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简体 | 正體 | English | Vietnamese

서유연심 (16): 초심을 잊지 않다

요연(了緣)

【정견망】

오공이 7차례 복숭아를 배불리 먹고 다 먹고 본성을 깨달아 마음을 밝히며[了性明心] 7년 동안 마음을 연마했다. 복숭아가 익었다는 말은 마음이 익었음을 의미하니 화후(火候)가 무르익어 심법(心法)을 전할 수 있게 되었다.

조사는 시험 삼아 오공의 깊이를 알아보고, 수련에 대한 바람이 얼마나 큰지, 아울러 자신의 의발(衣鉢)을 전수할 수 있을지 알아보려 했다. 그래서 조사는 오공에게 소도방문(小道旁門)부터 물어본다.

“어느 문(門)의 것을 배우고 싶으냐?”

“존경하는 사부님 뜻이라면 제자는 진심으로 따르겠습니다.“

그는 겉보기에는 아무것도 가리지 않고 순종적인 제자처럼 보인다. 사실 오공은 아직 수련의 일에 관해, 중문 밖에 있다 보니, 문 안의 세계에 대한 자세한 사정을 몰랐다. 아는 것의 장애가 없으니 그는 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저 사부님께서 주시는 것은 무엇이든 가장 좋다고 믿었고, 무엇을 주시든 다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이렇게 순정한 마음을 지녔기에, 그만큼 자신감이 넘쳤다.

그러자 조사는 맨 먼저 술자(術字) 문(門)부터 소개한다. 즉 길한 것을 구하고 흉한 것을 피하는 소도(小道)였다.

오공이 물었다.

“이것으로 장생(長生)을 얻을 수 있습니까?” 당연히 할 수 없었다. 그러자 오공은 그럼 배우지 않겠다고 말했다.

조사는 이어서 음양가, 의가, 불가, 도가 등의 유(流)자 문을 소개한다. 하지만 이것도 한계가 명확해서 기껏해야 성인(聖人)의 도라 할 수 있을 뿐, 역시 장생할 수는 없다.

조사가 말한다.

“만약 (이것으로) 장생하려 한다면 이는 마치 벽 안에 기둥을 세우는 것과 같다”라고 한다.

오공은 “말씀에 따르자면 오래가지 못하니 배우지 않겠습니다. 배우지 않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조사는 이어서 정(靜)자 문을 소개하는데 비록 참선하고, 가부좌하며, 말을 삼가고, 재를 올리는 것이라 겉보기에는 수련과 관련이 있어 보이지만, 모두 피상적인 공부에 불과했다. 오공이 이것으로 장생할 수 있는지 묻자, 조사는 마치 가마의 흙벽돌과 같아서 바람이나 비에도 조금도 견디지 못한다고 했다. 당연히 오공의 뜻과 맞지 않았다.

정자 문이 안 된다면 동(動)자 문은 어떨까? 음을 채집해 양을 보충하고, 약석(藥石)을 먹는 등의 것인데 들어보니 어찌 정경(正經)일 수 있겠는가? 오공은 여전히 이것으로 장생할 수 있는지 묻는다. 조사는 “이것으로 장생하려면 마치 물에 비친 달을 건지는 것과 같다.”고 대답한다.

술류동정(術流動靜)은 모두 인간 세상의 소도(小道)이니 오공의 눈에 어찌 이런 것들이 들어오겠는가? 그는 다 거부했다. 조사가 보니 이 원숭이가 영리한지라 쉽게 속일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자신의 진짜 능력을 어느 정도 드러내야 할 것 같았다. 이 한 차례 시험에도 오공의 도심(道心)은 확고했고 초심(初心)이 바뀌지 않았으며, 목적이 명확했다. 이왕 배우려면 가장 좋은 금광대도(金光大道)를 배워야지 방문좌도(旁門左道)는 배우고 싶지 않았다.

장생하고 싶다면 그럼 진정으로 수련해야 한다. 도제가 진정으로 수련하고자 하니 사부는 그저 겉모습만 형식적으로 수행하려는 자들과는 달리 그에게 진짜를 가르쳐야 했다. 평범한 도가 아닌지라 비범한 방법으로 전해야 했다.

이에 조사가 높은 단에서 뛰어내려와 계척(戒尺 역주: 한 자 가량의 자)으로 오공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원숭이 녀석아, 이것도 배우지 않고 저것도 배우지 않겠다니, 대체 어쩌라는 것이냐?”

그는 앞으로 나서 오공의 머리를 세 번 친 후, 손을 등 뒤로 하고 안으로 들어가더니 중문(中門)을 잠가버리고 대중들 곁을 떠났다.

