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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과 지내면서 진선인을 실천

북방안(北方雁)

【정견망】

2000년에 우리 집은 2층 아파트를 샀다. 오래된 단지라 관리 사무소가 없어서 복도가 매우 지저분하고 먼지가 많았다. 위층 꼭대기 집 이웃이 개 두 마리를 키웠기에 복도에는 개똥도 자주 있었다. 나는 내가 대법제자이고 이곳으로 이사 왔으니 이곳 중생들과 인연이 있다고 생각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어디서든 좋은 사람이 되라고 하셨기에, 나는 자발적으로 복도 청소를 시작했다.

어느 날, 나는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사고 작업복을 입은 뒤 마스크를 썼다. 먼지가 많아 먼지가 일지 않도록 먼저 물을 뿌려 복도를 적신 뒤 잠시 후 청소했다. 계단을 하나하나 닦으며 그 과정에서 쓰레기를 몇 번이나 비우러 가야 했다. 머리에 땀이 비 오듯 쏟아졌고 먼지 때문에 기침이 났으며, 콧구멍은 온통 검어지고 몸에도 먼지가 가득 내려앉았다. 비질을 마친 후 집에서 물을 계속 길어와 빗자루로 한 칸씩 문지르며 물청소를 했다. 개똥이 밟힌 곳은 물로 씻기지 않아 삽으로 긁어내야 했다.

이때 이웃들이 오르내리며 보고 말했다.

“수고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깨끗하네요.”

나는 “깨끗하면 다들 편하지 않겠어요”라고 답했다.

반나절을 꼬박 들여 드디어 청소를 마쳤고 지친 몸을 이끌고 귀가했다. 하지만 깨끗해진 복도를 바라보며 자신이 대법제자임을 생각하니 피로와 원망이 씻은 듯 사라지고 마음이 밝고 즐거웠다.

우리 집은 남향인데 베란다 아래가 바로 1층 창고다. 창고 지붕 위에도 쓰레기가 많아 여름만 되면 파리와 모기가 들끓었다. 1층 이웃은 위층 사람들이 던진 것이라고 했다. 쓰레기를 버리지 말라고 말해도 소용이 없었고 여전히 마음대로 던져댔다. 여름에도 창문을 열지 못할 정도였으니 그들도 어찌할 도리 없이 무척 난감해했다.

어느 날, 나는 작업복을 입고 도구를 챙겨 아래에서 1층 창고 지붕 위로 올라갔다. 정말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지경이었다. 지붕이라기보다 아예 쓰레기장 같았다. 봉투에 담긴 쓰레기, 개똥, 쉰 밥과 반찬, 달걀 껍데기 등이 부지기수였고, 더욱 상상할 수 없었던 것은 사용한 생리대까지 있어 보기에 구역질이 났다. 이것들을 보니 속이 뒤집혔고, 너무 더럽고 메스꺼워 이렇게 교양 없는 사람들은 처음 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마음을 가라앉히며 내가 대법제자임을 생각하고 더는 원망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삽으로 쓰레기를 조금씩 땅으로 던진 뒤 빗자루로 쓸어냈고, 몇 번이나 구토가 올라오는 것을 참았다. 마지막에 땅으로 내려와 쓰레기를 다시 쓰레기통으로 옮겼는데, 많은 노력을 들여서야 겨우 마쳤다. 남편은 내게 “남들은 오래 살면서도 아무도 신경 안 쓰는데 당신은 왜 사서 고생이냐”고 타박했다. 나는 “내가 대법제자잖아요”라고 말했다. 위층 이웃 중 일부는 매우 막무가내라 쓰레기를 던질 뿐만 아니라 욕하기를 좋아했다. 다들 그녀를 싫어하면서도 건드리지 못해 꾹 참을 뿐이었다. 시간이 흐르며 다들 그러려니 하고 못 본 체하게 된 것이다.

한번은 내가 창고 지붕 위에서 청소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위에서 무언가 떨어져 내 몸을 적셨다. 보니 먹다 남은 국수였는데, 면과 국물을 통째로 부어버린 것이었다. 위를 올려다보니 아무도 없었지만 누구 집인지 짐작이 갔다. 나는 위를 향해 “청소 중이니 던지지 마세요!”라고 외쳤으나 대답이 없었다. 이런 일은 수시로 일어났다.

