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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영웅 – 주유(周瑜) (1): 강동의 천자기, 누구에게 돌아갈 것인가?

이익운(李翼雲)

【정견망】

역사의 예언적 맥락에서 볼 때, 위·촉·오 삼국의 분립과 건국은 일찍이 예시된 바 있다. 사진은 북경 고궁 정문. (Getty Images)

역사의 예언적 맥락에서 볼 때, 위·촉·오 삼국의 분립과 건국은 일찍이 예시된 바 있다.

강동에 천자기(天子氣)이 있다는 전설은 아주 오래전부터 전해졌다. BC 210년, 진시황이 동쪽 회계를 순행할 때 기(氣)를 보는 술사(術士)가 “약 500년 후 강동 오(吳) 지역에 천자의 기가 나타난다”고 예고했다.

서한(西漢) 때 천자의 상서로움을 상징하는 구름인 ‘황기자기(黃旗紫氣)’가 늘 동남방에 나타났기에, 술사들 사이에서는 강동에 천자기가 있다는 믿음이 늘 있었다. 즉, 동남방에서 언젠가 천하의 공(功)을 이룬 자가 제위에 오를 거라는 믿음이었다[1].

동한 헌제(獻帝) 흥평(興平) 연간 오 땅에는 “황금 수레, 화려한 흙받이, 창문(昌門)을 열고, 천자가 나오네”라는 동요가 퍼졌다. 여기서 창문이란 오나라 서쪽 성문을 가리키는데, 이는 강동에 천자가 나타날 것임을 명백히 예시한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중국 동남 지역의 천자가 될 것인가?

천기(天機)의 기이한 상

손견(孫堅)은 동한 말기의 유명한 장수로 대대로 남방 오군(吳郡) 부춘(富春)에 거주했다. 부춘 손씨는 역사가 유구한데 바로 ‘병성(兵聖)’ 손무(孫武)의 후손이다.

손견의 조부 손종(孫鍾)은 홀어머니를 모시며 지극정성으로 효도했고 사리에 밝았다. 연이은 기근으로 생계가 막막해지자 손종은 오이를 심어 생계를 이어갔다.

하루는 소년 세 명이 문 앞에 나타나 태연하게 손종에게 오이를 청했다. 손종은 흔쾌히 승낙했을 뿐만 아니라 풍성한 음식을 대접했다.

떠나기 전 한 사람이 말했다.

“우리가 바로 천상에서 명(命)을 주관하는 사명성군(司命星君)이다. 그대의 정성스러운 대접에 감사하며 어떻게 보답할지 고민했다. 내가 보니 이 산 아래 풍수가 아주 좋으니 그대가 이곳에 쓰도록 하라.” 그러고는 다시 물었다. “몇 대 동안 제후가 되길 원하는가, 아니면 몇 대 동안 천자가 되길 원하는가?”

손종은 급히 무릎을 꿇고 말했다.

“몇 대 동안 천자가 된다면 좋겠지만, 묘를 어느 자리에 써야 합니까?”

성군이 말했다.

“지금 산 아래로 백 걸음을 걸어간 뒤 뒤를 돌아보라. 우리가 어디서 떠나는지 보고 그 지점에 묘를 써라.”

손종이 그 말대로 산을 내려가 백 걸음을 걷고 뒤를 돌아보니, 세 사람이 멀리서 백학으로 변해 하늘로 날아가고 있었다[2].

손종이 뒤를 돌아보니 세 사람이 멀리서 백학으로 변해 하늘로 날아갔다. (쑨밍궈/에포크타임스)

손견의 조상 묘는 부춘성 동쪽에 세워졌다. 묘 위에는 항상 오색구름이 나타나 땅에서 하늘까지 치솟았으며 수 리에 걸쳐 퍼졌다. 많은 이들이 이를 보고 “이것은 평범한 기운이 아니니 손씨 가문이 장차 반드시 흥성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나중에 손견의 어머니가 임신했을 때, 꿈속에서 자신의 창자가 아주 길게 늘어나 오나라 창문(昌門)을 한 바퀴 감는 것을 보고 놀라 잠에서 깼다. 이 꿈을 이웃 부인에게 말하자 이웃은 “길조일지도 모른다”라고 답했다. 과연 손견은 태어날 때 용모가 비범하고 성격이 활달했으며, 특히 품격과 절개가 고결하여 보통 사람을 뛰어넘었다[3].

동탁을 격파한 첫 번째 인물

성인이 된 손견은 영명(英名)이 널리 퍼졌다. 도적을 토벌한 공으로 세 현(縣) 책임자를 역임하며 높은 찬사를 받았다. 고향의 친척과 친구, 젊은이들이 그와 교유하기를 좋아해 수백 명에 달했는데, 손견은 아낌없이 그들을 도우며 가족처럼 돌보았다.

