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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연소 전기】 배수진으로 한창을 크게 물리치다

앙악

【정견뉴스】

양연소(楊延昭)는 《송사(宋史)》에 기록된 북송의 항료(抗遼 요에 대항) 명장으로, 20여 년간 변방을 수비하며 요나라 사람(거란인)들이 매우 두려워했다. 요나라 사람들은 육랑성(六郎星, 장수별)이 자신들의 천적이라 믿었는데, 양연소의 지혜롭고 용맹한 기상이 마치 육랑성이 세상에 내려온 듯하여 그를 ‘양육랑(楊六郎)’이라 불렀다.

양연소와 천파부(天波府) 양가장(楊家將)이 나라를 지키고 온 가문이 충의(忠義)를 다한 이야기는 원나라 때부터 희곡, 소설, 평서(評書) 등 다양한 판본으로 널리 유포되어 대중의 큰 사랑을 받았다. 본 【양연소 전기(傳奇)】 시리즈는 민간에 구전되는 일화들을 초록하고 정리하여, 천 년간 이어져 온 양육랑의 영웅 이야기를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한 고조 3년(기원전 204년), 한신(韓信)이 3만 정예병을 이끌고 북상하여 조나라를 토벌할 당시 정형구(지금의 하북 정경현井陘縣 북부)에서 병가의 금기로 여겨지는 배수진(背水陣)을 쳐서 20만 조나라 군대를 격파했다. 이는 초한(楚漢) 전쟁 중 가장 화려한 전투로 꼽힌다. 병선(兵仙) 한신이 세상을 떠난 뒤 배수진은 전설이 되었고, 삼국시대의 명장 서황(徐晃)과 마속(馬謖) 등이 이 고전과도 같은 전술을 본뜨려 했으나 결국 다 참패하고 말았다.

북송 초기 하북에서 명장 양연소 또한 배수진을 쳐서 2천 명의 병력으로 한창(韓昌)의 3만 대군을 크게 물리치니, 이 고전적인 전투가 재현되었다.

이 전투는 왕가채(王家寨), 마가채(馬家寨) 부근에서 일어났으며, 현재 중국 하북 웅안신구(雄安新區)의 백양전(白洋澱) 변두리에 위치해 있다. 북송 초기 이곳은 황무지였으나 백양전 남쪽으로 광활한 평원이 펼쳐져 있어 매우 중요한 군사 요충지였다. 양연소는 이를 파악하고 이곳에 수군 대채(大寨)를 세우는 동시에 수군을 훈련시켰다.

당시 북송 군인들은 대개 북방 사람이라 수전(水戰)에 익숙하지 않았다. 그러나 양연소는 추위와 더위를 가리지 않고 매일 물에 들어가 수영하도록 명령했으며, 작은 배를 만들어 밤낮으로 훈련하게 했다. 처음에는 관병들이 험준한 지형에 의지해 방어만 하면 될 것을 왜 이토록 힘들게 수군 훈련을 하느냐며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원수의 고집이 완강해 어쩔 수 없이 매일 물에 들어가 훈련을 했고, 시간이 흐르자 점차 익숙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요나라 대장 한창(韓昌)이 3만 병마를 이끌고 수채를 향해 공격해 왔다. 그는 이곳 주변 수역이 가장 얕다는 것을 알고 이곳을 함락시킨 뒤 중원까지 쳐들어갈 계획이었다. 양연소는 정보를 입수하고 즉시 군대를 이끌고 방어에 나섰다.

현장에 도착한 양연소는 장수들을 모아 방어 작전을 세웠다. 2천 군사를 수채 북쪽 물가에 배수진으로 배치했다. 하급 군사들은 양연소가 펼친 진을 보고 퇴로를 끊고 결사전을 치르려는 것으로 보고 저마다 주먹을 불끈 쥐며 목숨을 걸 준비를 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양연소는 병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희는 가벼운 무장으로 나와 함께 잠시 적을 막아내되, 버티기 힘들면 억지로 싸우지 마라. 평소 훈련한 대로 물속에 뛰어들어 갈대숲을 찾아 숨어라. 훈련에서 한 것과 똑같이 행동해야 하며 절대 명을 어겨서는 안 된다!”

