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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속의 고통과 법 속의 즐거움

춘성(春醒)

【정견망】

작년, 나는 낯선 동네로 이사를 가게 되었고, 사존(師尊)께 제자가 법 공부할 곳을 찾아달라고 부탁드렸다. 자비로우신 사부님께서는 동네 채소 가판대에서 한 여성이 대법에 대해 하는 말을 우연히 듣게 해 주셨다. 나는 속으로 사존께 감격했다. 매일 단체 법 공부에 참여하자 법의 위력이 곧 나타났다. 나는 마침내 수련의 의미를 깨달은 것 같다. 동수들의 도움으로 진정으로 안으로 자신을 찾는 법을 배웠다. 이렇게 하자 내 전반적인 수련 상태가 근본적으로 변화했고 나는 날마다 사존의 호탕한 홍은(洪恩)에 빠져 있다.

아래에서 나는 지난 1년간 자신의 수련 체험을 정리해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께 보고드리고 사존에 대한 제자의 무한한 감사를 표시하고자 한다.

1. 대법을 수련하자 사존께서 내 운명을 바꿔주시다

어렸을 때 점쟁이는 내 수명이 30세라고 했다. 법을 얻었을 때 나는 29세였다.

1997년 어느 날, 남편은 신이 나서 《전법륜》 책을 집으로 가져오며 내 목숨을 지킬 수 있다고 했다. 자신을 책을 읽지 않고, 오히려 나더러 읽어 보라고 했다. 그가 내가 30까지밖에 살 수 없다는 말을 들었을 때 우리는 아이가 셋이나 있었다. 나는 이 보서(寶書)를 읽자마자 나는 기쁨에 휩싸였다. 내 생명이 법연(法緣)과 연계되었고, 나는 법을 얻었다.

이듬 해, 나는 30세가 되었다.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온갖 혼란스러운 생각들이 갑자기 사상 속에 가득 나타났다. 누가 어디서 죽었는지, 어디서 나쁜 일이 일어났는지, 어디서 재난이 닥쳤는지 끊임없이 들려오는 목소리들이었다. 그리고 모든 나쁜 일들이 내 잘못이며, 모두 내 잘못이라고 알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사상업력의 교란이 아주 심했던 것 같다. 당시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동네에서 재앙을 봐주는 사람이 와서 두 귀신이 내 목숨을 빼앗으려고 왔다고 했고, 병원에서는 정신병이란 진단을 내렸다. 매일 내 머릿속은 어떻게 죽을지 생각으로 가득했다. 이를 본 남편은 내 곁을 지키며 어디든 나를 따라다녔다. 어느 날, 남편은 졸다가 갑자기 깨어났다. 그 짧은 순간에 나는 집안에 벌레를 죽이려 보관하던 살충제를 다 마셔 버렸다. 남편은 몹시 화가 나서 불안해하며 병원으로 나를 때리면서 끌고 갔다.

당시 나는 막 법(法)을 얻어 법리를 제대로 몰랐다. 아무도 우리를 도와주지 않았고, 모두 내가 정신병을 앓고 있어서 법을 파괴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살충제를 마신 후에도 별다른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의사가 나더러 무엇을 얼마나 먹었는지 물었다. 내 말을 듣자 겁에 질린 의사는 남편더러 빨리 큰 병원 응급실로 가라고 했다. 시내 병원에 가려면 장강(長江)을 건너는 나룻배를 타야 했다. 만약 사부님의 보살핌이 없었다면 나는 아예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나룻배를 기다리며 사부님께 말씀드렸다.

“사부님, 저는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바로 이 나쁜 일을 다 제가 했으니 저도 살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정말 법을 잘 공부하고 싶습니다. 사존께 면목이 없고 대법에 면목이 없습니다!”

내가 바른 일념(一念)이 나와 생명이 대법을 생각했을 때 사부님께서 즉시 나를 도와주셨다. 나는 위장이 심하게 뒤틀리며 격렬하게 토하는 것을 느꼈고, 뱃속에 있던 살충제가 다 쏟아져 나왔다. 바닥에는 커다란 유백색 거품이 타올랐다. 사부님께서 내 목숨을 구해 주셨다!

2. 정을 내려놓자 완전히 다른 세상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제자들에게 “사람의 전반 수련과정은 바로 끊임없이 사람의 집착심을 제거하는 과정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처음 수련이란 집착을 없애는 것임을 알았을 때, 나는 순진하게 생각했다.

‘나는 다른 집착심부터 없애고, 남편에 대한 정과 사랑은 마지막에 내려놓아야겠다.’

