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풍(淸風)
【정견망】
산봉우리 모여들고 성난 파도 밀려드는 듯
산과 강의 길, 모두가 험준한 동관일세.
서도(장안)를 바라보니 생각이 만 갈래라.
슬프구나, 진한(秦漢)의 옛 도읍지 바라보니
만 칸의 궁궐은 이미 진토가 되었네.
흥해도 백성은 고달프고 망해도 고달프구나.
峰巒如聚,波濤如怒,山河表裏潼關路。
望西都,意躊躇。
傷心秦漢經行處,宮闕萬間都做了土。
興,百姓苦;亡,百姓苦。
장양호(張養浩, 1269년~1329년, 일설에는 1270년 출생)는 자는 희맹(希孟), 호는 제동야인(齊東野人), 별호는 순암(順庵), 만년의 호는 운장노인(雲莊老人)이며 제남(濟南) 사람이다. 원대 산곡(散曲) 대가다. 관직은 현윤(縣尹), 감찰어사(監察禦史), 예부상서(禮部尙書)를 역임했다.
원 문종(文宗) 천력(天曆) 2년(1329년), 관중(關中) 지역의 가뭄으로 인해 섬서행태중승(陝西行臺中丞)에 임명되어 이재민을 구제하게 되었는데, 굶주린 백성의 고통이 극심한 것을 보고 통곡하며 가산을 모두 나누어 주었다. 얼마 후 과로로 병이 들어 세상을 떠났다. 이 《산파양(山坡羊)·동관회고(潼關懷古)》는 이 시기에 창작된 것으로 여겨진다.
나는 수년 전 이 원곡(元曲)을 처음 읽었을 때 마음속에 까닭 모를 충격을 받았으나, 도대체 무엇 때문인지는 말할 수 없었다. 문자 그대로 보면 작가가 경치를 빌려 정을 기탁함으로써 일반 백성에 대한 동정심을 표현한 것이지만, 또한 그것에만 그치지 않고 훨씬 깊은 내함(內涵)이 있는 것 같았다. 최근 다시 이 곡을 읽으며 작가가 사실은 아주 높은 생명 차원에서 윤회의 고통을 감탄한 것임을 단번에 깨달았다.
“산봉우리 모여들고 성난 파도 밀려드는 듯
산과 강의 길, 모두가 험준한 동관일세.”
화산(華山) 봉우리들이 사방팔방에서 모여들고 황하(黃河)의 파도는 화가 난 듯 용솟음친다. 동관의 고도는 안으로 화산을 끼고 밖으로 황하와 연결되는데, 이는 경치를 묘사한 것으로 문장이 간결하면서도 기세가 넘쳐 마치 아득하고 힘 있는 유화처럼 우리를 천여 년 전의 역사적 화폭 속으로 인도한다.
이어지는 구절은 다음과 같다.
“서도(장안)를 바라보니 생각이 만 갈래라.
슬프구나, 진한(秦漢)의 옛 도읍지 바라보니
만 칸의 궁궐은 이미 진토가 되었네.”
역사에 대한 감개는 거의 일사천리로 이어진다.
이것은 “청산은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인데 석양은 몇 번이나 붉었는가(青山依舊在,幾度夕陽紅)”, 혹은 “파도가 영웅을 다 쓸어갔네(浪花淘盡英雄)”라는 명구들과 같은 이치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흥해도 백성은 고달프고 망해도 고달프구나.”라는 구절은 전체 글의 화룡점정이다. 속인의 각도에서 해석하면 이는 역사에 대한 작가의 사색과 백성에 대한 깊은 동정을 표현한 것이다. 물론 맞는 말이지만, 단지 이것뿐이었다면 이토록 강렬한 마음의 충격을 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법(法)에서 사람은 다 아주 높은 층차에서 인간 세상으로 내려왔음을 알고 있으며, 조대의 교체는 단지 신(神)이 우리를 위해 짜놓은 역사 극본에 불과하다. 우리는 이 극본의 장면마다 윤회하면서, 고생을 겪어 죄를 없애며, 제고하고 자신을 다시 만들고 이를 통해 천국으로 돌아간다. 동관이든 화산이든 황하든, 혹은 다른 산수와 건축물이든 웅장하거나 섬세하거나, 날씨가 화창하거나 폭풍우가 치거나, 아름답거나 초라하거나 하는 등의 모든 것은 윤회의 배경일 뿐이다. 게다가 이 배경 역시 상대적으로 가장 거칠고 더러우며 가장 외표(外表)적인 입자로 구성되어 있다. 동시에 이 육신(肉身)이 있기 때문에 왕조의 흥망성쇠와 관계없이 우리는 모두 고통스럽다. 여기서의 고통은 일반적인 의미의 생활고보다 훨씬 깊은 함의를 지니고 있는데, 바로 신체(神體)가 없어진 후의 고통이다.
대법 사부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속인은 바로 이 신체가 있음으로써 문제가 나타난다. 추워도 안 되고, 더워도 안 되고, 목말라도 안 되고, 배고파도 안 되고, 힘들어도 안 되며, 또 생로병사(生老病死)가 있는데, 어찌됐든 당신은 편안하지 못하다.”(《전법륜》)
웅장한 관문 하나에 슬픈 노래 한 곡이다. 작가는 한인(漢人)임에도 원조 여섯 황제에게 중용되어 높은 관직을 지냈으니, 그 덕(德)의 성분이 크고 복보(福報)가 두터웠음을 알 수 있으며 그의 생명 층차는 의심할 바 없이 매우 높다. 그는 백성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라는 표상을 빌려 윤회의 고통에 대한 통찰과 감개를 표현했다. 물론 그의 사람의 일면은 이를 의식하지 못했을 수 있으나, 그의 신(神)의 일면이 청성하게 작용한 것이다. 바로 이 때문에 이 산곡이 원곡의 정점에 오른 작품 중 하나로 공인받는 것이다.
원곡(元曲)의 또 다른 최고 작품 중에 마치원(馬致遠)의 《추사(秋思)》가 있다.
“마른 등나무, 고목, 황혼에 우는 갈가마귀 물 흐르는 작은 다리, 인가 한 채
옛길엔 서풍이 불고 야윈 말 한 마리 석양은 서편에 지고
애타는 사람은 하늘가에 서있네
枯藤老樹昏鴉,小橋流水人家,古道西風瘦馬。
夕陽西下,斷腸人在天涯。”
이 작품은 귀로에 오른 사람의 무력함과 처량함을 표현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마찬가지로 생명이 진정한 고향을 떠난 미망(迷茫)과 기대를 표현한 것이다. 고향을 떠난 지 몇 년이며 윤회한 지 몇 년인가, 언제쯤 진정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대법(大法)이 널리 전해지니 우리는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0796
