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중(元中)
【정견망】
사람은 누구나 즐겁고 행복하게 살고 싶어 한다. 하지만 진정으로 즐거울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는가? 사람은 왜 즐겁지 않은가? 얻은 것이 너무 적어서인가, 아니면 만족할 줄 몰라서인가?
《순자(荀子)•자도(子道)》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소인(小人)은 아직 얻지 못했을 때는 얻지 못할까 봐 걱정하고, 이미 얻고 나서는 또 그것을 잃을까 봐 두려워한다. 이 때문에 종신토록 근심이 있을 뿐, 단 하루의 즐거움도 없다.”
즉, 소인은 무언가를 얻지 못했을 때 얻지 못할까 봐 걱정하고, 얻고 나면 또 잃을까 봐 걱정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한평생 얻고 잃는 것에 근심하느라 단 하루도 즐겁지 않다.
우리 자신을 한번 되돌아보자. 우리 역시 이와 같지 않나? 직장에서 집을 분배할 때 집을 받지 못할까 봐 걱정하고, 막상 집을 받으면 또 누가 뺏어갈까 봐 걱정한다. 시험도 마찬가지다. 시험 전에는 자신이 복습을 충분히 하지 못했을까 봐 걱정하지만, 시험을 치른 후에는 답안을 제대로 쓰지 못했을까 걱정한다. 나중에 성적이 나오면 또 계속해서 다른 걱정을 한다. 한번 생각해 보라. 우리에게 잠시라도 만족하고 행복했던 순간이 있는가?
왜 그런가? 다름 아닌 탐욕심(貪心) 때문이다. 마음에 탐욕심이 없다면 모든 일은 자연스러움에 따를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시험을 볼 때, 아주 꼼꼼하고 엄격하게 채점하는 선생님을 만날 수도 있다. 그러면 내 점수가 조금 낮아질 수도 있다. 만약 정말 그런 일이 발생하더라도 뭐 유감스러울 것이 없다. 마음속으로 ‘아마 나더러 일을 할 때 진지하게 하라고 깨우쳐 주려는 것인가 보다. 나는 정말 진지하게 일을 해야 한다.’라고 생각하면 그만이다.
대법 사부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은 생각한다. ‘직장에서 지금 집을 분배하고 있는데, 이 집들 중에 내 것이 있을까? 집을 분배하는 사람은 어떠어떠하게 나와 알력이 있다.’ 생각할수록 더욱 화가 난다. ‘그는 틀림없이 나에게 집을 주지 않을 텐데, 나는 그와 어떻게 한바탕 해볼까…….’ 무슨 염두이든 다 있다.”(《전법륜》 제5강)
즐거움은 자신의 마음이 만들어낸 것이지 다른 사람 때문이 아니다. 우리 스스로 문제를 불쾌한 방향으로 생각한다면 설령 최후 결과가 좋을지라도, 또 다른 불쾌한 일들을 생각하게 될 것이다.
《논어(論語)》에서는 “군자(君子)는 마음이 넓고 여유롭지만, 소인(小人)은 작은 일에까지 따지고 들며 얻을까 잃을까 노심초사한다[(君子坦蕩蕩,小人長戚戚)]”라고 했다.
인연을 따르면 마음이 담담해지고, 탐욕심이 있으면 득실을 근심한다.
얻고 잃음은 인연에 따르되 따지지 않고, 마음에 탐욕심이 없어야만 비로소 즐거울 수 있다.
원문위치: https://zhengjian.org/node/29968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