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대법제자 이정(李净)
【정견망】
2025년이 곧 저물어 간다. 올 한 해 자신이 걸어온 정법 수련의 길을 총결해 보니, 나태함에서 벗어나 다시 정진하게 된 과정은 기록할 만한 가치가 있어 동수들과 나누며 공동 제고하고자 한다.
들어가는 말: 나는 나태해졌다
내가 처음 진상을 알린 방식은 스스로 진상 자료를 인쇄하여 배포하고, 동시에 직접 만나 진상을 알리고 삼퇴(중공의 3대 조직 탈퇴)를 권했다. 이는 대륙 대법제자들에게 가장 기본적이고 직접적이며 효과적인 진상 알리기 방식이라 할 수 있다. 그렇게 3~4년이 지난 후, 나는 더 이상 자료를 만들지 않고 다른 항목으로 전환했다. 당시 나는 앞으로 다시는 자료를 만들거나 배포하지 않을 것이며, 그 수련 과정은 이미 지나간 거라 생각했다.
시간이 팬데믹 이후로 흐르자, 지난 2년간 중국대륙에서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하는 일이 유독 어렵게 느껴졌다. 전화 진상 알리기 등 일부 방법은 사악한 당이 객관적인 조건을 봉쇄했기 때문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오직 대면 진상 알리기만 견지해 왔다. 하지만 내가 만날 수 있는 중생의 수는 예전보다 훨씬 적었다. 처음에는 마음이 매우 조급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매번 “인연에 맡기자, 사부님께서 안배하신 인연 있는 사람을 만나면 알리고 못 만나면 어쩔 수 없다”라며 자연스러움에 따르자면서 자신을 위로했다. 그러다 보니 매번 나간다고 해서 사람을 구하는 것도 아니었고, 소침해졌다. 동시에 자만심이 생겨 ‘과거에 이미 많이 했고 구한 사람도 적지 않으니, 지금 이런 상황은 정상이지 않을까? 사람들의 업력이 이 정도로 커졌으니 많은 이가 구도 받을 기연을 상실했을 거야’라고 생각했다.
스스로 표준을 낮추자 점차 밖으로 나가는 횟수가 줄어들었고, 사람을 구하는 마음이 더 이상 절실하지 않았다. 어려움을 알면서도 치고 올라가던 과거의 정진하던 기세를 잃어버린 것이다. 특히 작년에는 안일심이 더 강해져, 며칠씩 집에 박혀 인연 있는 사람을 찾아 진상을 알리러 나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자비심도 어디론가 날아가 버린 듯했고, 밖을 걸어도 상인이나 행인에게 말을 걸고 싶은 욕구가 생기지 않았다. 입을 떼는 것이 어렵게 느껴졌고 적절한 화제를 찾지 못해 무슨 말을 해야 상대방이 웃으며 반응해 줄지 몰라, 흔히 한 바퀴 돌고는 낙담하여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그러면서 퇴보하는 자신에게 ‘지금 대륙은 사람 구하기가 너무 힘들어. 안전 문제도 있고 더 좋은 방법도 없으니 어쩔 수 없지’라고 핑계를 댔다. 그렇게 1년간 구한 사람은 손꼽을 정도였다.
진상 알리기가 일종 정체 상태에 빠지자, 매일 동태망(動態網)에서 뉴스를 보며 사악한 당이 곧 멸망할 징조를 찾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내며 결속 시간에 집착했다. 사악한 당이 여전히 미친 듯이 사람을 해치는 것을 보며 마음은 더욱 답답해졌고, 망연자실함과 적적함, 무료함 때문에 이따금 깐징월드 드라마나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들으며 현실을 도피하고 안으로 찾는 것을 회피했다. 하지만 보고 나면 간섭을 받아 머릿속이 정해지지 않았고, 다시 발정념으로 청소해야 했다. 이러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즉시 멈췄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또 참지 못하고 보면서 스스로 번거로움을 초래했다. 심성이 제고되는 느낌이 사라진 채 그렇게 2025년을 맞이했다.
나는 자신이 정말 나태해졌음을 알았다. 자신을 방종한 결과 사람 마음이 자라났고, 더 이상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알았다. 진상 알리기에서 돌파하여 다시 정진하고 싶었지만, 어떻게 돌파해야 할지 몰랐다. ‘다시 진상 자료를 만들어 볼까?’ 하는 생각도 잠시 스쳤지만, 곧바로 그 생각을 지워버렸다. ‘지금은 도처에 감시카메라가 있고 사람들의 마음이나 환경이 예전 같지 않아. 어려움과 위험이 훨씬 더 커. 자료를 배포하던 동수 몇몇이 불법 판결을 받고 박해받았으며, 자료점 동수 여러 명도 지금은 자료를 만들지 않아. 나도 좀 ‘안정적’으로 걸어야지. 게다가 이 프로젝트는 전에 해봤던 것이니, 이 길에서 닦아야 할 마음은 이미 다 닦았는데 왜 굳이 되돌아가나?’라고 생각했다.