군사들은 의아해했다. 이전까지 원수를 따를 때는 오직 앞으로 돌격할 뿐이었는데, 왜 이번에는 뒤로 물러나 도망치고 숨으라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북송 곽충서의 《설제강행도(雪霽江行圖)》. (대북 고궁박물원 제공)

얼마 지나지 않아 한창이 군대를 이끌고 도착했다. 한창은 양연소가 배수진을 친 것을 보고 크게 웃으며 말했다. “양육랑, 네가 내게 술수를 부리는 것이냐, 아니면 목숨이 아깝지 않은 것이냐?! 그까짓 적은 병력으로 배수진을 치고 나와 싸우려 하다니, 내 오늘 너희를 모조리 없애주마!” 말을 마친 한창은 말을 타고 삼차창을 휘두르며 돌격해 왔다.

양연소는 한창이 살기를 띠며 달려드는 것을 보고 즉시 창을 치켜들고 맞섰다. 두 사람은 대화도 없이 곧바로 격돌했고, 송나라 장수들도 뒤이어 전투에 합세했다. 요나라 군대는 머릿수가 많았고 송나라 군대는 점차 뒤로 밀려나 물가에 다다랐다.

양연소는 때가 되자 신호 화살을 쏘아 올렸다. 그러자 수채 쪽에서 신호를 보고 화살을 일제히 퍼부었고, 요나라 군사들이 잠시 주춤하는 사이 송나라 군사들은 틈을 타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양연소 또한 몇 차례 창을 휘둘러 적을 교란한 뒤 말을 타고 후방으로 달려가 물속으로 도약했다. 그 말은 마치 물속의 교룡처럼 눈 깜짝할 사이에 양연소를 태우고 강 중앙까지 헤엄쳐 갔다. 한창은 급히 궁수들에게 활을 쏘게 했으나 송나라 군사들은 이미 멀리 달아나 한 명도 맞히지 못했다.

이때 양연소가 머리를 돌려 크게 외쳤다. “한창! 네놈의 병력이 아무리 많아도 백양전을 헤엄쳐 건너지는 못할 것이다! 믿기지 않으면 한 번 해보아라!”

이 말을 들은 한창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그는 포효했다. “장수와 병사들은 들어라, 물속으로 들어가 추격하라! 저 수채를 부수고 이번 기회에 이곳을 점령하여 중원을 공략할 것이다.”

요나라 병사들도 물속으로 뛰어들었으나 수영에 서툴러 움직임이 매우 느렸다. 전방의 물이 점점 깊어지자 병사들은 겁을 먹고 되돌아가려 했다. 하지만 한창은 말을 타고 기슭에서 독전하며 명령했다. “물러나는 자는 누구든 쏘아 죽일 것이다!”

요나라 병사들은 어쩔 수 없이 억지로 헤엄쳐 나갔고, 말을 탄 병사들이 조금 더 빨리 백양전 중앙에 접근했다. 그때 송나라 군사들이 근처 갈대숲으로 기민하게 파고들더니 이내 자취를 감추었다.

양연소. (구루이전/에포크타임스)

순식간에 양연소는 다시 군사들을 이끌고 작은 배를 저어 갈대숲에서 튀어나왔다. 배 위의 병사들은 긴 철죽고(鐵竹篙, 쇠 갈고리가 달린 대나무 장대)를 들고 있었다. 이 장대 끝은 갈고리창처럼 만들어져 배를 저을 수도 있고 무기로도 쓸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양연소가 미리 이곳에 매복한 것이다.

작은 배들은 쏜살같이 움직이며 물속의 요나라 병사들을 찌르고 갈고리로 낚아챘다. 말을 탄 병사들도 물속으로 고꾸라져 찔려 죽거나 익사했다. 뒤따르던 요나라 병사들은 겁에 질려 달아났으나 이내 작은 배에 추격당해 무수히 죽거나 다쳤다.

물속의 적들을 처리한 양연소는 다시 군사들을 이끌고 상륙해 승세를 몰아 추격했다. 기슭에 남아 있던 요나라 병사들은 사기를 잃고 뿔뿔이 흩어져 달아났다. 한창도 이를 막지 못하고 남은 병력을 이끌고 패주했다. 몇 리를 추격한 양연소는 군사들의 몸이 흠뻑 젖은 것을 보고 근처 토대로 데려가 말을 말리며 휴식을 취하게 했다.

그제야 군사들은 양연소가 왜 매일 물속 훈련을 시켰는지 깨달았고, 이후 양연소를 더욱 존경하며 마음을 다해 충성했다. 당시 그들이 말을 말리며 쉬었던 토대는 훗날 양마대(晾馬臺)라 불리며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참고 사료:
양가부세대충용통속연의(楊家府世代忠勇通俗演義) 명나라 작자 미상, 진회묵객(秦淮墨客) 교열
양가장외전(楊家將外傳) 허베이소년아동출판사 1986년 출간 자오윈옌(趙雲雁) 수집 정리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78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