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녕 대법제자 근학(勤學)
【정견망】
나는 올해 76세로, 1997년에 파룬따파를 수련하기 시작했다. 법을 얻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수년 동안 앓던 기관지염, 폐결핵, 폐기종, 유방 종양, 위염이 모두 나았다. 대법은 너무나 신기하며, 대법이 나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었다. 아래에 대법이 내 몸에 나타나게 한 몇 가지 기적의 사례를 말해보고자 한다.
1998년 어느 날, 당시 나는 견디기 힘들 정도로 등 뒤가 떨리더니 몇 시간 후 고열이 나기 시작했다. 딸은 병원에 가자고 했으나 나는 가지 않겠다고 하며, 이것은 병이 아니니 괜찮다고 말했다. 결국 다음 날부터 배가 아프기 시작했는데,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아프더니 곧장 화장실로 갔다. 보니 대변에 고름과 피가 섞여 있었고, 셋째 날에는 피가 아주 조금 남을 정도로 줄어들었다. 배가 아프기만 하면 화장실에 갔는데 하루에 몇 번을 갔는지 모를 정도였다. 큰딸이 약을 사 오려 하기에 딸에게 “이것은 병이 아니라 대법 사부님께서 내 몸을 정화해주시는 것이니 안심해라, 아무 일 없다”라고 알려주었다.
당시에는 물만 조금 마실 수 있었고 13일 동안 계속 설사를 하다가 육종 하나가 떨어져 나갔다. 13일째 되는 날 아침 갑자기 배가 아프지 않게 되었는데, 남편은 자기가 다 겁이 났었다고 말했다. 나는 남편에게 “뭐가 두려워요, 사부님이 계시고 법이 있는데. 나는 죽음이 두렵지 않아요, 이미 법을 얻었잖아요?”라고 말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당신에게 알려주는데, 이미 당신에게서 아주 많이 없애주었으며 당신의 그 번거로움은 아주 적어졌다. 만약 당신에게 없애주지 않는다면, 당신은 이 번거로움과 마주쳐서 단번에 목숨을 잃을 수 있으며, 또 그 자리에 누워 일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 당신이 조그마한 번거로움과 마주쳐도 당신은 견디기 어려워하는데, 그렇게 편안한 일이 어디 있는가?”(《전법륜》). 나는 이것이 아주 좋은 일이라 생각했고, 큰 고비를 하나 넘기며 큰 업력 덩어리를 하나 제거했다고 여겼다. 지금 생각해보면 사부님께서 제자를 대신해 얼마나 많은 고통을 감당하셨는지 모른다.
2010년 7월 13일, 몸에서 하혈이 시작되어 8개월 동안 간헐적으로 피가 나왔다. 2011년 3월 어느 날, 배가 너무 심하게 아파 남편이 겁이 나 딸에게 알리자, 딸이 택시를 불러 나를 시내 병원으로 보냈다. 검사 결과 자궁암 말기로 진단받았고 이미 수술할 수 없는 상태였다. 의사는 지금은 방사선 치료만 가능할 뿐이라며, 이렇게 심각한 병을 왜 이제야 보러 왔느냐고, 너무 늦었다고 말했다. 의사는 딸에게 “어머니는 2~3개월밖에 살 수 없으니 한 달에 한 번씩 검사해야 한다”라고 말했고 딸은 울음을 터뜨렸다.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는 동안 백혈구 등 각종 수치가 낮아질까 봐 매주 월요일마다 혈액 검사를 했는데, 나는 매번 검사 결과가 정상이었다. 의사는 기적이 일어났다며 당시 나에게 사형 선고를 내렸던 것에 미안해했다. 입원 중에도 나는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하고, 발정념을 하며 정공(靜功)을 연마했다. 얼마간 입원한 후 나는 퇴원하여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와 매일 법을 공부하고 연공했으며, 낮에는 동수와 함께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했다. 그 후로 나는 신기하게 좋아졌고 밥도 먹을 수 있게 되었으며 몸에 힘도 생겼다. 한 달이 지나자 정상으로 회복되었으니, 사부님께서 나에게 두 번째 생명을 주신 것이다.