바로잡다: 심성을 제고해 다시 정진하다
올해 상반기, 나는 정견망에서 동수가 쓴 소설 《현목기(玄木記)》(시즌 4)를 보았다. 6월 초에 마지막 회를 보았는데, 장우인(張友仁 옥황대제의 전신)이 중생들이 말겁 시기에 대법이 널리 전파될 때 최대한 법을 얻어 수련하고 하늘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자신의 두 생애 동안 고생하며 수련하여 얻은 모든 공(功)과 자신의 생명을 무사(無私)하게 바치는 장면에서 내 마음은 깊이 요동쳤고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구우주의 법에서 수련하는 사람조차 구우주 ‘멸(滅)’ 시기 생명의 위사위아(爲私爲我)한 속성에서 벗어나 ‘무사위타(無私爲他)’의 경지에 도달했다. 그런데 신우주를 창조한 대법에서 수련하는 제자인 나는, 생명의 표준이 신우주의 무사위타한 생명 표준임에도 불구하고 사심(私心) 속에서 배회하며 더 많은 중생의 구도를 위해 더 많이 감당하려 하지 않았으니, 과거 구우주 표준에서 수련하던 그 사람보다 훨씬 못했다. 나의 주원신(主元神)은 큰 충격 속에 깨어났고, 깊이 반성하며 아주 간절하게 안으로 찾기 시작했다.
나는 과거에 자신도 중생 구도를 위해 무사(無私)하게 감당했던 적이 있었는데, 왜 지금은 안 되는지 생각했다. 수련이란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는 배와 같아서 나아가지 않으면 곧 퇴보한다. 비록 중생 구도 과정에서 내가 많은 마음을 닦았지만, 많은 마음이 철저히 깨끗해지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나는 스스로 만족하며 밖으로 구실을 찾았고, 안으로 찾아 계속 제고하는 것을 중시하지 않았다. 자만은 나로 하여금 어려움을 보고 물러서게 했고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자만은 자신을 보호하려는 사심과 두려움을 키웠고, 그로 인해 안일을 탐하고 압박과 어려움, 고통을 두려워하며 끝나는 시간만을 고대하게 했다. 자신의 사심만 고려하다 보니 자비심은 옅어졌고, 아직 구도 받지 못한 중생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고려하려 하지 않았다. 또한 너무 많은 생명이 구도 받지 못해 사부님께서 얼마나 가슴 아파하실지는 생각지도 못했다.
사실 사부님께서 정법(正法)을 끝내지 않으신 이상 중생 구도의 사명은 끝나지 않았다. 다 마치지도 않았는데 짐을 내려놓으려 했으니 장차 어떻게 마주하겠는가? 나는 위사위아(爲私爲我)한 사람 마음과 집착을 철저히 제거하고, 최대한의 노력을 다해 사람을 많이 구하기로 굳게 결심했다. 현재 우리 지역의 각종 환경과 상인, 행인들의 상태를 진지하게 고려한 결과, 내게 가장 적합한 방법은 다시 명혜 진상 자료를 제작하는 것이라 판단했다. 그것을 잘 포장하여 원하는 인연 있는 사람에게 대면하여 전해주는 것이 이성적이고 실행 가능한 방법이었고, 기회가 적절하면 직접 삼퇴를 권할 수도 있었다.
생각이 정리되자 곧바로 행동에 옮겼다. 자료를 제공해 줄 자료점이 없었기에 지인이 운영하는 가게에 가서 몇천 위안을 들여 새 컬러 프린터를 사려고 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지인이 가게에서 쓰던 컬러 프린터가 있는데, 지금은 쓰지 않으니 몇백 위안에 싸게 주겠다고 했다. 60~70%는 새것 같은 기계였다. 나는 즉시 그것을 사서 집으로 가져왔다. 올여름, 나는 날씨가 더운지 어떤지도 아랑곳하지 않고 매일 전기 오토바이를 타고 밖을 돌며 인연 있는 사람을 찾았다. 막상 해보니 난이도가 예전보다 훨씬 컸다. 한 시간 넘게 달려도 자료 한 부 전해주지 못해 기운이 빠질 때면, 사부님께서는 소중한 인연 있는 사람을 만나게 해 신심을 북돋아 주셨다. 나는 그렇게 견지해 냈다.
