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운(千載雲)
【정견망】
‘고인(高人)’은 키가 크진 않았다. 대략 1미터 60 정도의 체격이었고 학력도 높지 않아, 어렸을 때 겨우 반년 동안 서당에 다녔을 뿐이다. ‘고인’이 뛰어난 것은 투시력이 극히 강한 눈을 가지고 있어서, 시공을 초월해 미래와 다른 공간의 일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70년대 초, ‘고인’은 그때 아직 젊었지만 비범한 ‘안력(眼力)’ 때문에 현지에서 매우 명성이 높았다. 한 번은 두 청년이 ‘앞날을 보기 위해’ 그를 찾아왔다. 둘 중 한 명은 키가 크고 한 명은 작았다. 키 큰 사람은 약 1미터 80 정도의 체격이었고, 옷차림은 비교적 새것이었으며, 사람도 깔끔해 보였다. 키 작은 사람은 겨우 1미터 60을 조금 넘었고, 옷은 낡고 단정하지 않았지만, 사람은 튼튼해 보였다.
“저희 두 사람의 앞날을 좀 봐주십시오.” 키 큰 사람이 자신감 있게 말했다. 키 작은 사람도 옆에서 작은 목소리로 동의했다.
‘고인’은 당시 자기 일에 바빴고, 찾는 사람이 많아지자 예의를 갖추지 않았다. 그저 단순히 그들을 한 번 흘끗 보고는 말했다.
“이분(키 큰 사람을 가리킴)은 지금 목수 일을 배우는데, 재주가 많으면 숨어 살기 좋지만, 이후에도 당신은 농촌을 벗어나지 못할 겁니다. 일생 부지런히 일하고 고생하겠지만, 큰 병은 없을 것이고, 이후에 아들 둘에 딸 하나를 둘 겁니다.”
그는 잠시 멈추었다가 다시 말했다.
“저분(키 작은 사람을 가리킴)은 지금은 어렵게 살고, 만사가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다고만 보지 마세요. 당신은 앞으로 도시에 나가 일하게 될 것이며, 친척의 도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십 년 이후의 일입니다.”
키 큰 사람이 급히 물었다.
“당신은 제가 목수 일을 배우고 있는 것을 대체 어떻게 아셨습니까? 또 제가 농촌을 벗어나지 못할 것을 어떻게 아십니까?”
“내가 ‘안력(眼力)’으로 보는 것이니, 믿지 못하겠으면 이후에 두고 보시오.”
키 큰 사람이 다시 캐물었지만, ‘고인’은 말하지 않고, 자신의 일에만 몰두했다.
두 사람이 떠날 때, 키 작은 사람은 기쁨으로 가득 차서, 자신이 이후에 출세할 날이 있을 것이며, 반드시 선물을 사서 잘 찾아뵙고 사례하겠다고 말했다.
시간은 그가 말한 것이 모두 사실임을 증명했다.
그 키 큰 사람은 당시 대대 서기의 셋째 동생이었는데, 그때의 농촌에서는 일반 사람들이 모두 **대채(大寨)**를 배우며,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밭을 갈았고, 목수가 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남들보다 한 수 위였다. 그러나 키 큰 사람의 진정한 생각은 밖으로 나가 농촌에서 밭을 갈지 않는 것이었다. 이후, 키 큰 사람은 청년에서 중년으로 점차 노년으로 접어들면서, 줄곧 농촌에서 밭을 갈았고, 때로는 밖에서 다른 일도 했지만, 이삼 일을 넘기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일생 동안 부지런히 고생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지금 그의 딸 하나는 일찍 시집갔고, 아들 둘도 근년에 가정을 이루었다.
