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청(心淸)
【정견망】
최근 사이트에서 일부 여성 동수들이 남편의 외도로 인해 생긴 원한심(怨恨心)을 장기간 제거하지 못해 구세력에게 빌미를 잡히고, 병업(病業)의 형식으로 인신(人身)을 잃게 되는 경우를 보았다. 이에 몇 가지 생각이 들어 동수들과 교류하고자 글을 쓴다.
여러 해 전, 나는 남편이 밖에서 부적절한 이성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남편은 이혼을 원치 않았고, 나 역시 때로는 마음을 아주 담담하게 내려놓다가도 때로는 갑자기 감정이 치밀어 올라 내면의 굴욕감과 원한에 휩싸이고는 했다. 그동안 사부께서는 줄곧 내가 원한을 내려놓도록 점화해 주셨다. 어떤 때는 글자를 입력하는데 분명 다른 글자를 쳤음에도 갑자기 “이것은 모두 인연 관계가 있는 것이다”라는 문장이 한 줄 나타나기도 했다. 친정에 머물 때 우연히 어머니 방에 들어갔더니, 마침 TV에서 어떤 사람이 “석가모니가 왜 성불할 수 있었는가. 그는 비할 바 없이 넓은 도량을 가졌기에 타인의 잘못을 포용할 수 있었고, 심지어 자신을 죽인 사람까지도 용서하고 구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이치는 명백했지만 내려놓기란 참으로 어려웠다.
때때로 굴욕감이라는 정서가 순식간에 폭발하고는 했다. 강렬한 자아 비하와 수치심이 일어나 자존감이 손상되고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여기까지 쓰다 보니, 이 떨쳐버릴 수 없는 굴욕감은 구세력이 나에게 강요한 것이며 나는 결코 이를 인정하지 않음을 문득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내가 수련하는 사람이며 늘 이래서는 안 된다는 점을 청성하게 알고 있었다. 금생에 우리는 여자의 몸으로 세상에 와서 법을 얻어 수련하며 사부님을 정법를 돕기로 선택했다. 도덕이 미끄러져 내려가 이미 사람이 사람이 아니게 된 이 세상에서 남편의 외도나 배신을 겪을 수 있을 것이다. 처음에는 마음이 괴롭고 막막하며 슬피 울면서 만 번이라도 이유를 묻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냉정을 되찾은 후 우리는 절대로 속인처럼 대처해서는 안 된다.
사존께서는 《스위스 법회 설법》에서 말씀하셨다.
“당신은 왜 높이 수련할 수 있는지 아는가? 이는 당신이 높게 수련됨을 촉성하는 가장 기본적 보증인데, 바로 이 속에 그것이 너무나 난잡하다는 것이다.”
내가 깨닫기로는, 우리가 이렇게 난잡한 환경 속에서 수련하기에 난잡한 일을 만나는 것은 피할 수 없지만, 아무리 난잡한 일이라도 수련자에게는 모두 좋은 일이다.
사부님께서는 《각지 설법 8》 〈2008년 뉴욕 법회 설법〉에서 말씀하셨다.
“당신이 아무리 큰 마난(魔難)으로, 아무리 큰 고통으로 여기든지 간에 모두 좋은 일이다. 왜냐하면 당신이 수련했기에 비로소 나타난 것이기 때문이다. 마난 중에서 업력을 없애버릴 수 있고, 마난 중에서 사람 마음을 제거할 수 있으며, 마난 중에서 당신으로 하여금 제고하여 올라오게 할 수 있다.”
또 같은 설법에서 사부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당신은 자신의 이러한 고통이라든가 당신 자신의 마난이라든가를 모두 나쁜 일로 여기는데, 그렇다면 바로 속인이다. 고통은 업력의 빚을 갚는 것이며, 마음에 못마땅한 일은 心性(씬씽)을 제고할 수 있다. 속인으로 말한다 해도 사실 역시 이 이치이다. 모두 업을 없애고 있으며, 업을 없앰으로써 좋은 다음 일생이 있다. 단지 사람이 모를 뿐이다.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업력을 없애버리고, 수련 중에서 心性(씬씽)이 제고되어 올라와 최후에 원만을 이룬다. 대법제자로 말하면 이것은 가장 기본적인 법리이며, 가장 기본적인 것이다. 어떤 사람은 몇 년이 지나갔는데도 아직도 근본적으로 관념을 개변하지 않았다. 얼마나 많은 해를 수련했는가? 아직도 이처럼 문제를 보지 못하며 아직도 바른 면(正面)으로 문제를 보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 나는 속인의 이치에서 뛰쳐나왔는가? 나는 여전히 속인 층차에 서서 문제를 바라보고 있었다. 즐겁고 행복한 일만 바라는 이것이 수련인인가? 늘 즐거운 일만 생각한다면 그것이 수련일 수 있으며, 업을 없애고 제고할 수 있겠는가? 당신의 최종 목적이 이곳에 남아 행복하게 사는 것인가, 아니면 업을 소멸하고 집착을 버려 원만하여 사부님을 따라 돌아가는 것인가?
오래전 일이다. 일흔이 넘은 한 할머니가 남편이 오랫동안 밖에서 다른 여자와 어울린 일을 이야기하며 비 오듯 눈물을 흘리던 모습이 기억난다. 나는 그녀의 뼛속까지 시린, 벗어날 수 없는 상처를 느꼈다. 그녀는 이야기를 하며 주머니에서 사진 한 장을 꺼냈는데, 남편이 다른 여자와 찍은 사진이었다. 사진 속 두 사람의 눈 부위는 바늘에 찔려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부인은 시신경 위축증에 걸려 거의 실명 상태가 되었다. 가족들은 그녀가 남편에게 오랫동안 구박을 당해 마음이 상하고 너무 울어서 그렇게 된 것이라고 했다. 나는 속으로 그녀의 끝없는 원한과 사진 속 타인의 눈을 찌른 행위가 도리어 자신을 해친 것이라고 느꼈다. 우리는 수련하는 사람이기에 원한 때문에 자신과 천국 가족들의 천만년 기다림을 망쳐서는 더더욱 안 된다. 나는 마음속으로 자주 “감사해야지, 원한(怨恨)하지 말자”라고 반복해 말하곤 하는데, 그러면 내면이 서서히 평온해진다.
나는 내가 무슨 덕과 능력이 있기에 이번 생에 사부님의 선택을 받아 대법제자가 되었으며, 이 인간 세상에서 떠돌며 타락하는 것을 면하게 되었는지 자주 생각하곤 한다. 비록 내가 좋지 않은 일을 많이 저질렀고 아주 나쁜 일도 있었지만, 사부님께서는 여전히 나를 포기하지 않으셨다. 마음속에 어떤 의혹이 생길 때면 전자책을 열어 아무 설법이나 펼쳐 보아도 그 안에 내가 원하는 답이 있다.
그동안 사부님의 보살핌과 점화에 감사드리며, 제자는 반드시 사부님의 은혜를 저버리지 않고 대법에 동화해 원만해서 사부님을 따라 돌아갈 것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030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