과거에 정진하던 그런 느낌이 돌아왔고 마음도 든든해졌다. 설령 하루에 진상을 듣거나 자료를 받으려는 사람을 단 한 명만 만난다 하더라도, 그것은 한 명 혹은 몇 명의 사람이 더 진상을 알고 구도 받는 것이다. 물론 사악은 대법제자가 정진하는 것을 원치 않기에 늘 방해하려 하지만, 발정념이 우리를 지켜주었다.
첫날 나가기 전에는 마음이 좀 두근거렸으나 30분간 발정념을 하며 가는 곳마다 사악을 멸하고 모든 감시카메라가 꺼져 나를 보지 못하게 해달라고 했다. [이것은 여전히 위사(爲私)한 것인데 지금 내가 깨달은 것은 마땅히 진상을 받아들이는 인연 있는 중생의 안전을 생각해야 맞다.] 작년 여름, 고온이라거나 밖에는 진상을 들을 사람이 없다는 핑계로 집안에 숨어 거의 나가지 않았던 것을 회상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그 모든 것이 구세력이 억지로 더한 후천적인 사람 마음이 소란을 피운 것이지 진정한 자신이 아니었다. 진정한 자신은 대법이 조성한 무사위타(無私爲他)한 생명이다. 법에서 알다시피 정법시기 대법제자의 수련은 개인의 원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중생을 구도하고 중생을 이끌고 함께 원만하기 위한 것이다.
수년 전 나는 그 과정이 이미 지나갔고 다시는 겪지 않을 줄 알았는데, 정법 수련의 마지막에 다시 초기 진상 알리기 방식으로 돌아오게 되었으니 이는 마치 하나의 원(圓)과 같다. 내게 이것은 또한 원만(圓滿)의 예시와도 같다. 모든 사람 마음을 내려놓아야만 비로소 중생을 데리고 함께 원만하여 생명의 원시 본성으로 회귀할 수 있다.
깨달음: 동수들과 공동 정진
이번 경험을 사부님의 설법에 비추어 볼 때 내가 깨달은 것이라면, 정법의 마지막에 구세력 사악의 힘은 이미 매우 약해졌으나 표면으로 올수록 그것은 더욱 나쁘다. 부족한 힘을 메꾸기 위해 사악은 사악한 당을 조종해 객관적 환경에서 대륙 대법제자들에게 많은 장애를 추가해 중생 구도의 발걸음을 막고 있다. 거리마다 감시카메라가 빽빽하고, 전화 카드 실명제, 인터넷 실명제와 봉쇄, 심한 감시, 빅데이터 추적과 전자 결제가 보편화되었다. 정의로운 여론과 인사에 대한 가혹한 탄압으로 인민들이 정의로운 말과 진상을 듣지 못하게 공포를 조성하고, 일반 대중에게 당 문화 주입과 세뇌를 강화했다. 또한 상인이나 행인들의 업력은 갈수록 커져 중국 대륙 사회의 사나운 기운(戾氣)은 갈수록 무거워지며 대륙인들의 경계심도 갈수록 심해지는 등, 이러한 표면상의 객관적 요인들은 더욱 열악하게 보인다. 이것이 대륙 대법제자들이 현재 직면한 거대한 객관적 환경이다. 그리고 각 대법제자에게는 서로 다른 직장, 가정 및 수련인 사이의 환경이 있으니 정말 복잡하고 험난하다.
그렇다면 이 마지막 길에서 중생을 구도하는 우리에 대한 수련의 요구는 더욱 높다. 반드시 마지막 남은 모든 사람 마음과 집착을 제거하고 진정으로 무사위타의 경지에 도달해야 한다. 나는 사부님의 경문 《최후일수록 더욱 정진해야 한다〉(《정진요지 3》)의 한 층의 함의를 이해하게 되었다. 우리가 만약 어려움을 알면서도 제고하고 더 높은 표준으로 자신을 요구하며 모든 집착과 관념을 버리고 이를 통해 마지막 장애를 돌파해서 중생 구도의 일을 계속해서 잘하지 못하고, 오히려 어려움을 알고 물러나 스스로 만족하며 안락하고 평안하게 원만이 오기만을 기다린다면, 어느 날 갑자기 사람 마음에 걸려 넘어지거나 뜻하지 않는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전 세계 대법제자는 하나의 정체(整體)다. 이 정체 속에서 대법제자들이 맡은 업무는 다르지만 서로 돕고 함께 제고하며 공동으로 중생을 구도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사부님의 무한히 위대하고 자비로우며 절묘하신 안배 속에 있다. 사존께 감사드립니다! 동수 여러분 고맙습니다! 2026년에도 우리 여전히 용감하게 앞으로 나아갑시다!
이상은 개인 수련 층차에서의 인식이니 법에 부합하지 않는 점이 있다면 지적해 주기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004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