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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건의 《제파산사후선원(题破山寺后禅院)》: 불문(佛門)의 참 경지

임우(林雨)

【정견망】

중국인들은 흔히 “불문(佛門)은 청정한 곳”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진정한 불문은 청정하지만, 그렇다고 죽은 듯한 고요함은 아니다. 순수하고 깨끗한 것이 근본이다. 목소리를 예로 들면, 시끄러운 잡음이 없어야 가장 좋다.

성당(盛唐) 시인 상건(常建)의 시 《제파산사후선원(题破山寺后禅院)》를 읽을 때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분명 새소리와 종소리가 있는데 어찌 적정(寂靜)할 수 있는가? 자세히 읽어보고 나서야 내 생각이 얕았음을 깨달았다. 시인은 무너진 산사 곳곳에서 소리를 들을 수 있었지만, 모두 순수하고 깨끗한 소리였다. 깨끗한 곳이라야만 진정한 고요함(靜)이 있는 것이다.

맑은 새벽에 옛 절로 들어가니,
막 뜨는 해는 겨우 높은 숲에 다다랐고,
굽이도는 길은 그윽한 곳으로 통하여,
참선하는 절 방은 꽃과 나무들 속에 있구나.

산 경치는 새들의 본성을 기쁘게 하고,
못에 비치는 그림자는 사람들 마음을 비우게 하네.
온갖 소리 모두 없어 고요한데,
풍경 소리만이 여운을 남기는구나.

清晨入古寺,初日照高林。
曲径通幽处,禅房花木深。
山光悦鸟性,潭影空人心。
万籁此都寂,但余钟磬音。

“맑은 새벽에 옛 절로 들어가니,
막 뜨는 해는 겨우 높은 숲에 다다랐고,
굽이도는 길은 그윽한 곳으로 통하여,
참선하는 절 방은 꽃과 나무들 속에 있구나.”

이 네 구절은 시간, 장소, 환경, 위치를 묘사한다. 시인은 이른 아침 옛 절에 갔는데, 아침 해가 우뚝한 고목 위로 비춘다. 구불구불한 길이 은밀한 곳으로 이어졌는데, 바로 선방(禪房)이었다. 그곳은 나무가 무성하고 꽃과 풀이 만발했다.

여기에는 사실 작은 디테일이 숨어 있다. 우리가 평소 사찰에 가면 관광객이나 소원을 빌러 온 신도들이 많다. 그래서 사실 매우 시끄럽다. 하지만 시인은 이른 아침에 갔기에 참배객이 아직 오지 않아 소리가 자연스럽게 훨씬 고요해진다.

“산 경치는 새들의 본성을 기쁘게 하고,
못에 비치는 그림자는 사람들 마음을 비우게 하네.
온갖 소리 모두 없어 고요한데,
풍경 소리만이 여운을 남기는구나.”

산들바람이 나뭇잎을 스치며 햇살을 변화시키고 새들이 지저귀게 한다. 참배객의 방해가 없으니 새들은 더욱 활발해 보인다. 시인 자신의 모습이 깊은 연못에 비쳐 모든 것이 공허하고 맑게 느껴진다. 이곳은 마치 세상 밖 무릉도원처럼 순수하고 깨끗해 오직 종소리만 들릴 뿐이다.

왜 분명히 활발하게 지저귀는 새들이 있는데 종소리만 들렸을까? 이 또한 시인의 탁월한 점이다. 앞서 언급된 ‘높은 숲’이 바로 이유다. 새들이 높은 곳에 있어 소리가 작으니 들리지 않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시인은 아마도 마음에 근심이 있어 절에 왔을 것이 같다. 이곳에서는 모든 근심이 구름 너머로 사라져 버린다. 마치 다른 세계, 번뇌 없는 세계에 들어온 듯하다. 순수하고 깨끗한 소리, 사람 마음이 텅 빈 연못의 그림자, 만개한 다양한 꽃들.

진정한 신불(神佛)의 세계는 사실 더 아름답다. 그곳은 절대 아무것도 없어서 마치 나무토막처럼 무미건조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더 우아한 소리, 아름다운 그림이 존재한다. 다만 모든 것이 순수하고 아름다울 뿐이다.

우리가 평소 음악을 들을 때면 대개 경쾌하고 열정적인 곡을 선호한다. 그러나 음악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이들은 자연스럽고 우아하며 세속적이지 않은 음악을 좋아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기분이 좋아지려고 음악을 듣는 것이지, 아름다운 음악을 감상하기 위해 듣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음악을 이해하는 사람은 순수하고 깨끗한 소리를 통해 아름다운 경지로 들어간다.

진정한 고요함은 소리가 아예 없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다 순수한 것이다. 그것은 아름다운 경지로 통하는 일종의 통로가 된다. 션윈(神韻)의 음악은 모두 매우 순수하고 아름다우며, 진정으로 깨끗해질 때라야 비로소 고요[靜]해질 수 있고 아름다운 신불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83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