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본선생
【정견망】
혜희가 화급히 돌아오니 일진천 대전은 훨씬 조용해져 있었다. 하지만 신들의 얼굴에는 기쁨의 기색이 조금도 없었다.
“언니! 어머니는 어디 계셔?” 혜희가 다급하게 혜교에게 물었다.
구지신군이 거울 하나를 들고 있었는데, 거울 속에는 삼계의 어느 층 하늘 구석이 보였다. 그곳에는 아름다운 꽃사슴 한 마리가 있었다.
그렇다. 그 꽃사슴이 바로 정화군의 전생이었다.
혜희가 구지에게 물었다. “신군님? 왜 어머니를 데려오지 않으시는 거죠?”
구지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군주께서는 돌아오실 수 없습니다.”
그 짧은 한마디에 혜희는 마치 날벼락을 맞은 듯했다. 그녀는 간신히 입을 떼어 물었다. “왜… 왜요?”
구지는 머리를 가다듬으며 여전히 얼음처럼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
“우리 일진천보다 높은 신들께서도 이 일의 안배에 참여하셨는데, 그분들께서 군주님께 노하셨습니다. 군주님께서 제멋대로 안배를 고쳐 천규(天規)를 어겼으니, 다시 하늘로 돌아오기는 어렵습니다.”
혜희는 이 결과를 듣고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아마 고통이 극에 달했기 때문이리라. 그녀는 혼자 대전을 나와 마음을 가라앉히려 했다……
계수나무 옆에 앉아 봄이 가고 가을이 오는 것을 지켜보고, 들판에 누워 추위가 가고 더위가 오는 것을 견뎠다…… 이것이 일진천의 신이 고통을 표현하는 방식일지도 몰랐다.
어느덧 다시 금계(金桂) 향기가 감도는 계절이 왔다. 지난번 계수나무 꽃이 막 졌을 때, 흑요를 데리고 장난을 치다가 흑요가 어머니에게 근신 처분을 받았던 일이 떠올랐다. 이제 다시 꽃향기가 나니 흑요는 나올 수 있게 되었지만, 어머니는 돌아오지 못한다. 그 생각에 혜희는 더욱 서글퍼졌다.
그녀가 계수나무 아래 앉아 있는데, 우연히 몇몇 신관이 나누는 대화가 들렸다.
“군주님께서 돌아오지 못하게 되었지만, 구지 신군께서 다시 다음 안배를 하셨다더군. 이번에는 절대 차질이 없을 거라던데……”
혜희는 ‘안배’라는 말만 들어도 귀가 따가웠다. 그녀는 벌떡 일어나 그 자리를 떠났다. 그녀는 점점 더 빨리 걸었고 나중에는 마치 내면의 불꽃이 곧 분출될 것처럼 속도를 높였다.
걷다 보니 문득 고개를 들었을 때 그 거대한 용나무 앞에 도착해 있었다. 그 순간 그녀는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며 용나무를 껴안고 통곡했다.
그 소리가 너무나 애절했는지 용나무도 함께 흐느끼기 시작했다. 천천히 나무줄기에서 눈물 같은 액체가 흘러나왔다.
혜희는 이 나무가 자신을 위해 눈물을 다 말려버릴 것만 같아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이곳이 청령만과 멀지 않다는 것을 떠올린 혜희는 청령만의 물을 끌어와 이 용나무에게 뿌려주었다.
청령만이 신령한 보배의 땅이어서 그런지 그 물 또한 다른 곳과 달랐다. 물을 머금은 용나무가 갑자기 격렬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더 기이한 것은 동시에 혜희의 머리에 꽂힌 비녀 또한 격렬하게 떨리며 찬란한 오색 신광(神光)을 뿜어낸 것이다!
거대한 나무가 크게 한 번 떨리더니 ‘슉’ 하고 줄어들며 ‘용두장(龍頭杖)’으로 변해 혜희의 손안으로 쏙 들어왔다. 혜희의 머리에 있던 비녀 또한 갑자기 찬란한 빛을 내뿜으며 광채가 가시지 않았다.
이때 어린 혜희는 갑자기 자신의 몸에 신통한 힘이 깃든 것을 느꼈고, 이 용두지팡이를 휘두르는 것이 무척이나 익숙하게 느껴졌다. 그녀는 무언가 떠오른 듯 한 줄기 빛이 되어 대전을 향해 날아갔다.
혜희가 대전에 가보니 연노란색 빛을 내뿜던 백옥 석비 위에 또 글자가 더해져 있었다. 그 비석을 보자 혜희의 마음속 불꽃이 당장이라도 터져 나올 듯 타올랐다! 어디서 그런 용기와 신통력이 생겼는지 혜희는 용두장을 꽉 쥐고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다!
