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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문명-숨겨진 진실: 개론 1

소학

【정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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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론
1장: 대홍수 – 인류 공통의 기억
2장: 먼 옛날의 발자취
3장: 사전의 제련 기술
4장: 선사시대 예술
5장: 거인과 소인
6장: 어디에나 있는 피라미드
7장: 달의 수수께끼
8장: 진화론-20세기 최대의 사기극

아프리카 중부에 위치한 가봉공화국에는 경치가 매우 아름다운 오클로(Oklo)란 지방이 있다. 하지만 오클로의 명성은 그 풍경 때문이 아니라 신비로운 원자로 때문이다.

1972년 6월, 오클로의 우라늄 광석이 프랑스의 한 공장으로 운송되었다. 프랑스 과학자들은 이러한 우라늄 광석을 엄격하게 과학적으로 측정한 결과, 이러한 우라늄 광석은 핵연료로 직접 사용할 수 있는 우라늄 235의 함량이 낮거나 심지어 0.3% 미만으로 낮다는 것을 발견했다. 다른 모든 우라늄 광산의 우라늄 235 함량은 0.73%여야 한다. 이러한 특이한 현상은 과학자들의 높은 관심과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다양한 첨단 기술 수단과 과학적 방법을 사용하여 이러한 광석의 우라늄 235 함량이 낮은 원인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여러 차례의 심도 있는 논의와 연구 끝에 과학자들은 이 우라늄 광석들이 이미 연소되었고, 이미 사람들에 의해 사용되었다는 사실에 매우 놀랐다. 이 중대한 발견은 즉시 과학 기술계를 뒤흔들었다. 사실을 철저히 규명하기 위해 유럽과 미국의 일부 국가에서는 많은 과학자들이 오클로 우라늄 광산 지역을 방문하여 심도 있는 조사와 연구를 진행했다.

오랜 공동 노력 끝에 오클로에는 매우 오래된 원자로, 일명 핵원자로가 있는 것으로 판정되었다. 이 원자로는 6개 구역의 약 500톤의 우라늄 광석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출력은 약 1000킬로와트에 불과했다. 과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이 광산의 광물화 된 시대는 약 20억 년 전이며, 원자로는 광물화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작동을 시작했고, 작동 시간은 50만 년에 달했다. 놀랍게도, 이 원자로의 구성은 매우 합리적이었다.

예를 들어, 현재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 원자로는 몇 킬로미터에 달하며, 이렇게 거대한 원자로는 주변 환경에 대한 열 간섭이 반응 구역 주변 40미터 이내로 제한되어 있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핵반응에 의해 생성된 폐기물이 확산되지 않고 광구 주변에 국한되었다는 점이다. 이 “천연” 대형 원자로와 비교할 때, 오늘날 인류가 건설할 수 있는 가장 큰 원자로는 무색해 보인다.

프랑스 정부는 이 발견을 발표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과학자들은 이 우라늄 광산을 연구했으며, 연구 결과를 1975년 국제원자력위원회(International Atomic EnergyA-gency) 회의에서 발표했다.

이 모든 것에 직면하여 과학자들은 이것이 “천연” 원자로임을 인정하고 이를 교과서에 포함시켰으며, 핵폐기물 처리에서의 가치를 연구했다. 하지만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탐구하려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 원자로는 도대체 누가 설계하고, 건설하고, 남긴 것일까? 이것은 전 세계 과학자들도 풀지 못할 특별한 미스터리이다. 이 기적은 오클로 광구에서 발생했기 때문에 과학자들은 이를 ‘오클로 미스터리’라고 부른다.

이 오래된 원자로는 자연적으로 형성된 것일까? 과학자들은 자연계가 연쇄 반응에 필요한 매우 까다로운 기술 조건을 전혀 충족할 수 없기 때문에 이러한 가능성을 일제히 부정했다. 오로지 인공적인 과학적 방법을 사용하여 우라늄과 같은 중원소의 원자핵이 중성자에 의해 충격을 받을 때만 조각으로 쪼개지고 중성자를 방출할 수 있으며, 이 중성자들은 우라늄의 원자핵에 다시 주입되어 핵분열-연속적인 핵반응(연쇄반응)을 일으켜 원자핵이 핵분열 또는 융합반응을 일으킬 때 대량의 에너지를 방출한다. 원자로는 우라늄 등 방사성 원소의 원자를 핵분열시켜 원자력을 얻는 장치다. 이 장치는 절대 자연적으로 형성될 수 없으며, 엄격한 과학적 원리와 절차에 따라 고도로 정밀하고 첨단 기술 수단과 장비를 사용하여 과학자와 전문 기술자가 건설해야 한다. 오직 인공적인 방법으로 우라늄 등이 연쇄 반응을 통해 또는 수소 핵이 열핵 반응을 통해 헬륨 핵을 중합하는 과정을 통해 원자력을 얻을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원자로의 건설자는 누구일까. 현재의 과학 연구 방식에 따르면, 일찌기 20억 년 전에는 지구에는 단지 진핵 세포의 조류藻類 계통만 있었고, 인류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초기 원시인은 신생대 제4기 갱신세 초기(지금으로부터 약 300만 년 전)에 이르러서야 나타나기 시작했다.