또 한번은 어떤 사람이 출근길에 우리 집 아래를 지날 때 긴 꼬투리 콩이 위에서 떨어졌다. 그 사람의 머리와 몸에 떨어지자 그는 화가 나서 크게 욕을 퍼부었다. 또 한 번은 내가 집에서 책을 보고 있는데 아래에서 욕하는 소리가 들렸다. 내려다보니 다른 통로의 이웃이 물에 빠진 생쥐 꼴로 서 있었다. 알고 보니 그 이웃이 아래를 지나가는데 우리 집 위층 이웃이 버린 구정물을 정통으로 맞아 머리와 옷이 다 젖은 것이었다. 그것도 추운 겨울에 말이다. 그 이웃은 화가 치밀어 두 시간 동안 욕을 퍼부었다. 구정물을 버린 이웃은 소리 한번 내지 못했다. 누가 버렸는지 보지 못했어도 다들 속으로는 알고 있었다. 이런 일이 자주 벌어지니 이 길을 자주 다니는 사람들은 대개 피해 다녔다.

나는 이런 일들에 동요되지 않고 원망 없이 여전히 정기적으로 청소했으며, 이곳을 떠날 때까지 계속했다. 이웃들은 내가 파룬궁을 수련한다는 것을 알았고, 파룬궁을 배우는 사람들이 모두 좋은 사람임을 증명하게 되었다. 점차 그들도 쓰레기를 잘 던지지 않게 되었고, 이웃들도 기본적으로 자발적으로 복도를 청소하게 되었다. 내가 수련 후 행하는 바를 본 남편은 처음에 수련하지 못하게 하던 모습에서 점차 친구들에게 “내 아내가 파룬궁을 배우더니 정말 좋아졌다”라고 말하게 되었다. 나는 자신의 실제 행동으로 진·선·인을 실천했다.

2017년에 새집으로 이사했다. 앞집은 동대표 집이었다. 옆집 대문과 우리 집 대문이 바짝 붙어 있어서 그 집 문을 크게 열면 우리 집 문을 열 수 없었다. 그런데 그 집과 앞집은 일 년 내내 거의 문을 열어두었다. 아침 일찍 문을 열어 밤 9~10시가 되어야 닫았고, 4월에 난방이 끊겨 춥거나 10월에 난방 전이라 추울 때도 문을 활짝 열어둔 채 두 집이 서로 드나들었다. 나는 귀가할 때마다 그 집 문을 조금 닫아야 우리 집 문을 열 수 있었다. 정말 할 말이 없었다. 단지 전체에서도 이런 집은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언니 아들이 우리 집에 올 때마다 이런 상황을 겪더니, 결국 한 번은 참지 못하고 문 앞에 서서 옆집을 향해 말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어요? 다른 집은 들어오지도 말라는 건가요? 적당히 좀 하세요!”

옆집은 아무 대꾸도 못 했다.

나는 “그만두렴, 나는 대법제자이니 남에게 선하게 대해야 해”라고 달랬다.

그는 “우리 집이었으면 벌써 문을 걷어찼을 거예요”라고 했다.

한번은 친구가 우리 집에 왔다가 나가면서 ‘꽝’ 소리가 났다. 친구가 무슨 일인가 싶어 보니 옆집 문에 부딪힌 것이었다. 친구는 화가 나서 말했다.

“어떻게 이래요? 왜 문을 안 닫나요? 이렇게 문을 열어 막고 있으면 다른 집이 나올 수 있겠어요?”

이웃은 대꾸가 없었다. 나도 화가 났지만 대법제자로서 싸울 수는 없다고 생각해 “그만둬, 저 집은 늘 저래”라고 말했다.

친구는 “이런 사람은 욕을 먹어야 정신을 차려”라고 했다.

또 한 번은 동수가 우리 집 일을 도와주고 나가다가 꽝 하고 또 부딪혔다. 옆집 이웃이 불만스러운 듯 말했다.

“왜 그렇게 세게 밀어요? 문이 부서질 뻔했잖아요. 우리 집 문 아주 비싼 거예요.”

나는 “고의가 아니었습니다”라고 했다. 이때 앞집 동대표가 보기 딱했는지 한마디 거들었다.

“아무개, 왜 이렇게 억지를 부려요? 문을 그렇게 활짝 열어놓으면 사람이 나올 수 있겠어요?”

나는 기회를 보아 “아무개 형님 말씀이 맞아요”라고 했고, 이웃은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났다. 대법을 배우지 않았다면 나는 분명 대차게 욕을 해주었을 것이다. 나의 심성(心性)은 반복되는 마찰 속에서 단련되었다.