중평 원년, 황건의 난이 일어나자 손견은 난을 평정하는 대열에 합류했다. 손견의 용맹하고 두려움 없는 정신에 수천 명의 지원자가 따랐다. 그는 늘 군사들의 사기를 북돋웠기에 싸우는 곳마다 이기지 못함이 없어 난을 평정하는 대군의 주력이 되었다.

영제 중평 6년, 동탁 토벌 연합군이 결성되자 손견은 이에 호응해 북상했다. 원술 휘하에 들어가 파로장군(破虜將軍), 예주(豫州)자사에 봉해졌으며 노양성(魯陽城)에 주둔했다. 얼마 후 동탁은 낙양에 있던 연합군 맹주 원씨(元氏) 일가 50여 명을 살해했다.

헌제 초평(初平) 원년(서기 190년), 손견은 양인성(陽人城)에서 동탁군과 정식 대전을 벌여 연승을 거두었다. 그러나 누군가 원술에게 “손견이 정말 낙양을 점령하면 제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이대로 두면 늑대를 없애려다 호랑이를 키우는 꼴 아니겠습니까?”라고 이간질했다.

원술은 이 말을 듣고 손견을 의심해 군량을 보내지 않았다. 군량이 떨어진 손견은 몹시 초조했다. 당시 양인은 원술이 있는 노양에서 100여 리 거리였는데, 손견은 밤을 새워 말을 달려 노양으로 가서 원술을 만났다.

손견은 원술을 보고 격분하며 말했다. “제가 목숨을 아끼지 않고 전장에서 싸우는 것은 국가를 위해 도적을 토벌하고 장군 가문의 원수를 갚기 위함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동탁과 깊은 원한이 없으나 장군께서는 남의 참언에 넘어가 저를 의심하시는 겁니까!”

원술은 마음이 불편해져 즉시 손견에게 군량을 조달하라고 명했다. 손견은 즉시 진영으로 돌아가 다시 한번 동탁군을 대파했다. 낙양 점령까지는 겨우 90리가 남은 상황이었다.

동탁은 손견의 위용과 용맹함에 큰 위협을 느꼈다. 이에 사람을 보내 손견과 사돈을 맺자고 청했으나 손견은 노하며 거절했다. “동탁은 하늘을 거스르고 도를 어겨 왕실을 뒤엎었다. 오늘 너의 머리를 베어 천하에 보이지 않는다면 나는 죽어도 눈을 감지 못할 것인데 어찌 사돈이 된단 말이냐!”

초평 2년(서기 191년), 손견은 동탁의 군진을 대파하고 낙양에 입성했다. 동탁을 서쪽 장안으로 도망치게 하니 이때부터 천하에 손파로장군의 명성이 자자해졌다.

전국옥새를 얻다

손견은 한실(漢室)에 대한 충성심이 지극했다. 낙양에 들어섰을 때 옛 번화했던 도성이 폐허가 되고 수백 리에 인가조차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처연하게 눈물을 흘렸다. 그는 군사들에게 한 황실의 종묘를 청소하고 능묘를 수리하게 했으며, 조상들께 제사를 지낸 후 군대를 철수하려 했다.

이때 종묘를 청소하던 병사들이 궁궐 남쪽 우물 위로 오색 안개가 감도는 것을 발견했다. 모두 두려워 우물물을 긷지 못하자 손견이 사람을 시켜 우물을 살피게 했다. 잠시 후 가로세로가 넉 치이고 다섯 마리 용이 엉킨 무늬가 새겨졌으나 한 귀퉁이가 떨어진 옥인이 발견되었다. 거기에는 ‘수명우천 기수영창(受命于天, 既壽永昌: 하늘에서 명을 받았으니 길이 오래가고 번창하리라)’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이것이 바로 황권의 상징인 전국옥새였다.

진쉐중(金協中) 채색 《삼국연의》 제6회 삽화, 옥새를 숨기고 맹세를 어기는 손견. (공유 영역)

중평 6년(서기 189년) 궁궐에 난이 일어났을 때, 장양(張讓) 등 환관들이 천자를 협박해 도망쳤다. 이때 옥새를 보관하던 이가 당황하여 우물 속에 던졌던 것을 이제 손견이 찾아낸 것이었다[4].

신기한 태몽

손견은 4남 1녀를 두었다. 아내 오씨는 장남 손책을 임신했을 때 달이 품 안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었고, 차남 손권을 임신했을 때는 태양이 품 안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었다. 그녀가 이 꿈을 손견에게 말하자 손견은 “일월은 우주 음양의 정화이며 지극히 귀한 상징이니, 우리 자손이 크게 흥성할 것이오!”라고 답했다[5].