반면 키 작은 사람은 당시 어머니가 개가(改嫁)하면서 따라왔다. 그의 친아버지는 지주 성분이었고, 게다가 큰아버지가 국민당 고위 관리로 해방 후 대만으로 ‘도망’갔기 때문에, 그의 아버지는 당연히 죄가 가중되어, 그가 겨우 한 살 때 ‘탄압(鎮壓)’당했다. 그는 이번에 개가한 어머니를 따라 한 ‘하층 중농(下中農)’ 집에 정착했고, 그때부터 이름과 성을 바꿨다. ‘빈하중농(貧下中農)’이라는 보호막이 생기자 비록 일은 힘들게 했지만, 그래도 감히 그를 괴롭히는 사람이 많지 않았으며, 동시에 많은 ‘재앙’을 면했다. 나중에 문화대혁명이 끝나고 지주 부농의 모자가 벗겨지자, 큰아버지와 연락이 닿았다. 당시 그의 큰아버지와 사촌 형들은 대만에서 온 가족이 미국으로 이주했는데, 모두 고학력의 능력자들이었고, 생활도 당연히 풍족했다. 그는 큰아버지와 사촌 형들의 지원을 받아, 온 가족이 현지 현성(縣城)으로 이주했다. 키 작은 이 분이 바로 나의 숙부님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고인’를을 알았는데, ‘고인’의 비범한 능력도 알았지만, 단지 현대 과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었기에, 나 역시 다른 사람과 이야기할 수 없었다. ‘고인’에게 일부 신기한 일들이 많았지만, 나는 여기서 장황하게 말하고 싶지 않고, 단지 그가 내게 알려준 내 마음속에 존재하는 몇 가지 ‘큰일’만 말해보고자 한다.
89년 64 천안문 학생 운동 때, 나는 그때 막 직장에 다니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때 선생님의 영향으로, 정치에 참여하고 싶지 않았고, 화를 입을까 두려워, 단지 ‘이과 학문을 잘 배우면,세상 어디를 가든 두렵지 않다’고 생각했기에, ‘64’에 대해 그리 관심이 없었다. 비록 내 주변에도 동료들이 매우 ‘격렬’했지만, 나는 여전히 그렇게 열심이지 않았다. 어느 날, 나는 고향으로 돌아가 ‘고인’을 찾아뵈었다. 그는 내가 책을 읽어서 이치를 알고 후덕하고 신중하며, 말귀를 잘 알아듣는 사람이라 여겨 나를 매우 신뢰했기에, 자신이 ‘본’ 한 가지 이상한 일을 말해주었다.
어느 날 밤, 하늘이 희미하게 밝을 때, 고인은 아주 많은 청년들이 총에 맞아 아주 넓고 평평한 큰 광장에 쓰러져 있는 것을 보았고, 또 탱크 부대가 돌진해 오는 것을 보았다. 나중에 탱크가 지나가자, 사람들의 시신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이렇게 훌륭한 젊은이들이었는데, 이렇게 사라져 버리다니!”라며 탄식했다.
이것은 ‘64’ 청년들의 일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때의 신문과 TV에서는 ‘64’ 때 한 사람도 죽지 않았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당시 나는 이 일에 대해 크게 관심이 없었고 또 등소평을 비교적 믿고 있었기에, 그가 말한 일을 마음에 두지 않았다.
96년, 또 ‘고인’을 찾아뵙자 내게 또 한 가지 일을 들려주었다. 바로 계획출산으로 낙태되어, 많은 무고한 영아들이 해를 입었으며, 이 아이들이 저승(陰間)에서 먹을 것도 마실 것도 입을 옷도 없이, 온종일 하늘에 대고 울부짖으며, 너무나 비참하다는 것이다.
그는 말했다.
“지금 아이들은 어느 아이든 귀한 존재인데, 만약 이 부모들이 자신이 낙태시킨 아이들이 저렇게 고통받는 것을 본다면, 얼마나 마음 아프고 고통스러울지 모르겠구나.”
그는 또 내게 낙태된 영아 중에는, 심지어 하늘이 파견한 ‘큰 인물’이 전생한 경우도 있는데, 이 ‘큰 인물’들은 매우 능력이 있어서, 모두 하늘에 고소했다고 했다!
비록 ‘고인’이 말한 이 일들이 당시에는 ‘미신’처럼 보였지만, 나는 그가 결코 없는 일을 만들어서 말하진 않았을 거라고 믿었다. 나는 그때 생각했다. 그렇다, 이 영아들은 정말 불쌍하지만, 설령 그들이 하늘에 고소하더라도, 누구를 고소한단 말인가? 그들의 부모를 고소하는가? 국가 정책을 고소하는가?