1999년 7월, 장쩌민 사악 집단이 파룬궁을 박해하면서 우리는 단체 법공부 환경을 잃었다. 나는 집에서 법공부 소조를 세웠고 지금까지 23년이 되었다. 위대한 사부님의 가치(加持)와 보호 아래 우리는 압력을 극복하고 매일 법공부와 연공을 견지하며, 동수들과 함께 공동으로 정진하고 공동으로 제고했다. 한 번은 동수와 모순이 생겨 심성을 지키지 못했는데, 당시에는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나중에 자신을 찾아보니 쟁투심, 원한심, 과시심, 남을 깔보는 마음이 매우 무거웠다.
한번은 경찰 다섯 명이 우리 집에 들이닥쳐 사부님의 경문 30장을 가져갔고 다른 것은 아무것도 건드리지 않았다. 당시 나는 수련에 누락이 있어 사악의 박해를 초래했다고 생각했다. 그날 밤 나는 현지 구치소로 보내져 박해를 받았는데, 경찰이 왜 파룬궁을 배우느냐고 묻기에 나는 법을 얻기 전 몸의 온갖 질병과 암 환자였던 일, 생활을 자립할 수 없어 죽느니만 못했던 일들을 이야기해 주었다. 그러다 대법을 배워 건강을 회복했다고 하니 경찰은 참 신기하다고 했다. 나는 신기한 게 맞다며, 이렇게 좋은 공법을 왜 못 배우게 하고 못 하게 하느냐고, 당신들이 선량한 사람을 여기에 잡아 왔으니 누구든 이 일을 하는 사람은 죄가 있다고 말했다.
나는 마음속으로 ‘이런 환경에 왔으니 반드시 사부님 말씀을 듣고 법을 실증해야 하며, 사악에 겁을 먹어서는 안 된다. 기점을 바르게 놓아야 한다’라고 생각했다. 사부님께서는 세상 모든 사람이 사부님의 친인이라고 말씀하셨다. 구치소에서 나는 99년 7월부터 시작된 것이 바로 정사(正邪) 대전이며, 사부님께서 법을 전하시는 것은 우주를 정화하고 인류를 구원하며 세인을 구도하시는 것임을 깨달았다. 악당은 인류를 훼멸시키고 중생을 망친다.
구치소에 갇힌 지 12일째 되던 날, 우리 동수 네 명은 사악한 소굴인 마싼자(馬三家) 노동교양소로 보내졌고 나는 2년 형을 받았다. 나는 이곳에서 모든 집착심을 내려놓고 오직 법을 실증하러 왔다고 생각했다. 사부님께서는 “법은 일체 집착을 타파할 수 있고, 법은 일체 사악을 타파할 수 있으며, 법은 일체 거짓말을 타파해 버릴 수 있고, 법은 정념(正念)을 확고히 할 수 있다.”(《정진요지 2》 〈교란을 배제하자〉)라고 말씀하셨다.
그곳에서 나는 모든 사람을 구도해야 할 중생으로 대했다. 2년 동안 사부님의 가치 아래 지혜를 얻어, 사오(邪悟)한 사람들과 조금씩 교류했다. 사오한 수련생 다섯 명이 내 말을 듣고 명백해졌으며, 전향한 것이 잘못되었고 구세력을 따르는 것이며 사부님께 죄송한 일임을 인식하게 되었다.
2005년 2월, 나는 소굴을 떠나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와보니 집은 이미 낡아 무너지기 직전이었고 딸도 시집을 가야 했다. 나는 집착이 단번에 올라왔다. ‘내가 떠나있던 2년 동안 이집 부녀 셋이 집을 이 꼴로 만들어 놓다니.’ 당시 심적 부담이 매우 컸다. 나는 월급을 찾아 먼저 집을 수리했다. 어느 날 남편과 일을 하고 있는데 경찰 두 명이 교란하러 와서 연공을 하지 않겠다는 보증서에 사인하라고 했다. 나는 경찰에게 “우리는 모두 좋은 사람인데 당신들이 또 교란하고 박해하니, 이런 일을 하는 것은 당신들에게 좋을 것이 없다. 나는 사인하지 않을 것이니 앞으로 다시는 오지 마라”라고 말했다. 집을 다 수리한 후 딸도 결혼했다.
