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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회기실 : 부모의 은혜 (父母之恩) (1)

윤회기실 : 부모의 은혜 (父母之恩) (1)

작자 / 매란죽국(梅蘭竹菊)

[정견망]

어느 날 친구와 이야기 하는데 친구가 우연히 그녀 부모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듣고 나서 어쩐지 매우 친근함을 느꼈고 심지어 나도 모르게 입에서 “아버지, 어머니”라는 말이 나올 뻔했다. 비록 그들을 만난 적이 없지만 마음속에 오래 걸려있던 것임을 느낄 수 있었다.

(1) 한나라 시기의 부모

기억에 그것은 한나라 때의 일이다. 부친은 조정에서 관리를 지내다가 나중에 간신의 모함으로 직위가 강등되고 밀려나게 되어 고향으로 돌아갔다. 이때 집안이 넉넉하지 않았는데 모친이 나를 낳았다. 내가 출생한 후 부모님은 나를 매우 엄격하게 키웠다. 어렸을 때 장난기가 심해 고의로 부모님을 화나게 하는 일을 했다. 부친은 늘 나를 때려서 나쁜 버릇을 고치려고 했으며, 모친은 사람이 되는 도리의 법과 원칙을 나에게 가르쳤다.

한 번은 내가 다른 사람 집에 가서 놀다가 나도 모르게 그 사람집의 장난감을 가지고 돌아왔다. 모친이 보고는 사흘을 울면서 말하기를, “얘야, 네가 이렇게 하면 그야말로 우리 집 가풍을 욕되게 하는 일이다! 우리 집 체면을 잃는 것만이 아니라 더욱이 네 자신을 짓밟는 일이다!” 나도 모친을 따라 사흘을 울었으며 이때부터 무슨 일을 하더라도 부모의 뜻과 가르침에 따라서 했다.

어른이 된 후 모친은 직접 자기 친정의 어느 언니 집의 딸을 내게 소개시켜주었다. 그 아이가 매우 못생겼으므로 부친은 마음에 들지 않아 이렇게 권했다.

“우리 아들에게 좀 잘 생긴 며느리를 찾아주는 것은 어렵지 않소. 당신은 무엇 때문에 저 못생긴 여자를 우리 아이의 아내로 맞으려 하는 것이요!”

모친이 말했다. “우리 아이는 사람이 좀 도와줘야 하며, 현숙하고 덕이 있는 여자가 옆에서 깨우쳐 주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 조정의 충신인데 백성을 사랑해야 합니다. 저도 우리 아들이 이번 생의 길이 좋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친척 여자애가 비록 좀 못생겼지만 여자로서 가슴에 큰 뜻을 품고 있으며 매우 현숙하며 특별히 덕이 많은 아이입니다. 우리 며느리로 삼으면 반드시 아이에게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모친이 생각한대로 그 못 생긴 며느리가 들어온 후로 나를 많이 도와 나는 그 생에 나라와 백성을 위해 좋은 일을 많이 할 수 있었다.

(2) 송나라 시기의 부모

개봉 교외의 한곳에 당시 부모는 농민이었다. 모친은 부유한 집안에서 매우 좋은 교육을 받았으나 나중에 집안이 몰락하여 가난한 농민인 부친에게 시집을 갔다. 그리고는 나와 여동생 연(蓮)을 낳았다. 나는 어려서부터 공부를 열심히 했으나 연은 오히려 무예를 좋아했고, 나중에 고인을 만나 연은 그 고인에게 무예를 배웠다.

그 후 나는 장원급제하여 경성에 들어가서 관리가 되었다. 나는 일 처리를 할 때 공정하게 했으며, 잘못이 있을 경우 피고가 누구든지 끝까지 조사하여 처결 했기에 당시의 권력자들에게 미움을 샀다.

하루는 조정의 어느 권력자가 그의 딸을 내게 시집보내려 했는데 나는 어떻게 할지 몰라 부모에게 물었다. 모친은 말했다. “얘야, 이건 분명하다. 그는 이 일로 너와 교분을 맺으려는 것이다. 네 마음속에는 확실한 주관이 있어야 하지 않느냐.”

모친의 말을 듣고 나는 막힌 것이 확 열리는 것 같았다. 그래서 완곡한 말로 그를 거절했다. 나중에 그 사람이 백성들을 억눌렀기 때문에 나는 황상에게 보고하여 그는 직을 박탈당하고 평민이 되었다. 나는 이런 강직함 때문에 많은 공격을 받아 결국은 어쩔 수 없이 부모님을 모시고 동생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 후 또 간악한 사람의 해를 입어 남해로 유배되었다.

그러나 유배지에서 좋은 친구를 만났는데 이름이 녕(宁)이었다. 우리는 함께 시가와 정치를 토론하며 매우 유쾌하게 지냈다. 내가 당시 동생 연을 그에게 시집보내려고 했으나 연이 동의하지 않았다. 나는 그저 그들과 함께 일생을 잘 보내며 지냈다.

기억에 모친은 임종 전에 말씀하셨다.

“얘야, 내가 너에게 권력을 두려워하지 않고 정의를 신장하도록 가르쳤는데, 그래서 네가 금생에 이 같은 난을 당하는구나. 나를 원망하지 말아라. 사실 사람이 되는 것은 생활을 도모하는 것이 근본이 아니라, 어떻게 사는가 하는 것이다.”

