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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세는 농담이 아니다

순진(純眞)

【정견망】

“손가락 걸고 도장 찍고, 백 년 동안 변하지 말자.” 어렸을 때 친구들이 어떤 일을 약속할 때 이 말을 중얼거렸던 기억이 난다. 마치 이 말을 하고 나면 깨뜨릴 수 없는 맹세가 되어, 어린 시절의 우리를 감히 함부로 어기지 못하게 했던 것처럼 말이다. 자라면서, 점차 누구에게든 그런 약속을 쉽게 하지 못하게 되었다. 중대한 맹세를 내뱉는 순간, 수많은 눈들이 엄숙하게 자신을 지켜보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이다.

그렇다. 아마도 그런 이야기가 정말 많아서일 것이다. 《수당연의(隋唐演義)》에서 진경(秦瓊)과 외사촌 동생 나성(羅成)은 창과 간(鐗 쇠로 만든 곤봉류의 무기)을 서로 전수하면서, 상대에게 무예를 하나도 남김없이 가르쳐주기로 맹세했다. 하지만 나성은 회마창(回馬槍)을 진경에게 가르쳐주지 않았고, 진경 역시 산수편(撒手鐧)을 나성에게 전수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맹세를 어겼고, 결국 한 명은 화살에 몸이 꿰뚫려 죽었고, 다른 한 명은 피를 토하며 죽는 비극적인 결말을 맞아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악비전(岳飛傳)》에서 장방창(張邦昌), 왕탁(王鐸), 장준(張俊)이 무과(武科) 심사관이 되어 뇌물을 받고 양왕(梁王)을 장원으로 세우려 했다. 하지만 종택(宗澤)이 그들을 붙잡고 맹세하게 했다. 세 사람은 어쩔 수 없이 독한 맹세를 했는데, 만약 마음을 속이고 뇌물을 받았다면 번방(藩邦)에 가서 돼지나 양이 되거나 만인의 욕을 먹으며 죽을 거라고 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세운 맹세가 너무나 기이하여 절대로 실현될 수 없다고 여겼기에, 감히 맹세를 어기고 악비를 해쳤다. 그러나 뜻밖에도 나중에 맹세는 모두 현실이 되었다.

또 《삼국연의》에서 손견(孫堅)은 원소(袁紹)가 옥새(玉璽)를 가진 것으로 의심하자 “내가 만약 이 물건을 갖고 있다면, 칼과 화살 아래에서 죽을 것입니다!”라고 맹세했다. 결국 맹세가 응험해, “손견의 몸은 돌과 화살에 맞았고, 뇌수가 터져 나왔으며, 사람과 말이 모두 현산(峴山) 에서 죽으니, 향년 서른일곱에 불과했다.”

이러한 소설가들의 일치된 극 전개는 사실 중국 고인(古人)의 천명관(天命觀)을 실증한다. 춘추 시기에, 제후국들 사이뿐만 아니라 사대부들 사이, 나아가 일반 민중들 사이에서도, 많은 협의는 맹세에 의존했다. 당시 맹세의 형식은 주로 “만약 …하지 않는다면, …와 같으리라”였는데, 대략 자신이 말한 대로 행동하지 않으면 무엇과 같이 비참하게 죽을 것이라는 뜻이었다. 당시 사람들은 신령(神靈)을 독실하게 믿었고, 신(神)을 약속의 증인으로 여겼기에 감히 맹세를 어기지 못했다. 그러므로 감히 목숨을 걸고 서약한 것이다.

기원전 722년, 정장공(鄭莊公)은 자신의 어머니가 동생 공숙단(共叔段)의 반란을 지지했다는 구실로 어머니를 연금하고, 황천(黃泉)에 이르지 않으면 다시는 만나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그러나 결국 자신의 어머니이기에, 정장공은 생각할수록 후회했지만, 자신이 했던 맹세 때문에 차마 어머니를 만날 수 없었다. 나중에 누군가 장공에게 터널을 파서, 샘물이 나오는 곳에서 어머니를 만나면 맹세를 어기지 않는 것이라고 제안했다. 정장공은 이 말을 듣고 매우 기뻐하며, 그 제안대로 실행해 ‘황천’에서 어머니를 만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당시 사람들이 맹세를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는지 알 수 있다. 만약 지금이라면, 사람들은 아마도 이러한 행동을 비웃으며, 이미 했던 맹세를 잊어버렸을 것이다.