인류는 제2차 세계대전 말기에야 첫 원자폭탄을 만들었다. 1950년, 미국 아이다호주의 사막에 있는 한 실험실에서 처음으로 원자력 발전을 사용했다. 1954년에야 소련은 세계 최초의 원자력 발전소를 건설했다. 이로 볼 때, 지금으로부터 20억 년 전 오클로에서 건설된 원자로는 결코 우리의 이번 지구상의 인류가 한 것이 아닐 것이다. 사실 현재 많은 사람들이 이것이 선사 문명이 남긴 유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즉, 20억 년 전 오늘날 우리가 오클로라고 부르는 곳에는 오늘날 인류의 문명을 훨씬 능가하는 고도로 발달된 문명이 존재했을 가능성이 있다.

유명한 고대 인도 서사시 《마하바라타》(Mahabarata-인도 고대 산스크리트어 서사시로서 힌두어로 “위대한 바라타 왕의 후예”를 의미하며, 반도와 줄루 두 민족의 왕위 쟁탈전을 묘사하고 있다. 《라마야나》와 함께 인도의 두 주요 서사시로 불린다.)는 기원전 1500년 경에 쓰여졌으니 지금으로부터 약 3,500여 년 전이다. 책에 기록된 역사적 사실은 책이 완성된 시기보다 2000년 더 빨랐다고 하는데, 이는 책 속의 일이 지금으로부터 약 5000여 년 전에 발생했음을 의미한다.

3천여 년 전에 만들어진 인도의 서사시 《마하바라타》는 여러 차례의 치열한 전쟁을 기록하고 있으며, 이 삽화는 여러 신들이 비행 담요를 타고 전쟁을 관람하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이 책은 인도 갠지스강 상류에 거주하는 크라바인과 반다바인, 프리히니인과 안하카인의 두 차례 치열한 전쟁을 기록하고 있다. 이해할 수 없고 놀라운 것은 이 두 전쟁의 묘사를 보면, 그것은 핵전쟁이라는 것이다!

책 속의 첫 번째 전쟁은 이렇게 묘사되어 있다: “용감한 아트와탄은 비마나(비행기와 유사한 비행기) 안에 안정적으로 앉아 물에 착륙했고, ‘아그니아’를 발사했다. 미사일 같은 무기는 적 상공에서 폭우와 같은 밀집된 빛과 불꽃의 화살을 뿜어낼 수 있었으며, 적을 포위하여 무한한 위력을 발휘했다.” 찰라간에 짙은 그림자가 빠르게 반다바인 상공에 형성되었고, 상공은 컴컴해졌다. 암흑 속에서 모든 나침반이 기능을 잃었고, 이어서 거센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휘몰아치며 먼지와 자갈을 일으켰고 새들이 미친 듯이 울기 시작했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갈라지는 것 같았다.

「태양이 마치 공중에서 흔들리는 것 같았고, 이 무기는 무서운 열기를 발산하여 땅과 산을 뒤흔들고, 넓은 지역에서 동물들이 불에 타 변형되며, 강물이 끓고 물고기와 새우 등이 모두 불에 타 죽었다. 로켓이 폭발할 때 우레와 같은 소리가 울렸으며 적병을 나무줄기처럼 불에 태웠다. 」

만일 아트와탄의 무기가 불의 폭발과 같은 결과를 초래했다면, 구르카의 공격의 결과는 핵폭탄 폭발과 방사성 낙진 중독이다.

두 번째 전쟁의 묘사는 더욱 섬뜩하고 두려웠다. “구르카는 빠른 비마나를 타고 적의 세 도시를 향해 미사일을 발사했다. 이 미사일은 마치 우주 전체의 힘을 가진 것처럼 보였으며, 그 밝기는 마치 만 개의 태양과 같고, 불꽃기둥이 하늘로 치솟아 장관을 이루었다.” “시체는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타버렸고, 머리카락과 손톱이 벗겨졌으며, 도자기는 터졌고, 날아다니는 새들은 고온에 타버렸다. 죽음을 모면하기 위해 전사들은 강에 뛰어들어 자신과 무기를 씻었다.”

