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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하루살이와 같다: 생명의 진정한 의미

칠월

【정견망】

하루살이의 날개, 옷은 산뜻하고 화려하네.
마음이 근심스러우니, 나 돌아갈 곳은 어디인가.
하루살이의 날개깃, 옷은 찬란하고 곱다네.
마음이 근심스러우니, 나 돌아가 쉴 곳은 어디인가.
하루살이가 흙을 파서 나오니, 겹옷은 눈처럼 희네.
마음이 근심스러우니, 나 돌아가 이야기할 곳은 어디인가.

蜉蝣之羽,衣裳楚楚。
心之憂矣,於我歸處。
蜉蝣之翼,采采衣服。
心之憂矣,於我歸息。
蜉蝣掘閱,麻衣如雪。
心之憂矣,於我歸說。

(《시경(詩經)》〈조풍(曹風)·부유(蜉蝣)〉)

부유(蜉蝣 하루살이)는 아침에 태어나 저녁에 죽는 생물이다. 태어날 때는 유난히 아름답지만, 애석하게도 생명의 주기는 매우 짧다. 《시경》에 나오는 이 민요는 매우 복잡한 심경을 표현한다.

시인이 하루살이의 아름다움과 찬란함을 쓴 것은, 사실 자신의 인생을 말하는 것이다. 아마도 아름답지만 짧은 인생이었을 것이다. 인생 역시 이와 같아서, 겨우 짧은 몇십 년 세월일 뿐이다.

수천 년 전 《시경》에서 나온 이 〈부유〉는 오늘날 사람들에게 매우 깊이 생각할 가치가 있다. 당시 사람들은 생활 방식이 간단했고, 오락거리가 많지 않았다. 이는 오히려 좋은 일로,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을 가라앉히고 인생을 생각할 수 있게 했다. 인생의 의미를 생각하게 한 것이다.

부유의 생명은 짧고, 인생 또한 짧다. 하지만 비범한 의미를 지닌다. 인생은 너무나 괴롭기 때문에 너무 길어도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이 견디기 매우 어려울 것이다. 이것은 조물주(造物主)가 자비롭지 않아서가 아니라, 진정으로 사람을 위한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옛날 사람의 한마디가 있다. ‘아침에 道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朝聞道 夕可死).’ 오늘날 인류는 그 함의를 진정하게 아는 사람이 이미 없다. 당신들은 아는가? 한 사람의 사상 속에 이미 법을 담았다면, 법을 담은 그 일부분은 법에 동화(同化)된 것이 아닌가? 도(道)를 들은 사람이 죽은 다음 그 한 부분은 어디로 가는가?”(《정진요지》〈법 중에 용해되자〉)

신(神)이 사람을 만든 것은 바로 오늘날 법을 얻도록 한 것이다. 행복을 원한다면 그럼 법을 얻어 자신의 천국 세계로 돌아가야 한다. 그곳에는 모든 것이 다 있다. 이곳에서 어떻게 행복해질까를 생각하라는 것이 아니다.

인생은 너무 짧으니, 더욱 소중히 여겨야 한다. 그러나 소위 ‘소중히 여긴다’는 것은 단순히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것뿐만 아니라, 이 만고(萬古)의 기연(機緣)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일단 기연을 잃으면, 그럼 영원히 잃는 것이다.

이 〈부유〉는 사유가 단순해 보이지만, 사실 사람이 청성(淸醒)할 때는 문제를 보는 것도 아주 간단하다. 오직 사람 마음이 복잡하거나, 정(情)에 빠져 있을 때, 사람속에 미혹되어 있을 때라야 문제를 복잡하게 본다.

우리가 오늘날의 영화나 텔레비전을 보는 것도 마찬가지다. 분명히 매우 간단한 일인데도, 굳이 매우 복잡하게 만든다. 그 속에 사람의 온갖 암투와 계략을 다 집어넣는다. 왜 그런가? 원인은 단 하나, 사람 마음이 복잡해졌기 때문이다.

사람 속의 사심(私心)과 잡념(雜念)을 내려놓고, 아주 간단하게 문제를 바라보면, 문제 자체가 본래 매우 단순하며 사람 마음이 그것을 복잡하게 만들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부유〉는 읽기 쉽고, 그 내포된 의미는 명확하고 깊이가 있다. 읽어볼 가치가 있는 좋은 시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9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