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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문명-숨겨진 진실: 개론 2

소학

【정견망】

기원 전의 가벼운 우주복

​멕시코에서는 고고학자들이 우주복을 입은 작은 인물상을 발견했으며, 제작 연대는 기원전 1150년부터 기원전 100년 사이로 추정된다. 그것은 머리에 우주 헬멧을 쓰고, 몸에 꼭 끼는 옷을 입고, 손에는 옷과 밀착된 장갑을 끼고, 발에는 표범의 발과 같은 부츠를 신어 현대의 우주인과 매우 흡사해 보인다. 자세히 살펴보면 이 사람이 입은 우주복은 1969년 달에 착륙할 때 암스트롱이 입었던 것과 달리 인물상의 우주복은 21세기에 개발된 최신형 바이오슈트 우주복처럼 훨씬 가볍고 몸에 밀착되어 있다.


왼쪽: 1969년 달 착륙 당시의 우주복, 활동하기 어렵고 상당히 육중하다. 중간: 21세기 최신 우주복 바이오슈트, 몸에 딱 붙고 가볍다. 오른쪽: 멕시코에서 발견된 기원 전 우주복, 몸에 딱 맞고 가볍다.

​고대의 조각가들은 어떻게 최신 우주복의 모양을 “상상”해 냈을까? 혹은 그들이 한때 고도의 문명을 가지고 우주 탐사를 할 수 있었고, 이후 문명이 파괴되어 기술이 실전되어 기억을 통해 과거의 첨단 기술을 조각해낸 것일까. 이 주제를 누군가 깊이 탐구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놀라운 성과가 있을 것이다.

이집트 나무새

​1891년 이집트 사카라(Saggara) 지역에서 적어도 2,000년의 역사를 가진 나무 새가 발견되었다. 발견 당시 비행기는 아직 발명되지 않았으며, 일반적인 목조 모형으로 여겨져 저장실에 오랫동안 먼지가 쌓여 있었다. 1969년에야 모형 제작에 능한 닥터 칼릴 메시하(Dr. Khalil Messiha)는 이것이 나무새 모형이 아니며, 일반 새와 달리 발도 깃털도 없고, 수평의 꼬리 깃털도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오히려 꼬리는 곧게 세우고 날개면이 있는 단면(airfoil cross-section)이 있어 항공기 제작 조건에 맞는다. 전문가의 연구에 따르면, 이 나무새는 일종의 활공 비행기의 모형일 것이다. 누군가가 비행 원리를 자세히 연구한 결과, 이 글라이더는 사실 작은 엔진만 탑재하면 시속 45~65마일의 느린 속도로 공중에서 활공 비행할 수 있으며, 매우 무거운 화물을 실을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것의 날개 모양은 콩코드호 초음속 여객기와 비슷하게 설계되었다.


​카이로 박물관에는 고대 이집트 묘지에서 발견된 나무새가 소장되어 있으며, 실제 연구에 따르면 비행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글라이더와 동일한 비율을 가지고 있다.

고대 천문의

​1900년, 일부 어부들이 물속 60미터 지점에서 기원전 1세기에 침몰한 그리스의 고대 선박에서 몇 가지 이상한 금속 조각을 인양했다. 이 금속 조각들은 현재 아테네 국립 고고학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외견상으로는 이것은 동으로 된 기계 부품이다. 고고학자 발레리오스 스테이스는 1959년에 이 조각들을 결합했는데 그것은 매우 정밀하고 복잡한 기어 장치로, 3개의 축과 40개의 톱니바퀴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 중 하나의 주 톱니바퀴에는 무려 230개의 톱니바퀴와 9개의 질서 있는 크기의 눈금이 있었다.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것은 달과 별의 위치를 계산하는 기기이다. 이 물건들은 보기에 매우 정교하고 공예 수준이 높아 보인다. 누가 3000여 년 전 그리스인들이 이미 정밀한 기계 장치를 사용했다고 믿겠는가? 지난번 차례 문명의 유물은 각 대륙에서 발견되었을 뿐만 아니라, 최근 수십 년 동안 사람들은 해양 대륙붕에서 계속해서 많은 것을 발견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대륙은 여러 차례 큰 변화를 겪었으며, 가장 최근 한차례는 지금으로부터 만 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대략 인류가 기록한 대홍수 시기에 발생한 일이다. 이 해저에 가라앉은 문화 흔적들은 모두 지구 선사 문명의 것이다. 그것들이 보여주는 건축 기술은 오늘날 우리의 역사학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너무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1917년 이집트에서 발견된 고대 유물은 지금으로부터 2200년 전으로 추정되는데, 외형이 수력 터빈의 기계 부품처럼 생겼고, 재질은 놀랍게도 매우 단단한 화강암이었다. 현대 과학의 관점에서 두 가지 문제는 깊이 생각할 가치가 있다. 첫째, 단단한 화강암을 어떻게 기계 부품으로 가공할 것인가? 분명히 높은 가공 기술이 필요하며, 둘째, 단단한 화강암으로 터빈 부품을 제작하면 현대 금속 터빈 부품의 가장 해결하기 어려운 마모 문제를 피할 수 있어 터빈의 내구성을 크게 향상시킬 수 있다.