과연 충용(忠勇)스러운 손견은 자손에게 덕을 끼쳤고, 손씨 가문은 동남방에서 빠르게 흥기하여 중화 문화사의 또 다른 찬란한 페이지를 열었다.

(계속)

주석

[1] 《송서(宋書)》 <부서지(符瑞志) 5>: “애초에 진시황이 동쪽을 순행하며 강을 건넜다. 기를 보는 자가 말하기를 ‘500년 후 강동의 오 땅에서 천자의 기운이 나오고 금릉 땅에는 왕의 형세가 있다’라고 했다. 이에 진시황이 금릉을 말릉(秣陵)으로 고치고 북산을 깎아 그 형세를 끊었다. 오에 이르러 죄수 10여만 명을 시켜 그 땅을 파헤치고 나쁜 이름을 붙여 수권현(囚卷縣)이라 했다.“

한대(漢代) 술사(術士)들이 말하기를 “황기자개(黃旗紫蓋)가 두(斗), 우(牛) 별자리 사이에 나타나니 강동에 천자의 기운이 있다”라고 했다. 헌제 흥평 연간에 오 땅에 동요가 있기를 “황금 수레, 화려한 흙받이, 창문(昌門)을 열고, 천자가 나오네”라고 했다. 위 문제 황초 3년, 무창(武昌)에서 거병하며 황룡과 봉황이 나타났다고 했다. 그해 손권이 존호를 칭하고 71세에 훙(薨)했다.

[2] 《삼국지보주(三國志補注)》 <유명록(幽明録)>에 “손종은 오군 부춘 사람으로 손견의 조부다. 어머니를 모시고 지극정성으로 효도했으며 오이를 심어 가업으로 삼았다. 갑자기 소년 세 명이 와서 오이를 청하니 손종이 음식을 대접했다. 떠나며 말하기를 ‘우리는 사명(司命)이다. 그대의 뜻에 감동했으니 어찌 보답하지 않겠는가. 이 산 아래가 묘자리로 좋으니 몇 대 동안 제후가 되길 원하는가, 몇 대 동안 천자가 되길 원하는가?’라고 했다. 손종이 무릎을 꿇고 ‘몇 대 천자가 좋으나 어디에 묘를 써야 합니까?’라고 물었다. ‘백 걸음을 나간 뒤 뒤를 돌아보라. 우리가 떠난 곳이 묘자리다.’ 산 아래로 백 걸음을 걸어 뒤를 돌아보니 모두 백학으로 변해 있었다.”

[3] 《삼국지》 <손토로전> 배송지주 인용 : “손견 가문은 대대로 오에서 벼슬했고 부춘에 살았으며 성 동쪽에 장사 지냈다. 묘 위에 자주 기이한 빛과 오색구름이 나타나 하늘까지 닿고 수 리에 퍼졌다. 노인들이 서로 말하기를 ‘이는 평범한 기운이 아니니 손씨가 흥할 것이다’라고 했다. 손견의 모친이 임신했을 때 창자가 나와 오나라 창문을 감는 꿈을 꾸고 두려워 이웃 할머니에게 알렸다. 할머니가 말하기를 ‘어찌 길조가 아니겠는가’라고 했다. 손견이 태어나니 용모가 비범하고 성격이 활달하며 기이한 절개를 좋아했다.”

[4] 《삼국지》 <오지 손토로전> 인용 《강표전》: “옛 도읍은 비어 수백 리에 연기가 없었다. 손견이 성에 들어가 처연하게 눈물을 흘렸다.” 《오서》: “손견이 낙양에 들어가 한 종묘를 청소하고 제사를 지냈다. 손견의 군대가 성 남쪽 견관정(甄官井) 위에 있었는데 아침에 오색 기운이 있어 온 군사가 놀랐다. 손견이 사람을 시켜 우물을 탐색해 한나라 전국옥새를 얻었다. 글귀는 ‘수명우천 기수영창’이라 했고 가로세로 넉 치에 위에는 다섯 용이 엉켰으며 한 귀퉁이가 결손되었다.”

[5] 《수신기(搜神記)》: “손견의 부인 오씨가 임신하여 달이 품에 들어오는 꿈을 꾸고 손책을 낳았다. 손권을 임신했을 때 또 태양이 품에 들어오는 꿈을 꾸어 손견에게 고했다. 손견이 말하기를 ‘일월은 음양의 정이며 지극히 귀한 상이니 우리 자손이 흥할 것이오’라고 했다.”

깐징월드 【유유천고사(悠悠千古事)】 채널에서 전재
[https://www.ganjingworld.com/zh-TW/channel/1g2kugphn3g4oCdixIFpH5YAj1kq0c]

 

원문위치: https://www.epochtimes.com/b5/24/11/2/n14363100.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