 이상이었다. 또한 875미터 길이의 담장이 있으며, 가장 높은 곳은 14미터에 달했다. 이 성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지 역시 1만 년이 넘었다. 오세아니아의 많은 외딴 섬들은 원래 인간이 대규모로 거주하기에 적합하지 않았다. 먼 옛날, 어떤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10톤 이상의 돌을 운반하고 이런 성을 지었을까?
이 고대 유적들은 과학자들을 혼란스럽게 한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이 유적들의 정확한 의미를 알 수 없고, 그들이 대표하는 문명 수준을 우리의 역사적 지식과 통일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1936년 6월, 한 무리의 도로 건설 노동자들이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 외곽에서 우연히 고대 무덤을 발견했다. 2개월 이상의 발굴을 거쳐 고고학자들은 기원전 248년부터 기원전 226년까지 페르시아 왕조 시대의 많은 기물을 발견했다.
고고학자들은 이 고대 유물들 중에서 몇 가지 독특한 도자기 그릇, 녹슨 구리 파이프, 철봉을 발견했다. 감정 후, 당시 이라크 박물관 소장이었던 독일 고고학자 빌헬름 카비니그는 놀라운 발표를 했다. 높이 15cm의 꽃병과 유사한 이 도자기 그릇은 고대 화학 전지였다. 산용액이나 알칼리용액만 첨가하면 전기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카비니크의 추론은 고고학계에 충격을 주었으며, 이는 기원전 3세기 이 지역에 거주하던 페르시아인들이 이미 배터리를 사용하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서기 1800년 세계적인 물리학자 볼트에 의해 발명된 첫 배터리보다 2000여 년 앞선 것이다.

이 결정석들의 절개 부위는 마치 어떤 기계 장치의 잔해처럼 보이며, 그 구조는 매우 복잡한 인공물처럼 느껴지게 한다. 그러나 놀랍게도 코소에서 발견된 결정석은 지금으로부터 50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인들에 의해 공식적으로 ‘코소 아티팩트'(Coso Artifact)로 명명된 코소 결정석은 그 속의 신비로운 물질로도 널리 알려져 있는데, 이는 내연기관에 사용되는 구식 점화 플러그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코소 결정석이 나타나서는 안 되는 곳에서 출토된 가공물을 의미하는 ‘OOPARTS'(Out of Place Artifacts의 약자)라고 생각한다.
신비로운 이집트 피라미드에서 뉴스가 계속 올라오고 있다. 일본에서 온 고고학자들이 이집트 전문가들과 협력하여 신비로운 피라미드에 대한 새로운 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그들은 피라미드 안에서 약 10세의 남자아이의 시신을 발견했다.
이 남자아이의 가슴 속에는 심장과 매우 유사한 기기가 있는데, 정밀한 외과 수술을 통해 설치된 것이었다. 인공 심장의 개발 성공은 20세기 80년대 인류 의학의 창조물이다. 누가 위의 발견이 상고 시대의 걸작이라고 믿을 수 있을까? 원시인들이 불을 밝힌 횃불 아래에서 서툰 돌칼로 이 남자아이의 가슴을 쪼개고, 정교하게 만들어진 인공 심장을 인체에 이식한 후 거친 양모 실로 상처를 꿰맸더니 기적이 일어나서 이 남자아이는 수술대인 돌판에서 펄쩍펄쩍 뛰며 내려왔다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이게 가능한가?
현대 천문학 연구에 따르면, 우리 태양계에 가장 가까운 별은 시리우스성이며, 그 직경은 태양의 2배이고 약 8.7광년 떨어져 있다(빛의 속도는 초당 30만 킬로미터이며, 빛이 1년 동안 이동하는 거리를 광년이라고 한다). 고대 역사 기록에 따르면, 시리우스 별의 색이 빨간색에서 흰색으로 변한 적이 있어 고대 천문학자들의 의문을 불러일으켰다.
19세기 중엽, 바이셀이라는 독일 천문학자는 시리우스성의 운동이 규칙적으로 물결치는 변화를 보인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래서 그는 대담하게 시리우스 별에 쌍성 체계를 이루는 동반성이 있을 것이라고 가정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천문학자들은 시리우스 별 옆에서 이 동반성을 찾았다. 그 밝기는 8등성이었고, 사람의 육안으로 볼 수 없었다. 천문학계에서는 이 동반성을 시리우스 B라고 불렀는데, 이는 적색 거성이 붕괴하여 형성된 백색 왜성으로, 그 자체의 밀도가 매우 높아 세제곱센티미터당 무게가 100톤에 달했다. 하지만 적색 거성이 대폭발을 통해 백색 왜성으로 붕괴되기까지는 일반적으로 수백만 년이 걸리며, 인류에게 지금까지 한 사례도 관찰되지 않았다.