이는 조사의 마음이 편협해서가 아니라 도가(道家)에서는 모두 단독으로 전하는 것으로 한 세대(代)에 오직 한 제자에게만 전한다. 진전(真傳)을 받지 못하는 것은 사부가 가르치지 않으려는 것이 아니라, 오성이나 심지(心智)가 부족하고, 근기가 너무 차(差)하거나, 도심(道心)이 확고하지 않아 관(關)을 넘는 중에 심성을 지키기 힘들어 가르쳐도 해내지 못할 뿐만 아니라 고험 앞에서 잘못을 저지르면 심지어 사부마저 연루되어 재앙을 당할 수 있다. 도제를 이끄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가르쳤으면 책임을 져야 하는데 잘 보호하지 못해 만약 사단을 일으킨다면 사부마저도 책임 추궁을 당해야 한다.

요즘 말로 하자면 “무를 뽑으면 진흙이 딸려나오니” 소도(小道) 수련이라 해도 마찬가지로 매우 엄숙한 것이다. 스승과 제자가 되었다면 성명(性命)을 다 걸어야 하는 것으로 단지 도제의 명(命)만 사부에게 바치는 이런 간단한 것이 아니다. 사부의 명 역시 도제에게 귀속하니 사도(師徒 사부와 도제) 사이에 서로 인과(因果)가 된다. 이 역시 소문소도(小門小道) 수련의 폐단인데 원용불파(圓容不破)한 대법이 없다면 잘못을 바로잡을 기제가 부족해 몇 세(世)를 수련해도 모두 정과(正果)를 얻기 어렵다.

때문에 자고이래(自古以來) 진정한 전수는 모두 사부가 도제를 찾는 것으로 좋은 도제를 찾을 수 없다면, 자신을 험지(險地)에 두느니 차라리 소요자재(逍遙自在)하면서 전수하지 않는 것만 못하다. 물론 도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사부를 모셨다면 누군들 조화(造化)를 얻고 싶지 않겠는가? 하지만 자신의 원력(願力)에 한계가 있어 구하는 것도 눈으로 볼 수 있는 좋은 것에 불과할 뿐이다. 그래서 조사가 떠난 후, 모두 두려워하며 다 오공을 원망했다.

“너 이 뻔뻔한 원숭이 녀석아! 아주 제멋대로구나! 사부님께서 네게 도법(道法)을 전수하시는데, 어찌하여 배우지는 않고 말대꾸만 하는 것이냐? 이번에 사부님의 비위를 건드렸으니 언제 다시 나오실지 모른단 말이다!”

보라, 이것이 바로 진전(真傳) 제자와 추종자, 혹은 응원단의 차이다. 오공은 사부를 믿었지만 그렇다고 맹종(盲從)하진 않았다. 그는 자신만의 명확한 포부를 품고 있었다. 사부는 때때로 제자의 분별력을 고험하고, 제자의 도심(道心)과 재주 및 지혜를 검증하기 위해 연막을 친다. 그의 사형들은 애초 큰 뜻을 품지 않았다. 때문에 그들이라면 아마 조사가 처음 술(術)자 문을 언급하기만 해도 더 높은 것을 말할 겨를조차 없이 당장 배우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장님처럼 닦고 벙어리처럼 믿는다면 무슨 진전(真傳)을 얻을 수 있겠는가? 사부가 도제를 선택하는 것과 동시에 도제 또한 사부를 선택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는 본래 쌍방향 선택이다.

세간소도(世間小道)가 어찌 천만에 그치겠는가, 더욱이 마도(魔道)와 삿된 수련[邪修]이 세간을 혼란시키고 있으니 밝은 스승을 골라 진전을 좀 얻기란 대단히 어렵다. 만약 분별할 혜안(慧眼)이 없는 사람이라면 대도(大道)를 얻지 못하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고 사문왜도(邪門歪道)에 이끌려 길을 잘못 걸으면 망치는 것은 미래이다.

바로 조사가 말한 술류동정(術流動靜)의 문(門)은 비록 장생할 수는 없지만 배울수만 있다면 속세에서 많은 장점이 있다. 능력이 좀 있고 소능소술(所能小術)을 좀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족히 강호에 끼어들어 명예와 이익을 다투고 이름을 날리며 부자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요만한 이익을 얻어 사욕(私慾)을 만족시킨다면 이는 여전히 속인이 아닌가? 심지어 속세를 벗어나지도 못하니 그저 사람 속에서 좋은 시간이 일단 지나고 나면 결국 염라전에 가서 보응을 받아야 하며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하지 못한다. 오공은 자신이 원하는 것이 이런 것이 아님을 분별할 수 있었기 때문에 배우길 거부했다. 그러나 다른 이들은 구해도 얻지 못하자 또 오공을 몹시 질투하니 이렇게 시야가 좁다.