《9평》이 발표된 후, 나는 그것을 들고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했다. 처음에는 진상을 잘 알릴 줄 몰라 배우면서 했다. 우선 이웃들에게 알렸는데 매우 순조로웠다. 나는 “우리 학교 다닐 때 소선대에 가입하고 붉은 스카프를 맸던 거, 그거 탈퇴합시다. 그것은 사령(邪靈)이니 탈퇴해야 평안을 보장받고 신(神)이 당신을 보호하십니다. 사악한 당은 나쁜 짓을 많이 했고 좋은 사람을 감옥에 가두고 때려죽여도 자살로 처리하며, 장기를 적출해 하나에 수십만 위안에 파는 등 이런 검은 돈을 버니 하늘이 용납하지 않습니다. 하늘이 중공을 멸하려 하니, 당시 당·단·대에 가입할 때 당을 위해 일생을 분투하고 생명을 바치겠다고 선서했던 것에서 어서 탈퇴하세요. 그래야 평안을 유지하고 복보를 받습니다. 당신들은 젊으니 나가서 일할 때 모든 일이 순조로울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당시 어떤 사람들은 알아듣고 “아주머니, 저 탈퇴시켜 주세요. 저는 소선대였습니다” 혹은 “단원이었습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그들에게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자주 외우라고 일러주었다. 한번은 어느 나이 많은 오빠뻘 되는 분께 진상을 알렸는데, 그분은 쾌히 당·단·대에서 탈퇴했고 아주 기뻐하며 나에게 고맙다고 했다. 내가 나에게 고마워할 것이 아니라 우리 사부님께 감사드려야 한다고 말하자, 그는 “리 대사님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내가 호신부를 하나 주자 그는 기뻐하며 떠났다. 때로는 진상을 알릴 때 정말로 중생들이 모두 구도되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느끼며, 사부님의 자비와 위대함을 느낀다.
2013년, 우리 노부부는 농촌에 가서 남의 집을 봐주며 채소 하우스를 재배하고 돼지 10마리와 닭 수십 마리를 길렀다. 우리는 5개월 동안 아침부터 밤까지 바빠서 명혜망을 볼 수도 없고 진상을 알릴 수도 없었다. 우리 부부는 마음이 매우 조급했다.
어느 날 한 젊은이가 목이 말라 물을 마시러 왔다. 그가 물을 다 마신 후 내가 물었다.
“당신들 이곳에 파룬궁을 배우는 사람이 있나요?” 그가 있다고 하기에 나는 “그럼 파룬궁 수련생 한 명만 만날 수 있게 소개해 주세요”라고 말했다. 청년은 이곳이 마싼자 노동교양소와 가까워 좀 겁난다고 했다. 나는 “청년, 이건 나를 돕는 좋은 일을 하는 거예요. 이모가 맛있는 거 해줄게요. 이 일을 도와주면 공덕이 무량해서, 앞으로 하는 일마다 다 잘될 거예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청년은 “좋습니다, 아주머니, 내일 바로 알아볼게요”라고 했고 나는 너무 고맙다고 했다.
셋째 날, 30대 동수 한 명이 나를 보자마자 “파룬따파하오”라고 말했다. 동수가 온 것을 보고 내 마음이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나는 얼른 동수를 방으로 들였다. 나는 동수에게 “우리가 외지에서 이곳으로 일하러 와서 동수들과 연락이 안 되어 명혜망도 못 보고 오랫동안 진상을 알리러 나가지 못했어요”고 말했다. 동수는 “우리 이 근처에 일주일에 장이 다섯 번 서니 내일 같이 장터에 가서 진상을 알립시다”라고 했다.