[역주: 고대 중국인들에게 황천은 망자들이 가는 지하 세계에 흐르는 물이다. 즉 황천에 이르지 않으면 다시 만나지 않겠다는 말은 죽기 전에 다시는 만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단지 미신 때문에 고인이 맹세를 중요하게 여겼을까? 당연히 그렇지 않다. 고대에 맹세를 이행하지 않아 비참한 말로를 맞은 사례는 즐비하다. 이렇게 눈으로 직접 본 응보(應報)가 고인들이 맹세를 지킨 근본적인 이유이다.

수(隋)나라 때 병주(并州) 맹현(盂縣)에 죽영통(竹永通)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이전에 절에서 곡식 육십 석을 빌렸지만, 여러 해가 지나도록 갚지 않았다. 나중에 절에서 그에게 곡식을 갚으라고 요구했으나, 그는 이미 갚았다고 주장하면서 불당 앞에서 “제가 만약 정말로 갚지 않았다면, 내생에 절에서 일하는 소가 되겠습니다”라고 했다.

나중에 그는 죽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절의 암소 한 마리가 송아지를 낳았다. 이 송아지의 발에는 흰색의 무늬가 있었는데, 놀랍게도 ‘죽영통’ 세 글자였다. 이 일이 마을 사람들에게 알려진 후, 매일 많은 사람이 이 송아지를 보러 왔다.

죽영통의 집안사람들이 이 일을 알게 되자, 백 석의 곡식으로 이 송아지를 되사왔다. 가족들은 또 불상(佛像)을 만들고 경문(經文)을 써서, 죽영통의 죄를 소멸시켜 달라고 빌었다. 한 달여 후, 이 송아지는 죽었다. 이로써 볼 때, 이 죽영통은 생전에 분명히 신이나 부처를 전혀 믿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어찌 감히 부처 앞에서 독한 맹세를 했겠는? 문화대혁명 때, 중공(中共)에 세뇌된 수많은 젊은이들이 절에 가서 불상을 부수었지만, 나중에 응보를 받은 사람이 셀 수 없이 많았다. 이들이 모두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 아니겠는가?

금(金)의 문인 원호문(元好問) 역시 독한 맹세가 응험한 실제 사건을 기록한 적이 있다. 당시 뇌(雷) 씨 성을 가진 여자가 있었는데, 열일곱 살 되던 해 응주(應州) 사람 정졸(丁倅)에게 시집갔다. 뇌 씨의 당형제(堂兄弟)들이 이 결혼에 대해 매우 불만을 품었고, 관부(官府)에 고발하기를, 뇌씨와 정췌는 복상(服喪) 기간이 끝나기 전에 결혼해 예제(禮制)를 위반했다고 했다.

관부에서 고발을 접수한 후, 두 사람의 혼인을 무효로 판결하고 반드시 이혼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하여 뇌 씨는 어쩔 수 없이 정졸과 이혼했다. 두 사람이 헤어질 때, 정졸이 말했다. “이혼은 결코 우리의 본심이 아닙니다. 부인께서는 이번에 가시면 재가(再嫁)하시겠습니까?”

그러자 뇌 씨가 “제가 만약 재가한다면, 두 눈이 멀게 될 것입니다!”라고 독한 맹세를 했다. 정졸이 듣고 말했다. “부인이 정말 그런 마음이라면, 저도 마땅히 같은 맹세를 하겠습니다.”라고 했다.

그러나 이혼 후 오래지 않아 정졸은 맹세를 어기고 재혼했고, 얼마 안 있어 과연 독한 맹세가 응험해 두 눈이 멀게 되었다. 반면에 뇌 씨는 압력을 견디고 굳게 재혼하지 않았으며, 열여덟 살부터 줄곧 홀로 살다가 아흔일곱 살에 세상을 떠났다.

