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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연심 (15): 저 난도산을 지나가다

요연(了緣)

【정견망】

6, 7년간 청정무위(淸靜無爲)는 사부에 대한 오공의 믿음을 검증하기에 충분했다. 물론 여기에는 또 오공의 영특함[靈透]도 있는데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오랜 시간 적막(寂寞)을 견뎌내지 못했을 것이다.

사부가 도제(徒弟)를 잘 가르치기 위한 전제는 도제가 반드시 사부를 굳게 믿고 의심하지 말아야 한다. 아무리 능력이 뛰어난 사부일지라도 자신을 믿지 않는 도제를 이끌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사부의 비애(悲哀)다. 다행히 오공은 해냈고 조사가 비밀리에 안배한 고험을 통과했다. 이에 보리조사가 단상에 올라 도를 말한다.

강의를 듣자 오공은 기쁨에 넘쳐 귀를 잡아당기고 볼을 긁적이며 웃는다. 그는 기쁨에 겨워 춤을 추지 않을 수 없었다. 대도(大道)를 처음 들을 때의 기쁨은 오직 과장된 표정과 몸짓으로만 표현할 수 있었다. 이 역시 오공이 순진(純真)했기에 가능한 것으로 내심의 진실한 느낌을 거리낌 없이 드러냈다. 사람이 순진할수록 희로애락을 숨기지 않는데, 모든 감정이 쉽게 드러나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척 보면 알 수 있게 한다. 그러므로 수련이란 바로 반본귀진(返本歸真)으로 최초의 그곳으로 돌아가는 것이니, 꾸밈없고 순선(純善)하고 순미(純美)답고 가장 진실한 자기로 돌아가는 것이다.

당연히 이런 모습이 보리조사의 예리한 눈을 피할 수는 없었다.

조사는 “너는 왜 거기서 미친놈처럼 춤만 추며 내 말은 듣지 않는 것이냐?”라고 오공을 질책한다.

오공은 열심히 듣다 보니 오묘한 경지까지 들려 너무 기쁜 나머지 자신도 모르게 펄쩍펄쩍 춤을 추지 않을 수 없노라고 대답했다. 이는 조사에게 큰 성취감을 주었고, 도(道)를 전할 수 있다고 생각해 그에게 이곳에 온지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물었다.

오공은 산에 가서 나무를 하면서 잘 익은 복숭아 열매를 일곱 번 정도 먹었노라고 대답했다.

조사가 말했다.

“그 산이 난도산(爛桃山)이다. 네가 일곱 번 먹었으니 벌써 7년이 지났을 것이다. 너는 내게서 어떤 도를 배우려 하느냐?”

오공이 대답했다.

“그저 사부님 가르침에 따르겠습니다. 그저 도(道)와 좀 관련된다면 제자는 배우고 싶습니다.”

오공의 표현이 얼마나 욕심 없고 구함이 없는지 보라! 그는 분명 장생(長生)을 목적으로 왔지만, 이토록 담담하게 말한다. 조사가 그를 마음에 들어한 것도 무리가 아니다. 아무리 큰일이라도 그는 이토록 하찮게 여기는데 수련에 야심(野心)이란 필요하지 않다. 그저 구함이 없이 저절로 얻음을 말할 뿐이다. 하지만 반드시 용맹정진(勇猛精進)하는 기백이 있어야 한다. 이 얼마나 대단한 기백인가! 어떤 사부인들 보고 기뻐하면서 잡아주려 하지 않겠는가? 이것이 바로 사부가 도제를 찾는 이유다.

그렇다면 여기서 ‘썩은 복숭아 산’이란 뜻의 난도산(爛桃山)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우선 ‘썩었다’는 것은 잘 익었다는 것으로 오이가 익으면 저절로 떨어진다는 것과 같은 뜻이다. 복숭아가 잘 익자 오공이 그것을 먹어 치우고 씨만 남겼다. 이 씨[桃核]가 바로 핵심(核心)이며, 수련의 관건은 핵심인 마음 닦[修心]음에 있음을 암시한다.

오공은 사문(師門)에 들어오긴 했지만 진정으로 도법(道法)의 진전(真傳)을 얻지는 못했다. 그저 잡일이나 하면서 마음을 닦고 성품을 길렀을 뿐이다. 그가 매번 잘 익은 복숭아를 먹을 때마다 심성이 제고되었음을 의미한다. 말하자면 과일 중에서 오직 복숭아만이 앞에 ‘선(仙)’자를 더해 ‘선도(仙桃)’라 불린다. 즉 매번 선도를 먹을 때마다 한 층의 겉껍질이 벗겨지고, 약간의 선기(仙氣)에 물드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외재적인 것들은 마치 매미가 한 겹 한 겹 껍질을 벗는 것처럼 벗겨지고 조금씩 승화한다. 이렇게 장장 일곱 번 껍질을 벗고 일곱 번 승화를 거친 후에야 비로소 보리조사가 도제로 거둘 수 있는 문턱을 넘긴 것이다. 중문(二門)에서 안문(內門)으로 진입해야 하는데 진전제자(真傳弟子)는 자연히 조사가 신중하게 선발한다.

[역주: 표면적으로 한 법문에 입문하는 것이 대문에서 중문으로 들어간 것이라면, 그 한 법문에서 진정으로 전수 받는 것을 중문에서 안문에 들어간 것으로 볼 수 있다.]

사람의 육체 범태(凡胎)란 잘 익은 저 복숭아처럼 속세에 떨어져 백 년 세월의 세례를 받은 후 세월의 흐름에 따라 썩어 흙이 되는 것을 어찌 알겠는가? 비록 제왕장상(帝王將相)이든, 평민 선비든 결국에는 다 세월에 굴복한다. 오직 그 씨만 남는데, 흙을 만나면 다시 태어나 꽃을 피우고 다시 시들면서 순환 반복한다. 정말로 당신이 한 곡을 부르고나면 내가 무대에 올라가는데 인간 세상이란 이처럼 떠들썩하다. 하지만 과연 몇이나 되는 사람들이 생사(生死)를 간파하고 대도(大道)를 깨달아, 미혹을 헤치고 나와, 저 난도산을 넘어 인과(因果)란 두 글자에서 벗어날 수 있겠는가?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52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