사부님께서는 “참기 어려운 것도 참을 수 있다”(《전법륜》)고 말씀하셨다. 이 구절이 내 머릿속에 자주 나타났다. 끊임없는 법 공부를 통해 나의 심성도 점차 제고되었고, 화와 원망에서 점차 평온함으로, 다시 자비심으로 변해갔다. 사부님께서는 우리가 진·선·인에 동화되어 타인을 위하는 생명이 되라고 하셨다. 나는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았다. 옆집은 건물 정문이라 집안이 더워서 자주 열어놓고 시원하게 하는 것이니, 열게 놔두고 내가 조금 번거롭더라도 문을 닫아주면 된다고 생각했다. 나갈 때도 미리 생각해서 가급적 천천히 문을 열어 옆집 문을 치지 않도록 했다.

이 단지는 새로 지은 건물이지만 관리 사무소가 없었다. 복도 위생이 여전히 문제였다. 앞집 동대표는 아주 깔끔한 사람이라 우리 층은 아주 깨끗이 닦았지만, 다른 층이 더러운 것은 상관하지 않았다. 나는 일반인도 주동적으로 복도를 청소하는데 수련인인 우리는 더 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2년째부터 물로 복도를 닦기 시작했다.

나는 언니 집에서 페인트 통을 얻어오고 대걸레를 샀다. 6층부터 1층까지 닦아 내려갔다(우리 집은 4층이다). 4층 아래로는 비교적 더러웠기에 두 번씩 닦았다. 내가 청소할 때마다 동대표는 “다른 층은 신경 쓰지 말고 우리 층만 깨끗하면 그만이죠, 저들은 위생을 지킬 줄도 몰라요”라고 했다.

나는 “괜찮아요, 제가 자주 닦으면 되지요”라고 답했다.

5층, 6층 이웃들은 “정말 고맙습니다. 이 층에 살지도 않으면서 청소까지 해주시고”라며 고마워했다. 나는 “제가 대법을 배워서 그렇습니다”라고 말했다. 때로는 이웃의 친척이 방문했다가 내가 청소하는 것을 보고 “이 통로는 참 좋네요. 복도 청소해주는 사람도 있고. 우리 쪽은 너무 더러워도 아무도 신경 안 쓰는데”라고 말했다.

나는 내려갈 때마다 옆집이나 앞집에 쓰레기가 있으면 손수 아래로 가져가 쓰레기통에 버려주었다. 이웃들이 매우 감사해하면 나는 “천만에요, 별거 아닙니다. 먼 친척보다 가까운 이웃이 낫지요”라고 했다. 아래층 이웃들도 내가 청소하는 것을 보고 “이 통로는 댁 덕분에 살아요. 안 그러면 더러워서 어쩔 뻔했겠어요”라고 했다.

나는 “제게 신앙이 있어서 그래요, 대법을 믿거든요”라고 말했다. 그렇게 나는 몇 년을 하루같이 지금까지 견지해 오고 있다. 겨울에 눈이 오면 동대표 남편이 제설기로 좁은 길만 내놓곤 했는데, 나는 제설기를 직접 사서 눈이 오면 아래층의 눈을 모두 치웠다.

나의 양보와 선심은 결국 이웃들을 감동시켰다. 옆집 이웃은 여전히 문을 열어두긴 하지만 “미안해요, 내가 문 앞을 막고 있어서. 당신은 어쩜 그렇게 착해요?”라고 자주 말한다.

나는 “우리가 이웃이 된 것도 큰 인연인데, 하물며 우리 사부님께서는 남에게 선하게 대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라고 답한다.

이 건물로 이사 온 지 얼마 안 되어 우리 집에 법 공부 소조를 만들었다. 앞집 동대표의 대문이 자주 열려 있고 그녀가 집 밖 계단에 자주 앉아 있었기에, 우리 집에 사람이 오거나 동수들이 법 공부하러 오는 것을 다 볼 수 있었다. 같은 지역이라 기본적으로 서로 알고 지내기에 만나면 인사도 한다. 그런데 2020년 팬데믹이 시작되면서 어찌 된 일인지 동대표가 나를 감시하기 시작했다. 내가 드나들 때마다 그녀의 눈이 나를 쏘아보는 느낌이 들었다. 매일 법 공부 시간에 나갈 때면 그녀의 문은 늘 열려 있었다. 내가 돌아올 때 문 여는 소리가 들리면 그녀도 문을 열고 내다봤다. 누군가 우리 집 문을 두드리면 그녀는 달려 나와 누구인지 확인했고, 문을 닫고 있다가도 우리가 나갈 때면 꼭 열어서 확인했다. 동수들이 우리 집에 왔다가 나갈 때 그녀의 남편이 급히 고개를 내밀어 누구인지 살핀 적도 여러 번 있었다.