​상고 시대의 모형 비행기

1879년 영국계 고고학자 웨스는 이집트 북동부 황무지 사막의 아비도스 사원 유적 내 부조 벽화에서 오늘날의 비행기와 같은 모양의 부조와 오늘날의 헬리콥터, 잠수함 또는 우주선, 심지어 3천 년 된 UFO와 같은 일련의 비행 물체를 발견했다.

인류의 첫 비행기는 1903년에 만들어졌는데, 이상하게도 3천 년 전 고대 이집트의 벽화에 비행기 모형이 등장했다.

1898년, 이집트의 한 4천여 년 전 고분에서 현대 비행기와 매우 유사한 모델이 발견되었다. 이 모델은 당시 고대 이집트에서 많이 생산되는 작은 무화과 나무로 만들어졌으며, 현재 카이로 고물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1969년 고고학자 카릴 미샤 박사는 이 박물관의 고대 유물 창고에서 새의 발을 가진 반인반조 모양의 새와 같은 많은 모형을 발견했다. 이 모형들은 머리가 약간 새처럼 생긴 것 외에는 모두 평평한 날개와 평평한 기체, 꼬리에 수직 꼬리 날개, 그 아래에 떨어진 수평 꼬리 날개 흔적이 있어 현재의 단일 날개 비행기와 매우 유사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남미에서도 이와 동시에 고대 이집트의 항공기 모델과 매우 유사한 일부 항공기 모델이 발견되었다는 점이다. 남미의 한 나라에서 현대의 B52 폭격기와 흡사한 금으로 주조된 고대 비행기 모형이 출토되었다. 과학자들의 분석에 따르면, 이 비행기의 모형은 설계가 정교할 뿐만 아니라 비행 성능도 갖추고 있었다.

​페루의 한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돌에는 망원경을 들고 천체를 관찰하는 사람의 상이 새겨져 있다. 본 대학의 광물학 및 석유학 연구소는 돌 틈의 산화층을 측정한 결과 산화층이 적어도 12,000년 이상임을 발견했다(그림 5, E). 그러나 오늘날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이탈리아 물리학자 갈릴레오가 망원경을 발명한 지 400여 년밖에 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중국 신화통신 런던 2000년 4월 26일 발: 미국 고고학자들은 이미 2만 7천 년 전의 구석기 시대에 사냥으로 생계를 이어가던 원시인들이 직조기를 이용해 모자, 옷, 바구니, 그물 등의 물품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을 발견했다.

《영국 고고학》 잡지에 따르면, 이전 고고학계는 방직술이 지금으로부터 약 5천에서 1천 년 전, 즉 농업 문명이 시작된 후에야 나타났다고 여겨져 왔다.

미국 일리노이 대학의 올가 소퍼 박사와 그의 동료들은 체코 공화국 내에서 발견된 90여 개의 구석기 시대 점토 파편을 분석한 결과, 그 위에 직물 자국이 있음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이러한 흔적은 얽힘, 평직 등 다양한 섬유 직조 기법을 보여주었다. 그 중 평직은 반드시 직기를 사용해야 한다. 이로부터 사냥 시기의 원시인들은 사람들이 원래 상상했던 것처럼 동물 가죽만 입었던 것이 아니라, 이미 정교한 직물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발견에 따라 소퍼 등은 유럽에서 발견된 일부 구석기 시대 여성 조각상들도 연구했다. 그들은 이 조각상들의 머리 위에 머리카락처럼 얽힌 것들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으며, 이는 이전에 항상 헤어스타일로 여겨져 왔다. 소퍼 박사는 말했다: “이제 보니 모자라고 하는 게 더 적절하다.”

​1991년에서 1993년 사이에 러시아 우랄 산맥 동쪽의 나야다(NARADA) 강가에서 몇 가지 특이한 물건이 발견되었으며, 그 중 많은 것들이 나선형이었다. 이 물건들의 크기는 3cm(1.2인치)에서 0.003mm, 1만분의 1인치였다! 오늘날까지 이 설명할 수 없는 선사시대 유물은 나야다강, 코즈힘강, 발반역강, Vtvisty와 Lapkhevozh라는 두 하천 옆의 수천 곳에서 발견되었으며, 대부분은 3미터에서 12미터 깊이에 있었다.