법리(法理)를 똑똑히 이해하지 못했기에 나는 집착 속에서 수련했다. 수련은 집착을 제거해야 했지만, 나는 집착을 끌어안고 내려놓지 못했으니 어떻게 수련할 수 있겠는가? 수련은 정말 괴롭고 힘들었다. 이 과정에서 나는 큰 좌절을 겪었고, 1년 반 동안 사악의 박해를 받았다. 검은 굴에서 집에 돌아와 허물어진 집을 보자 마음이 너무 아팠다. 남편과 함께 있으면서 남편이 여전히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들은 또 도박 빚을 갚기 위해 신혼집을 팔았고, 빚을 지고 사업에 투자했다. 며느리가 둘째 아이를 출산할 무렵인데 모든 것이 엉망이었다.

며느리가 또 딸을 낳았는데, 내가 수련하는 것을 막으려고 한 달밖에 안 된 손녀를 나 혼자 키워야 했다. 며느리는 모유 수유를 하지 않아서 젖병에 우유를 짜서 손녀에게 먹이라고 했고 나를 더 힘들게 했다. 이런 방식으로 나더러 수련을 포기하라고 압박했다. 아들이 신혼집을 팔고 나서 우리는 그들과 함께 살지 않고 따로 집을 빌려 살았다.

나는 같은 소구(小區)의 동수를 찾았는데 사존께서 배치해 주신 노동수의 집이었다. 당시 그분은 거의 여든 살이었고, 나보다 몇 달 어린 그녀의 딸도 같이 수련했다. 당시 나는 손녀를 혼자 키우고 있었다. 남편은 일 년 내내 배를 타러 나갔기 때문에 어디를 가든 내가 손녀를 데리고 다녀야 했다. 나는 아이를 안고 법을 배우러 갔다. 내가 법을 읽자마자 동수는 내가 법 공부를 충분히 하지 않았다며 문제를 지적했다. 그녀들은 손녀딸의 시끄러움도 개의치 않았고, 사부님께서 마련해 주신 이 소중한 환경을 소중히 여기며 날마다 단체 법 공부를 하러 오라고 권했다. 특히 우리 집과 건물 세 채밖에 떨어지지 않는 가까운 곳이었다. 내가 법에서 제고하기를 바라는 동수들의 마음과 사존의 자비는 나의 걱정하는 마음을 없애고 내가 온몸과 마음을 법 공부에 쏟아부을 수 있게 했다.

매일 대량의 법을 공부하고 동수들과 교류하면서 나는 점차 자신의 차이를 깨달았다. 그 당시 법을 배우지 않았다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모른다. 남편은 배를 타기 시작한 후 손에 돈이 생기니 나쁘게 변했다. 자신이 번 돈을 우리에게 주지 않았다. 모두 남편에게 여자가 생긴 것을 알았다. 내가 아무리 화를 내도 그는 신경 쓰지 않다. 수련인은 자살할 수 없으니, 나는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가 배에 태우고 다니는 여자를 보면서 사존께 물었다.

“저는 왜 이렇게 고생스러울까요?”

그러자 사부님께서 내게 한 장면을 보여주셨다. 어느 한 세(世)에 그는 나를 위해 온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내 손을 잡고 동행했다. 금세(今世)에 나는 그의 빚을 갚고 있는 것이다. 사실, 나는 그를 볼 때마다 모든 분노가 사그라들곤 했다. 그가 나아지기를 기다리며 간절히 바랐다. 어느 해 남편은 설 명절에 내게 300위안밖에 주지 않았다. 나는 아이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 세 아이에게 설 옷을 한 벌씩 사주었다. 아이들은 기뻐했지만 나는 걱정되었다. 정월이 끝나기도 전에 이웃에게 쌀을 빌려야 했다. 우리는 시골 출신이라 그저 남편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남편이 돈을 주지 않으면 나는 정말 다른 방법이 없었다.

나중에 아이들이 다 자라 도시로 이사했을 때, 나는 품팔이를 하고, 남의 시중을 들고, 거리를 쓸었다. 때로는 빵 한 조각까지 세어가며 아들에게 집 사줄 돈을 악착같이 모았다. 하지만 이런 육체적 고통보다 더 괴로운 것도 있었으니 바로 남편에 대한 기대였다! 내게는 이 고통이 정말 가장 괴로웠다.