또 한 번은 나와 동수가 우리 집에서 나가는데 그녀의 남편이 문 열리는 소리에 급히 고개를 내밀었다. 내가 화가 나서 “아무개 오라버니, 뭘 보세요? 무슨 일 있나요?”라고 하자 그는 멋쩍어하며 “나가시는군요?”라고 했다. 나는 법을 늦게 얻어 직접적인 박해를 겪어보지 못했기에 이런 상황에 마음이 매우 억눌리고 두려웠다. 소조 동수들이 동대표 부부에게 진상을 알렸다. 우리가 진·선·인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된다는 것과 선악에 보응이 있다는 사례를 들려주었다. 나도 가끔 진상을 알렸지만, 그들은 거짓말에 속아 말로는 “파룬궁이 좋네, 다들 좋은 사람이네” 하면서도 실제로는 여전했다.

비록 마음은 두려웠지만 사악에 겁먹을 수는 없었다. 사부님께서는 “당신이 두려워하면 그놈은 붙잡을 것이요 생각이 바르면 사악은 무너지리라”(《홍음 2》)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당당하게 법 공부할 것은 하고 자료 만들 것은 만들어야 했다. 한번은 자료를 만들고 있는데 동대표가 문을 두드렸다. 나는 동수인 줄 알고 문을 열었는데, 그녀가 나에게 물건을 주러 온 것이었다. 나는 기계가 있는 큰 방에는 들이지 않고 작은 방에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보냈다. 그 뒤로 그녀는 의심을 품게 되었다.

나는 그녀의 배후에서 대법제자를 박해하도록 조종하는 사악한 요소를 제거하는 발정념(發正念)을 했다. 동시에 안전에도 주의를 기울였다. 한번은 집 안 청소를 하다가 막 문을 열고 쓰레기를 내놓았는데, 문을 닫기도 전에 동대표가 외손녀를 데리고 쑥 들어왔다. 손녀에게 “이 할머니네 한번 봐라, 집이 참 깨끗하단다”라고 말했다. 나는 그녀가 우리 집에 기계가 있는지 확인하려는 것임을 알았다. 우리는 몇 마디 인사를 나누었다. 그녀는 침대 곁에 서 있었고 손녀는 내 침대 위에 있었는데, 침대 정면이 불당(佛堂)이었다. 불당 문이 열려 있어 사부님 법상과 대법 서적들이 훤히 보였다. 나는 두려워하지 않았고 불당 문을 닫으러 가지도 않았다. ‘보는 것이 차라리 낫지, 몇 사람이나 이렇게 운 좋게 사부님 사진을 볼 수 있겠는가?’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방 안을 한 바퀴 둘러보고는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하고 돌아갔다.

동수가 우리 집으로 물건을 가지러 올 때 그들은 뚫어지게 쳐다봤으며, 거의 다가와 만져볼 기세였다. 다른 지역 동수가 우리 집에 왔을 때 동대표는 “처음 보는데, 당신 파룬궁 배우는 사람이오?”라고 물었고 동수는 그렇다고 답했다. 동수는 내게 “이웃이 왜 이래요?”라고 말했다.

어느 날 언니가 나에게 말했다. “내가 네 집 열쇠로 문을 열고 있는데 앞집 문이 열리더니 동대표 외손녀가 급히 달려 나오며 ‘할머니, 할머니! 저 집에 사람이 왔어요!’라고 하더라. 할머니가 나인 걸 보더니 머쓱해하며 아이에게 ‘사람 사는 집에 누구든 올 수 있지’라고 하더구나.” 나는 가슴이 아팠다. 어린 생명이 어른의 거짓말 주입으로 좋은 사람을 감시하는 악행을 돕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 집에 오는 거의 모든 동수가 심문을 당하는 식(표면적으로는 인사)이었기에 점차 동수들이 우리 집에 잘 오지 않게 되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수련 중에서 당신들이 부딪힌 좋은 일이든 좋지 않은 일이든, 모두 좋은 일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당신들이 수련하기에 비로소 나타난 것이기 때문이다.”(《정진요지 3》〈시카고 법회 설법〉)

나는 그녀가 이렇게 나를 감시하는 것이 어째서 좋은 일일까 생각하며 안으로 찾았다. 나의 두려움을 제거하라는 뜻일 것이다! 법 공부를 통해 안으로 찾아보니, 내가 아직 진상을 명백히 알리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아직 닦아버리지 못한 원망과 두려움이 남아 있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그 과정에서도 나는 여전히 그들의 쓰레기를 버려주고 복도를 청소했다.

