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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을 융합——대한(大漢) 화친공주

수한(水漢)

【정견망】

역사는 줄곧 미혹인데 인간 세상이 미혹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사가들도 단지 조정 일만 기록했을 뿐, 그 배후의 심층적인 원인은 알지 못했다.

한조(漢朝)는 음양이 모두 성했던 조대였다. 화친(和親)이란 서한(西漢)의 여성이 사방을 융화시킨 부드러운 도(道)였다. 여인의 온유함으로 한 문화를 사방으로 확산시키고 침투시켜 여러 민족을 융합했는데, 이는 중국 문화를 통일하여 후세에 대법이 널리 전해질 수 있도록 한조가 가져온 문화 기초를 다지기 위함이었다.

현대인들은 화친을 굴욕이라 생각할지 모르나 사실은 오히려 정반대였다. 대한(大漢)의 화친에는 두 가지 큰 배치가 있었다. 하나는 관방(황실)의 화친이고, 다른 하나는 주군(州郡) 민간의 화친이다. 대한의 공주가 앞장서면 반드시 주군과 민간에서도 그 풍속을 따르게 마련이다.

황실에서는 공주(보통 궁녀로서 진짜 공주가 아니라 임시로 봉해지는데 대한 궁녀의 능력만으로도 이미 충분했기 때문이다)가 행렬을 이끌고 직접 흉노 왕실을 변화시켰으며, 흉노 왕실의 후대를 한인(漢人)으로 탈바꿈시켰다. 흉노는 대우(大禹)의 한 지파로 역시 화인(華人)에 속하지만, 다만 사상이 아직 개화하지 못했을 뿐이다. 대한 공주의 화친은 하나의 방대한 대열이었으며, 공주를 중심으로 시녀, 수행원, 호위군사 및 각종 내외곽 배치가 있었고 장비도 정교하고 우수했다. 동시에 가장 중요한 것은 한가의 전장제도(典章制度), 문화, 기술 등 문명이 장강과 황하처럼 흉노의 핵심 계층으로 흘러 들어갔다는 점이다. 공주의 수행원과 호위군사들은 흉노 귀족의 딸을 아내로 맞거나 흉노 귀족 남성에게 시집을 갔는데, 한 세대가 지나면 한화(漢化)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게 된다.

한편 주군 민간에서는 주군과 민간의 부호들이 흉노 귀족과 화친했고, 백성들 특히 변방의 백성들이 흉노와 화친했다. 이는 흉노인들에게는 바랄 나위 없는 좋은 일이었다. 흉노인들은 너무 가난했고 거처가 일정치 않았으며, 보이는 것이라곤 초원 아니면 사막뿐이라 물질과 사상이 모두 빈곤했다. 마치 날고기를 먹고 피를 마시는 듯한 생활이었기에 문명을 매우 갈망했고 한조의 남녀를 숭배하고 소중히 여겼다. 그리하여 서한 후기에 이르면 흉노는 일방적으로 한나라를 동경하게 되었다. 그곳은 정상급 문명지였기 때문이다. 이는 한무제가 무력으로 정벌해서는 도달하기 어려운 방향이었다. 강제로는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키기 어렵지만, 사상의 한화(漢化)를 통해서는 사람의 마음을 바꾸기 쉽다. 서한이 멸망한 후 흉노인들은 서한을 위해 복수해 주려 했을 정도다.

화친이 가져온 혈통과 문화의 변화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대한(大漢) 황실과 민간의 대외 화친 정책이 백 년간 이어지자, 다른 종족 대부분이 이미 한화되었을 가능성이 컸다.

동한(東漢)이 건국된 후 남흉노는 이미 한화되어 체제와 문화 모두 동한을 따랐다. 북흉노는 거듭 동한에 화친을 요청하며 기꺼이, 그리고 간절히 한화(漢化)되기를 바랐다. 그러나 동한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화친도 하지 않았다. ‘오로지 강함으로 인해 망했다’는 평가를 받는 이 왕조는 건국부터 멸망까지 주변의 적대 세력을 압도하며 화친을 가볍게 여겼다. 그 왕조의 무공(武功)은 참으로 강대했다. 멸망할 당시의 삼국쟁패는 영웅의 기개를 더욱 소진시켰다. 흉노를 상대함에 있어 광무제가 설계한 보루식 전차는 심지어 사용되지도 않았다. 아마도 화친이 이미 그 위대한 업적을 완수했기에 동한은 더 이상 그것을 쓸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흉노가 남북으로 갈라질 때 이미 한화(漢化)를 통한 선별은 끝났다. 좋은 쪽은 남흉노로 귀속되었고 나쁜 쪽은 북흉노로 남았기에, 동한은 북흉노를 받아들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군대를 보내 멸망시켰다. 북흉노의 잔당은 후세의 추측에 따르면 유럽으로 도망쳐 로마 제국을 멸망시켰다고 한다.

화하 중원을 둘러싼 민족 대다수는 황인종으로서 모두 화하(華夏)의 구성원이다. 한조의 주변 정벌과 변화[한화(漢化)]는 사악한 것을 제거하고 바른 것을 남기며 한(漢) 문화를 보급하는 과정이었다. 이는 또한 한(漢)의 본성은 물(水)에서 기인한다. 물은 만물을 만드니, 한(漢) 문화는 곧 중국인의 본질적인 속성이 되었다.

주: 본문은 단지 저자 개인의 관점에 불과할 뿐입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01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