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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원이 사람을 구한 일(救人)과 살생이 보여준 선악의 과보

안단

【정견망】

관직에 있는 자는 사람을 살리고 죽이는 생살대권을 손에 쥐고 있기에, 인명에 직결된 중대사 앞에서 평범한 이들보다 더욱 신중해야 한다. 높은 관직이란 본래 백성을 위해 책임을 다하라고 주어진 것이지, 이를 남용해 인명을 해치면 죄가 가중됨은 물론이다. 살생의 업보는 설령 즉각 나타나지 않더라도 평생의 복록(福祿)과 수명으로 치러야 하며, 심하면 가문과 후손에게까지 미쳐 윤회의 굴레 속에서 그 빚을 다 갚을 때까지 끝나지 않는다.

건륭제의 중용을 받았던 청대 명신 양긍당(梁肯堂)이 직례총독으로 재임할 당시의 일이다. 그의 막료 중 ‘주풍자(周瘋子)’라 불리는 이가 있었는데, 밤하늘의 성상을 보고 미래를 예측하는 데 능했다. 어느 날 그가 별을 보더니 갑자기 양 대인에게 “천로(天牢, 하늘의 감옥 별자리)가 열렸습니다”라고 말했다. 평소 그의 말을 신뢰하던 양 대인이 즉시 사람을 보내 살피니, 과연 옥문의 자물쇠가 자석에 의해 파괴되어 있었고 죄수들이 탈옥을 꾀하고 있었다. 다행히 이를 미연에 방지했을 뿐 아니라, 양 대인이 죄수들을 더는 추궁하지 않아 그들의 목숨을 보존해 주었다.

당시 양 대인에게는 손자가 없었다. 장남이 태산의 벽하원군묘에서 간절히 기도를 올렸으나 효험이 없었는데, 이 일이 있은 후 큰 며느리가 아들을 얻었음은 물론 장남 또한 순덕지부로 승진했다.

그때 민간에 풍습이 있었는데 모두 벽하원군에게 소원을 비는 것이었다. 사당에 가서 진흙신상에 절을 하고 잡안에 모셔놓기도 했다. 그러나 양대인 집의 사당에는 오랫동안 수리를 하지 않아 지붕이 샜고 집안의 사당에 모신 진흙 신상의 어깨가 빗물에 젖어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이 때 양대인 장남의 팔에 통증이 생겼으나, 그가 신상에 상한 것을 발견하고 신상을 수리하자 통증이 씻은 듯이 나았다.

이후 증손자 양경사(梁敬事) 역시 도광 16년 진사에 급제해 한림원에 들고 복건성 감찰어사를 지냈다. 그의 서예는 최고라 일컬었으며 후세에 칭송이 자자했다.

건륭조의 또 다른 명신 호장령(胡長齡-자는 西庚) 역시 십여 명의 죄수를 살린 덕을 입었다. 그가 장원 급제 후 승승장구하여 한림원에서 편찬을 맡았다(종 3품). 한 관원은 몰래 남에게 말했다:

“나는 관상을 모르지만 호장령의 귀가 얼굴보다 하얀 것을 보니 범상치 않은 상이다. 이전에 구양수도 이런 말을 한적이 있소”이라 평했다. 과연 몇년 후 호장령은 승진하여 국자감 제주가 되었다(국자감은 최고 장관으로 종 2품이며 9경 중 하나이다)

그가 길지 않은 시간에 승진한 일에 대해 사정을 아는 다른 관원이 말했다: :호대인은 귀아게 되게 정해져 있었소. 왜냐하면 그의 부친 떄 쌓은 음덕이 있기 때문이오.

이전에 그의 부친이 관아에서 근무할 때, 단순 절도범들이 잡혀 진술을 들어보니 모두 대문으로 들어왔다고 했다. 심문은 이미 끝났다. 그러나 그의 부친은 이 도적들은 상습범이 아니라 가난으로 인해 부득이 한 것임을 알았다. 그들이 처형될 위기에 처하자 상관을 설득했다. 그는 “이들은 상습범이 아니라 굶주림에 못 이겨 범행한 자들이니, 주범과 종범을 가리지 않고 참형에 처함은 가혹합니다”.

상관이 듣고 일리가 있어서 동의했다. 그러나 이미 기록이 끝나 수정이 어렵게 되자, 그는 ‘대문으로 들어왔다(自大門入)’는 문구에 점 하나를 찍어 ‘개구멍으로 들어왔다(自犬門入)’로 고쳐 죄를 경감시켰다. 이 기지로 십여 명이 사형을 면했고, 그 덕은 고스란히 후손의 현달로 이어졌다.

반면, 억울한 죽음을 만들거나 살해를 일삼은(濫殺) 자는 관운의 몰락은 물론 자손에게까지 악업을 물려주게 된다. 가경 연간의 진사 사학숭(謝学崇) 일가가 그 예다. 사학숭은 젊은 나이에 진사에 급제해 명망을 떨쳤고, 그의 부친 사계곤(謝啟昆) 또한 광시순무를 지내며 청렴한 정치를 펼친 이름난 관리였다. 그러나 사씨 가문의 영광은 돌연 급전직하했다. 형제는 유배되거나 비방에 시달렸고, 사학숭은 관직 없이 떠돌다 객사했으며 일곱 아들 중 누구도 과거에 급제하지 못한 채 가산은 탕진되었다.

세상 사람들은 사학숭의 후덕함을 기리며 안타까워했으나, 그 내막은 따로 있었다. 부친 사계곤이 산서포정사로 있을 때, 횡령 사건을 조사하다 무고한 산서지부를 억울하게 죽게 했던 것이다. 이 비극은 이미 강희제 말기 한 고승에 의해 예견된 바 있었다. 관상의 달인이었던 그 승려는 사계곤을 처음 보았을 때 “장차 생살권을 쥐게 될 터이나, 절대로 살생해서는 안 된다”고 엄중히 경고했었다. 그러나 사계곤은 한순간의 어리석음으로 살생의 업을 지었고, 그 과보는 가문의 몰락으로 돌아왔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사학숭 본인 역시 살생의 빚을 졌다는 점이다. 그가 도원(道員)으로 있을 때, 꿈속에서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살려달라 애원했으나 잠에서 깬 뒤 이를 잊고 말았다. 다음 날 누군가 진상한 늙은 거북을 주방에서 삶아 죽였는데, 그날 밤 꿈에 피투성이가 된 남자가 나타나 원수를 갚겠다고 울부짖었다. 육도윤회의 법리에 따르면 만물은 영성이 있는 법, 고승의 경고와 거북의 몽조(夢兆)를 무시한 대가는 가문의 전도와 맞바꾸기엔 너무도 가혹한 것이었다.

참고자료: 《븍동원필록속편北東園筆錄續編》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0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