매우 다행히도 이러한 발견은 공식적인 탐사 과정에서 이루어졌다. 탐험대의 임무는 이 지역에서 귀금속과 비철금속을 채굴하려는 것이므로 지질학과 광물학 분석 장비도 가져왔다. 이 작업은 모스크바 귀금속과 비철금속 지질탐광 중앙과학연구소(Central Scientific Research Institute for Geology and Prospecting for Precious and Non-Ferrous Metals-ZNIGRI)의 지원으로 이루어졌는데 이 연구소는 러시아 광물지질개발 연방위원회 소속이다.

나선형 물체는 서로 다른 금속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림의 더 큰 것은 구리로 구성되어 있고, 더 작은 것은 희귀 금속인 텅스텐과 몰리브덴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금속 텅스텐은 무겁고 밀도가 매우 높으며 융점은 3410C(6100F)이며 주로 특수강에서 경화되며 비합금 형태로 전구의 필라멘트를 만드는 데 사용된다. 몰리브덴은 또한 밀도가 높고 융점이 높으며 2650C(4740F) 강철의 강화 및 부식 방지 성능 향상에 사용되며 주로 고응력 무기 부품 및 차량의 장갑에 사용된다.

현재 러시아 과학 아카데미는 사이크티브카(Syktyvka, 구소련 KOMI 공화국의 주도), 모스크바 및 세인트피츠버그의 과학자들, 그리고 핀란드 헬싱키의 과학자들이 이 초신비의 물체들을 연구하고 있다. 이러한 많은 미세 크기를 포함한 물체의 정확한 측정을 통해 이 나선체 크기가 황금 분할 비율을 충족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또한, 이러한 물체들은 설명할 수 없고 매우 발달된 과학 기술의 산물임이 분명하며, 현대의 최신 나노 기술인 나노 로봇의 마이크로 디바이스에 사용되는 화학 원소 제어와 매우 유사하다. 이 기술은 현재 우리에게 아직 초기 단계에 있다.

​이 물건들은 도대체 무슨 작용을 하는 것일까? 지금까지 진행된 검사에 따르면, 이러한 물건의 나이는 2만 년에서 31.8만 년 사이이며, 이는 종종 물건 발견의 깊이와 위치에 결정된다. 비록 그들의 나이가 2천 년 또는 2만 년밖에 되지 않더라도, 우리는 피할 수 없는 문제에 직면해야 한다. 세계 모든 사람 중에서 누가 그 당시 이렇게 초미세 미세섬유 물체를 만들 능력이 있었는가? 그중 일부는 현대 과학 기술이 오늘날까지 발전한 후에야 비로소 도달할 수 있었다.

​인도 남부의 고대 도시 간치브람에는 424개의 신전이 있다. 많을때는 한때 천 개에 달했다고 해서 ‘사찰의 도시’로 불렸다. 이곳의 신전에는 비행선의 조각상이 있다. 이 우주선 조각은 다양한 양식으로 조각되었으며, 그 위에는 많은 신화적 인물들이 새겨져 있지만, 그것들은 공통적인 이름인 ‘전신의 차’를 가지고 있다.

보통 사람들은 이 비행선이 신화 속 인물이 탑승한 기구로, 신화가 지어낸 존재할 수 없는 물건이라고 종종 생각한다. 그러나 1943년, 인도 남부 마이소르시의 산스크리트어 도서관은 무너진 사원 지하실에서 Vymaanila-Shaastra”라는 제목의 고대 산스크리트어 초안을 발견했다. 이 원고에는 6000줄의 분량으로 ‘전신의 차’ 비행선의 구조, 구동 방식, 비행선 제조 원료, 그리고 조종사의 훈련과 의상 등 많은 세부 사항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었다. 기록에 따르면, ‘전신의 차’의 비행 속도는 현대 계산 단위로 환산하면 시속 5700킬로미터이다.

인도 산스크리트어 학자와 기술 전문가들이 협력하여 이 문헌과 다른 고서의 기록을 바탕으로 ‘전신의 차’를 모방하여 만들었다. 만든 후 연구 결과에 따르면, 기술 수준 측면에서 이러한

“전신의 차”는 놀라운 기적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것은 현대 과학 기술과 비교했을 때, 비행선은 선사 시대에 건조되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연구자들은 ‘전신의 차’가 다중 구조의 비행선이라고 생각하며, 당시 비행선에는 절연 장치, 전자 장치, 공기 흡입 장치, 나선형 날개, 피뢰침 및 비행선 후미에 장착된 불꽃 분사식 엔진이 장착되어 있었다. 문헌에서는 비행선이 피라미드 모양으로 되어 있으며, 꼭대기는 투명한 덮개로 덮여 있다고 여러 차례 지적했다.