올해 청명절 무렵, 나는 고향에 돌아가 조상에게 제사를 지낼 기회를 이용하여, 다시 ‘고인’을 찾아뵈었다. 그는 과거보다 늙긴 했지만, 정신만은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듯했다. ‘고인’은 또 나에게 한 가지 기이한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어느 날 한밤중에, 그가 한 무리의 사람들이 어느 사람을 에워싸고 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 사람은 키가 매우 작았고, 누구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단지 한 무리의 귀신과 같고 요괴와 같은 ‘녀석’들이 그 사람을 마치 돼지를 잡는 것처럼 고함지르며 괴롭히는 것을 보았고, ‘고인’이 가서 제지하려고 생각했다. 이때, 그의 귓가에 한 ‘사람’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당신은 이 일에 관여하지 마라. 그는 바로 등소평(鄧小平)이다. 그가 당시 탱크로 단식하는 학생들을 깔아뭉개 죽였는데, 그 학생들이 그를 ‘가로막고’ 고소하며, 지금까지 고소하고 있다. 그 학생들은 나라의 인재였고, 또한 하늘에서 파견되어 왔으며, 능력이 있는 이들이다. 선악에는 보응이 있고 등소평이 그렇게 많은 학생을 해쳤으니, 마땅히 보응을 받을 때가 된 것이다.”
당시 ‘고인’이 내게 말했다. 자신은 이렇게 ‘보는 능력’이 있었기 때문에, 많은 고생을 겪었고, 시위에서 끌려다니기도 했고, 매달려 얻어맞기도 했으며, 가택 수색을 당하기도 했다고 한다. 나중에 등소평이 집권한 후에야 비로소 좀 편안한 날을 보냈는데, 그가 그런 어리석은 짓을 하여 정말로 탱크로 학생들을 깔아뭉갤 줄은 예상하지 못했으며, 그 결과 이러한 보응을 당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매우 안타까워하며 말했다. 등의 보응은 언제 끝날지 모르며, 그의 후손들에게도 화가 미칠 것이니, 앞으로 보게 될 거라고 했다.
이것은 또한 나로 하여금 지금 널리 퍼지고 있는 천멸중공(天滅中共)을 떠올리게 했다. 왜 그것을 멸하는가?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탈퇴하는가? 그것은 그것이 나쁜 짓을 다 하고 운수가 다하여, 그것이 보응을 받을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중공이 집권한 지 50여 년 이래, 여러 차례 운동에서 피해를 입어 죽은 사람들과 대기근으로 굶어 죽은 사람들을 합하면, 8천만 명에 달하며, 또 계획 출산으로 인해 해를 입어 죽은 생명 역시 1억이 넘는다. 중공의 잔인함은 그야말로 전무후무하다고 할 수 있으며, 줄곧 도살 칼을 내려놓지 않았다. 중공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악행을 저지르고 있으며, ‘진선인(真善忍)’을 신봉하는 파룬궁 수련생들과 민주 인사, 상방(上訪) 인사 및 기타 종교 인사들을 체포해 잔혹하게 해치고 있다.
《9평(九評)》이 세상에 나온 것에 감사한데, 이로써 나는 중공이 하나의 사악한 영체(邪靈)임을 인식하게 되었다. 영체이니만큼, 역시 생명이 있다. 그렇다면 각 차례 운동에서 죽임을 당한 8천만 원혼은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가? 계획 출산으로 사망한 억만 영아들은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가? ‘64’ 학생들과 박해 받아 사망한 파룬궁 수련생들은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가? 바로 중공을 찾아야 하고, 중공의 사악한 우두머리와 그것의 맹목적인 추종자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중공이라는 이 파시스트보다 더 파시스트적인 악마, 사람과 신, 귀신이 모두 분노하는 흡혈귀를, 지금 멸하지 않고 언제를 기다리겠는가! 그것을 청산할 때가 왔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218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