“쾅!” 하는 거대한 굉음이 울렸다! 백옥 석비가 용두장의 강타에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그것은 구지 신군의 ‘안배’였고, 일진천에서 그 누구도 부술 수 없었으며 감히 부술 엄두조차 내지 못하던 것이었다! 이 혜희에게 대체 어디서 이런 신력(神力)이 나온 것인가?
사실 침전에서 정좌 중이던 구지신군은 갑자기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을 느끼고 “아차!” 하고 소리쳤다.
구지가 화급히 대전으로 달려와 보니, 혜희가 손에 든 막대기로 자신의 석비를 부순 것을 발견했다. 그는 몹시 분노해서 호통을 쳤다.
“무지한 아이 같으니! 네가 지금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아느냐?!”
혜희는 싱긋 웃었다. 마치 그가 화를 내기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알고 말고요. 사람을 해치는 이 나쁜 물건을 부수려던 참이었어요!”
구지 역시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네 손에 든 그 부러진 막대기 따위가 대체 무엇이기에 감히 나의 안배를 부순단 말이냐!”
혜희는 지팡이 위의 용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 용두장이 손에 아주 잘 맞는군요. 이건 아주 좋은 법기(法器)예요. 하늘의 쓰레기들을 때려잡기에 딱이죠!”
구지는 화가 나 수염이 다 뒤틀릴 지경이었다.
“이 어린것이 정화군이 오냐오냐하니 아주 버릇이 없어졌구나! 내 오늘 정화군을 대신해 이 고약한 녀석을 따끔하게 손봐주마!”
혜희 역시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응수했다.
“좋아요! 저도 일진천의 정신(正神)들을 대신해 이 음험하고 교활한 위선자를 교육해주죠!”
말을 마친 구지가 손을 뻗어 혜희를 잡으려 했으나, 혜희가 지팡이로 쳐내자 구지의 손은 허공을 갈랐다. 이렇게 공방이 오가는데, 혜희에게 용두장이 몸을 방어해주자 구지가 좀처럼 그녀를 잡지 못하자 그는 화가 치밀어 필살기를 펼쳤다.
구지의 소매에서 무수히 많은 날카로운 얼음 칼이 튀어나와 혜희를 향해 날아갔다. 그 찰나의 순간, 용두장 또한 무수한 가닥으로 변해 그 만 개의 얼음 칼을 산산조각 내버렸다.
혜희는 구지가 자신에게 살수까지 쓰는 것을 보고 독한 마음을 먹었다. 더는 피하지 않고 무의식적으로 머리에서 비녀를 뽑았다. 그녀는 왼손에 비녀를 쥐고 오른손에 지팡이를 든 채 진검승부로 구지와 싸우기 시작했다.
이때 일진천 대전 밖에서는 두 줄기 빛이 오르락내리락하며 번개와 천둥을 동반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뭇신이 넋을 잃고 바라보다가 어떤 이가 정신을 차리고 외쳤다.
“멍하니 있지 말고 어서 흑요 신군을 불러오게!”
비녀와 지팡이가 합쳐지자 실로 그 위력이 무궁무진했다. 결국 구지는 버티지 못하고 벽을 짚은 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혜희가 그에게 물었다. “구지! 어머니가 내려가시기 전 투표수를 조작한 게 당신이지?”
구지는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아니라니까! 누구도 나의 안배를 바꿀 수 없어!”
혜희는 어이가 없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신이라는 자가 마음속에 온통 음모와 계략뿐이니, 그 안배라는 것도 보나 마나 뻔하군요!”
구지는 크게 웃으며 말했다. “무지한 어린 녀석이 감히 나를 평가하려 들다니!”
혜희는 그 얼굴을 보는 순간, 마치 인간 세상에서 예수를 모욕하고 어머니를 해친 로마 왕권의 모습이 겹쳐 보이는 듯하여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좋아… 좋아… 그렇다면 당신도 십자가에 못 박히는 기분이 어떤지 느끼게 해주지!”
말과 동시에 손에 든 비녀를 던졌다. 비녀는 날카롭고 민첩하게 날아가 구지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그의 손바닥을 꿰뚫어 버렸다! 그러고는 구지를 대전 벽에 그대로 박아버렸다!
바로 그 순간, 혜희는 갑자기 종아리에 찌르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악!” 소리를 내며 바닥에 쓰러져 뒤를 돌아보니, 바로 흑요였다! 흑요가 혜희의 종아리를 물어 선혈이 흘러나왔고, 흑요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내렸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7908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