이러한 비행선을 건조하려면 다양한 현대 첨단 기술 수준의 능력이 필요하며, 현대 물리학, 특히 공기역학의 이론적 기초가 더욱 필요하다. 이는 현대인에게도 금세기 초에야 막 해결된 난제인데 이천여 년 전, 누가 고대 인도에서 이런 비행선을 만들었을까?

고대 인도인들은 비행선을 건조하는 데 필요한 기술 능력도 없고, 비행선을 조종할 과학적 지식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이들에게 비행선은 신들의 교통수단일 뿐이다. 그렇다면, 이 비행선을 조종한 고대 인도 신들은 과연 누구일까?

1929년, 터키 이스탄불의 셀라이 도서관에서 사람들이 양피지로 그려진 항해 지도를 발견했다. 물론 이것은 원래 그림이 아니라 정교한 복제품이었다. 그 지도에는 터키 해군 제독 피리 레이스의 서명이 있는데 날짜는 서기 1513년이었다.

조사 결과 레이스라는 사람은 확실히 있었고 그는 유명한 해적 마르 레이스의 조카였다. 평생을 바다를 업으로 살아온 사람이 항해도를 가진 것은 원래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의 이 항해도는 남다르다. 이 지도에는 대서양 양안의 윤곽이 정확하게 그려져 있으며, 북미와 남미의 지리적 위치도 정확하다. 특히 남아메리카의 아마존 강 유역, 베네수엘라 만의 혼 곶 등도 매우 정확하게 표시되어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지도에서 남극 대륙 전체의 윤곽이 매우 뚜렷하게 그려져 있으며, 현재 수천 미터 두께의 얼음으로 덮여 있는 남극 대륙 양쪽의 해안선과 남극 산맥도 그려져 있다는 점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퀘모랑드 지역이 가장 선명하다.

​남극대륙은 레이스의 지도보다 300년 이상 늦은 1818년에 발견되었다고 공인받고 있으며, 남극대륙이 얼음으로 덮인 것도 1만 5천여 년 전의 일이다. 이 지도의 존재는 남극 대륙이 얼음과 눈으로 덮이기 전에 누군가가 당시의 지리적 모습을 그려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인류는 1만5000여 년 전에 원시 석기시대였을 것이고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인 남극 지역을 갈수 없었고 지도를 그리는 선진 문화도 없었을텐데 이 지도의 원작자는 누구일까.

​1531년, 올론초스 프나우스도 남극대륙의 크기와 모양이 현대인이 그린 지도와 거의 같은 고지도 한 장을 가지고 있었다. 이 지도는 남극 대륙의 서부가 이미 얼음과 눈으로 덮여 있지만, 동부에는 여전히 육지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지구물리학자의 연구에 따르면, 약 6000년 전만 해도 남극의 동부는 비교적 따뜻했으며, 이는 프나우스의 지도에 반영된 상황과 매우 일치한다.

1559년 또 다른 터키 지도도 남극 대륙과 북아메리카의 태평양 해안선을 정확히 그렸는데 놀랍게도 이 지도에는 시베리아와 알래스카를 다리처럼 연결하는 좁은 지대가 있었는데, 지도에는 현재의 베링해협 지역이 틀림없다. 하지만 베링해협이 형성된 지 1만 년이 넘었고, 시베리아와 알래스카의 중간쯤 되는 이 지대는 그때는 푸른 물결 아래로 사라졌다. 이 지도의 작자는 뜻밖에 1만여 년 전의 지구 지형을 훤히 꿰뚫고 있으니 정말 불가사의하다.

​또 다른 이상한 일이 고대 그리스의 프톨리마이오스 시대 지도에서 나타난다. 사람들은 이 지도를 통해 스웨덴 전체가 두꺼운 얼음 아래에 묻혀 있는 것을 분명히 볼 수 있으며, 이 지질 변동의 시대는 이미 지금으로부터 매우 멀리 떨어진 시기였다.

이 지도들은 정확할까? 오랫동안 사람들은 줄곧 논쟁을 멈추지 않았다. 1952년, 미국 해군은 첨단 에코 탐지 기술을 이용하여 남극의 얼음으로 덮인 산맥을 발견했는데 피리 레이스 제독의 지도와 비교하면 둘은 거의 같다. 이는 과학자의 머리 위에 거대한 폭탄을 터뜨린 것에 못지 않았고, 그 충격 속에서 일련의 의문이 제기되었다: 1만 년 이상 이전에 이렇게 정확한 지도를 그리고 후손들을 엄청나게 놀려준 사람은 누구일까?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7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