다음 날 장터에 가니 사람이 아주 많았다. 동수는 앞에서 진상 자료를 돌릴 테니 나는 뒤에서 설명하라고 했다. 그날은 특히 순조로워 10여 명을 탈퇴시켰는데 모두 장사하는 젊은이들이었다. 나는 한 청년에게 “장사가 번창하고 크게 길하시길 바랍니다. 어릴 때 맸던 붉은 스카프를 탈퇴하세요. 당시 당기(黨旗) 앞에서 일생을 분투하겠다고 말했으니 그것의 일원인 셈인데, 하늘이 중공을 청산할 때 연루되지 않아야 평안을 보장받습니다. 사악한 당은 좋은 사람을 감옥에 가두고 때려죽여도 자살로 처리하며, 건국 이래 여러 차례 운동을 벌여 8천만 명을 해쳤으니 나쁜 짓을 너무 많이 해서 하늘이 멸하려 하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당시 청년 두 명은 “아주머니, 저희 단·대 탈퇴시켜 주세요”라고 말했다.
그해에 장이 서는 날이면 나는 가서 진상을 알렸다. 적을 때는 8~9명, 많을 때는 10여 명을 탈퇴시켰다. 동수는 월요일마다 명혜망 수련 문장을 가져다주었고 삼퇴 명단을 가져갔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그해에 아무리 바빠도 나는 법공부, 연공, 발정념을 견지했는데 그렇게 해야 진상을 알릴 때 힘이 있었다. 그해 시누이가 병이 나서 남편이 가보라고 했는데, 오가는 열흘 동안 시누이 집에 문병 온 친척 친구들에게 모두 진상을 알렸다. 그 한 해 동안 약 1,000여 명을 탈퇴시켰다.
어느 날 내가 돼지 먹이를 주고 막 빨래를 하려는데, 목구멍이 뜨거워지더니 갑자기 선혈 한 입을 토해냈다. 2분도 안 되어 또 한 입을 토했고 연달아 다섯 입을 토했다. 당시 전혀 무섭지 않았고 오히려 웃음이 났다. ‘나같이 못난 제자에게 사부님께서 아직도 몸을 정화해주시는구나’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피를 토하는 것이 셋째 날까지 이어지더니 다 나았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 아래 제자는 또 한 번 큰 고비를 넘겼다.
매년 11월이면 우리 동수 네 명은 협력하여 차를 타고 외지로 나가 달력과 진상 책자를 배포하는데 매번 수확이 컸다. 매번 거의 수십 명씩 탈퇴시키는데 때로는 30~40명, 많을 때는 60여 명이나 되었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 아래 매번 아주 안전하고 순조롭게 돌아온다. 나는 이 모든 것을 사부님께서 하시는 것이며, 우리는 그저 다리품을 팔고 입을 움직일 뿐임을 알고 있다. 우리는 세 가지 일을 잘하는 동시에 모순이 생기면 자신을 찾았다.
28년의 수련 중에서 많은 고생을 겪었다.
첫째는 가정관을 잘 넘기지 못해 자신을 닦지 않고 자신을 찾을 줄 몰라 일이 생기면 밖으로 보았다.
심성관을 넘기지 못하면 몸으로 겪게 되어 이리저리 넘어지곤 했다. 넘어지고도 깨닫지 못해 매번 큰 고생을 겪었다. 사부님께서는 “당신에게 한 가지 진리를 알려주겠다. ‘사람의 전반 수련과정은 바로 끊임없이 사람의 집착심을 제거하는 과정이다.’”(《전법륜》)라고 말씀하셨다. 때로는 동수와의 심성관도 넘기지 못해 마음이 평형을 이루지 못하고 화가 치밀어도 깨닫지 못한다. 사부님께서는 수련인의 이치는 사람의 이치와 반대라고 말씀하셨다. 고생스러운 것은 좋은 일이며, 끊임없는 법공부를 통해 법을 잘 배워야만 인식할 수 있다. “너도 좋고 나도 좋아, 모두 화기애애하게 거기 앉아 있어도 공이 자라는, 그런 일이 어디 있는가?”(《전법륜》) 나의 다섯 딸은 모두 대법을 인정하며 모두 건강하다.
이 교류 원고를 쓰면서 나는 자신이 많이 제고되었음을 느끼며 몸과 마음이 매우 가벼워졌다. 이 20여 년의 수련 속에서 사부님에 대한 감사함은 인간의 언어로는 다 표현할 수 없다. 오직 자신을 잘 닦고 세 가지 일을 잘하여 나의 역사적 사명을 완수함으로써 사부님의 자비로운 고도(苦度)를 저버리지 않겠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006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