20세기 30년대에 한 프랑스 과학자가 아프리카 말리 공화국 서부의 고립된 사막 지대를 깊이 조사하던 중 우연히 도곤 Dogon 이라는 토착 부족을 발견했다. 그들은 매우 낙후되어 당시만 해도 원시인 같은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바로 이 낙후된 부족이 프랑스 과학자들을 놀라게 했다.
그들은 방문한 프랑스인들에게 말했다: 시리우스에는 두 개의 위성이 있으며, 그 중 하나는 ‘파’ 별(시리우스B는 도곤인의 사투리로 ‘파’ 별)이라고 불린다. “파’ 별은 모든 별 중 가장 작고 무거운 별이다. 인류가 지구에 나타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파’ 별이 갑자기 대폭발을 일으켰고, 이후 점차 어두워졌으며, 시리우스 별의 색상 변화는 이번 대폭발과 관련이 있다.”라고 말했다.
프랑스 과학자들을 더욱 놀라게 한 것은, 도곤 사람들이 시리우스 B의 회전 주기가 50지구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시리우스는 또 다른 C별이 있는데 그것은 순수한 물의 별이며 지구보다 훨씬 많은 물을 가진 별이며, 그 무게는 시리우스 B의 1/4이고, 회전 주기도 50지구년이다. 도곤족의 이 말에 프랑스 사람들은 하마터면 입을 다물지 못했다. 사람들은 상상할 수 없었다. 세상과 단절된 토착 부족이 천문학자보다 시리우스 별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었다. 그들의 이러한 지식은 어디에서 배웠을까?
남미 카카호 고원, 고대 도시 디아바락의 신비로운 폐허에는 붉은 사암 덩어리로 조각된 거대한 신상이 있다. 신상에는 완전한 별자리 그림과 수백 개의 기호가 새겨져 있다. 고고학자는 다년간의 연구 끝에 마침내 별자리와 기호를 해독하였다. 그들은 이 별자리가 2만 7천 년 전의 고대 별하늘을 묘사하고 있으며, 그 기호들이 매우 심오한 천문 지식을 기술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지식은 현대 인류가 미처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수만 년 전 남미 카카호반에 살던 고대 인류는 어떻게 현대 인류를 능가하는 천문 지식을 습득했을까?
마찬가지로, 세계의 많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들은 여전히 몇몇 고대 도서관에 조용히 누워 있으며, 이러한 도서관에서 보존된 고대 문헌에서 우리는 마치 낯익은 문명 사회를 읽고 있다.
중국 고대 천문거성 중 가장 빛나는 사람은 동한 시대의 위대한 천문학자 장형(張衡, 서기 78-139년)이다. 그는 우주 구조 이론에서 혼천설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그는 하늘은 달걀 껍데기 같고 땅은 노른자 같아서 하늘은 크고 땅은 작다고 생각했다. 그는 하늘에 단단한 껍데기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단단한 껍데기가 우주의 경계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단단한 껍데기 밖의 우주는 공간과 시간 면에서 무한하다. 그는 ‘가까운 하늘은 늦고, 먼 하늘은 빠르다’, 즉 거리 변화로 행성 운행의 속도를 설명했다.
우주는 무궁무진하다. 장형은 사람들이 눈으로 보는 우주 세계가 제한적이지만, 사람들이 눈이 미치는 곳 외에 ‘천구’ 밖에는 여전히 공간이 있다는 것을 더욱 명확히 제시했다. 그는 “이곳을 지나간 것은 알지 못한다.(过此而往者,未之或知也) 여기서 미지혹지(未之或知)는 우주를 가리킨다. 우주의 표면은 끝이 없고, 우주의 끝은 무궁하다. 즉, 우리가 관측할 수 있는 공간은 한정되어 있으며, 관측할 수 없는 곳은 무궁무진하고 시작도 끝이 없는 우주이다. 이 단락의 말은 우주가 시간과 공간 모두에서 무궁무진하다는 생각을 분명히 제시한 대목이다.
중세의 천문학자 코페르니쿠스는 먼저 지구가 태양 주위를 회전한다는 견해를 제시했다. 그러나 그는 로마 교황에게 제출한 논문 서문에서 “내가 지구가 운동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옛사람의 책을 읽고 난 이후다.”
우리는 이미 코페르니쿠스가 어떤 책을 읽었는지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것은 그가 읽은 책은 인간이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관점을 인식한 것보다 훨씬 더 일찍이었다는 것이다.
서기 7세기, 아르메니아의 저명한 학자 A. 힐라카치도 같은 내용의 고서를 본 적이 있는데, 이 고문헌들은 지구가 하나의 원형 구체라고 기록하고 있다. 또 유대인의 고전 ‘바라’에서도 말한다.