재작년 정월이 지나고 사악한 당의 거짓말에 속아 현지 경찰과 지역사회 인원이 가가호호 방문해 소란을 피우고 대법 대련(對聯)을 찢는 사건이 발생했다. 어느 날 집에 있는데 노크 소리가 들려 동수인 줄 알고 문을 열었더니 모르는 여자였다. 사람을 잘못 찾았나 싶었는데 그녀가 말했다. “누가 이 집에 파룬궁 대련이 붙어 있다고 신고했어요.”

나는 멍해졌다.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곧바로 반응하며 말했다.

“대련에 뭐라고 써 있는지 보세요. 덕을 쌓고 선을 행하라는 내용인데 그것이 무엇이 나쁩니까?”

그녀는 대련과 ‘복(福)’ 자를 보더니 말했다.

“당신이 떼지 않으면 내일 파출소에서 와서 뗄 거예요.”

나는 “덕을 중시하고 선을 행해 좋은 사람이 되는 게 나쁩니까? 가보세요!”라고 말했고 그녀는 돌아갔다. 생각해보니 그 많은 집을 지역사회 직원이 다 돌 리는 없고, 분명 동대표가 신고한 것이다.

동수들과 교류해 보니 우리 집에 자주 오던 동수 한 명만 소란을 당했다. 동수는 동대표에게 진상을 알려야 한다고 했고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짠지를 조금 준비해 그녀의 문을 두드렸다.

“형님, 어제 그건 뭔가요? 지역사회에서 대련을 떼라고 하네요. 덕을 쌓고 선을 행하자는 글귀가 뭐가 나쁘다고 집에서 쉬는 사람에게 대련을 떼라 마라 하는지, 정말 막무가내네요.”

그녀가 말했다. “그 여자가 주민센터 서기 아무개인데, 좀 심하긴 했네!”

나는 그녀에게 진상을 많이 알려주었다. 그날 오후 현지의 많은 동수가 괴롭힘을 당했고 진상 대련을 떼라는 강요를 받았으며 파출소에서 뗀 경우도 있었다. 우리 동수들은 각 동대표 및 주민센터 직원들에게 진상 편지를 보내기로 상의했다.

동수 언니가 조율을 맡았고, 우리가 찾을 수 있는 동대표와 지역사회 인원들의 집 문고리에 진상 편지를 걸었다. 나도 우리 앞집 동대표 문에 진상 편지를 걸었다. 어떤 동수들은 정념이 충족하여 지역사회와 파출소에 직접 가서 진상을 알렸다. 이는 현지에서 좋은 효과를 거두었으며 사악에 큰 위협이 되었다. 그 후 나는 수동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복도를 청소할 때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녀에게 진상을 알렸다. 올해 늦봄 어느 날, 밖에서 돌아오는데 그녀가 나를 보고 말했다. “오늘 지역사회 사람들이 와서 댁의 대련을 사진 찍어갔어요.”

나는 의연하게 물었다. “누가 왔나요?”

그녀는 아무 말이 없었다. 나의 정념은 다른 공간에서 그녀를 조종하는 사악을 해체했다.

이 과정에서 나는 끊임없이 안으로 찾아 자신을 바로잡았고, 원망과 두려움을 닦아버리고 자비심을 닦아냈다. 또한 자주 발정념을 하여 동대표 부부의 배후를 조종하는 사악한 요소를 제거해 그들이 대법에 죄를 짓지 않게 했다. 본성의 일면이 드러나 진선인(真善忍)에 동화해 아름다운 미래를 갖기를 바랐다.

이렇게 오랜 단련을 거쳐 돌아보니,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수련 중에서 당신들이 부딪힌 좋은 일이든 좋지 않은 일이든, 모두 좋은 일이다.”(《정진요지 3》〈시카고 법회 설법〉)는 말씀이 정말 맞았다. 그들에게 정말 감사하다. 그들이 대법제자를 성취시킨 것이다. 동대표는 이제 나를 감시하지 않으며 자신의 위치를 바로 잡았다. 나 또한 대법제자의 사명을 실천하며 대법이 주조한 새로운 생명이 되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동수 여러분 감사합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00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