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名(이름 명)’과 ‘明(밝을 명)’의 거대한 차이

대법제자

【정견망】

흔히 특정 분야에서 이름을 알린 이를 명인(名人)이라 부른다. 세상은 명인에게 존경을 보내며, 그에 따른 각종 이익과 부가 뒤따르기 마련이다.

그러나 ‘名(이름 명)’ 자를 파자(破字)해 보면 ‘夕(저녁 석)’과 ‘口(입 구)’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夕’은 저녁, 즉 하루가 저무는 찰나를 의미하니 그 기세가 오래가지 않음을 뜻한다. ‘口’는 사람들의 입에서 오르내리는 인식을 뜻하나, 그것이 반드시 진실과 부합하는 것은 아니다.

즉, 명인이란 사람들의 입이 만들어낸 허상일 뿐 반드시 진상(真相)은 아니라는 말이다. 때로는 그것이 단순한 아첨에 불과할 때도 있다. 가령 권력을 가진 자가 음식에 간을 치지 않았음에도, 주변 이들이 그 위세가 두려워 연신 맛이 좋다고 찬양하는 것과 같다. 역사 속 ‘지록위마(指鹿為馬)’는 이를 보여주는 가장 좋은 실례다. 이처럼 세상이 말하는 명인이란 한낱 이름값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반면 우리는 누군가를 가리켜 ‘명인(明人, 밝은 사람)’이라고는 잘 부르지 않는다. 사실 ‘明(밝을 명)’ 자는 ‘日(해 일)’과 ‘月(달 월)’이 합쳐진 글자로, 스스로를 태워 타인의 삶을 밝혀준다는 내포가 있다. 즉, 일을 함에 있어 타인을 먼저 배려하는 선량한 이를 뜻한다. 사람들은 보통 이런 이를 두고 ‘사리에 밝은 이(明白人)’라 칭한다. 진정으로 지혜로운 자는 얻으려 애쓰기보다 베풀 줄 아는 자이며, 그가 바로 우리가 말하는 참된 ‘명백한 사람’이다.

많은 이가 명성(名)을 쫓지만, 정작 그것이 추구할 가치가 없음을 깨닫지 못한다. 명성이란 단기간에 불리는 호칭일 뿐이다. 가령 가왕(歌王)이나 가후(歌后)라는 칭호는 듣기에는 좋으나 당장 내일이면 새로운 주인공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당사자에게 그것은 찰나의 순간 불꽃놀이처럼 화려하지만, 동시에 불꽃처럼 짧고 허망한 환영(幻影)에 지나지 않는다.

“여기까지 말한 김에 나는 또 한 마디 하겠다. 우리 수련계에는 이런 사람이 적지 않은데, 줄곧 고층차로 수련하려고 생각한다. 도처에서 법을 구하려고 돈도 적지 않게 썼으며, 방방곡곡을 한 바퀴 돌아 유명한 사부를 찾았지만, 찾지 못했다. 유명하다는 명(名)이 진정 명백하다는 명(明)은 아닐 수도 있다. 결국은 헛되이 돌아다니며 돈을 쓰고 고달팠지만,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전법륜(轉法輪)》 제8강)

수련자로서 명예와 이익을 추구하지 않을 때 비로소 최상의 것을 얻을 수 있다. 특히 대법제자가 명리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는다면, 가장 귀한 가치는 법을 얻어 원만(圓滿)에 이르는 것임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문자는 신전문화(神傳文化)의 하나로서, 글자를 창제할 당시 이미 심오한 내포가 그 속에 주입되었다. 전통문화의 길을 걷는 자만이 미래가 있으며, 법을 얻어 원만할 기회도 얻게 된다. 반면 신전문화의 가치를 저버린 자는 지혜를 잃어 어리석어지며, 장래의 길은 갈수록 좁아져 마치 소뿔 속으로 기어 들어가는 것처럼 헤어나올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비단 문자뿐만이 아니다. 모든 전통문화는 신(神)에게로, 그리고 아름다운 미래로 향하는 통로다. 현대의 실증과학이 인간에게 가져다줄 수 있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해 보아야 한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0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