“인간이 사는 지구는 공처럼 회전한다. 그 주민 중 일부가 아래에 있을 때, 다른 사람들이 위에 있다. 지구의 어느 한 지역이 밤이면 다른 지역은 낮이다. 또 어떤 지역의 사람들이 새벽을 맞이할 때, 다른 지역은 어둠에 싸여 있다.”
이상하게도, 《바라》는 분명히 이 견해의 발견자가 아니며, 역시 더 먼 고대의 문헌을 전하고 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중세 코페르니쿠스는 처음으로 태양 중심설을 주장하며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 과학적 발견을 고수하기 위해 브루노는 이탈리아 교회에 의해 광장에서 이단 혐의로 불에 타 죽었다. 위에서 언급한 몇 가지 문헌은 코페르니쿠스보다 몇 백 년 앞서 있으며, 어떤 문헌은 심지어 몇 천 년이나 앞서 있다. 이렇게 말하면 브루노의 죽음은 그야말로 운명이 만든 악의적인 장난이다.
18세기, 스베볼트라는 유명한 작가가 있었는데, 그는 상고 시대의 문헌에 매우 주의를 기울였고, 그는 일부 문헌의 연구중에 화성에는 두 개의 위성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이 발견을 대중에게 공개했다. 150여 년 후, 천문학자들은 화성 주변에서 두 개의 위성을 발견했다. 하나는 포보스이고, 다른 하나는 티모스이며, 시기는 1877년이다. 게다가 천문학자들이 관측한 두 위성의 작동 규칙과 주기는 스베볼트가 상고 문헌에서 얻은 결과와 매우 유사하다.
실제로 유럽 중세 천문학자들의 많은 과학적 발견은 하늘을 관측한 것이라기보다는 고대인의 책에서 얻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고대 문헌에 기록된 지식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지식의 주인은 또 어디로 갔을까.
인디언의 고문서 《포포카,우프》에서는 이렇게 썼다: 최초의 인류는 “세상의 모든 일에 정통했으며, 그들은 주위를 둘러보면 곧 천체와 지구 내부의 모든 구석을 꿰뚫어볼 수 있었다. 그들은 깊은 어둠 속에 숨어 있는 것까지도 볼 수 있다. 그들은 꼼짝도 하지 않고 눈 깜짝할 사이에 세상을 꿰뚫어본다. 다시말해 자신이 있는 곳부터 전 세계를 꿰뚫어보고 있다. 그들은 비길 데 없이 총명하고 현명하다.”
이 사람들이 위에서 말한 정체불명의 지식을 만들어 낸 사람들인가. 그들은 오늘날 우리 인류와 어떤 관계가 있을까?
위에서 언급한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는 지식을 뛰어넘는 발견들을 마주하여, 사람들은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 혼란스러워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직시해야 할 것은 20억 년 전의 원자로, 2만 7천 년 전의 방직술, 사전의 비행선, 기묘하지만 정확한 고지도, 수만 년 전의 인공 심장, 그리고 많은 정체불명의 천문 지식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이러한 이상한 현상에 대해 합리적인 설명을 해야 한다. 둔한 석기를 사용하는 원시인들이 그곳에서 코카콜라를 마시며 고화질의 컬러 TV를 보고 있었다. 불가능한 시대에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지금 가장 보수적이고 심각한 학자들조차도 위의 많은 아리송한 자료들을 마주했을 때, 아마도 우리가 한 과거의 과학 연구가 인류 초기 문명의 수준을 낮게 평가했을 것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실사구시의 태도는 이전의 교만함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갔지만, 여전히 기존 이론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했다.
대량의 같지 않은 지질 시기와 역사 시대의 인류 선사 문명의 증거가 끊임없이 발견되고 있다. 사전 시대 인류는 존재할 뿐만 아니라 고고학적 증거도 인류의 사전 문화가 매우 발달했음을 증명한다. 선사 시대 건축, 천문, 지리, 물리, 야금, 의학, 예술 등 여러 방면에서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으며, 심지어 현재의 과학 기술 수준도 그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
다양한 선사 시대 인류 문명 유적을 보면, 매우 오래된 고대 시대부터 우리 지구에는 인류가 계속 존재했으며 고도로 발달한 문명이 존재해 왔다. 그것들이 동일한 인류 문명 시기에 속한다고 상상하기 어렵다.
따라서 과학자들은 지구상에 여러 차례의 선사시대 인류와 문명이 있었다고 주장하며 여러 차례 선사시대 문명의 이론을 제시했다. 그들은 인류의 발전이 이전에 상상했던 것이 아니라 주기적이었으며, 서로 다른 시기에 지구에 다른 문명이 존재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발견은 오늘날의 교과서를 고치기에 충분하며, 선사 문명의 영광은 현대 기술을 훨씬 능가하고 인류는 진화하지 않고 오히려 퇴화하고 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70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