나는 울면서 말했다. “어머니 어떻게 되어도 후회하지 않겠습니다. 아들은 차라리 옥쇄할지언정 구차하게 목숨을 부지하는 사람이 되지 않겠습니다.” 연과 녕도 따라서 말했다. “걱정 마세요. 우리가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이후 영원히 형님을 모시고 돌보겠습니다.”

(3) 명나라 시기의 부모

명나라 소주(蘇州)에서였다. 당시 나는 소주 태수의 아들이었고 집안의 교육이 매우 엄격했다. 나중에 길에서 우연히 한 사람을 만났는데 이 사람은 좀 특별한 능력이 있어서 나는 그 사람과 함께 어울려 지냈다. 그는 바른 일에 힘쓰지 않으며 늘 물건을 훔치고, 도박을 했기에 부모는 나 때문에 걱정을 많이 했다. 한 번은 내가 다른 지역에서 물건을 많이 훔쳤다는 말을 듣고 그 곳 관부에서 추격하여 나를 체포했다. 이 소식에 모친은 기절하기도 했다.

나는 집에 있으면 부모님의 제한을 받았기 때문에 자주 가출했는데, 결국 집을 떠나게 되었고 가출한 지 20년이 되었다. 이 기간에 나는 많은 나쁜 일을 했고, 그러다 어느 강호의 협사에게 두 손을 절단 당했다. 그 후 어쩔 수 없이 길에서 구걸을 했다.

하루는 소주 성 밖 아주 먼 마을에서 구걸할 때였는데, 너무나 굶어 허기진 나머지 어느 가난한 집 앞에 도착했을 때는 움직이지 못 한 채 문 앞에서 쓰러졌다. 그러다가 깨어나 보니 어느 백발노인이 울고 있었다. 나는 노인장, 먹을 것을 좀 주십시오. 라고 말했다. 그 울던 노인은 내가 깨어나는 것을 보고 더욱 크게 울면서 말했다. 얘야, 어미가 너를 생각하니 얼마나 마음이 아픈지 모르겠구나 하면서 노인은 기절했다. 아뿔싸, 자세히 보니 이 노인이 바로 모친이 아닌가.

나는 이때 양심이 살아나 울면서 아들이 불효하여 부모님께 염려를 끼쳤다고 말했다. 잠시 후 부친과 어느 여자 아이가 집으로 들어왔는데 그들이 내가 깨어난 것을 보고, 그 동안 어떻게 지냈느냐고 물었고, 나는 있는 그 대로 다 이야기 했다.

그런 다음 우리 집안은 어떻게 이 지경에 떨어졌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부모님들이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옆에 있던 여자아이가 가로채 말했다.

“이게 다 당신 때문이어요! 당신이 밖에서 물건을 훔치자 백부의 동료들이 다 알게 되었고, 그들은 부친을 당신과 한패로 여겨 백성을 해친다고 했어요. 그 결과 부친은 재산을 몰수당하고 관직에서 쫓겨났어요. 나와 나의 모친은 당시 당신 집 하인으로 일하고 있었는데 당신 모친이 우리 모친과 저에게 잘 대해 주셨기에 당신의 부모를 계속 보살펴드리기로 했어요, 나의 어머니가 “나는 연로하여 쓸모없겠지만 내 딸이 당신들을 잘 모시도록 할게요” 라고 하셨어요!”

“아가씨, 형아(馨儿-여자의 아명)에게 아직 감사를 못 드렸습니다.” 나는 몸을 일으켜 절을 했다.

내 손이 불구여서 일을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무슨 일이든지 다른 사람이 도와주어야 했다. 부모는 나를 돌보기 위해 밖에 나가서 밥을 지었고, 형아는 한 몫의 일을 거들기 위해 밖에 나가서 다른 사람의 일을 거들어주었다. 그러나 나중에 흉년이 들어 더 이상 견디지 못한 부모는 차례로 굶어죽었다. 한 번은 형아가 겨우 조금 남은 밥을 내게 주었을 때 나는 울면서 말했다. 나는 정말 먹을 수 없다. 네가 나에 대한 은정은 보답할 방법이 없구나, 이후에 기회가 있으면 반드시 잘 해 주며 보답 하겠다!

“저는 사실 당신 부모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은정을 보답하는 거예요. 기회가 있으면 부모님의 은정에 보답하세요. 원하기만 하면 저는 당신께 잘 해 드릴게요.” 형아는 울면서 말했다. 그날 우리 두 사람 모두 아무것도 먹지 않고 함께 굶어 처참한 생을 마쳤다.

후기: 사실 이 두 노인에 관한 이야기는 매우 많다. 역사의 긴 흐름 중에 나에게 영향이 큰 것은 금생의 부모 외에 바로 이 두 분이다. 그들이 있었으므로 내 사상 중에는 그렇게 많은 문화를 다질 수 있었다. 비록 역사상 그렇게 휘황했었지만 금생에 나의 사상과 마음이 그렇게 미혹되지 않고 무슨 일이든 나는 정통적인 도리로 헤아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정말 이 두 노인에게 감사를 드려야 한다. 마음속으로 영원히 그들을 나의 사랑하는 가족처럼 여길 것이다.

발표시간 : 2011년 2월 1일
정견문장 : http://www.zhengjian.org/zj/articles/2011/2/1/7152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