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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기의 시 《매화》 감상: 속세의 때 묻지 않고 홀로 고결

임우(林雨)

【정견망】

매화는 세속의 더러움 아예 받지 않고
대나무 울타리나 오막살이집도 달가워하네.
다만 매화를 임포(林逋)로 오해해
오늘날까지 시인들의 화제로 삼는구나.

不受塵埃半點侵
竹籬茅舍自甘心
只因誤識林和靖
惹得詩人說到今

송대 시인 왕기(王淇)의 시 《매화》는 남다르다. 고인(古人)이 매화를 노래하면서 흔히 고결하고 견정(堅貞)함을 칭찬했지만, 왕기는 도리어 세인의 평가를 원하지 않고, 사람들의 칭찬을 바라지 않는다고 했다.

“매화는 세속의 더러움 아예 받지 않고
대나무 울타리나 오막살이집도 달가워하네.”

매화는 속세에서 태어났음에도, 속세 밖에 홀로 서서 자신을 깨끗이 하고 홍진(紅塵)에 오염되지 않는다. 대나무 울타리나 오막살이집에서 자라면서도, 매화는 청빈(淸貧)을 달갑게 여기고 편안히 만족해한다. 매화는 토양이나 환경에 결코 구애받지 않는다. 이는 마치 육유(陸遊)가 쓴 “역참 밖 끊어진 다리 옆, 주인도 없이 적막하게 피었네[驛外斷橋邊,寂寞開無主].”처럼 매화의 고독하지만 도도한 자립심을 잘 포착했다.

시인은 매화로 자신을 은유하며, 매화를 통해 자신을 격려하고 있다. 즉 비루한 환경에서도 대나무처럼 마음을 지키며 담담하고 자유롭게 살아가고자 한다. 마치 매화를 통해 시인의 포부를 표현한 것처럼 보이는데, 부귀영화와 헛된 명성 탐하지 않고 평상심(平常心)으로 평화롭게 살고자 한다.

시인의 눈에 비친 “세속의 더러움 아예 받지 않는” 매화는 주돈이(周敦頤)가 《애련설(愛蓮說)》에 말한 “진흙에서 나왔음에도 오염되지 않고 맑은 물에 씻겨도 요염하지 않은[出淤泥而不染,濯清漣而不妖]” 연꽃의 품격과 일치한다. 모두 고결(高潔)함의 상징이다.

“다만 매화를 임포(林逋)로 잘못 알고서
오늘날까지 시인들의 화제로 삼는구나.”

여기에는 약간 풍자하는 뜻이 담겨 있는데 그는 임포가 “매화를 아내로 삼고 학을 아들로 삼았다”고 자칭하는 바람에 본래 청정하고 고고했던 매화를 끊임없이 속세에서 평가하는 대상이 되게 만들었다고 본다. 매화는 본래 독립적이고 도도한 향이 있어야지, 세인의 화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시인의 탄식처럼 사람들이 매화를 평가하는 말들은 흔히 불경해지기 쉽기 때문이다.

세인들은 종종 세속을 초월한 존재에 대해 자신의 좁은 인식으로 판단한다. 마치 사람들이 “여래(如來)”만 알고 더 높은 경지의 신불(神佛)은 모르는 것과 같다. 부처님이 더 높은 이치를 사람에게 보여주지 않는 것은 인색해서가 아니라 사람 마음이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세속의 정(情)으로 신성(神聖)을 멋대로 논한다면 이는 실로 불경한 것이다. 이는 사람들이 매화를 품평하는 태도와 얼마나 유사한가!

진정한 고결함은 사람들에게 명성을 떨치길 추구하지 않고 속세의 웃음거리가 되길 원하지도 않는다. 청아(淸雅)함과 고상함은 타인의 평가와 무관한 내재적인 인품의 수양이다.

사람은 신(神)을 공경하면 신이 감격할 거라 여기지만 사실 신(神)에 대해 말하자면 사람의 태도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오늘날 수련하는 이들도 마찬가지인데, 세인의 태도는 단지 그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 뿐, 수련자와는 무관하다. 수련자는 사람 마음의 영광와 치욕에 집착하지 않는다. 이는 마치 매화가 속세의 티끌에 영향받지 않는 것과 같다.

매화든, 시인이든, 수련인이든, 그들이 추구하는 것은 모두 내심의 청정(淸淨)과 자족(自足)이며, 외부의 평가나 인정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94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