고대 사회에서 보편적으로 신을 믿었지만, 그렇다고 절대적이지는 않았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들은 감히 함부로 독한 맹세를 했는데, 이러한 맹세는 대부분 자신의 이익을 보호하는 것과 요행심리가 공동으로 작용해서 이뤄진 것이다.

《열미초당필기》에도 이런 일화가 나온다. 두림진(杜林鎮) 사람 장복(張福)은 그 지역의 토호(土豪)와 길을 두고 다투다가 돌다리 아래로 밀려 떨어져 빈사(瀕死) 상태에 이르렀다. 마을 관리가 이 사건을 관부(官府)에 보고했다. 장복은 어머니에게 은밀히 토호에게 말해달라고 부탁했는데, 만약 토호가 자신의 노모와 어린 자녀를 대신 돌봐준다면, 자신이 스스로 발을 헛디뎌 다리에서 떨어진 것이라고 인정하겠다고 했다. 토호는 즉시 그렇게 하겠노라고 약속했다. 장복이 죽은 후, 토호는 약속을 어기고 노인과 아이를 부양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토호가 술에 취해 말을 타고 밤길을 가다가, 뜻밖에도 말이 발을 헛디뎌 그 역시 다리 아래로 떨어져 죽었다.

역사는 우리에게 맹세를 어기는 결말이 매우 무섭다는 것을 알려준다. 함부로 맹세하는 것은 결코 현명한 선택이 아니다. 아마도 함부로 독한 맹세를 하는 사람들은 잠시 속일 수 있을지 모르지만, 머리 위 석 자 위에 신명(神明)이 있으니, 그 굳은 맹세가 일단 입 밖으로 나오면 결코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다.

특히 독한 맹세를 하며 공산당 당(黨), 단(團), 대(隊)에 가입한 사람들은, 맹세 중에 주먹을 높이 들고 자신의 생명을 그 당에 바치고 언제든 그 당을 위해 몸을 바치겠다고 했다. 이는 곧 자신의 목숨까지 중공에게 준 것과 다름없지 않은가? 그런데 중공은 역사적으로 무수한 악행을 저질러 팔천만 명이 넘는 중국인의 사망을 초래했고, 오늘날까지도 ‘진선인(真善忍)’을 수련하는 파룬궁(法輪功) 수련생들을 박해하며, 중국인의 장기를 생체로 적출하고 있다. 이처럼 죄악이 가득 찬 사악한 정권을 하늘이 어찌 오래 내버려 두시겠는가? 그렇다면 하늘이 악당을 제거할 때, 독한 맹세를 했던 사람들은 가장 먼저 중공의 희생양이 되지 않겠는가?

어쩌면 어떤 사람들은 독한 맹세를 할 때, “나는 그것을 속이는 것이다”라고 생각하거나, “이 맹세는 무효이다”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사실 이것은 자신을 속이는 행위이다. 맹세는 결코 농담이 아니다. 왜냐하면 강요에 의해 중공에 가입했든, 아니면 이익을 얻기 위해 가입했든 간에, 그 맹세는 사람의 입에서 실질적으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사사로운 말도 하늘은 우레처럼 듣고, 어두운 방에서 마음을 속여도 신의 눈은 번개와 같다.” 실제로, 이러한 독한 맹세들은 대량으로 응험하고 있다. 2003년의 사스(SARS)와 2019년부터 현재까지의 중공 바이러스 기간에, 중공 조직에 가입했던 많은 사람들이 전염되어 사망했다.

개체 생명으로서, 누가 평안하고 건강하기를 바라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자신이 과거에 했던 독한 맹세를 해결하는 것이 특히 중요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것은 바로 진심으로 신에게 성명하는 것이다. 탈당 사이트에서 중공의 모든 조직을 탈퇴하고, 원래 악마 중공에게 속아 했던 맹세를 폐기하며, 중공이 역사적으로 저지른 죄행을 대신 책임지지 않고 진심으로 뉘우치는 것이다. 오직 이렇게 해야만 진정으로 독한 맹세를 폐기하고, 그러한 뜻밖의 재앙을 멀리할 수 있다. 역병에는 눈이 있고, 신(神)은 사람의 마음을 보신다. 부디 신중하게 생각하기를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99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