고고학적 자료도 서사시의 묘사를 증명한다. 고성 유적지에는 매우 뚜렷한 폭발 지점이 있는데, 약 1평방킬로미터 반경 내의 모든 건축물이 깡그리 소실되었다. 폭발 중심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는 사람들이 많은 인체 골격을 발견했는데, 이는 파괴 정도가 가까운 곳에서 먼 곳으로 점차 약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폭발 구역에서 부서진 점토가 발굴되었는데 추정한 연소 온도는 1만 4천에서 1만 5천 도이며 이런 고온은 오직 원자폭탄의 핵폭발이 있어야만 도달할 수 있다! 놀랍게도 고성의 폐허는 원폭 직후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와 흡사했고, 바닥에는 아직도 충격파와 방사능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데켄 원시림에서도 많은 불탄 폐허가 발견되었다. 폐허의 성벽은 결정화되어 유리처럼 매끄럽고, 건물 내의 석조 가구 표면도 유리화되었다. 우리는 바위가 녹으려면 최저 온도가 섭씨 1,800도에 도달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인도 외에도 고대 바빌론, 사하라 사막, 몽골의 고비 사막에서도 유사한 폐허가 발견되었다. 폐허 속의 ‘유리석’은 오늘날 핵실험장의 ‘유리석’과 완전 똑같다.

이러한 사료 기록과 일치하는 고고학적 발견을 통해 우리는 5천여 년 전 인류가 인도에서 고도의 문명을 발전시켰고, 핵에너지의 응용에 매우 익숙했지만, 결국 권력 다툼으로 인해 핵에너지를 남용하여 그들을 멸망시켰다고 추측할 수 있다. 아프리카 오클로에서 발견된 20억 년 전의 원자로와 비교할 때, 당시 인류는 평화적인 용도로 사용할 수 있었고, 자연 지형을 이용해 핵 폐기물을 쌓을 수 있었다. 이 고도의 물질 문명은 분명히 상대적으로 높은 정신 문명 하에서 발전한 것으로, 50만 년 동안 작동한 것은 50만 년의 평화와 번영을 의미한다. 그렇지 않으면 서사시에서 묘사된 것처럼 핵 무기를 사용하여 서로를 공격하면 50년도 채 되지 않아 멸망할 수 있다! 현대 인류는 겨우 몇십 년 된 핵에너지 기술인데, 단지 핵폐기물 문제만 해도 끊임없이 논쟁하고 있으며 하물며 다른 것들은 말할 것도 없다. 우리는 정말로 이 때문에 부끄러움을 느껴야 한다.

바이킹 렌즈(The Visby Lens)

바이킹의 항구 마을인 Fr□el(현재 스웨덴의 고틀란드)에서 진행된 고고학 발굴 작업에 따르면, 10세기에서 11세기 사이에 바이킹이 이미 수정 렌즈를 제조할 수 있었으며, 품질은 1950년대의 렌즈와 비교할 수 있고 해상도는 25~30마이크로미터에 달했다. 이 렌즈는 짧은 거리(15.4mm)에서 초점을 맞출 수 있으며 비구면 형태로 빛을 작은 점에 정확하게 초점을 맞출 수 있었다.

일반 렌즈는 구면 형태이므로 구면 수차 문제를 일으키는 반면 비구면 렌즈는 구면 수차를 줄일 수 있다. 역사 기록에 따르면 비구면 렌즈의 제작 이론은 17세기에 Descartes에 의해 도출되었지만, 당시의 공예 기술로는 아직 제작할 수 없었고 20세기에 이르러서야 인류가 제조할 수 있게 되었다, 현재는 고급 카메라 렌즈와 정밀 광학 기기에 자주 사용되고 있다. 현대 광학 원리로 분석한 결과, 중세의 바이킹 렌즈는 구면 수차가 매우 작다는 것을 발견했다.


바이킹 렌즈. 스웨덴 고틀란드에서 발견된 바이킹 렌즈


현대 광학 원리를 분석한 결과, 중세의 바이킹 렌즈는 수차가 매우 작으며, 이러한 뛰어난 기술은 천 년 동안 전해지지 않았다.

Oliver Graydon 가 쓴 “Medieval Lenses Exhibit Modern Performances” 라는 글에서 이런 서술이 나온다:

“이러한 결과를 바탕으로 중세 광학 지식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재고해야 한다.”라고 알렌 응용과학 대학의 올라프 슈미트는 말한다. “타원 렌즈 설계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일찍 발명된 것 같다. 그러다 거의 천 년 동안 그 지식이 사라졌다.”

바이킹의 비구면 거울은 몇 가지 정보를 드러낸다. 첫째, 인류는 11세기에 이미 매우 단단한 수정 렌즈를 다듬고 제작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둘째, 인류는 11세기에 이미 구면 렌즈가 한 점에 빛을 모을 수 없는 구면 수차 문제를 이해하고 해결할 방법이 있었다. 셋째, 11세기에는 아마도 비구면 렌즈의 고정밀 광학 기기가 필요했지만, 그 후 전파되지 않았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7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