내가 과거에 얼마나 많은 나쁜 짓을 저질렀는지 모르겠지만 아들도 내게 빚을 받으러 왔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늘 아들 때문에 노심초사했다. 우리는 이렇게 힘들었지만, 아들한테 집을 사주고 아내를 얻도록 필사적으로 일하며 백만 위안이 넘는 돈까지 대출받았다. 하지만 아들은 온라인 도박에 빠져 이 집을 팔아버렸고, 그로 인해 얼마나 많은 빚을 지게 되었는지 모른다. 며느리를 보니 마치 과거 내 모습이 떠올랐다. 남편이 변변치 못한데다 또 두 딸을 키워야 했다. 나는 그래도 대법의 도움이 있었지만 며느리는 나처럼 운이 좋지 않았다. 때문에 며느리가 나를 아무리 오해해도 나는 늘 잘 대해주었다.

두 부자는 날마다 내게 심성관을 넘기게 했고 나는 늘 눈물을 흘리며 견뎌냈다. 이런 내 모습을 본 동수들이 나를 일깨워 주었다. 관념을 개변해 고층차의 이치로 주변 사람과 일을 대하라고 했다. 그 당시 나는 대량의 법 공부를 했기에 동수들 말이 옳다는 것은 알았지만 실천하지는 못했다.

그날 밤, 나는 생각했다.

‘정법이 다 끝나가는데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는 사존께 제자를 가지하고 점화해주십사 청했다. 사부님께서 내가 제고하려는 마음을 보셨는지, 즉시 내가 법을 처음 얻었을 때의 생각이 떠올랐다.

“남편에 대한 정과 사랑을 마지막에 내려놓아야겠다.”

‘마지막’이라고, 지금 이미 마지막이 아닌가? 나는 여전히 정을 끌어안고 내려놓지 못했는데 착실히 수련하는 동수들과 차이가 아주 멀다. 나는 또한 자신의 지난 20여 년 수련에서 바로 이 정(情) 때문에 이런 고생을 했다는 것도 깨달았다. 속인은 “늘 마음에 걸려 있다”는 말로 정에 대한 집착을 표현한다. 늘 뭔가가 매달려 있는데 누군들 편안할 수 있겠는가?

“마지막에 내려놓겠다”는 그 바르지 못한 일념을 떠올리자 사부님의 법이 끊임없이 머릿속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원래 남편과 아들은 모두 내 수련을 돕기 위해 온 것이다. 그들은 모두 나를 위해 감당하고 나를 성취하게 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동수들이 줄곧 내게 일깨워준 고층차의 이치로 가늠하라는 것이었다. 마치 모든 이치가 분명해진 듯 온몸이 떨려왔다. 그 순간, 남편과 아들에 대한 원망이 사라졌다. 사존께서 나를 위해 해결해 주셨다.

생각과 마음이 바뀌자, 나는 진심으로 그들의 고통을 느낄 수 있었다. 더 이상 남편이나 아들을 원망하지 않았고, 그들을 선심(善心)으로 대할 수 있었다. 그후 무슨 일이 있어도 내 마음은 늘 평온했고, 아무도 나를 움직일 수 없었다. 내가 변하자 그들도 변했다. 남편은 이 손녀를 끔찍하게 예뻐했다. 배에서 내리자마자 손녀를 안고 달려가 불을 피우고 요리하느라 집을 나가지 않았다. 아들 역시 딸의 도움으로 착실히 직장에 다니기 시작했고, 모두 바로 잡혔다.

이 글을 쓰면서 나는 30세라는 그 수명은 구세력이 정한 것임을 깨달았다. 만약 내가 수련하지 않았다면, 남편이 돈 때문에 나쁘게 변했을 때 분명히 자살했을 것이다. 하지만 수련 후, 사부님께서는 이 난(難)을 이용해 내 생명을 구해 주셨고 내 수련을 보장해 주셨다. 집착을 끌어 안고 수련한다면 그 고통은 다 스스로 구한 것이다.

사존께서는 말씀하셨다. “내가 예전에 말했다. 내가 말하는데, 실제로 속인사회에서, 오늘날에 발생된 일체 일들이 모두 대법제자들의 마음에 의해서 촉성(促成)된 것이다.”(《각지 설법 2》, 〈2002년 필라델피아 법회 설법〉)

나는 마침내 남편에 대한 정을 내려놓았고, 최후의 정을 마침내 내려놓았으며, 아들에 대한 정도 내려놓았다. 정을 내려놓고 나니 하늘은 더 푸르고, 풀은 더 푸르며, 마치 태양이 더 밝게 빛나는 듯하다. 정말로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변했다. 지금 나는 보는 것마다 기쁨으로 가득하다. 나는 너무 행복해서 “사존이 계시니 얼마나 좋은가!”라고 생각한다. 제자는 전력을 다해 사람을 구해 사존께서 원하시는 것을 원용(圓容)하겠습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87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