말하자면 오공은 어떻게 이 사부를 인정했을까? 바로 세 글자인데 조사가 그에게 하사한 세 글자, 즉 손오공(孫悟空)이다! 손(孫)이란 글자는 영아(嬰兒)를 합하는 근본이니 바로 반본귀진(返本歸真)의 의미가 있다. 바로 오공에게 명심견성(明心見性)해서 본심(本心)을 비춰보고 마음을 닦는 길을 명확히 보여준 것이다. 그렇다! 이 세 글자는 오공이 수련하는 길을 명확히 가리키며, 이것이 바로 마음 수련[煉心]의 시작이다. 당신이 말해보라, 이 사부는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명사(明師 밝은 스승)라는 칭호를 받을 자격이 충분하지 않은가? 이것만으로도 제멋대로인 원숭이를 제압하기에 충분하다

몇 마디 우스갯소리를 하는 사이에 이 마음 원숭이[心猿]에게 고삐를 채워, 아무리 벗어나려 해도 본심(本心)의 의지를 벗어나지 못하게 했다. 장생은 겉으로 보면 원숭이의 소망처럼 보이지만, 사실 본심의 의지가 드러난 것이다. 본심이란 내인(內因)에게는, 오공이란 외인(外因)이 가서 실천하고, 초심(初心)을 잊지 않고 본심의 의지를 검증해야 하기에 구구(九九) 81난을 통해 일체 마장(魔障)을 연화(煉化)해서 불성(佛性)을 충실케 해야 한다.

“수련을 처음과 같이하면 반드시 성공한다, 이것은 수련계의 한마디 진언(眞言)이다.”(《대법수련은 엄숙한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2023년 8월 31일과 9월 1일 이틀 연속 두 편의 경문을 발표하셨는데, 또 다른 경문은 《험악을 멀리하라》다.

나는 보고 나서 큰 충격을 받았다! 등에서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내가 놀란 이유는 제발이 저렸기 때문이고, 제발이 저린 원인은 나태했기 때문이며, 나태했던 이유는 사람 마음을 제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으름은 정진하지 않았음을 의미하고, 정진하지 않았다는 것은 많은 귀중한 정법(正法) 시간을 허비한 것을 의미한다. 정법의 매 순간은 천금(千金)의 가치가 있다! 사명을 지니고 온 정법제자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을 낭비했다면 이는 당연히 서약을 위반한 것으로 칠 수 있으니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런데도 많은 때 나는 여전히 자신의 사람 마음의 집착을 위해 구실을 찾았다. 나는 다른 단점은 많지 않은데 다만 좀 게으르고, 성격이 좀 한가해서, 일하는 것을 조금 미루다 보니 문장을 쓰는 수량이 적은 편이다. 그래도 어쨌든 하기는 했다. 내가 정진하면 구세력도 나를 두려워할 것이다. 어쨌든 좋은 일을 나 혼자 다 차지할 수는 없으니 요만한 사람 마음의 부족은 겉보기에 사소한 것이 아닌가!

그래서 나는 마비되었고 충분히 중시하지 못했다. 게다가 내가 문장을 쓸 때 건드린 더 심층(深層)의 요소들도 얌전하게 내가 그것들을 격퇴하길 기다리지 않았고, 내 마음에서 생각이 떠오르고 창작의 영감이 샘처럼 솟구치는 순간 일어나 저항하며 온갖 방식으로 나의 글쓰기를 방해하고 한 무리를 형성했다. 물론 오직 나의 정념(正念)이 강하고 심지(心志)가 확고하기만 하면 글을 쓸 수 있었다. 내가 치는 키보드는 매 한 글자를 칠 때마다 모두 무궁한 위력을 발휘하여 아무리 많은 것들이 와도 다 없앨 수 있다. 마음이 바르고 생각이 발라, 법의 위력을 동원한다면 이런 것들을 충분히 청리할 수 있으니 아무 것도 아니고 무슨 큰 일도 아니다.

