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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경(詩境)의 아름다움

운개(雲開)

【정견망】

달이 지니 까마귀 울고 하늘 가득 서리 나리는데
강풍(江楓)에서 고깃배 불빛 보며 근심 속에 잠을 청하네
고소성 밖 한산사
한밤의 종소리 나그네 뱃전까지 들려오네.

月落烏啼霜滿天
江楓漁火對愁眠
姑蘇城外寒山寺
夜半鍾聲到客船

당대(唐代) 시인 장계(張繼)의 ‘풍교야박(楓橋夜泊)’은 층차가 분명하고 정경(情境)이 서로 이어지며 의미가 깊고 두터워, 천여 년 동안 널리 인구에 회자되었다. 시에는 단지 가을밤의 맑고 서늘한 기운뿐 아니라, 역경에 처한 사람이 사찰 종소리에서 본 한 줄기 희망을 표현했다. 자비와 점오(點悟)야말로 이 시의 영혼이다.

“달이 지니 까마귀 울고 하늘 가득 서리 나리는데”

이 구절은 얼핏 보면 단순히 이미지를 나열한 것 같지만, 그 안에 인과와 층차가 숨겨져 있다.

“달이 지니”는 빛이 점차 사라져 천지(天地)가 홀연히 어두워짐을 의미한다. 어둠이 마땅히 깊이 잠들었을 까마귀를 놀라게 했기에, “까마귀가 울고”, 또 까마귀 울음 때문에 본래 잠을 이룰 수 없었던 시인이 하늘을 바라보게 했기에, 하늘 가득한 서리가 눈에 들어온 것이다.

이 일련의 과정은 밤 풍경의 변화이자 심경(心境)의 점진적 변화다.

“달이 지니”와 “까마귀 울고”는 왕유(王維)의 “달이 나타나 산새를 놀라게 하네(月出驚山鳥)”와 서로 비교할 수 있다. 하나는 어둠이 새를 놀라게 했다면, 다른 하나는 달빛이 새를 놀라게 하니, 경계(境)는 달라도 의미는 마찬가지로 심원(深遠)하다.

“강풍(江楓)에서 고깃배 불빛 보며 근심 속에 잠을 청하네”

“강풍”이란 서로 마주 보는 강가교(江家橋)와 풍교(楓橋)를 가리킨다. 두 다리 사이로 어선과 상선이 끊임없이 오가니 비록 자정 가까운 시간이었지만, 강 위 등불은 여전히 밝다. 마치 두 다리 사이에 등불 그림자 때문에 편안히 잠들지 못하는 듯하다. 하물며 배 안에는 과거에 떨어진 시인이 있으니 그저 수심(愁心) 속 뒤척이며 잠 못 이룰 수밖에 없다.

“고소성 밖 한산사
한밤의 종소리 나그네가 뱃전까지 들려오네.”

이 구절은 층차가 분명하다. 광활한 “고소성”에서 성 밖의 “한산사”로, 다시 한산사에서 울려 퍼지는 종소리로, 마지막으로 홀로 정박한 “나그네 뱃전”까지. 공간이 한 층 한 층 축소되는 것이 마치 카메라가 시인의 마음속으로 서서히 깊이 들어가는 듯하다.

이 길고 끝없는 불면의 밤에, 고독하고 무력한 시인은 반복해서 울리는 불문(佛門)의 종소리에 감동한다. 불가(佛家)의 자비는 현재 그의 상처를 달래줄 뿐만 아니라, 마치 아득한 가운데 그의 미혹(迷惘)을 일깨우는 듯하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이후 장계는 더 이상 낙담하지 않고 붓을 버리고 군대에 종사해 마침내 업적을 이루었다고 한다.

오랜 세월 불문의 종과 북은 단순한 악기가 아니라, 세인(世人)을 일깨우는 메아리와 같았다.

우주 정법은 창세주(創世主)께서 친히 중생을 구도하고 계시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이 인간 세상의 환영(幻境)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저 오래된 종소리는 여전히 세상 사람들에게 마땅히 깨달을 때가 되었고 생명의 진정한 출로(出路)를 찾을 때가 되었음을 상기시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오직 법을 얻어 하늘로 돌아가는 것만이 생명의 최종적인 귀로이자 심원(心願)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99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