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산거시(翠微山居詩)• 9(其九)》
임우(林雨)
【정견망】
“아침에 나무에 온통 붉은 꽃 핀 것 보았으나,
저녁에 보니 꽃이 지고 나무도 텅 비었구나.
만약 꽃을 인간사(人間事)에 비유한다면,
꽃과 인간사는 한가지로구나.”
朝見花開滿樹紅
暮見花落樹還空
若將花比人間事
花與人間事一同
인생은 사람의 눈에는 길게 느껴지지만, 더 높은 곳에서 보면 그야말로 한순간일 뿐이다. 시인 석충막(釋沖邈)은 승려였다. 그는 아침에 나무 가득 꽃이 피었다가 저녁에 빈 가지만 남은 것을 보고 느낀 바가 있어 이 시를 지었다.
“아침에 나무에 온통 붉은 꽃 핀 것 보았으나,
저녁에 보니 꽃이 지고 나무도 텅 비었구나.”
시인은 여기서 약간 과장을 보탰다. 많은 꽃이 대개 며칠 혹은 몇 주가 지나야 시들기 때문이며,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바로 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바라기는 아침에 피었다 저녁에 지고, 하루살이는 아침에 태어났다 저녁에 죽는다. 어찌 되었든 사람이 늙었을 때 일생을 되돌아보면 단지 한순간의 일이었음을 발견하게 된다.
예전에 다투고 싸우며 얻었던 것들이 이때가 되면 모두 뜬구름과 같아 가치가 없음을 알게 된다.
“만약 꽃을 인간사(人間事)에 비유한다면,
꽃과 인간사는 한가지로구나.”
시인은 사람과 꽃의 도리가 같다고 보았다. 모두 짧다는 점에서 같다. 생명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물은 아마도 꽃의 아름다움과 사람의 청춘기일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백일 가는 꽃이 없다(花無百日紅)”고 말한다. 석모용(席慕容)은 일찍이 “열여섯 살이란 꽃은 오직 한 번만 핀다”라고 했다. 인생은 짧고, 가장 아름다운 청춘은 더더욱 한 번 가면 돌아오지 않는다.
시인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을까? 승려로서 자연히 수도(修道)하여 원만(圓滿)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대법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해 주셨다.
“대법제자는 수련하는 사람이다. 여러분 모두 알다시피 수련인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지는 인생에 대해 중하게 보지 않는다. 무엇을 중하게 보는가? 수련 후의 정과(正果)이다. 사람마다 세상에 온 것은 모두 자신의 사명이 있다. 사람마다 이 세상에 온 것은 모두 한 가지 목적이 있다. 정법 초기, 많은 신이 나에게 말했는데, 현재 세상의 사람이 모두 이 법을 위해 왔지만, 결코 모두가 당신의 이 법을 위해 바른 면의 작용을 일으키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2013년 미국 서부 국제법회 설법》)
짧은 인생의 의미는 오늘날 정법(正法)을 위한 것이다. 어떤 목적으로 왔든지 간에 오늘날의 생명에게는 모두 법을 얻을 기연(機緣)이 있다. 관건 순간에 자신의 선택이 가장 중요하다. 꽃은 시들기 쉽고 사람은 늙기 쉬우니, 법을 얻어 하늘로 돌아감은 마땅히 서둘러야 한다. 인간 세상의 집착을 내려놓고 하루빨리 법을 얻어 돌아가는 것만이 가장 중요하다. 그 외의 다른 일들은 모두 뜬구름일 뿐이다.
이 《취미산거시 9수》는 간단하고 이해하기 쉽지만 인생의 참뜻을 담고 있다. 인간 세상의 만사를 간파하고 법을 얻어 하늘로 돌아가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가장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044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