다만 시간이 좀 걸리고 단번에 글을 완성하기 어려울 뿐이다. 필경 자신에게도 누락이 있으니, 잠시 게으름을 피우고 글쓰기를 멈추면서 너무 많은 소중한 시간을 낭비했다. 사부님의 신경문이 나온 후에야 나는 정신을 차렸다.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깜짝 놀랐는데, 만약 대심판 때 게으름 때문에 고개를 들지 못하고 뭇 불도신(佛道神)의 질책을 듣는다면, 부작위(不作爲 마땅히 했어야 할 일을 하지 않음)는 서약을 위반한 것이 되고 이 때문에 점수가 많이 깎일 것이다! 조금만 더 정진했다면 분명히 피할 수 있었다!

대법제자가 정진하면 구세력조차 두려워한다. 이것은 무슨 허풍이 아니라 진실한 위덕(威德)이 드러나는 것이다. 왜냐하면 정진하는 제자는 모두 구세력의 차원을 떨어뜨려 타격할 수 있기 때문인데, 구세력이 억지로 가한 고험에 대한 유일한 해결 방법은 바로 더 높은 차원으로 승화해 올라가는 것이다. 즉, 자신의 심성을 승화시켜 그 관(關)을 초월하는 것이다. 더 높은 에너지의 불법신통(佛法神通)을 갖춘다면 이는 그 관을 무너뜨린 것과 같고 또한 모든 것을 개변하고 동화시킬 힘이 생길 것이다. 마난 속에서 제고해 올라가 (구세력의) 차원을 떨어뜨려 타격하는 국면을 만들 수 있다면 그럼 구세력에게는 오직 두 갈래 길만 남는다. 바로 동화(同化)될 것인지 아니면 깡그리 소멸[滅盡]될 것인지, 제3의 길이란 없다. 그럼 정말 당신이 변하면 그도 변한다. 대법제자의 수련 노정에서 건곤(乾坤)을 역전시켜 일체 바르지 못한 요소들을 바로잡는 것은 미룰 수 없는 책임이다.

구세력이 누구를 조종해 혼란을 일으키든 막론하고, 같은 위도(緯度)에서 저항하는 것은 에너지를 소모시키는 것으로 오성(悟性)이 안 되니 시간으로 메꾸는 것이다. 사람 마음의 집착이 무거울수록 메꾸는 시간이 더 많아진다. 오직 스스로 모질게 마음 먹고 누락이 발견되면 즉시 바로잡고, 이런저런 것을 상관하지 말고, 오직 사람 마음이기만 하면 모두 쾌도난마(快刀亂麻)처럼 베어내, 온몸을 발라버려야지만 이 몸의 범골(凡骨 범부의 뼈)을 벗어나 구세력이 틈을 탈 수 없게 할 수 있다.

이 몸의 범골(凡骨)는 바로 서유기 뒤편에서 당승 사도가 만나는 백골정(白骨精)과 같다. 당승은 사람 마음이 있어서 요사(妖邪)한 것을 구별하지 못하고, 오공을 불신했으며, 요정이 변화한 가상에 미혹당했다. 팔계는 사욕(私慾)이 있어서 미녀를 보자 지능이 마비되어, 심지어 이간질을 부추겨 오공을 무고한다. 사승(沙僧)은 정력(定力)이 부족해 따라서 소란을 피우진 못했지만 그렇다고 확고하게 오공의 편에 서지도 않았다. 오직 화안금정(火眼金睛)을 지닌 오공만이 요사한 것을 간파해 소리를 지르며 3차례나 때려죽였지만, 당승에게 저지당하고 누명을 쓰고 긴고주(緊箍咒)를 외워 하마터면 쫓겨날 뻔했다.

많은 독자들이 이 장면에 분노하면서, 오공을 불쌍히 여기고 당승이 눈멀고 마음도 멀었다고 한탄한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백골정은 세 차례 공격을 받았지만 결국 살아남아 무궁한 잠재적인 위험을 남기고 도망쳤지만, 독자들은 이 속에 담긴 깊은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

지면에 제한이 있으니 이 이야기는 여기서 마무리한다. 필자가 게으름을 피우지만 않는다면 아마 곧 그 지점에 도달할 것이다. 지금 관건은 백골정의 내막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 백골정은 바로 우리 육체범태(肉體凡胎) 속의 범골(凡骨)이다. 수련인이 반본귀진(返本歸真)하려면 가장 먼저 이 인피(人皮 층층 사람 마음에 대응한다)를 한 겹씩 벗겨내야 한다. 인피를 벗기는 것은 쉽지만, 범골은 제거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범골이 바로 사람의 근기(根基)이기 때문인데, 일부 판타지 소설에서 묘사된 것처럼 도(道)를 증험하려면 이 근기를 다시 만들고 육체범태를 벗어야 한다.

