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简体 | 正體 | English | Vietnamese

삼국탐미(三國探微): 제갈량의 대의(大義)

하풍(夏風)

【정견망】

보통 ‘삼국’ 속에서 제갈량은 지혜의 화신으로 여겨지며, 지략으로써 천하에 이름을 떨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의(義)’에 대해 언급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제갈량이 출산하기 전, 그의 스승이었던 사마휘(司馬徽)는 이미 제갈량의 결말을 알고 있었다. 《삼국연의》 제37회에서는 이렇게 표현했다.

사마휘가 계단을 내려와 하직 인사를 하고 떠나려 하자 현덕(유비)이 붙잡았으나 머물게 할 수 없었다.

사마휘는 문을 나서며 하늘을 우러러 크게 웃으며 말했다.

“와룡이 비록 그 주인은 얻었지만 때를 얻지 못했으니 안타깝구나!”

사실 제갈량 역시 당시 자신의 출사가 어떤 결말을 맞을지 잘 알고 있었다. 다만 첫째, 친구인 서서의 부탁이 있었고, 둘째 유비의 ‘삼고초려’ 은혜에 보답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공하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의연히 세상 밖으로 나왔다. 이번 출사에서 제갈량은 정말로 심혈을 다 쏟았으며, 죽을 때까지 국궁진췌(鞠躬盡瘁)했다. 이것은 제갈량이 삶을 버리고 의를 취한 위대한 행동이었다.

둘째로, 우리는 연의에서 ‘가정(街亭)을 잘못 잃은’ 단락을 알고 있다. 그렇다면 당시 제갈량은 마속(馬謖)의 사람됨과 일처리를 잘 알고 있었는데 왜 그에게 허락했을까? 그것 역시 마속이 반평생을 자신을 따랐기에 그 정이 부자처럼 친했기 때문이다. 마속은 공을 세워 입신양명하고 싶어 했고, 제갈량은 이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공명이 눈물을 흘리며 말하기를, ‘나와 너는 의가 형제와 같으니, 네 자식이 곧 내 자식이다. 굳이 많이 당부할 필요가 없다.’ 좌우에서 마속을 원문(轅門 군영 문) 밖으로 끌어내어 참수했다.”(《삼국연의》 제96회) 이것이 바로 제갈량이 마속을 기용한 원인이자, 마속에 대한 ‘의(義)’였다.

그 후, 무사가 마속의 수급을 계단 아래에 바치니 공명이 통곡을 멈추지 않았다.

장완이 “이제 유상(幼常 마속)이 죄를 지어 군법을 바로 세웠는데, 승상께서는 어찌하여 이토록 우십니까?”라고 물으니 공명이 대답했다.

“내가 마속을 위해 우는 것이 아니오. 선제(先帝)께서 백제성에서 위독하실 때 내게 당부하시기를, 마속은 말이 실제보다 지나치니 크게 쓰지 말라 하셨소. 이제 과연 그 말씀대로 되었으니, 나의 밝지 못함을 깊이 한탄하며 선제의 말씀을 생각하며 이토록 통곡하는 것이오!”

이에 대소 장졸 중 눈물을 흘리지 않는 이가 없었다.”

여기서 제갈량이 대성통곡한 것 역시 유비에게 죄송한 마음과 마음속의 가책 때문이었으니, 이것이 유비에 대한 ‘의(義)’였다.

그 후 여러 차례 북벌이 실패한 것은 모두 유선(劉禪)과 관련이 있다. 그럼에도 멈추지 않은 것 역시 예전 유비의 부탁 때문이었다. 이 역시 ‘의’라는 한 글자로 요약할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제갈량의 일생은 의(義)를 위한 것으로, 유비의 지우지은(知遇之恩)에 감사하고, 마속과의 ‘부자’ 같은 정을 아꼈으며…… 개인의 영욕 따위는 안중 없었다. 제갈량이야말로 삼국에서 진정한 대‘의’(大‘義’)의 인물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1532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