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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연소 전기】 압아성에서 요나라 병사를 잡다

앙악

【정견망】

양연소 (천외객 그림)

양연소(楊延昭)는 《송사(宋史)》에 기록된 북송의 항료(抗遼 요에 대항) 명장으로, 20여 년간 변방을 수비하며 요나라 사람(거란인)들이 매우 두려워했다. 요나라 사람들은 육랑성(六郎星, 장수별)이 자신들의 천적이라 믿었는데, 양연소의 지혜롭고 용맹한 기상이 마치 육랑성이 세상에 내려온 듯하여 그를 ‘양육랑(楊六郎)’이라 불렀다.

양연소와 천파부(天波府) 양가장(楊家將)이 나라를 지키고 온 가문이 충의(忠義)를 다한 이야기는 원나라 때부터 희곡, 소설, 평서(評書) 등 다양한 판본으로 널리 유포되어 대중의 큰 사랑을 받았다. 본 【양연소 전기(傳奇)】 시리즈는 민간에 구전되는 일화들을 초록하고 정리하여, 천 년간 이어져 온 양육랑의 영웅 이야기를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현재 중국 하북성(河北省) 서수구(徐水區) 내에 류장(劉莊)이라는 마을이 있다. 류장의 동북쪽에는 토대(土臺) 유적이 있는데, 현지인들은 그곳을 양가루(楊家樓) 또는 육랑망해정(六郞望海亭)이라 부른다. 그 맞은편에는 압아성(鴨鵝城)이라는 곳이 있는데, 이곳을 처음 찾은 관광객들은 대개 역사 고적의 이름이 왜 가축의 이름으로 명명되었는지 의아해하곤 한다. 알고 보면 이는 북송의 영웅 양연소와 관련이 있다. 그가 이곳에서 요나라 병사를 잡은 이야기는 현지에서 천년 동안 전해 내려오고 있다.

백양전(白洋澱) 경구의 낙조. (위키백과)

북송 시기 서수구 지역은 안숙(安肅)이라 불렸으며, 류장은 송나라 군대가 주둔하던 전초 기지였다. 근처에는 천연 장벽인 담수호 백양전(白洋澱, 전은 얕은 호수라는 의미)이 있었다. 당시 류장 부근의 백양전은 수심이 얕아 양연소는 요 군이 허점을 타고 침입할까 염려했다. 이에 관병(官兵) 한 부대를 마을에 주둔시키고 마을 뒤편에 높은 누각을 지었다. 이 누각 아래층에는 사람이 살 수 있고 위층 망루는 시야가 넓어 수십 리 밖의 적정을 살필 수 있었는데, 백성들은 이 누각을 육랑정이라 불렀다. 이른 아침 호수에 안개가 자욱하면 마치 바다처럼 하얗게 보여 망해정(望海亭)이라고도 불렀다.

양연소는 자주 이 누각에 올라 적의 동태를 살피고 때로는 잠시 머물기도 했다. 그는 삼관대수(三關大帥)로서 큰 권력이 있었으나 생활은 매우 검소하여 먹고 쓰는 것이 일반 병사와 다를 바 없었다. 조정에서 상을 받으면 늘 부하들에게 모두 나누어 주었기에 병사들은 그를 매우 존경하며 생사를 함께하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오리와 거위로 적을 잡는 일석이조

하지만 류장은 변방이라 물자가 부족했다. 한 번은 양연소가 이곳에 왔을 때 군사들에게 누각 맞은편에 작은 농장을 짓고 호숫가에서 오리와 거위를 기르게 했다. 시간이 흐르자 오리와 거위가 수천 마리로 번식했다. 덕분에 매일 충분한 알을 먹을 수 있었고, 명절에는 고기 반찬으로 군사들의 입맛을 돋우었으며 일부는 현지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니 모두가 매우 기뻐했다.

어느 날 양연소가 다시 이 누각에 머물게 되었는데, 이튿날 새벽 동이 트기도 전에 서둘러 일어나 갑옷을 입었다.

양연소. (멍쯔/에포크타임스)

이때 위병(衛兵)이 다가와 이른 새벽에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다. 양연소는 요나라 병사가 왔으니 얼른 모두를 깨우라고 말했다.