근기를 다시 만드는 것은 오늘날 정법(正法)과 비슷하다. 구세력의 폐단을 바로잡고, 모든 바르지 못한 요소를 바로잡으며, 모든 완벽하지 못한 부분을 보완해 신우주(新宇宙)의 표준으로 다시 바로 잡는 것이다. 오직 구세력이 법에 동화하는 것을 선택하기만 한다면 창세주에 의해 구원받고 바로잡혀 깡그리 소멸당하는 도태(淘汰)의 액운을 면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법 속에서 위치를 다시 잡으면 더 고급 생명이 될 수 있다. 이렇게 좋은 일이고, 윈윈의 결말은 아름다운 미래가 있고 이를 통해 차원을 승화할 수 있는데, 구세력은 왜 하려 하지 않는가?

기어코 스스로 구원하려 하며 대법제자들의 수련을 억지로 검증하려 하면서, 정법(正法)도 자신들의 뜻대로 하려 하는데, 구세력의 의지(意志)가 바로 사(私)이며, 전반 구우주를 관통해 성주괴멸(成住壞滅)을 초래한다. 사(私)의 속성이 바로 저 백골정의 근원이다. 따라서 구세력의 자사(自私)는 차라리 모든 것을 훼멸할지언정 동화하려 하지 않는다. 신우주는 무사무아(無私無我)하고, 원융불파(圓融不破)한 법이기 때문에, 법에 동화되려면 가장 먼저 사의 속성을 깡그리 없애야 한다. 다시 말해 백골정의 근원을 철저히 훼멸해야 한다.

정법제자 역시 구우주 생명의 대표이지만, 단지 우리는 이 법에 동화해, 수련 중에서 사(私)를 제거하고, 자신을 순정하게 하며, 바르지 못한 요소를 바로잡고, 진아(真我)의 본성을 드러내는 것을 선택했을 뿐이다. 우리는 아무것도 잃지 않았고 단지 나쁜 요소를 제련해 좋은 요소로 만들고, 능력이 더욱 강해졌으며, 지혜는 법과 함께 존재한다. 사실이 실증하다시피 우리의 노력과 사부님에 대한 믿음은 배로 보상받았고 애초 우리의 올바른 선택은 우리를 최대의 승자로 만들었다.

지금 구세력은 이를 보았고 후회하고 있다. 애초 홀로 고집을 부린 것은 위사(爲私)한 요소가 장난을 친 것으로, 법에 동화하면 곧 자신의 이익을 잃고 더 이상 특권 계급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들이 틀렸음을 입증하는데 법에 동화되는 것은 단지 우리 생명의 흠결을 바로잡고 가장 원만한 생명으로 성취할 뿐이다. 이렇게 좋은 기회를 놓쳤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전히 어리석게도 정법을 교란하고 파괴하여 정법을 이용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고자 한다.

창세주(創世主)의 자비가 어찌 타인에 의해 더럽혀질 수 있겠는가. 정법(正法)에 죄를 지으면 기다리는 것은 더욱 두려운 형신구멸(形神俱滅)이며, 더는 기회가 없을 것이다. 구세력은 도박에서 졌지만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또 대법제자를 시기해 교란을 더욱 심화시켰다. 혼란해진 이들은 모두 본래 내원에 문제가 있는 자들이다. 그러나 법(法)이 크고 사부님의 자비가 크기에 오직 돌아와 진정으로 수련하기만 하면 설사 마(魔)가 온다 해도 모두 구도 받을 수 있다. 신우주에도 마계(魔界)가 있고 일음일양(一陰一陽)이 도(道)가 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문제가 있어도 두려워할 필요는 없지만 그대로 당신은 분발해야 한다! 아직 기회는 좀 남아 있지만, 그리 많진 않다. 사부님께서 연달아 두 편의 경문으로 방할(棒喝)하셨으니 남은 시간은 정말 많지 않다.

아! 마음이 급하다! 한 가지만 더 말하자면 백골정을 조심해야 한다! 내려놓지 못한 속인의 마음, 팽창되어 나온 집착, 사욕(私慾)의 근원을 추적해 보면 모두 사람의 범골(凡骨)이 장난을 치는 것이다! 절대 여러분을 겁주려는 것이 아니다. 꼼꼼히 살펴보면 이 어리석은 세월 동안, 눈앞의 환상에 미혹되어 사람이 신(神)이 되는 그 한 걸음을 내딛지 못한 것은 뼛속깊이 자리잡은 그 집착 관념이 요괴 짓을 한 것이 아닌가? 그러므로 진정으로 수련하려면 먼저 백골정을 없애야 한다! 사부님의 고심(苦心)을 헛되이 하지 말아야 한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53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