위병은 양연소가 요나라 병사가 온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의아해했다. 양연소는 잠에서 깨어 나무 베개에 귀를 대보니 멀리서 말발굽의 진동이 느껴졌고, 농장의 오리와 거위들이 불안하게 울어대는 것을 보니 분명 요나라 병사가 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위병은 그 말이 신기하다고 생각하며 급히 내려가 사람들을 깨웠다. 양연소도 망루에 올라가 살펴보니 과연 멀리서 백여 명 남짓한 요나라 병사들이 희미하게 보였다. 그는 아래로 내려와 군사들에게 일단 몸을 숨겨 요나라 병사들을 생포할 준비를 하라고 명령했다.

류장에 접근한 요나라 병사들은 육랑정을 보고 순찰하는 군사와 마주칠까 두려워 멀리 돌아가려 했다. 그러다 길가에 나온 오리 몇 마리와 마주쳤고, 멀지 않은 농장 안의 오리들이 동요하며 꽥꽥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요나라 병사들은 이왕 이렇게 된 거 오리와 거위라도 잡아가자며 농장 쪽으로 달려갔다.

요나라 병사들이 농장 담장을 넘어보니 수천 마리의 하얀 오리와 거위가 가득했다. 그들은 눈을 번뜩이며 말에서 내려 오리를 잡으려 했고, 놀란 오리들은 열려 있는 농장 문을 통해 백양전 방향으로 쏟아져 나갔다.

농장 안에 가득한 수천 마리의 오리와 거위. (AFP)

요나라 병사들은 눈앞의 먹잇감을 놓칠세라 무기와 방패를 내팽개치고 오리를 쫓아갔다. 오리들이 물속으로 뛰어들자 병사들도 얕은 물로 따라 들어갔으나, 그들은 곧 진흙탕에 빠져 허우적거릴수록 더 깊이 가라앉게 되었다. 이때 함성 소리와 함께 양연소가 갈대숲에서 군사들을 이끌고 나타나 요나라 병사들을 포위하니 그들은 투항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양연소는 군사들을 매복시킨 뒤 요나라 병사들이 누각 근처로 오지 않자 오리 몇 마리를 내보내고 농장 문을 열어두어 미끼를 던진 것이었다. 이후 군사들은 갈고리로 진흙탕에 빠진 병사들을 끌어올려 모두 생포했다.

양연소가 그들을 심문하고 백성들과 대질해 보니, 이들은 근처에서 물건을 훔치기는 했으나 약탈까지는 하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다. 요나라 군정에 대해서도 사실대로 말하자 양연소는 군마(軍馬)만 압수하고 훈계한 뒤 그들을 풀어주었다. 요나라 병사들은 목숨을 구해주자 머리를 조아리며 감사해하고는 북쪽으로 도망쳤다.

양연소는 수십 년간 변방을 지키며 하북 접경에 2천 킬로미터에 달하는 방어 요새를 구축해 송나라의 국경을 튼튼히 하고 중원 문명을 수호했다. 그는 현지 백성을 안무했을 뿐만 아니라, 요나라 군사라 할지라도 난을 일으키지 않으면 평등하게 대우했기에 적국인 요나라에서도 그를 경외했다.

송 진종(眞宗) 대중상부(大中祥符) 7년(1014년) 정월 초이레, 양연소가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송조 전역이 슬퍼했으며 진종 황제는 특별히 사람을 보내 영구를 고향으로 운구하게 했다. 변방의 백성들은 부모를 잃은 듯 슬퍼하며 관을 바라보고 통곡했으며, 적이었던 요나라 군민들조차 그 소식을 듣고 애도를 표했다.

양연소가 세상을 떠난 뒤 현지 백성들은 이 역사를 기념하기 위해 당시의 작은 농장을 다시 짓고 이를 압아성(鴨鵝城 오리와 거위의 성)이라 이름 붙였다. 이것이 압아성의 유래다.

참고 사료:
《양육랑위진삼관구(楊六郞威鎭三關口)》 허베이 인민출판사 1984년 출간 자오푸허(趙福和), 리쥐파(李巨發) 등 수집
《양가장 외전》 허베이 소년 아동 출판사 1986년 출판 자오윈옌(趙雲雁) 수집 정리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74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